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싱 모임 수양회/2018년 여름 수양회

< 뉴욕 플러싱 수양회 09_ 복음 : 구약에 예언된 주님의 십자가 >

박이레 2021. 7. 24. 15:39

2018 < 뉴욕 플러싱 수양회 9_ 복음 : 구약에 예언된 주님의 십자가 > 정형모 형제님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 19:31-38).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영광스러운 복음 메세지의 핵심 입니다. 저희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죽음은, 피 흘림은 여러분과 저의 모든 죄에 대해서 정결케 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여러분은 구원 받습니다. 여기 요한 사도는 "이 일이 이룬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될때, 탄생에서부터 시작해서 주님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일, 부활, 모든것은 다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게 될때, 그 구원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우리 인간이 범죄하기 전보다 훨씬 전, 비교할 수 없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 지혜로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즉흥적으로 행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것을 스케줄대로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하나님의 계획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성의와 이와같은 하나님의 관심과 이와같은 하나님의 우리를 구원코자 하시는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도덕적인 존재 입니다. 우리의 존재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될때, 돌과 나무같은 물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기 의사가 있고 그것에 대한 결정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실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그렇게 다루셨습니다. 아들을 죽게 하시고 모든 믿는자가 거기서 구원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따라서 이루셨다. 지금으로부터 이천년전에 로마 제국의 시대에 온 세계 가장 중앙인, 그것은 중동입니다. 세계의 중심 입니다. 거기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모든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각인에게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결정할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결정을 대단히 존중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은 대단히 중요힌 것입니다. 우리는 혹시 우리 결정이 별로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과 이 구속의 위대한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건성으로 지나갈지 모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냥 지나가신다면 여러분은 거기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자체로 여러분의 의지 입니다. 그 자체도 여러분의 결정 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멸망으로 이끌어 갈때, 여러분은 심판대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고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게 하신 것을, 저와 여러분의 각인의 죄 때문이다 하는것을 절감하시고 주님앞에 오신다면 그것은 위대한 결정입니다. 그 결정을 하나님께서는 영예롭게 다루신다는 말입니다. 구원 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1절 말씀에서, "이 날은 예비일"이라 합니다. 유월절을 예비하는 준비일 입니다. 그들에게 거대한,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지요. 일곱절기 중에 유월절, 첫번째 절기 입니다.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날, 주님께서 못박혔지요. 오전 9시에 못박히셨습니다. 정오때까지 땡볕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그리고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또 다시 세시간, 그러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심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셨습니다. 삼년전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스라엘 중에 이와같은 분이 없었어요. 그래서 주님께서 자기를 가리켜서 참 포도나무다. 이스라엘은 포도나무인데 포도나무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간증을 나타내지 못했어요. 그러나 이스라엘의 참된 분이신 주님,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탄생부터 시작해서 완전하셨습니다. 어떤 인간도 그렇게 사신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렇게 선포 했지요. 그런데 삼년 후에 예수님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될때, 여섯시간 중에 마지막 세 시간을 하나님은 예루살렘 창공에 어두움을 보냈습니다. 암흑을 보냈습니다. 하늘 문이 닫혔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왜? 여러분과 저희를 위해서 죄인들을 위해서, 의인이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값을 치루셨습니다. 죽음으로 값을 치뤘어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셔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돌아가셨어요. "다 이루었다" 그리고나서 아버지께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하나이다" 주님은 영혼이 떠났습니다. 주님의 죽으신 몸은 그 나무에 달려 있어요. 그런데 옆에 있는 두 강도는 아직까지 살아있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십자가 형이라는 인간 역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가장 두려운 사형집행을 실행했지만 페르시아와 로마제국, 이 두 나라가 십자가 형을 실행 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가장 세상에서 군사적으로 강력한 이 사람들, 군인은 잔인한 사람들 입니다. 이제 거기에서 십자가에 걸어서 죽이게 될때 피흘려 죽지요. 서서히 죽는 죽음 입니다. 때때로는 몇시간, 또는 며칠, 계속해서 아직도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사람, 못에 걸려서 십자가에 걸려 있다고 하는것을 우리는 다 모릅니다. 이 모든 체중이 여기에 걸려 있어요. 십자가를 땅에다 놓고 죄수를 엎어 놓고 살아있는데 못을 박지요. 그 다음에 다리에도 못을 박지요. 그리고 그것을 세워서, 구덩이가 파 있어요. 그것을 세운 다음에 높이 들었다가 내려 칩니다. 그냥 세워서 박는 것이 아니고요. 내려치는 것입니다. 그때 체중이 걸려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그것은 인간 언어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거기 달려서 서서히 피가 흘러 나옵니다. 동맥을 끊어서 순식간에 죽이게 하는것이 아니고 말초의 혈관을 절단 시켜서 서서히 피가 나와서 죽는 것입니다. 이제 로마 제국은 이것을 집행하게 될때 십자가에 달린 범인들을 가장 두렵게 하고 이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효시를 위해서 사람들이 보게하는 데서 그렇게 처참한 처형을 했지요. 그리고 죽을때까지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때로는 삼일, 사일, 계속해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던지, 아니면 맹금들이 와서 시체를 뜯어 먹도록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유대 땅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2-23).

이스라엘 땅에서 율법은, 범인을 죽이게 될때 나무에 답니다. 목 매달아 달거나 그런 죽음이죠.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고요, 그런 죽음으로 죽이게 될때 시체를 나무에 밤새도록 매달지 말라.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율법안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담겨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있어요. 율법이 참으로 엄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께서 인생을 생각 하시게 될때, 심지어 범인이라도 밤새도록 달지 말라,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여러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저주 받았어요. 죄가 없는분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어요. 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여러분은 책임이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합당하게 여러분의 태도를 취할 책임이 있다. 만일 거기에 대해서 그냥 밍기적 밍기적 넘어 간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여러분은 책임을 져야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불못, 그것만이 여러분에게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돌아가셨습니까? 여러분은 구원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어요. 여러분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제 로마제국의 군인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예수님의 십자가만 있는것이 아니었죠. 옆에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두 강도가 처음에는 둘 다 예수님을 비난하고 저주 했죠. 로마 제국을 향해서도, 군인을 향해서도 저주 했을 거에요. 욕하고, 십자가에 달리는 모든 사람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다 자기를 죽이는 사람을 향해서, 죽는 마당에 저주하고 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뭐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 십자가에 달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능력 밖의,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 위에서, 고통 당하시는 주님께서 그렇게 표 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의 마음속에 어떤것을 가지고 있었는가? 주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이 있었다고 했지요? 구원을 위해서는 주님께서 거기에서 그들의 용서를 빌었어요. 유대 땅에서는 하루를 넘길 수 없어요. 뿐만 아니라 유월절의 예비일이기 때문에 요청 했어요. "우리가 더럽게 할수 없다." 절기를 기지키 위해서, 깨끗케 해야 하는데,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자기들이 죽이면서 그 죄는 깨닫지 못하고 절기를 지키는 일에는 대단히 민감 했어요. 그래서 시체를 끌어 내리라, 우리가 유월절에 들어가야 하니까 빨리 중단 시키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말씀을 통해서요, 하루를 넘길 수 없다. 게다가 하루를 넘기는 정도가 아니라 유월절이, 안식일이 이제 시작 되니까 그 전에 빨리 내려야 한다, 라는 주장이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다른 나라 땅에서는 없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십자가 형을 진행할 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상관 없습니다.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죽을때까지 내버려 두고, 독수리가 와서 먹을 때까지 그들은 내버려 두는데요, 그러나 유대 땅에서는 하나님의 법 때문에, 그리고 유월절 때문에, 이제 범인들을 끌어 내려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빌라도가 군인을 보냈어요. 그들이 행하는 것은, 로마 제국이 유대 땅에서 십자가 형을 행하게 될때, 특히 이와같은 경우 때문에, 전통 때문에 행하는 일이 있었어요. 그들은 몽치를 가집니다. 그래서 빨리 죽여야 해요. 만일 살았다면 밤 샐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다리를 칩니다. 이것은 로마 제국의 잔인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고통을 당했어요. 그런데 또 한번 이것을 쳐서 뼈를 부러뜨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뼈를 꺾는다고 말했습니다만, 여기 조그만 뼈를 꺾는게 아니예요, 사람의 뼈를, 다리뼈를 내려쳐서, 양쪽 다리를 다 치는 겁니다. 그래서 다리뼈를 다 산산조각 내는 겁니다. 여러분 골절이라는 것은 단순 골절이 있고 복합 골절이 있어요. 복합 골절이라고 하는것은 부딧쳤을때 뼈가 산산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 고치기 힘들지요. 사실은 그 고통이라고 하는것은 말할 수 없어요. 이미 고통을 받았는데 마지막으로 죽을 때 그런 고통을 받는 거예요. 이것을 가리켜서 라틴어로 '크로리프라지움'(?)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자들은 중범자들이죠. 그들을 몽치를 가지고와서 다리를 내려쳐서 완전히 복합골절을 만들어서 말로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죽이게 하는 것, 이제 첫번째 사람을 죽였어요. 그리고 죽이고, 그 다음에 세번째, 이상 합니다. 가운데 와서 그들이 보았을때,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잔인한 군인이요, 돌아가셨어도 내려칠 수 있어요. 그는 잔인한 사람들 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거기를 피했어요. 그리고 가서 세번째, 이 사람 살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그 일을 했습니다. 주님은 통과 했어요. 왜 그랬을까? 우리는 아무도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의 말씀을, 예언의 말씀을 로마 군인이 알 수가 없지요. 그리고, 어떤 사람도 이 군인에게 와서,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유대인이나 로마인이나, 누구나 "이 분은 그렇게 하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 한적도 없습니다. 다만 로마군인 자신이 자기 의사로 예수님을 건너 뛰었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의지로 무슨일이 이루어 지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거기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요한사도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약에 말씀하신 예언을 그대로 이루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대단히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일은요, 그냥 얼렁뚱땅 되어지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벗어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여러분이 여기 와 계신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무슨 마음으로 여기 오셨는지는 모르지만, 주님 말씀 하시게 될때, 여러분은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주님 앞에 오세요. 요한복음 19장 말씀을 보세요. 요한 사도가 이 일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씀 했습니까?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요 19:36).

그럼 어디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을까요?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찌며"(출 12:46).

이것은 유월절 때에,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그 집안에 들어가서 양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어야 하는데, 양고기를 먹을때 절대로 그 뼈를 꺾지 말라, 부수지 말라, 뼈는 그대로 있고,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시 34:20).

어린양이 그랬으면,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주님이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이나 출애굽기의 말씀에서나,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이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될때, 그 뼈는 꺾이지 않는다. 이 말씀은 오래전에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로마 군인이 왜 그랬는지 우리는 알수 없지요.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것은 로마 군인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될때, 강도 둘이 계속해서 욕을 하고, 아마 이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이 그들에게 부여한 권력을 가지고 범죄자들을 못박아서 처형하는 일들을 했던 사람들이고 그 이외에 전에도 이런 일들을 했을 것이고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욕을 하고 저주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요, 피 흘리는 그런 일을 하게될때, 그들은 아마 거기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을 똑같이 못박고 십자가를 세웠을때, 그리고 되어지는 광경을 보았을때, 그들은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이분께서는 전혀 그 입에 궤사가 없었다.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마치 도수장에 끌려가는 잠잠한 어린양같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로마 군인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 그때, 대단히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한 강도는 끝까지 주님을 비난하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거기서 내려와라. 그리고 입증하라." 이런 얘기를 했을때에,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얘기를 했지요. 그런데 여기 강도가 "주여 주님의 나라에 임하실때 나를 기억하소서" 이 모든 광경을 아마 봤을 거예요. 이 사람은요, 주님앞에 자기의 심정을 고백 했어요. 회개 했어요. 회개한 강도 입니다. 회개하는 광경도 아마 로마 군인이 봤을 거예요. 그리고 주님께서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런 말을 죄수가 할 수 있습니까? 그분은 왕입니다. 그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죄패가 쓰여 있어요. 사람들은 이 분을 거절 했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다 주님을 비난하고 욕할때에 한 사람이 주님 옆에서 주님을 변호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강도 입니다. 이 사람이 똑같은 죄를 진, "나와 같은 죄를 짓고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이 분을 향해서 욕하느냐?" 그는 책망 했지요. 우리 주님 곁에서 딱 한사람이, 주님 편에서 입을 열였어요. 이 모든 광경을 아마 로마 군병이 봤을 거예요. 그들은 '크로리프라지움'이라고 하는 이 몽치로 치는 일을 하게 될때, 그와같은 것은 너무나 잔인해서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재미로, 즐거움으로 행하는 그런 사람들인데, 주님 곁에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를 통과 했습니다. 그리고 두사람의 뼈를 부러뜨렸어요.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고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구약의 예언을 이 로마군인이 성취 합니다. 모르고 성취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성취 합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슥 12:10).

"그 찌른바" 예수님은 찔립니다. 못에 찔리고 창에 찔립니다. 손과 발에 찔렸고, 옆구리에, 이 뼈를 부러뜨리던 군병이 주님이 돌아가신 것을 보고는요, 그렇게 내려칠수도 있는데, 대신 창을 가지고 옆구리를 찔렀어요. 그래서 거기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 13:1).

그날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이 용서받는 날이 옵니다. 그들은 그때 회개 합니다. 민족적으로 주님을 거절했던 것을 버리고 주님앞에 회개하고 나올때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이것을 가리켜서요, 이 구절을토대로 해서요, 윌리암 쿠퍼는 다음과 같은 찬송을 지었지요.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죄 씻기 원하네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 솟듯하는 피 권세 한 없이 있도다 한 없이 있도다

날 정케하신 피를 보니 그 사랑 한 없네
살동안 받은 사랑을 늘 찬송 하겠네

이후에 천국 올라가 더 좋은 노래로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 하겠네"

1절의,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16세기 말에 우리나라에 임진외란이 있었던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요. 그것이 끝나고 별로 오래지 않아서 조선은 고통 가운데 빠집니다. 병자호란이 있습니다. 병자호란으로 인해서 왕이 가서 굴욕을 당하고 그리고 50만의 여성이 이제 호란이니까, 만주로 끌려 가지요. 우리는 2차 대전 당시에 일본이 우리 백성들,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고 간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병자호란 때에 이와같은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났습니다. 50만의 여성이 끌려 갔어요. 거기에는 천민도, 그리고 양반의 부인들도, 또 첩들도 다 끌려가서 50만이 끌려 갔어요. 그들이 어떤때는 견딜 수 없어서 자결을 합니다. 아니면 기회를 타서 정말로 도망나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에서는, 왕과 관료들은 이들을 어떻게 다시 데려올까? 엄청난 돈을 줘야 했습니다. 양반들이요, 먼저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많은 돈을 가지고 협상을 해 버렸기 때문에 평민들은 가서 그 돈을 주고 데려올 수가 없었어요. 어째든,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가리켜서 '환향녀'라 말합니다. '고향에 돌아오는 여성'이라는 말이죠. 이 여성들은요, 그곳에 끌려가서 고통을 당하고, 그 다음에 더 큰 고통은 돌아 왔을때 고통입니다. 유교로 강한 나라,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않는 사람들, 우리 동족들이죠. 이 사람들을 정죄하고, "저 더러운 사람들이라." 라고 욕했지요. 이것에 대해서 고민 가운데 있었던 왕, 인조는 이제 이렇게 선포 합니다. 홍제천에서, 북방에서 압록강을 통해서 평양으로 서울까지, 한양으로 돌아올때에, 산을 넘으면 이제 서울, 한양 입니다. 제일 처음에 그 성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에 홍제천에서 몸을 씻는다면 과거를 묻지 않겠다. 이것을 공표 했어요. 인조가 공표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것에 대해서 항거 하거나. 이것을 항거하는것은 왕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이제 이 여인들을 향해서 손가락질 하는것은 내가 다루겠다. 이런 말씀이죠. 그래서 이 장소를 가리켜서, 조선 역사,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금도 거기를 '홍은동'이라고 말합니다. 왜 홍은동이라고 말할까? 넓은'홍' 은혜'은'자 입니다. '하회와 같이 넓은 왕의 은혜를 우리는 감사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과거를 묻지 않겠다. 인조는 무엇을 근거로 해서 과거를 묻지 않습니까? 왕권을 통해서, 자기 책임을 절감 했겠죠. 국가가, 군대가 실패 했기 때문에, 그런데도 백성들은 그런것을 통해서 고통 당하는 여성들에 대해서 환영하거나 그들을 감싸주거나 그러지 않고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자결하라." "이혼해야 한다." 이런 일로 17세기 조선은 떠들썩 했습니다. 슬픈 우리의 역사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그 날에는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터진다. 거기가서 죄를 씻게될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옆구리에서 흘린 이 피, 그 피가 샘이 되어서, 여러분이 오늘 그 샘에 가서 씻으면 과거의 죄가 아니고요,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다 용서된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과거의 죄만 묻지 않는것이 아니고요.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오세요. 우리 주님께서 작은 값을 치룬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요. 부요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신 것, 그것을 가리켜서 '스투비'라 말합니다. 허리를 굽힌 것,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될 것을 여기지 않고 이 땅에 오신것을, 우리는 어떻게 그 은혜를 다 측량할수 있겠어요? 이 땅에 오신 그분이 어떻게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고 우리 주님을 향해서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은 음란 가운데 태어났다." 처녀에게 탄생 하셨는데, 음란 가운데 태어났다는 (??)를 달고 다니셨습니다. 마리아는 그런 고통을 안고 살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죄가 없으시고,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이 분은 전혀 죄가 없고, 죄를 진 적도 없고, 죄에서 떠나 계시고 이 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어요. 여러분 오늘 책임이 있어요. 엄청난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앞에 말씀 드려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 우리는 인조를 향해서도, 하회와 같이 넓은 은혜라, 홍은동이라고 이야기 할 정도라면, 우리는 주님을 향해서 어떠한 은혜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까? 감사와 눈물과 감격으로 주님앞에 나오세요. 주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의 피는, 보혈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십니다.

[출처] 17. 복음 : 구약에 예언된 주님의 십자가|작성자 강단 말씀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