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복음 : 아들을 순종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박이레 2026. 10. 20. 22:04

복음 : 아들을 순종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 강성찬 형제님 / 26년 10월 18일 일요일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여기서 믿는 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를 대조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이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서 보자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 이렇게 되지 않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순종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특별히 이제 교회를 다니시고 종교 생활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서는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그분들도 "저도 믿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좀 더 이야기를 해보면 그분들 가운데에 정말 거듭남의 경험은 없이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이 질문을 통해서 자신을 살펴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당신은 이 하나님의 아들을 순종하셨습니까?" 이 ‘순종’이라는 것은 자기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 생각이 잘못되었구나, 그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자기가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것이 내 생각하고 달랐지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이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그대로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도 자기 생각을 꺾고 '아, 이게 틀린 거였구나.' 내려놓은 적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을 순종해야 됩니다. 특별히 아직 그 경험이 없다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 자세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부분이 내 생각하고 다른데', '이 부분이 내 생각하고 다른데, 하지만 전해지는 이 말씀이 성경의 말씀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전혀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 말씀이 옳다. 내 생각이 틀렸다.' 내 생각이 틀렸다라고 인정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이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일이 이번 시간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정말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아들을 아직 순종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그 머리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있다는 겁니다. 나중에 여러분이 죽고 나서 지옥에 가서 그때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의 진노가 여러분 머리 위에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의 머리 위에 이고 사는데도 별 부담 없이 즐겁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성경 말씀을 우화로 이렇게 기록한 그런 책입니다. 성경 내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그런 책인데요.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거기에 '멸망성'이라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멸망성이냐면 장차 멸망당할 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들의 죄악됨을 보시고 이 성을 심판하겠다, 이 성을 하나님께서 무서운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그 성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굉장히 두려운 것이죠.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진노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사람만 진노의 심판을 깨닫고 두려워하면서 구원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을 비웃습니다. "아니 뭐 지금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왜 뭐가 지금 무서워가지고 구원을 찾아 나선다는 말인가?" 이렇게 비웃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그런 사람들은 아닌가 생각을 해보셔야 됩니다.
이 온 세상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미리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가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위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의, 사람의 분노가 나를 향하여 있다는 걸 느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내 삶 가운데서 내가 뭘 잘못해서, 어떤 사람한테 내가 잘못해서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엄청 화를 내고 있는 거예요. 그게 막 느껴져요. 그런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보다 더 심각한 하나님의 진노가 여러분 위에 있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에 그런 적이 있었는데, 한 번은 수학 선생님이 문제를 여기까지 풀어오라고 이제 숙제를 내셨어요.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이 거의 그때는 60명 가까이 됐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됐었는지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이 그 숙제를 안 했어요. 왜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때만 특별하게 그 선생님이 몇 페이지까지 문제를 다 풀어오라라고 했는데 풀어온 애가 정말 손으로 꼽을 정도로 한 두세 명밖에 안 됐어요.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 수학 선생님은 엄청나게 화를 냈습니다. "너무나 너희들한테 실망했다" 하시면서 그때는 야구 방망이로 애들을 때리는 시절이었는데, 정말 야구 방망이를 들고 반 아이들이 전부 복도 밖에 나가라 해서 한 명씩 들어오면서 야구방망이로 맞았습니다. 그때 정말 그 선생님의 그 실망, 우리들에 대한 실망, 선생님의 분노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밖에서 몽둥이를 맞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그 선생님의 진노가 내 머리 위에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진노를 느껴본 적 있습니까? 그런데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것도 그냥 몽둥이로 몇 대 맞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받는 형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진노가 지금 이 아들을 순종치 않는 여러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게 잘못됐지, 이렇게 바꿔야겠다.' 이렇게 해본 경험이 없는 그 여러분 머리 위에 지금 이 진노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서 되겠습니까? 정말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을 해보셔야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자기가 지금 숙제 마땅히 해야 되는데, 그 숙제 안 한 그 형벌을 지금 앞두고 있는 그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성경에서 잘못했는데 그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정말 이런 모습은 아닌가 한번 생각해 보시고,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죄인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보고자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우리 인류의 첫 번째 사람입니다. 사실 지금 여러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인류의 첫 번째 사람도 여러분처럼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자기가 잘못했는데도 잘못을 모르는 사람, 그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 창세기 3장으로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12).

일단 여기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금방 읽은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그 나무의 실과를 그 아담과 하와, 첫 번째 사람은 그것을 따서 먹습니다. 그 나무 실과를 따서 먹을 때에 그들이 그 먹을 순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6절에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나무를 딱 보니까 먹음직하게 보이는 거예요. 이상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정말 딱 먹으면 '아, 이거 맛있겠다.' 그런 나무였습니다. 또 보니까 "보암직도 하고" 참 생긴 것도 예쁘게 생겨서 보면 '정말 갖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또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였습니다. 그걸 먹으면 나 자신을 지혜롭게 하는, 나 자신을 높여주는, 나 자신이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그러한 나무요, 그런 열매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딱 봤을 때 자기한테 좋아 보이는 겁니다. 내 생각에 좋아 보이는 겁니다. 이게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일을 한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금 죄를 짓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이 행동의 기준이 자기한테 있었던 것입니다. 내 생각에 먹음직하고 보람직하고 그리고 나를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이니까 전혀 문제를 못 느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단지 내가 먹고 싶어서 먹은 건데, 정말 좋아 보여서 먹은 건데, 나에게 이익이 될 것 같아서 먹은 건데, 이게 무슨 문제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죄인의 첫 번째 모습이 이것임을 분명하게 생각해 봐야 됩니다. 죄인은 자기 생각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행동할 때, 어떤 것을 선택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까? 그때 순전히 여러분의 생각대로만 하고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봤을 때 좋은 것, 여러분의 판단 기준이 온전히 그거라면 여러분은 죄인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죄인인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되는 존재입니다. 그게 사람의 존귀한 면입니다. 단순히 내 몸이 원하는 대로, 내 정욕이 원하는 대로 동물처럼 사는 그러한 존재로 하나님이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 고귀한 원리로 행동하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 때에 이 고귀한 원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하나님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바로 여러분이 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전혀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이 분명하게 어떤 기준으로 행동해야 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앞에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여기서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 명하신 것을 자세히 보면 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16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어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마음대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동산에 있는, 에덴 동산이라는 곳입니다. 거기에 정말 좋은 열매들, 많은 먹을 것들이 풍성한 그러한 곳이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을 네가 마음껏 먹으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첫 번째 하시는 명령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한 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를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해서 자유를 제한하는 그러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여러분에 대한 첫 번째 뜻은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풍성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부족함 없이 하나님의 그 풍성한 것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면 하나님은 좀 고리타분해. 아니 하나님은 신이고 우리랑 이 사람이랑 다르게 더 높은 존재여서 그냥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려먹으려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용해 먹으려고 그런 존재 아니야? 우리가 힘이 없어서 억지로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되는 그런 분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다면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존귀하게 창조하시고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특별히 신약 성경에서 '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자신은 먹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기 자녀들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가장 좋은 것을 입히기를 원하는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예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를 부려먹고 우리에게서 뭔가 취하려고 하는 그런 주인이 아닌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복을 주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는 하지 말라는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앞에 그 동산에 그 많은 풍성한 것들은 마음껏 먹게 하셨는데 그것에 비해서 먹지 말라고 한 것은 딱 하나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억압하고 제한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첫 번째 말했던 명령, 우리가 복을 누리도록, 그 복을 문제없이 계속해서 풍성히 누리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은 적정선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좋은 것도 적절한 선을 지켜야지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도 적당하게 먹어야 됩니다. 우리가 입는 모든 좋은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사랑도 선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거기 안에 질서대로 사랑을 해야 됩니다. 그게 사랑을 온전히 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악을 끼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그렇고, 남녀 간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그 사랑 안에 하나님이 주신 원리대로 해야지 그 사랑을 온전하고 풍성하게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정말 풍성하고 온전히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이 제한선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제한선은 하나님의 원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에 경고가 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복을 빼앗기지 않도록, 죽지 않도록 제한을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한을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기준이 돼야 됩니다.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우리를 온전히 복을 누리게 하고자 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기준이 돼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것이 없습니다. 정말 이것에 대해서는 정말 눈곱만큼도 고려 없이, '아 이거, 내 마음속에서 원해. 내가 먹고 싶어. 좋아 보여. 정말 이걸 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두드러져 보일 거야.' 그런 기준으로 여러분이 행동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죄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서, 잘못이라고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게 '죄의 노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로 그 정욕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을 죄의 노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 자신이 선택했다라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의 풍속을 쫓아서 이 세상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냥 원하는 것, 그 유행대로 따라한 것입니다. 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이 뱀이, 여기도 사단이 뱀을 이용해서 사람을 미혹케 한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그 마음을 일으켜 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 하와가, 그 아담이 자기가 온전히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선택이고 그의 책임이지만 그는 지금 사단에 미혹돼서 마치 죄의 노예로 이 일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가련한 모습인지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죄악된 모습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이러한 가운데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참 이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죄의 노예라고 했을 때, 제가 한 가지 이제 예를 말씀을 드리자면, 아마 여기서 아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어떤 감옥에 오랫동안 갇혀 있다가 풀어주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석방을 해서 사면시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을 사면해서 감옥에서 내어보내는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까 사회에 나와서 적응을 못하는 거예요. 그 감옥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나 밖에 나오고 싶어 했는데, 정작 밖에 나오니까 이제 그 밖에서, 그 사회에서 자기가 스스로 선택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을 잃어버린 겁니다. 정말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는 것을 잃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사면돼서 그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살하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자유를 반납하고 오히려 감옥에 다시 들어가는 그런 것을 이제 보게 됩니다. 이게 노예의 모습입니다. 이게 죄의 노예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자유롭게 선택해 가지고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정말로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영향 없이 마음대로 선택하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멘붕에 빠질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은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그 죄의 노예로 거기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여기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선택하고, 그리고 그때에만 여러분은 이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가 있습니다. 참 이 자유를 여러분들이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한번 이것을 해보시기를 격려를 드립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는 겁니다.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한번 보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것들을 좀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는지, 어떤 것들이 당신이 보기에 마음에 안 드는지, 여러분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게 좀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신에게 빠져 있어서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데 잘못인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냥 내 정욕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의 노예로서 행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특별한 잘못이, 이상한 점이 있다면 한번 말해달라고, 정직하게 한번 말해달라고 하고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멀리 있는 사람 말고 나랑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사실 꽤 도움이 됩니다. 저 자신도 제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특별히 제 가족들한테, 또 아내나 자녀들에게 또 물어보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부분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하시는지 그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한 마음으로 읽다 보면, 어느 순간에 정말 나에게 나를 콕 집어가지고 하시는 그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정말 나에게 하고 계시구나라는 이 말씀을 들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 제가 정말 그런 사람입니다.'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그 아들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이러한 일들이 있길 바랍니다. 이게 정말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정욕에 사로잡혀서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정말 진리를 따라 사는 여러분들이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 그 길인 것입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8-12).

죄인들의 모습 두 번째는 자기가 잘못해놓고 그 잘못을 변명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나의 잘못에 대해서 변명하고 있다면 그게 정말로 죄인의 모습이다. 정말 내가 죄인이구나, 이것을 이제 깨닫기 바랍니다. 여기 여호와께서 아담을 부르십니다. 9절에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불렀을 때 아담은 숨어 있고 그리고 10절에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를 다 알고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솔직하게 인정하고 "제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하신 그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오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게 그 죄를 회복하는 첫 번째 길이기 때문입니다. 참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정말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 제가 이러한 죄인입니다." 이렇게 나오길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아담이 그렇게 말한 것처럼 "제가 그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벗었고요. 두려워하고, 그래서 숨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정확하게 그 말을 하지 않고 그는 자기가 벗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그가 벗었고, 그래서 부끄러워하게 되고, 그래서 두려워하고 숨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분명하게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됩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애매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누가 너가 벗었다고 말해 주었냐고 물었을 때에, 누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내가 먹었느냐라고 직접 물었을 때에, 12절에 보면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자기 아내의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많은 죄인들은 다른 사람 핑계를 댑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말들을 녹음할 수 있으면 한번 녹음해서, 한번 적을 수 있으면 더 좋고요. 한번 그것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무슨 말을 가장 많이 하는가?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정말 제가 그걸 다 녹음해서 통계를 한번 내보고 싶어요. 그러면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핑계하는 겁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저 사람 때문에, 세상이 이래가지고, 사회가 이렇게 해서 내가 지금 이렇게 되었다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세 한탄이라고 하죠. 그런데 왜 그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또한 주위를 둘러싼 다른 환경에 대해서 왜 내가 그렇게 많이 말을 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내 얘기는 안 하고 내가 그때 이렇게 이렇게, 그 말은 안 하고 왜 다른 사람들, 이 사회 이 환경에 대해서만 계속 말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만약에 그렇다면 그건 정말로 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이 아담이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슬픈 일인 것입니다. 왜 슬픈 일이냐면 아담은 자기가 가장 사랑한 하와를 비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하와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 하와에 대해서는 그 바로 앞장에 보면, 2장에 23절에 보면 하와에 대해서 아담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 자기의 그 하와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야. 이건 내 자신이다. 정말 나에게 있어서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일한 사람에게 이 모든 잘못의 근원이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비난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정말 다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복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동일한 사람을 죄 때문에, 자기의 죄 때문에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죄가 자기하고 가장 소중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180도로 바꿔버리는 겁니다. 자기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을 자기의 원수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이게 바로 죄인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정말 우리를 복되게 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다면 우리는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을 원수로 만들 뿐만 아니라 여기 보면 12절에 "하나님이 주셔서"라고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신 여자", 그 여자만 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욕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를 만드신 그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은 참 비난의 명수입니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존재를 다 욕하는 겁니다. 자기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을 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하는 비난할 수 있는 게 이 사람인 것입니다. 정말 거짓이 없고 정말 사람에 대해서 어떠한 악의도 없는 그 하나님을 그는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 다른 환경,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비난하는데 자기의 대부분의 말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이제 세 번째 것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 3:7).

그들은 그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자기들의 몸이 벗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가리려고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서 입게 됩니다. 그들은 그 부끄러움을 그냥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서 입으면 부끄러움이 가려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려지지 않죠. 여전히 그는 하나님을 피하게 됩니다. 그 부끄러움을 가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죄인의 특징 세 번째는 자기가 잘못한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겁니다. '잠깐 이렇게 하면 수습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한 100만 원 정도 지불하면 그것을 갚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가 한 죄에 대해서 곤장 몇 대 맞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이 아담의 죄는 엄청나게 심각한 거였습니다. 우리가 앞에 읽은 것처럼 그것은 자기와 제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놓는 것이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놓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죽음을 가져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죄는 반드시 죽음을, 자기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해야 되는 것입니다. 단지 이 땅에서의 생명을 지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대가로 지불해야 되는 겁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는, 그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되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엄히 경고하신 것입니다.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정말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단지 그냥 나무 잎 몇 개로 수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죄에 대해서 내가 나쁜 일들을 좀 했지만, 아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 것 아니야? 또는 조금 선한 일을 그래도 좀 하면 갚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교회를 좀 참석하고 헌금을 많이 내면 갚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정확하게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 죄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겁니다. 이 죄는 여러분이 뭔 일을 하더라도 결코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께서는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한 짐승을 죽여서 그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입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여기 21절에 보면 하나님의 방법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죽여서 그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그들의 수치를 가리울 수 있는 것입니다. 죄는 피가 흘려져야 됩니다. 죄는 반드시 피가 흘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신 이유입니다. 이제 그런 짐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처럼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신 이유가 여러분이 지은 죄를 속하시기 위하여, 그 죄의 대가를 다 치르시기 위하여 그와 같이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말씀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여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냥 대충 나뭇잎으로 값싼 것으로 해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금이나 은도 비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보다 더 값비싼 것을 대가로 지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가로 지불하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에 비하면, 참 금이나 은은 썩어질 그냥 가치 없는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놀라운 대가를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불하신 것입니다. 정말 이 죄는 심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행한 그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여러분을 위해서 지불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 하나님께서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행하신 이 방법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한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사람은 예전의 죄인의 모습이 아니라 온전히 다른 모습인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 베드로전서에서는 이제 그러한 모습이 계속 나와 있습니다. 그 앞에 14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4-15).

참 예전에는 우리의 욕망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우리의 사욕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순종하는 자식"이라고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그것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그러한 사람을 "순종하는 자식", 바로 이게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또한 2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여기도 이제 진리를 순종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사람, 그 사람의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참 그 영혼이 깨끗하고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정말 그는 예전의 죄인으로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미움과 다툼의 관계에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뜨겁게 피차 사랑하는 그런 사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 그 아들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내 생각, 이것은 다 잘못되었구나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 옳은 말씀이다.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나의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말씀하고 있는 그 하나님의 말씀, 그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죄를 해결하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하시는 그 방법을 온전히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이러한 복을 온전히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