특별집회/복음 말씀

< 복음말씀_탕자의 비유 > 조재훈bro

박이레 2021. 7. 25. 22:13

2017년 11월 24일 금요일

강사 : 조재훈 형제님

< 복음말씀_탕자의 비유 >

이 자리에 오신것은 저희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 아니고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 생각들을 내려놓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눅15:1-2, 개역한글)

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15:11-24, 개역한글)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오늘 우리는 그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오늘은 복음집회시간입니다. 복음은 아까 말씀드린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영생의 선물을 담은 소식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친히하신 말씀입니다. 그 복음은 하나님이 쓰신 책,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그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 많은 복음에 대한 이야기 중에 오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탕자는 '허랑방탕'하다에서 따온 말입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에 대해서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전하실때 세리와 죄인들이 나아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 원망 했습니다.
왜 원망 했을까요? 주님께서 하시는 방식이 그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저 세리와는 나는 다른 부류 입니다. 저기 저 죄인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로마에 붙어서 세금을 징수하고 일부는 자기가 먹습니다. 저들은 반역자이고 탐욕으로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저런 죄인에 비하면 저는 죄인이 아닙니다. 저는 일생동안 다른 사람에게 피해한번 주지 않고 살아왔습니다."라고 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고 다른 죄인들에 대해서는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보았을때, 예수님은 저 명백한 죄인들을 영접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세리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을때, 그들의 생각으로는 예수님께서 나가라고 하실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가까이 두셨습니다. 그들에게 앞자리를 제공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을 들려주시기를 기뻐 하시고 심지어는 그들과 함께 먹으면서 교제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의 원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한다>

오늘 들려드릴 소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영접하십니다. 여러분이 모든것을 기억하지 못하실지라도 이 한 문장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이것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영접 하십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원망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듣고 "그렇다. 나는 죄인을 영접한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이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죄인은 무엇입니까? 죄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흔히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생각 합니다. 뉴스에 나와서 신문 한장을 차지할 정도로 그런 흉학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죄인이라고 생각 합니다. 또 일생을 도덕적으로 살고 사회적으로 문제 삼지 않고 학교에서도 모범적으로 칭찬받는, 평범하게 사는 나같은 사람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히 죄가 무엇인지를 말씀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이렇게 죄에 대해서 정의를 내립니다.
죄는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생각할 때, 다른사람들과 견주어 상대적으로 내가 죄인이고 의인이라고 생각 합니다.
저 흉악한 죄인이 있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모범적인 시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일생을 비추어 남에게 피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저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비추어 나는 어떠한가요?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죄 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때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기준은 우리의 중심입니다. 우리의 속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지만 나는 알고 있는 내 안의 비밀한것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스스로 이 말씀에 비추어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5:27-28, 개역한글)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사람들은 간음을 범해야 간음죄를 지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었다면 이미 너희는 간음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 영혼의 속을 낱낱히 살피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을 보시고 우리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것은 모든 악독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 모든것이 이미 마음속에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지 다 아시는 것입니다.

옛날에 은혜는 물에 기록하고 원수는 돌에 기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가 은혜로서 받은 감사한 일은 물에 기록 한다는 것입니다. 물에 기록하면 어떻게 되나요?
흘러 내려 갑니다. 잊습니다.
원수 맺는것은 돌에 기록합니다. 그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와도 돌에 기록한 것은 잘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감사함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 자비로운 마음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다른사람을 향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원수 맺습니다. 악한 마음들 미워하는 마음을 서운한 마음들이 가득해서 원망을 쉽게 잊지 못하고 잘때 그것을 기억하는것이 사람의 성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마음들을 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 입니다.
그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죄라면,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죄인이라면 나는 어떠한 사람 입니까?
로마서 3장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성경 말씀에 따르면,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이 말씀에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하나님은 그와같이 말씀 하십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과 세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을때 "그들은 나와 다른 부류다."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실때 같은 죄인인 것입니다.
드러난 죄인과 드러나지 않은 죄인이 있고 깨달은 죄인과 깨닫지 못한 죄인이 있을 뿐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다 같은 죄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이야기 하신 이후에도 비유를 드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주님께서 비유로 이르실때에, 비유라는 것의 뜻은 여기 있는것을 저쪽으로 던져 놓아서 비교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또 세리와 죄인들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옮겨서 비유 속으로 그들을 데려가십니다.
이 비유 자체를 보는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 비유를 통해서 자기를 보게 하는것이 주님의 목적입니다.
지금 말씀도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가 탕자의 비유를 들을 때에 이것은 성경말씀을 배우고자 하는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나를 알기 위함 입니다.

우리가 이 비유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적용 한다면 이 비유는 나에게 거울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것을 믿고 받아 들인다면 이 거울은 나에게 창문이 되 어줄 것입니다.
나를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그를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말씀들을 귀 귀울여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11절에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눅15:12, 개역한글)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둘째 아들이 잘 있다가 갑자기 아버지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십시요."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유산이라는것은 보통 아버지가 죽으면 그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는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살아계신데 이 둘때 아들이 찾아와 "나에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의 의미를 알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와 같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제가 아버지를 죽은자와 같이 여깁니다. 본래 유산은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 받는 것이지만 저는 아버지가 지금 주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기를 원합니다. 저는 아버지의 권위 아래 더 이상 있고싶지 않고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것들을 하기 원합니다. 제가 원하는 기준에 따라 살기를 원하고 아버지를 가능하면 멀리 떠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잔소리도 듣지 않고 내 친구들과 원하는것을 하고싶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떠나고 싶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완고하고 패역한 둘째아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그와같이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버지의 재산을 너무나 당연하게 '내게 돌아올 분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아버지가 수고로 모은 재산일진대, 이제 아들은 그것을 '내게 돌아올 분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내것입니다. 라고 주장하면서 요구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패역한 둘째 아들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 둘째 아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아야기는 창세로부터 첫 사람 아담에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있는 둘째아들의 모습은 모든사람의 모습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누가 만드셨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개역한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 개역한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분이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하시고 떠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면서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것들을 주시고 계십니다.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행17:24-25, 개역한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은 모두 다 육체의 생명이 있으신 분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 생명을 주신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분에 몇초씩 숨을 안쉬고 있는 분이 있나요?
그 호흡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호흡을 주관 한다면 우리는 아무일도 할수 없을 것입니다.우리의 호흡을 우리의 의지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만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물을 마셨습니다. 그 물은 어디서 온것일까요?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제주에 있는 물도 쉽게 구해서 마실수 있습니다. 마트에서 쉽게 구할수 있습니다.
물값은 700원 1000원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물값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물을 만들어 내었습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이 깊은 암반의 구멍을 뚫어서 이미 있는물을 끌어올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포장해서 팝니다. 우리는 그것의 수고비와 포장비와 배달비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사람이 물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기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먹는 곡식과 가을철의 풍성한 열매들에 대해서 우리가 값을 지불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 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동일하게 그것은 수고비와 여러가지 부대비용을 우리가 지불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실로 값을 지불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지불한 것이지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께 지불한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셨습니다. 풍성히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도 그와같이 누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게 될때 그의 아버지의 집은 풍성한 집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아버지는 참으로 자비로운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밑에 있을때 그것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떠나기를 원했고, 아버지의 것을 마치 당연히 자기것인 양 주장하면서 요구 했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여러분의 모습은 아닌가요?

"하나님은 없다" 라고 말하며 마치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내 노력으로 일군 것처럼, 내 수고로 얻은 것인양 삶을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이 없다 생각할찌라도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내가 얻은 것인양, 마치 나에게 당연히 돌아올 것인양,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일생을 살아가는 것이 둘째아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요.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돌아올 분량을 다 주었습니다. 며칠이 못되어 둘째아들은 그것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준 밭, 건물, 가구들을 다 팔아서 돈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마 헐값에 팔아버렸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남긴 것이 아니라 다 팔아서 먼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이 이야기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여행을 떠난다면 돌아올것을 남기고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팔아서 간것은 "나는 절대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라고결단한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집의 문지방을 나가는 것이 마지막이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더 이상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제 마지막이다. 나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여러분 중에 혹시 그와같은 마음을 품으신 분이 없습니까?
"내가 오늘은 비록 가족의 권유로 이 자리에 나왔지만 나는 결코 주님을 믿지 않으리. 나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리. 오늘이 마지막이리. 가족의 권유로 어쩔수 없이 이 자리에 왔지만 나는 내 굳은 마음을 결코 변화하지 않으리. 내 생각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으리"

그와같은 마음을 혹시 가지고 계신분이 없습니까? 여기 둘째아들이 그와같이 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떠날때에 가까운 나라로 가지 않았습니다. 먼 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서 다 써버렸습니다. 허랑방탕하게 다 써버렸습니다. 첫째아들의 표현을 빌리면 창기와 함께 술과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 모든 재산을, 돈을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주신 귀한 것들을 그는 다 쓸모없이 낭비 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1:20-21, 개역한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23, 개역한글)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롬1:28-32, 개역한글)

출애굽기 20장 말씀에 하나님은 십계명 중 하나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 학생분들은 여러분의 부모님을 공경 합니까? 공경 한다고 하는 것은 부모님의 말에 순종할 뿐 아니라 마음으로 그분을 존경하며 합당한 태도로 모든 행실들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를 공경하고 계십니까?
또 우리는 부모이지만 그 이전에는 자식 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모님을 공경 하셨습니까? 이 둘째아들은 그렇게하지 못했습니다. 감사하고 공경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여기 사람도 그렇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가운데서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하나님께 감사치도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살아 갑니다.
하나님의 영광, 그 귀한 영광을 다른 것으로 다 바꾸어 버렸습니다. 마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돈으로 바꾸어 버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주셨던 시간들과 힘들과 능력들과 재능들을 다른곳에 다 써버렸습니다. 허비하였습니다. 둘째아들이 돈으로 바꾼 것처럼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삶의 목적을 돈으로 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재능을 투자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것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저희가 자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능력과 신성을 우리에게 보이시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양심을 주셔서 선한 것을 느낄수 있는 기관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만드신 만물에, 우리의 양심에 보이셨습니다.


왜 사람들이 천둥 번개가 칠때 두려워 합니까?  다른사람의 죽음을 옆에서 볼때 왜 두려워 합니까? 그리고 그 죽음이 나에게도 다가올것을 알때 그 사람은 왜 두려워 합니까? 인정하지 않지만 분명히 죽고 난 다음의 세계가 있고 하나님이 계심을 부인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그냥 내어버려 두십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떠났습니다. 그가 떠나갈때 아버지는 그를 붙잡지 않았습니다. 내어두셨습니다.
두었을 때, 둘째아들은 먼 나라에 가서 그것을 다 허랑방탕하게 소비 했습니다.

인생이 이와같이 죄를 지으면서 허비하고 있다는 것을 29~31절에 나와 있습니다.
수근수근하고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교만하고 거짓말 하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 했습니다.
이러한 죄악들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는 것입니다.
다시 누가복음 15장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눅15:14, 개역한글)

<비로소 궁핍한지라>

그는 배고픔을 느껴본적이 없습니다. 그의 주머니는 항상 가득 차 있었는데 그는 이제 배고픔을 느낍니다. 주머니에는 돈 한푼 없습니다. 비로소 궁핍해 졌습니다.
이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아들은 궁핍을 알게 되었을때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합니다. 궁핍이라는것은 '필요' 입니다.
여러분은 영혼의 필요를 느낀적이 있으십니까? 영혼의 필요를 알고 계십니까? 모든 사람이 갖고있는 영혼의 필요를, 나의 필요를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개역한글)

둘째 아들은 큰 기근이 들었을 때 궁핍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큰 기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건강하고 계속해서 그 삶을 살것 같지만 우리의 다리의 힘이 빠지고 두 눈이 흐려지고 팔 다리의 힘이 풀리고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나이가 들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기 때문 입니다.

야고보서 4장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는 잠깐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이것이 우리의 필요 입니다. 우리의 큰 기근 입니다. 우리는 곧 죽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우리는 오늘밤이라고 죽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일이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큰 기근 일진대, 죽음외에 히브리서 9장 말씀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죽는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것이야 말로 우리 영혼의 큰 필요 입니다.
우리가 죽고 난 이후의 일이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세계를 앞 두고 있습니다. 죄 가운데서 죽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심판은 계시록 20장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고 흰 보좌가 그날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날에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다 그 흰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가 낱낱히 드러날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 라고 요한계시록 20장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 지옥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번, 영원한 불못에 대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지 않고 죽는다면 여러분은 이 심판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혼의 큰 필요 입니다.
여러분은 이 필요를 깨닫고 계십니까?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일장춘몽과 같은 그런 인생을 살다가 그가 깨닫지 못하고 죽었을 때 그는 영원한 혈벌, 멸망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려분은 이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반드시 깨달으셔야 합니다.
둘째아들은 자기의 궁핍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궁핍'이라는 단어는 로마서 3장에 나온 단어와 똑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르지 못한다' 이것이 궁핍이라는 뜻입니다.
"아 내가 그동안 다른사람들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문제없이 살아서 죽게되면 어느정도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라고 생각해 왔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고 하나님의 그 거룩한 기준에 못미치는 사람이구나."
이 궁핍을 깨닫고 "내가 죽고 난다면 이 기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겠구나."
이 궁핍을 깨닫는것이 주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 입니다.

둘째 아들이 궁핍을 깨달았을 때 그가 가서 한 일은 한 사람에게 가서 돼지 치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돼지가 먹는 열매로도 그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돼지보다도 그 둘째아들을 가치없게 여긴 것입니다.
이 세상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줄수 없습니다. 이 궁핍을 느끼신 이후에 " 그렇다면 내가 남은 인생을 좀더 착하게 살아보고 선행을 해보고 그동안 못 베푼 자비도 베풀어보고 고행도 해보고 말씀도 열심히 읽어보고 한다면 자격을 얻지 않을까?"라고 하지 말기 바랍니다.
더욱 궁핍해질 뿐입니다.

절대로 세상에는 이 궁핍을 채울만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사단인데 사단은 귀한것을 절대로 내어주지 않습니다. 사단은 그 영혼의 가치를 돼지보다도 못하게 여깁니다.
계속 우리 마음을 혼미케해서 궁핍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마치 배부른 사람처럼 이 세사을 마감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단의 목적 입니다.

여러분은 그 궤궤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15:17, 개역한글)

<이에 스스로 돌이켜> 다른말로 해 보겠습니다. '이에 재 정신이 들어'
궁핍을 깨닫고 세상에서는 그를, 이 먼나라에서는 그의 궁핍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비로소 재 정신이 들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것을 깨달으셨습니까?
여러분도 깨어나셔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삶에서는 소망이 없습니다.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멈추셔야 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내가 그동안 붙들었던것 이것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어가고 계시기 때문 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죽음뿐만 아니라 몸과 영혼이 지옥에서 둘째사망을 겪을 일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내일도 나에게 복음집회가 있다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마지막 복음일수도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생각한 것은 내 아버지 였습니다. 그토록 내 마음 속에서 지우기를 원했던 그 '내 아버지'가 그의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아, 내아버지는 어떠하신 분이셨는가?"
이스라엘에게는 세개의 종이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낮은 종이 '품군'입니다. 그는 그 집에 거하지 못하고 하루 일할 만큼만 받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품군입니다.

그런데 그 품군 조차도 아버지 집에서 일 했을때 먹고도 풍성히 남을만큼 풍족히 양식을 주었습니다.
그런 품군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그와같이 자비로우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어떠 합니까?
품군에게도 자비하셨다면, 그 아들에게는 어떻게 아버지가 대하겠습니까?
그 동안 아버지께서 했던 것들이 비로소 둘째 아들의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 한 일도 없이 아버지께서 주신 것으로 풍족히 살아가고 있었구나." 그제서야 죄를 깨닫고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십계명에 말씀하셨는데 나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가볍게 여겼고 하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께 죄를 범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
그는 결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영혼의 필요를 깨달으셨다면, 날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한시간 한시간 지옥에 던져지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다면 이제 정신이 들어야 합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으셨을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떠올리셔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시지만, 또한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을 만드시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엄하지 않으십니다.
그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애써 하나님을 모른척하고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하고 다니고 다른 사람들이 내게 권한 말들을 무시하고 살아 왔어도 그런 내게 계속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셨던 분입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해를 비추시고 의로운자 불의한자에게 비를 내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바로 여러분을 이 세상에 만드신 그 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왜 자비하신 것인가요?
왜 둘째 아들에게 그 원대로 하고 내어버려 두셨던 것입니까?
베드로후서 말씀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그 동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애써 부인하며 살아왔던 나에게 그 육체의 생명을 거두어가지 않으신 이유는, 그 육체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해주신 이유는 '나에 대해서 오래 참으셔서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를 향한 원하심은 이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은 나와같은 사람도 구원받기를 원하실까요?" 예 입니다.
"하나님은 나와같은 사람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실까요?" 예 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내어버려 두신 것입니다. 나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사랑이 없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랑을 깨닫고 재 정신이 들어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와같은 참으심의 시간을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억지로 하지 않으시고 인격적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그냥 끌어 당겨서 "너 여기 서라" 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의 마음은 변치 않겠지요. 언제든지 또 나가겠지요.
하나님이 원하시는것은 죄인의 마음 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닫고 나의 하늘 아버지께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갔을때 아버지는 환영 합니다.
성경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자기 죄를 자복하는 자는 긍휼히 여기심을 받느니라>

<아비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회개하는 자는 긍휼히 여기심을 받느니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를 자백하고 그 동안 하나님이 없다고 했던 것에 대해서 회개하고 "드디어 나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잘못 살아 왔습니다." 라고 회개하며 변명치 않고 하나님께 나왔을때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둘째아들은 가진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집도없고 무엇도 없고 가락지도 물론 없었습니다.
그가 그런것을 마련하고 아버지께로 가려면 절대로 아버지께 돌아갈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빈손들고 아버지께 나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옷을 그에게 입혀 주십니다. 그의 손에 가락지를 끼우시고 그의 발에 신을 신겨주셨습니다.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갈때, 아버지께 뭔가 호의를 얻을만한 것을 마련하고 또한 앞으로 갚아서 벌것을 생각해서 가는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서 예비해 놓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도 그렇습니다.
나의 부끄러운 죄를 깨달았을때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사람 앞에서도 부끄러울진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그대로 나아가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들로 이미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 입니다.
가장 좋은것은 무엇입니까? 이 죄인이 영원한 속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우리같이 부끄러운 인생이 그런 값진 것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좋은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개역한글)

우리가 가장 좋은, 세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 영생을 누릴수 있는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시고 가장 좋으신 분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 입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노라. 이제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아버지께로 가노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둘째아들과 같이 아버지와 함께 거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드님이 이 먼 나라로 내려오셨습니다.
둘째아들은 자기의 원대로 허랑방탕한 삶을 살기 위해서 먼 나라로 갔지만 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늘보좌를 떠나시고 이 먼 나라, 이 세상에 이천년전에 사람이 되어서 내려 오셨습니다.

둘째 아들은 참으로 가난해지고 궁핍해 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렇게 되셨습니다. 부요하신 분께서 우리를 위해서 가난해 지셨습니다.
주님은 가지신 것이 없었고 자기 백성에게까지 버리심을 당하셨습니다.
둘째아들이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았던 것처럼 주님도 버림 받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의 손에 팔리 우시고 배반 당하시고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리고 십자가로 넘겨지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주님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셨습니다.
마지막에 주님께서 외치신 음성을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드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버림 당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둘째 아들과는, 그리고 죄인인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분이신데 왜 주님께서 그렇게 버림 당하셨습니까?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5:19-21,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습니다. 아들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세상은 저 먼 세상이 아니고 바로 우리 입니다.
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그 아들, 귀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죄를 담당 하시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여기 19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 하시고>

나의 죄를 나에게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본래 나의 죄로 인해서 지옥에 던져지고 하나님께 영원히 버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나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드님께 돌리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가 나를 위해서 나의 죄를 지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천년전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나를 위해서 흘리신 피 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내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받으시고 죄의 값을 다 지불함으로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길이 열린 것입니다.

가장 좋은것이 예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값없이 하나님의 선물을 누릴수 있는것은 고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때문입니다.
이 값으로 내가 값없이 하나님의 귀한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가장 좋은옷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옷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 가장 좋은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한번 더 물어 보신다면 이와같이 답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온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셔서 아무런 변명 없이 회개하셔야 합니다.
나의 죄를 고백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셔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요.
주님께서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나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와같은 자에게 자비하시고 사랑 하십니다.
이와같이 가장 좋은것들을 우리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십니다. 그것이 복음 입니다. 여러분은 위한 것입니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탕자의 믿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리움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맞습니다. 그의 삶을보면 감당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무엇이라고 얘기 했습니까?
"아버지여" 아들이라 불리움을 감당할수 없지만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인이고 허물이 많고 인생을 돌아볼때에 아무런 자랑거리가 하나도 없지만,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나이다." 라고 손을 들고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와 같은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실 뿐 아니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 살아계셔서 죄인을 영접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비하신 분입니다. 그분을 믿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