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소제되신 주님(요약)

박이레 2026. 7. 26. 12:47

덕언 : 소제되신 주님 / 26년 7월 26일 일요일(요약) / 장승훈 형제님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레2:1, 개역한글)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레2:4, 개역한글)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찌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찌니라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찌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찌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레2:13-16, 개역한글)

그것을 기름으로 반죽하여 번철에 굽고 기름에 적시어다가 썰어서 소제로 여호와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 (레6:21, 개역한글)

오늘은 소제되신 주님에 대해서 상고하겠습니다. 레위기는 번제부터 시작해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규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번제는 그 제물 전체를 태워 여호와께 드리는 것입니다. 수송아지, 양, 염소, 집비둘기, 산비둘기 새끼를 드립니다. 특히 번제는 수송아지를 드렸던 모습을 통해서 번제와 같이 자신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시되 지치지 않고 밭에서 묵묵히 그 일을 완수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오늘 소제에 관한 말씀에서는 주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얼마나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삶을 사셨는가를 말해준다고 생각됩니다.

소제만이 피흘림이 없는 제사입니다. 피흘림은 저희들의 죄와 연관됩니다. 그래서 저희들의 죄와 연관시키기 보다는 속죄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예배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저희들이 드린 예배에 번제제와 같이 드려진 주님을 기억하며 드린 예배도 있습니다.
민수기 말씀을 통해서 번제가 드려진 후에 소제가 드려짐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도덕적인 아름다움이 십자가의 사역과 분리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도덕적인 온전하심이 오히려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주님은 공생애 사역과 여러 유년기 시절에 여러가지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오해가 십자가에서 절정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주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셨을 때에 유대인들은 반발했습니다. 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또 주님께서 38년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셨는데, 안식일에 일한다 하여서 유대인들이 주님을 핍박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순탄한 삶을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음의 위기를 겪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주님은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말을 수긍하거나 그들의 말을 받으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도덕적인 완전함은 오히려 십자가에서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소제로 드려진 주님의 삶과 십자가에서 번제로 드린 주님은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방식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굽지 않은 상태로 드리는 것이 있고, 구워서 드리는 것이 있고, 처음 수확한 곡식 그대로 드리는 방식이 있습니다. 굽는 것중에 세가지가 또 있는데 화덕에 굽거나 번철에 굽거나 솥에 삶아서 드리는 방식입니다.
화덕을 생각할 때에 이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 시험은 다른 사람이 볼수없는 시험이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아시는 시험입니다.
번철에 굽거나 솥에 삶아 드리는 것은 오직 제자들에게만 주님의 고난받으심이 보여지고, 십자가에서 주님의 고난받으심이 온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소제로 드려진 부분을 네가지로 요약할수 있는데요. 첫째는 고운가루입니다. 주님은 고운가루와 같이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거칠것이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소제와 함께 기름이 섞여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세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루와 기름이 섞이는 것입니다. 이사야 말씀에서 처녀가 잉태하며 아들을 낳을것을 예언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나셨습니다. 이 부분을 생각할 때에 고운 가루와 기름이 섞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두번째로 기름을 가루에 바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침례에 순종하시고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주님께 임하셨습니다. 이부분을 고운 가루에 발라진 기름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번째로 기름에 흠뻑 적시는 소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이 여러 사역들이 기름과 고운 가루가 완전히 뒤섞인, 기름에 흠뻑 적셔진 상태에서 주님께서 행하신 사역들입니다.

이렇게 소제되신 주님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묵상하게 될 때, 주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인생을 향하여 역사하셨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인생들이 주님을 비난하고 모욕할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고운 가루와 같은 삶을 사셨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를 돌아볼 때에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저희는 주님과 같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쉽게 분을 내고 죄를 범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계속해서 소제되신 주님을 묵상하며 주님을 닮고 그러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