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창세기 34장 10-17절(요약)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세겜도 디나의 아비와 남형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청구하는 것은 내가 수응하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빙물과 예물을 청구할찌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대로 수응하리라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 아비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욕이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취하며 너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를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창34:10-17,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8-10절까지는 하몰이 말하는 내용, 디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있습니다. 11-12절에는 세겜이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에게 이야기 하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14-17절은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대답하는 내용이 나와 있고 18절 이후에는 하몰과 세겜이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먼저 10-17절까지 교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0절에 하몰의 제안을 보면 야곱과 그의 가족들에게 세번에 거쳐서 제안합니다. 첫째는 정착을 제안하고, 둘째는 매매하라는 경제활동을 제안하고 세번째는 기업을 얻으라고 이땅에서의 소유를 제안합니다. 하몰은 야곱과 그 아들들에게 사회적 전체적인 기반을 제안합니다. 이 제안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상 야곱의 가족을 그들의 사회안으로 편입시키는 제안입니다.
이는 언약을 받은 백성이 그곳에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 땅에 속해서 살아가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공격은 단지 위협적으로만 오는것이 아니라 때로는 달콤하고 매력적인 유혹으로 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이 만일 금방 떠날것처럼 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하몰은 이러한 제안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마치 그곳에 정착할 것처럼 오래 머물고 있었기에 하몰은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몰의 제안 이후에 세겜 자신이 나와서 더 큰 제안을 합니다. 아무리 큰 빙물과 예물을 청구하더라도 다 수응하리라고 합니다. 이처럼 세겜이 디나를 강간한 악을 물질로 덮으려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큰 대가를 제시한다면 우리는 깨어서 이를 분별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하몰이 등장하는데요. 하몰은 세겜성의 꽤 높은 사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지도자적인 격의 가족이라고 보이는데요. 8절에 그 아들을 변호합니다. 자기 아들을 크게 질책하고 당사자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큰 죄를 진 것인데 그 죄를 덮기 위해서 이러한 제안을 합니다. 저희가 창세기에서 롯이 소돔성에 머물었고 그 소돔성의 죄악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시대에도 소돔은 매우 타락했지만, 창세기 34장에서도 세겜성의 사람들이 많이 도덕적으로 타락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들은 이렇게 자기 죄를 덮기 위해서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통혼을 제안합니다. 세상은 물론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지속적으로 합니다만, 야곱이 33장 18절에서 장막을 치고 거기 밭을 사고 우리간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세상은 그것에 맞춤으로 아주 잘 받아들이도록 제안합니다.
저는 왜 이런 어려운 환경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이러한 환경에 들어가도록 압력을 준것은 아니지만 그 가정에 슬픈일이 발생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렇게 몬 것도 아니고 스스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도 상당히 문제 의식을 느끼는데요. 그들은 할례에 대해서 말합니다. 할례는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의 증표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표식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그들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데 사용되는가를 보게 됩니다. 저희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들이 있는데요. 그것을 복수를 하기 위해서 사용하면 이같은 큰 비극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왜 디나가 이같이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고, 그 일에 야곱의 아들들이 분개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결국은 야곱이 세겜에서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33장 18절에 보면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라고 되어 있습니다. 야곱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거의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성취하는데까지 가지 않고 거기서 멈춰 버렸습니다.
저희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거의 순종하고 멈춰버리는 때가 있습니다. 사단은 아주 약간의 틈만 있어도 그것을 활용해서 저희를 세상과 혼합하려 합니다. 말은 혼합이지만 세상의 것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34장 10절에서 여러가지 것들을 주는 것처럼 말하고 11절에서는 원하는 것을 다 주겠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실제 마음은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마치 좋은것을 주는 것처럼 접근하지만 실제로는 다 빼앗는 것이고 그들의 소유가 되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야곱의 안주에서 비롯한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치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창34:7, 개역한글)
또 여기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 영적일 때에 이스라엘 이름으로 불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상징한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디나가 더렵혀짐으로 말미암아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 전체에게 굉장한 수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성경은 이스라엘이라고 말한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번주 교제 가운데서 저는 형제님 말씀에 동의하는게 벧엘로 가는 가운데 세겜이 있습니다. 숙곳에서 요단을 건너 나오는 곳이 대평원인데 그곳이 세겜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려면 고지대로 올라가야 합니다. 짐승을 키우는데 힘든곳이 고지대인데, 야곱은 이 일로 인해서 좀 지체된 것 같습니다. 야곱은 99가지를 행했지만 한가지는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가나안으로 들어왔고 밭을 사고 우리간을 만들었지만, 단 한가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곳으로 가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디나가 야곱의 딸로 언급되어 있는데요. 야곱이 많은 사람들을 거느린 족장인데요. 디나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많은 관심을 주는 딸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레아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중이 적다 할지라도 그가 이와같은 욕을 당하면 가족에게는 큰 비극이 되어버립니다. 저희 지역모임도 한 공동체로 묶어주셨습니다. 비중이 없다 할지라도 한 지체가 디나와 같이 추락하면 한 지역모임 전체가 어려워짐을 생각하게 됩니다. 제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지역 모임의 성도님들 모두가 이처럼 큰 비중을 차지하고 계시며, 큰 역할을 하고 계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0절에서 하몰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도 야곱의 집이 세겜성에 가까이 위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세겜은 디나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하지만 자기의 죄악에 대해서 그 어떤 사과의 말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말뿐입니다. 그리고 돈과 예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는 입장을 보입니다. 이것은 지금 세상에서 하는말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하몰과 세겜은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다 해주겠다고 합니다. 세상도 우리에게 같은 말을 합니다. 조금만 세상과 타협하면 원하는 모든 부요한 것을 다 가질수 있다고 말합니다.
13절부터는 야곱의 아들들이 전면에 나와서 말하는데요. 분명하게 "속여"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이 속임수임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를 보면 야곱이 아버지와 에서를 속인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아들들은 하몰과 세겜을 속입니다. 야곱은 축복을 얻기 위해서 속였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복수를 하기 위해서 속입니다.
또 13절에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다"라고 합니다. 이는 분명하게 죄이며, 세겜은 이를 사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을 속이고 있으며 야곱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어느하나 옳게 행동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야곱이 할례를 얘기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세겜 사람들을 속여 다 죽이기 위해서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야곱의 아들들도 디나를 누이라고 부르며 말하지만, 디나의 회복이나 안전에 대해서 중점을 두지 않고 복수에 대해서만 중점을 두고 말하는것 같습니다. 할례는 창세기 17장에 나와 있는데요. 언약의 지속성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육체의 할례는 하나님께 헌신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이를 다르게 사용합니다.
14절에 "우리의 수욕이 됨이니라" 수욕은 수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생각할때에 언약의 표가 무너짐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섞이는 수치를 얘기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같이 되면"(15절) 겉모습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그 내용에 대한 그 어떤 의미도 말하지 않습니다. 외적인 표만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영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일종의 의식처럼 되어져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 언약의 표인 할례를 모시하고 경히 여기고 모독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또 "한 민족"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단순히 같이 거주하는 민족이 아니라 정체성을 통합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몰이 제안하는 목표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몰과 세겜이 듣기에 좋게, 그리고 자기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14절에서는 "우리 누이"라고 말하고 17절에서는 "우리 딸"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야곱의 아들들이 집안을 대표해서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디나가 세겜의 소유물이 아니라 야곱의 딸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하몰과 세겜이 요구하는 것을 야곱의 아들들이 듣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분명하게 야곱이 들어야 하지만 야곱의 아들들이 듣습니다. 또 속였다고 할 때에 이는 하몰과 세겜만 속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 야곱도 속인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 가운데 세겜의 범죄와도 더한 범죄를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서 발견하게 됩니다.
16절의 내용은 절대 이스라엘 백성이 수용할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이 처리해야 할 문제를 자식들이 나타나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에 더 큰 범죄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분하셨다는 표식으로 행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 행한다는 것도 큰 문제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행동입니다.
또 하몰과 세겜은 이 말을 받고 자기 백성들을 설득합니다. 21-23절로 통혼하고 야곱 가족의 모든 재산을 탐하는 마음으로 이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수속사역의 측면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입니다. 만일 다른 민족을 받아들여 그들과 함께한다면 이삭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출애굽할때 바로가 400승의 벙거를 끌고 이스라엘을 잡으러 왔을 때에 홍해바다에 전부 수장된 것은 이스라엘을 출애굽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막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측면으로 하몰과 세겜도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길을 막으려 했기 때문에 이후 벌어지는 일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여집니다.
- 김민원 형제님 : 19절에 하몰의 아들인 "세겜이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며 그는 그 아비의 집에 가장 존귀함일러라"라고 합니다. 이들의 마음 가운데서는 진심으로 사랑함을 어필하고 있고 그것을 증명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결혼하고 서로의 딸을 취하고 함께 거하고 기업을 얻게 하고 원하는 것은 뭐든 주겠다는 것은 굉장히 진심이고 요즘 표현으로 하면 진정한 사랑으로 보여집니다.
저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름다운 것은 결혼을 먼저 하고 난 이후에 하는 것이 순서로 맞는 것입니다. 하몰과 세겜은 먼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이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합니다. 야곱은 "그가 그 딸 디나를 더렵혔다"고 생각하고 생각하고요. 그 아들들도 같이 생각합니다.
이 모습은 1절의 디나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되는데요. 디나는 그 땅의 여인들을 보러 나갔지만 세상은 그것뿐만 아니라 보고 끌어들여서 욕되게 합니다. 그들은 디나에게 한 행동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거하고 머무르고 기업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벧엘로 가야 하는데요. 이 제안이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생각한다면 전혀 매력적인 제안이 아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코 받아들일수 없는 제안입니다.
할례에 대해서 교제해 주셨는데요.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에 대해서 하몰과 세겜에게 얘기할 때에 "할례를 받고 우리같이 되면" 함께할수 있다고 합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징표인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 있는 수단이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징표가 할례인데 그 할례의 뜻이 바뀝니다.
물론 여기서는 속여서 할례를 말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 살아갈 때에 그와같은 징표가 있고 모습들이 있는데, 어느부분은 수단처럼 사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딸을 데리고 가리라"라고 합니다. 실제로 디나는 이 사건이 있은 후에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세겜성으로 가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원치않는 상황에 놓여진 디나이지만,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또 그것을 세겜이나 하몰이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그들은 원하는 모습이 이미 있고 결혼을 빙물과 예물을 통해서 하려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디나의 마음이 어떠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창세기 17장에 하나님께서 할례를 명하시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지킬 언약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은 하몰과 셈을 할례를 가지고 속였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아들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한 굉장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런데 그것을 하몰과 세겜이 받은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하신 것이 좀 이해가 안되고요. 그래서 이 부분을 좀 다시 되묻고 싶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A. 저는 형제님 말씀에 좀 동의합니다. 하몰이 왜 순종했는가 생각했을때 야곱의 재산을 탐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도 교회가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는데 물질적인 것을 공급해서 나오게 하는것은 올바른 믿음을 가지는데 방해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몰과 세겜성 사람들이 그 욕심의 결과로 다 죽었다고 봅니다.
Q. 그리고 제가 드리는 한가지 질문은 이것입니다. 저라도 시므온과 레위처럼 굉장히 분개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므온과 레위처럼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러한 죄를 마주했을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드립니다.
- 김보영 형제님 : A. 원치않는 피해나 공격을 당했을때 자연스럽게 분노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속 분을 품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원수 갚는 것을 자신이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행동을 보면 왜 성도들이 원수를 직접 갚지 말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한대 맞았는데 상대를 열대를 때리는 것입니다. 원수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의 범죄보다 더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리고 30절에 보면 또다른 보복을 두려워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것은 더 큰 범죄를 불러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했을 때에 그 보복을 우리가 행하다가 더 큰 범죄에 빠질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막고 계십니다.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34장은 야곱 가문의 가장 수치수러운 일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는 디나로 인한 수치가 아니라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죄 때문에 더 큰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A. 김윤철 형제님의 질문에 대해서 답하자면, 저는 방금 김보영 형제님 교제를 빌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심판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태어난 후에 할롈르 명하십니다. 그리고 이삭은 할례 이후에 낳은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통해서 내가 주는 약속은 너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심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에서 할례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요. 할례를 행하는데 율법을 행치 않는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모순적인 것입니다. 반대로 할례를 행치 않았는데 율법을 행하는 자는 의문의 할례를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저는 레위와 시므온과 정말로 이 할례의 정확한 의미를 알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제대로 알았다면 이를 세겜성의 사람들을 속여 죽이는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김보영 형제님의 말씀에 공감하고 저희가 연약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한 면을 배워야 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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