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9일 금요일
정형모 형제님
< 02. 성육신하신 주님, 완전무결하신 주님 >
어제 저희들은 주님에 관해서 생각할때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시다. 영원한 하나님 아들이시다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에 이어서 주님의 모습에 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오늘 주제는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이땅에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모습입니다. 성육신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께서 완전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분께서 완전하신 인간이 되셨다. 이 주제는 너무나 기이하고 또 이주제를, 어떤 주제든지 우리 주님과 관련된 주제는 경외심과 두려운 마음 가운데, 공경하는 마음 가운데 우리가 숙고하고 묵상해야 할 주제입니다. 특별히 성육신은 더욱 더 그와같은 주제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초로 하나님께서 인류가 타락한 이후에, 물론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타락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만, 인류가 타락한 이후에 최초로 하나님께서 최초로 메시아를 보내실것,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를 보내실것을 말씀하실때에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에덴동산에서 약속하신 이 구세주의 육신을 입고 오실것을- 특별히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후로 긴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 이사야 선지자께서는 천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 계시를 더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계시가 약 사천년이 지나고 난 이후에 주님께서 탄생하시게 될때, 직전에 가브리엘을 통해서 말씀하셨지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1:35).
탄생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처녀의 몸을 통해서 오시게 될때 드디어 오랫동안 메시아의 어머니가 누굴까? 많은 이스라엘의 여자들은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이제 나사렛에 살고 있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을 보내셔서 말씀 하십니다. 마리아는 처녀지요. 예언대로 지금 실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실때 몇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창조입니다. 아담을 지으실때 흙으로 짓고 코로 생기를 불어 넣어서 생령이 됬습니다. 창조 입니다. 두번째 방법은 형성입니다. 아담을 잠재우고 갈빗대를 뽑아서 살로 채우고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방법입니다. 세번째는 세대 입니다. 사람이 결혼을 통해서,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하나님은 결혼을 재정하고 결혼을 통해서 자식을 낳게하는 그런 방법을 하나님께서는 세번째로 가지고 계셨습니다. 네번째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는 방법은 성육신 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세대라는 방법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시는 것이 아니고 여자의 후손으로 처녀의 몸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따라서 오시는 방법, 오늘 저희들이 주님과 관련해서 지극히 독특한 우리 주님의 모습은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이신데 인간이 되셨다. 이런분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성령님도 성부와 성령께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성자께서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육신을 입고 이천년전에 오셨고 또한 이땅에서 걸어가셨고 그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그리고 무덤 가운데 계시다가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지금 하늘보좌 우편에 인간으로 하나님으로 앉아계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하늘에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이런 주님의 모습을 저희들이 생각할때 또 한가지 보겠습니다. 빌라도의 한 말을 요한복음 18장에서 보겠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요18:37).
우리 주님께서 나셨고 오셨습니다. 이사야서 9장 6절, 어제 저희들이 살펴본 말씀에서 "한 아이가 났고 한 아들을 주셨다." 우리 주님께서 탄생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육신으로 오신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도 그렇게 질문했고 그 질문에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 하셨고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 주님의 오심을 그렇게 예언 했습니다. 첫째, 요한복음에서 우리 주님의 모습을 1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었습니다. 성육신입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오셨을때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분은 하나님이신데 인간이 되어서 오셨을때 은혜와 진리가 그분안에 충만하다. 사람으로서 이런 사람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인간이 되셔서 오셨을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무한한 영광을 드렸습니다. 아버지께 엄청난 기쁨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께 이와같은 기쁨을 드리심으로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속을 생각하시고 그 마음속에 얼마나 기뻐하셨는가? 세상을 바라볼때 사람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볼때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가 살펴보셨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신데 완전한 분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사람이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3-4).
죄 때문에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 이것은 성육신이죠.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께서 우리 죄를 속하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은 속죄제가 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여기도 성육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육신으로 여자에게서 나셨습니다. 율법아래 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속량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7-8).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엄청난 겸손입니다.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 기이한 놀라운 과정,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로 오셨다. 그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다. 우리는 성소안에 휘장이 있고 그 안에 찬란한 언약궤가 있지요. 그 언약궤는 금과 조각목, 인성을 나타내고 있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휘장은 무엇입니까? 휘장은 히브리서 말씀에서 휘장은 주의 육체라 말씀했습니다. 그 육체가 손상을 받았을때,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맛보게 될때 휘장이 찢어졌죠. 그리고 새롭고 산 길이 열려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는 그곳 지성소까지 담대히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이땅에 오시게 될때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사실상 육체를 입고 오셨을때 사람들은 우리 주님의 하나님되심을 잘 몰랐습니다. 겉 모양으로 판단했습니다. 휘장이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와같은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싫어버린바 되고 멸시를 당하셨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기꺼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가 되고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다. 성육신의 위대한 은혜 입니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2:17).
형제들과 같이 되었다. 육체를 입고 오신것입니다. 육체를 입고 오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연약을 체율하기 위해서 이분께서 오셔서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 오셨다. 우리가 성육신을 생각하게 될때 하나님의 놀라운 겸손, 하나님께서 어떠한 뜻을 가지고 계신가라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될때 왜 사람으로 오셨을까, 왕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통치하는 사람은 왕입니다. 왕은 인간이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제사장은 인간이 아니고서는 제사장이 될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나타내 보이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나타내보이시기 위해서 육체를 입고 오셨을뿐 아니라 속죄를 위해서 돌아가시지 않으면 우리기를 구원할수 없고 돌아가시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오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육신 하셨습니다. 언제 오실까, 구약에 말씀하고 있지요. 로마시대, 다니엘서 9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벽 건축령이 난 후에 69주후에 우리 주님께서 오신다. 로마 시대입니다. 어디로 오실까? 미가서 5장 2절에서는 베들레헴으로 오신다. 또한 어떻게 오실까? 아까 읽은 말씀에서처럼 이사야 선지자는 처녀를 통해서 오신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 그 이름은 무엇일까? 임마누엘 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 잉태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보통의 잉태는 자연적인 역사 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잉태하는 것은 자연적인 역사 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될때 성육신 하시는 과정에서의 잉태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탄생하시게 될때 자연적인 방법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육신 하신것은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어제 저희들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낳았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시게 된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나타내보이신, 제출하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오셨어요. 이 일을 위해서 마리아가 경험한 것을 몇가지 생각해 보세요.
사내를 모르는 사람이 내가 어떻게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을까? 하는 가브리엘의 이야기를 들었을때 얼마나 충격적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측량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일입니다. 그러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행사했습니다. 이것은 커다란 발자국을 띈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때 마리아가 경험한 것을 보십시요. 정혼한 여인이 남편 요셉으로부터 정혼한 남편으로부터 의심받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탄생하시기 위해서, 가이사 아구스도가 령을 내렸을때 나사렛에서 베들레햄까지 나귀타고 멀리 임신 말기에 가야 하는 고통, 그리고 사관을 찾을수 없는 괴로움들, 자식을 낳았을때 아들을 낳았을때, 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아들을 낳았을때 말 구유에 뉘여야만 하는 그와같은 어머니의 심정, 그리고 그 아들이 나중에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시게 될때 그 아들을 바라봐야 하는 그 칼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그와같은 고통, 이 모든것들은 마리아가 하나님의 일을 하게될때, 선택받았을때 통과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될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움을 통과해야 합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오해도 있고 또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될수도 있고 거짓 고소를 당할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일을 통과할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마리아를 생각하고 또한 우리 주님 자신도 그랬습니다. 바리새인이 "당신의 근원을 우리가 안다. 당신은 음란한데서 나지 않았는가?" 우리 주님이,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죄인에서 떠나계시고 죄가 없는분이 그와같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우리 주님이 음란한데서 난 사람이라고 지칭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이 세상의 되어지는 악한 일들, 사단의 역사는 어떤것인가 하는것을 보게 되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또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라가게 될때 우리가 통과해야 할 여러가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바로 이와같은 과정들, 마리아의 경험과 우리 주님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그와같은 것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을 의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3:16).
이 말씀은 사도바울께서 바로 그 앞에 "만일 내가 지체하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할까? 지역교회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것을 내가 말하겠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집은 어떤 것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다. 또한 진리의 기둥과 터, 진리의 기둥과 방파제다라는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15절 말씀에서 지역교회 안에서, 모임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할까? 이것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우리의 처신은 대단히 중요하다. 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바로 그 다음 말씀에 이어지게 될때,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라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경건의 비밀, 경건이라는 말은요.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 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경건이 아닙니다. 경건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경건은 무엇입니까? 경건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모셔드리는 우리의 태도,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 경건의 비밀은 뭘까? 그 다음에 요약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일 첫번째, 성육신 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셨다.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우리 주님이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었다. 두번째는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죄인이 아니다. 그분의 위대함과 공의로움과 이 모든것을 하나님께서 이제 성령을 통해서 입증하셧습니다.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세번째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시게 될때, 구름까지 올라갈때 사람들은 다 봤어요. 그러나 그 이상은 못봤어요. 그 이상으로 올라가게 될때 1층천 2층천 3층천, 하나님 앞에 갈때 인간은 육안으로 볼수 없으나 천사는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승천하셨는지, 어떻게 보좌 우편에 앉으셨는지, 천사들이 그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에게 보이셨다고 말씀 합니다. 만국에 이와같은 주님의 말씀이 전파되었습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에요. 그리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었어요. 그리고나서 마지막으로 영광가운데 올렸다. 어느곳입니까? 아버지 보좌 우편입니다. 성육신으로 시작해서 우리 주님께서 보좌 우편에 올라가신 것까지, 승격되신 것까지 이 모든것을 안다고 하는 그 지식과 그것에 대해서 우리 마음이 감격하는 것은 그것은 경건에 이르는 지름길 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모든 모습을 우리가 지식적이 아니고요. 저는 이 말씀을 우리가 공부하게 될때 지식적으로 신학적으로 공부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적나라한 모습과 참 모습을 말씀해 줄때마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우리 마음에 두게 될때마다 그것은 감동의 감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그와같은 마음으로 이끌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하나님을, 하나님이신, 인간이 되신 주님이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랑으로 그 아들을 보내셨는지, 그리고 그분께서는 어떠한 고난을 통과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승천하시고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고 다시오실분이신지 그것을 아는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모시는 그와같은 마음으로 이끌어 주실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말씀에서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때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떻게 처신할것을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느낌대로 처신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주님이 여기 계시다고 하는 것, 어떠한 주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알때 우리는 경건의 모양, 경건의 모습으로, 경건한 태도로 우리가 주님을 모셔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을 바로 예배할 것이고 주님을 깊이 사랑할 것이고 주님을 우리가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렇게 육신으로 오신 주님께서 어떤 모습을 하고 계셨습니까? 다음 주제는 우리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다. 이것을 가리켜서 므흠하시다. 이렇게 말하지만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신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완전무결하십니다. 오늘 이 점에 대해서 우리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벧전2:22).
베드로 사도는 우리 주님을 말씀하실때, 우리 주님은 죄를 범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우리 주님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고린도후서 5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사도바울은 우리 주님을 말씀하실때 육신으로 오신 우리 주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을 생각할때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했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우리 주님은 죄의 속성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죄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계세여. 그 죄로 인해서 나타난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 죄로 인해서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죄의 삯은 사망이요."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이예요. 우리 주님은 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죄값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그래서 그 죄를 어떻게 제거할수 있는지 우리 주님은 알고 계세요. 그런데 사도바울께서는 우리 주님을 묘사할때 우리 주님은 죄를 알지도 못했다. 라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죄를 알지도 못합니까? 우리 주님께서 죄를 짓는 일에 있어서 죄를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일에 있어서 주님은 모른다는 그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죄를 진적이 없다. 범치 않았다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이 죄를 알지도 못했다 말씀합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요한일서 3장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
이것을 좀더 달리 번역하면 "그 안에는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은것, 죄를 알지 못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죄를 범치 않았다는 말인데요. 요한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안에는 내주하는 죄가 없다. 죄의 뿌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죄를 범하지 않은것 분만 아니라 그 안에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의 무흠하시다는 말은 영어로 '인패카빌리티'라는 말은 그 말은 흠이 없다, 잘못이 없다, 또는 그를 지적할만한 것이 없다. 그 이상으로 그는 죄를 지을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은 죄를 지을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 살아서 죄를 안지었다. 이런말이 아닙니다. 죄를 지을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죠.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을때 그렇게 사셨습니다. 이제 아담을 생각해 보세요.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무죄 가운데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순종할수도 있고 순종하지 않을수도 있었고 그는 거기서 실패 했어요. 그는 타락했어요. 뱀이 와서 시험했어요. 그리고 인간은 타락했어요. 우리의 조상은 타락해 버렸어요. 그 이후로 우리는 모두가 다 죄인이 되어버렸고 사망은 우리의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심판은 우리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거룩함 가운데, 우리 주님은 탄생하실때 거룩함 가운데 탄생하셨습니다. 그분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탄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그분께서 인간을 입고 오셨다. 하나님이신데 그 인격안에 인간의 육체를 입으셨다는 말입니다. 참 기이한 모습이죠.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지금의 모습을 보십시요. 보좌 우편에 앉아계세요. 사람으로 보좌우편에 앉아계세요. 육체를 입고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부편에, 하늘에 가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때도 철저히 무흠했고 죄를 지을수 없는, 철저히 죄인에게서 떠나 계십니다. 죄를 짓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죄를 알지도 못했고 그 안에 죄가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다. 그런분께서 지금 보좌우편에 앉아 계신데요. 그분께서는 죄가 없으십니다. 절대로 깨끗하십니다. 악의가 없습니다. 더럽혀지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때 만일 죄를 범할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그분은 구세주가 될수 없습니다. 죄를 한번도 짓지 않았고 우리 주님의 30년의 생활과 3년의 공생애 전체를 통해서 단 한번도 죄를 짓지 않았지만 그분이 죄를 지을수 있는 가능성이 만약에 0.01%라도 있었다면 그분은 절대로 구세주가 될수 없습니다.
광야 시험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 주님께서 광야 시험에 나가셨을때 "네가 하니님의 아들이면"이라고 시작하면서 "돌을 떡덩이가 되게하라" 라고 하면서부터 시험이 시작되죠. 사단을 이긴 승리,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단은 우리 주님을 시험해서 죄짓게 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습니까? 만일 여러분과 저 같았으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것을 이길수 있을까? 우리는 궁리궁리 하고 사단은 우리에게와서 시험하면 우리는 이길수도 있고 질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연약해서 쓰러져 버립니까? 이와같은 우리의 연약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 무슨일을 하실까 하는 것을 나중에 생각해 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제사장께서는 우리의 연약을 체휼하신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죄는 없으시다. 히브리서 4장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분은 우리의 연약을 체휼하세요. 동정하세요. 그러나 그분께서는 죄가 없다. 죄를 지을수도 없다. 죄에 대해서 시험에 대해서 전혀 반응하지도 않는다 이말입니다. 이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셨어요. 그분은 연약이 없습니다. 연약에 쌓여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시험에 대해서 어떻게 이겼을까? 우리 주님은 첫째, 무흠하시기 때문에, 완전무결하시기 때문에 그 성품상 완전무결하기 때문에 사단이 절대로 우리 주님을 절대로 넘어뜨릴수가 없습니다. 두번째 우리 주님은 그런 성품을 가지신 분께서 사단의 시험을 받게 될때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시지요. "기록되었으되" 다윗이 골리앗을 격파할때 돌 다섯개를 가지고 왔어요. 주머니에 시냇가에서 주은 동글동글한 돌 다섯개를 넣었어요. 그리고 물매를 가지고 가서 다섯개 중에 한개만 물매에 넣고 하나로 격파시켜 버렸어요. 다섯개, 모세 오경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딱 하나 신명기, 주님께서 사단을 격파할때 신명기에 있는 말씀을 인용해서 격파 했습니다. 딱 돌 하나로 격파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사단을 어떻게 이겼는가? 첫째, 죄를 지을수 없는 완전 무결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겼습니다. 성품때문에. 또 하나는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인용하고 그래서 이겼습니다. 그렇다면 시험에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시험받게 될때 죄를 질수도 있고 안질수도 있는데 그 시험을 우리는 이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차원에서 그 시험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시험을 받으실때 우리와 같이 흠이 있는 인간으로 시험받는것이 아니고 완전 무결하신 분으로 시험받았습니다. 왜 시험을 받았을까? 우리 주님께서 광야 시험을 받게 될때 그 시험받은 이유는 그 시험에서 이김으로 인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삼년후에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우리 인류의 죄를 속하시게 될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구세주로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시험 받으신 것입니다. 그 시험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쓰러질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고 있는데 주님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의지하고 인용해서 이겼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죄를 지을수 없습니다. 그것이 완전무결 입니다. 우리 주님의 완전무결, 성육신 하신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죠. 하나님은 죄를 질수 없으시죠. 거룩하시죠. 그런데 인간으로 오신 그분께서 완전무결하시다. 이것은 어떠한 인간과 다르다. 그것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성육신 하신 바로 그분께서는 완전하신 인간으로 오셨고 죄와 거리가 멀고 전혀 거리가 멀고 죄를 지을수 없는 그런 분으로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의 연약을 체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완전무결에 대해서 몇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조금전에 누가복음 1장 35절 말씀에서 가브리엘이 찾아왔습니다. 성수태고지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이 되게 되실때 마리아라고 하는 처녀 태속에서 잉태되어서 탄생하실것을 전달해주는 말씀, 가브리엘의 고지 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씀하나요?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을때에" 탄생하실분은 누구십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분은 완전 무결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사람들의 출생은, 여러분과 저같은 모든 일반적인 사람들의 출생은 전에 인격의 존재가 없었어요. 여러분의 생일을 아시죠. 사실은 생일보다 약 10개월 전에 우리가 잉태될때 우리는 처음으로 존재했습니다. 우리라고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지는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를 통해서 지었지요. 인격으로 지었습니다. 또 형성이라는 것을 통해서 하와를 지었어요. 인격입니다. 또한 세대라는 방법을 통해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께서 지으실때 우리는 인격으로 지어졌어요. 그런데 그 인격은 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가 우리 어머니의 모태에서 잉태되게 될때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인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성육신 한것은 무엇인가요? 우리 주님의 탄생은 이것과 다르다. 우리 주님은 모든 면에서 으뜸되시고 다르시고 탁월합니다. 어떻게 탁월할까요? 성육신은, 그래서 출생하신, 탄생하신 우리 주님은 전부터 그 인격이 존재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존재해 왔습니다. 그런데 성육신을 통해서 탄생을 통해서 이제 육신이 그분 인격과 하나가 되어서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인격은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고 영원까지 가시는 것입니다. 성육신은 바로 그것입니다. 성수태고지, 가브리엘이 전해준 말씀속에 담긴 우리 주님의 완전무결한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절대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두번째, 우리 주님게서 공생애를 시작할때에 요단강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 나타나셨을때, 하늘문을 여시고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소제를 하나님 앞에 드릴때에 기름을 처음에는 가루에 섞습니다. 가루에 섞어요. 그 다음에는 기름을 또 붓습니다. 기름을 섞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게 될때 성령으로 인해서 수태된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기름을 부은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요단강에서 우리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실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셨어요. 이 후로부터 우리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따라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3년동안 공생애를 지내셨습니다. 하늘문을 여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탄생 이후에 30년동안 사람들의 눈에 거의 나타나지 않고 나사렛의 목수의 아들로서 숨겨져서 살았을때 그 모든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너무나 기뻤어요. 왜냐하면 완전무결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 중에 그와같은 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늘문을 여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와 계세요. "내 기뻐하는 자라." 완전무결하신 분입니다.
세번째는 그것이 끝나고 나서 조금전에 말씀드린대로 광야로 성령에 이끌려가서 나갔어요. 사단을 대면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단을 이겼습니다. 이김으로 인해서 우리는 우리 주님을 통해서 무엇을 발견 합니까? 우리 주님은 죄를 지을수 없는 분이시다. 죄가 그 안에 없으시다. 죄를 짓지도 아니하고 죄를 알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죄가 없으시다. 죄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는다. 바로 이분께서 3년 후에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될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분에게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그분 위에 내려놓으셨어요. 그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값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은 완전 무결하신 분인데 우리 모든 죄인들의 죄를 위해서 그분께서는 죄의 처벌을 받으셨다. 이것이 3년전에 입증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어요. 변화산에서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면에서 기쁨을 드리셨습니다. 우리는 물론 우리 주님과 다릅니다. 우리는 흠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속죄의 사역도 필요하고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속죄 사역이 끝난 이후에 하늘로 올라가실때 지금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의 사역, 우리는 또 그것을 나중에 보겠습니다만.
오늘 저희들은 두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육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셨다. 그렇게 오신 주님께서는 전혀 흠이 없다. 뿐만 아니라 흠을 발견할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죄를 짓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죄가 없다. 죄의 반응할수가 없다. 절대적으로 완전 무결한 그러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기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사랑의 뜻, 구속을 위한 뜻, 그것을 성육신을 통해서 나타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성육신, 그것을 우리가 수많은 것으로 표현할수 있습니다. 그렇게 높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가 되시고 낮아지시고 십자가의 죽음까지 더 내려가셨는가? 이것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예배드릴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예배드릴때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서미고 매일과 같이 살아갈때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주님앞에 뜨거운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건한 태도로 우리가 주님앞에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성도들과 교제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저희들의 묵상을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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