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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32장 29-32절, 33장 1-4절(요약)

박이레 2026. 6. 24. 21:07

성경읽기 : 창세기 32장 29-32절, 33장 1-4절(요약)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창32:29-32, 개역한글)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창33:1-4, 개역한글)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브니엘의 사건을 통해서 야곱은 그 환도뼈가 위골되고 평생을 절뚝이며 살아갑니다. 이 부분을 언급해 주셔도 좋을것 같고요.
이후에 야곱의 삶이 180도 완전히 바뀐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변화가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부분과, 또 야곱이 환도뼈가 다친 이유로 이스라엘 족속이 환도뼈 힘줄을 먹지 않게 된 그 이유도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32장 29-32절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지난시간 야곱이 혼자 남아서 한 사람과 씨름하다가 그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놀라운 사건을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 씨름한 사람의 이름을 묻습니다. 야곱은 씨름하는 과정 속에서 그분의 정체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심을 알았지만 그 이름을 묻습니다. 이는 어렴풋이 상대장을 아는것이 아니라 온전히 알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고 반문하시고 야곱을 축복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으시는 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이름을 듣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경험했고,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셨습니다. 야곱은 그 장소를 브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지만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도요한은 1장 18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본자가 없지만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보이셨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야곱이 감당할수 있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도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본 하나님은 주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은 훗날 육신을 입고오실 주님을 미리 만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새날이 밝았지만 야곱의 걸음은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뚝거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것은 야곱을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야곱은 형을 향해서 절뚝이며 걸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앞으로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환도뼈 힘줄을 먹지 않는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권위에 굴복한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브니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매달리는 사건이 있었고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며 다음날을 맞이한 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번주에 형제님이 밤에 일어나서 다시 얍복나루를 건넌것을 말씀해 주셨고요.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31절) 이때 당시의 밤은 지금의 밤과 조금 다른게, 가로등도 없고 사람을 식별하기 어려운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오셨습니다. 만일 야곱이 낮에 하나님을 보았다면 그가 살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야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을 수도 있지만, 모세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등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밤에 하나님을 만났지만, 하나님과 대면하였지만 그 생명이 보존되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야곱에 대해서 그의 믿음과, 그가 지팡이를 의지한 것에 대한 칭찬이 있습니다. 그의 환도뼈가 위골된 것은 그가 믿음으로 지팡이를 의지해서 경배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칭찬이 있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 사건으로 믿음을 발휘하고 그 평생의 믿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얍복강가의 일로 사용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32장의 시작은 야곱이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그곳을 마하나임이라고 합니다. 33장은 야곱이 눈을 들어보았을때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야곱의 오래된 어려움이 해결됩니다. 34장은 또다른 문제가 시작됩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그땅 여자를 보려고 나갔다가 문제가 생깁니다. 이처럼 32장과 33장, 34장은 모두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보는 것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 각 장들은 교훈을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30절에 생명이 보존되었다고 말하는데요. 야곱이 자신의 생명을 지킨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존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브니엘에서 야곱이 축복받습니다. 그곳은 야곱이 약해지고 간구했고 새 이름을 받은 곳입니다. 또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 곳이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환상이 아니고 실제로 있던 일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대면하고, 치시고, 그를 바꾸셨습니다. 이를 확실히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 사건 이후 야곱의 본성이 바뀌지 않았지만 조금씩 변화가 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두가지 성품이 있기에 그의 삶에서 두가지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다고 합니다. 힘들거나 괴로운 시간은 같은 시간이라도 길게 느껴집니다. 야곱은 이 밤 동안 형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자신의 생명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면하고 씨름하고 그러한 문제를 자신이 지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생각으로 이스라엘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꺾고 치심으로, 다루심으로 이스라엘이 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환도뼈 힘줄을 먹지 않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면 33장으로 넘어가 보겠는데요. 먼저 33장의 개요와, 1-12절까지를 자유롭게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중요한 부분이라 지난 시간에 교제한 부분을 좀더 교제해 보겠습니다. 주님과 야곱이 씨름을 하였고요. 이 씨름에서 지게 되면 야곱의 생명이 위험할수 있는 씨름이었습니다. 앞부분에서 야곱은 에서가 자신을 죽일까 하는 두려워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통해서 25절에서 주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십니다. 야곱은 이 사건을 통해서 내 생명을 주장하시는 분이 에서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알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형의 발목을 잡은 자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분이 주님이심을 알고 주님을 붇잡고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야곱의 생애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25절에서 주님이 야곱을 이기지 못합니다. 야곱의 육신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시고, 야곱은 주님임을 알고 주님을 붇잡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이기었다."(28절)라고 하시며 야곱이 주님께 굴복한 것을 이김으로 말씀해 주시는것 같습니다.
저희들의 생각대로 뭔가를 얻으려고 할 때에 저희의 육신이 드러나는데요. 주님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얻고자 했을때 저희는 낮아지고 주님께서 세워지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을 의지할때 나옵니다. 이같은 교훈을 야곱은 얻었고, 그 흔적이 그의 환도뼈가 위골된 것입니다.
31절에서 야곱이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습니다. 주님과 야곱의 쌰움은 환상이나 꿈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보여지게 된 것은 야곱이 약해졌지만, 실제로는 야곱이 강해진 것을 알수 있습니다.

33장으로 넘어가서요. 개요는 사회자 형제님께서 말씀해 주시고요. 야곱은 에서가 나아올 때에 앞에 여종과 자식들, 뒤에 레아와 자식들, 마지막으로 라헬과 요셉을 둡니다. 그리고 야곱은 맨 앞에 나옵니다. 32장에서는 야곱이 맨 뒤에 있었지만 33장에서는 야곱이 맨 앞에 나옵니다.
야곱은 32장에서 형을 만나기 위해서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33장에서는 그 예물이 나타나지 않는것 같은데요. 야곱은 예물로 형의 마음을 풀려고 했는데, 주님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주장하시는 분을 알았을 때에 자신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33장에서 에서가 와서 야곱을 안아줍니다.
아.. 8-9절에 예물처럼 언급되는 것이 보이네요. 다시 말씀을 바꿔보면 예물로 그의 마음을 더 풀려고 하지 않았다고 해 보겠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33장 개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3절까지 야곱은 에서 앞에 나갈때에 일곱번 몸을 굽혀서 절합니다. 이런 모습에서 야곱이 아직 사람앞에서 두려움과 조심성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4-11절은 에서가 야곱에게 와서 안고 입맞추고 웁니다. 이는 야곱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야곱은 에서의 얼굴을 하나님의 얼굴을 본것같다고 합니다. 브니엘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 사람사이의 관계가 회복된 것을 봅니다. 12절부터 19절까지 에서는 야곱과 같이 가자고 하는데요. 야곱은 어린 자식들과 가축들이 힘들고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야곱은 약한 자들을 돌보는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세겜에 와서는 야곱은 장막을 치고 단을 쌓습니다. 겉으로 보면 모든것이 안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20절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부르지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목적지 벧엘까지 가지 못한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만약 야곱이 세겜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34장에서의 디나의 시건을 피할수 있었을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33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여전히 야곱은 두려워 합니다. 그리고 옛 습관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브니엘의 경험을 했다고해서 에서와 사백인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에서와 사백인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브니엘 사건 이후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시험대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야곱이 눈을 들어 본 것은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붇잡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에서와 사백인을 봅니다. 이는 그의 생각대로 행한것을 말합니다. 야곱은 아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행동이 더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화해하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1절부터 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절을 잠시 보면 야곱은 두려움 가운데 가족들을 배치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다루심을 뒷절에서 볼수 있습니다. 32장에서 야곱은 예물을 보내면서 자신이 뒤에 있다고 계속 말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33장에서 야곱은 자기가 맨 앞에 섭니다. 이러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웠지만 에서를 피하지 않고 다가가고 있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한 세월은 20년이 넘는 긴 세월이었지만 그는 결국 형 앞에 서야 했고, 하나님은 야곱을 용서하고 회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4절 이후부터는 에서가 주체가 되어 행동합니다. 에서는 칼을 들고 달려온 것이 아니라 야곱을 입맞추고 같이 웁니다. 이를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야곱뿐만 아니라 에서의 마음도 화해하도록 준비시키셨음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이러한 형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용서했음을 알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의 마음을 다 움직이시고 다루셔서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원수라 할지라도 화목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피차 울었다고 되어 있는데요. 이는 긴 세월 동안 있었던, 어려가지 미움, 죄책감, 두려워 했던 마음, 또 그리워 했던 마음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 앞으로는 화목하게 지낼수 있을 미래를 그리게 되는데요.
또 33장을 보면 에서가 많이 변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과거에 장자권을 가볍게 여기는 가벼운 모습을 보였는데요. 이 장면에서는 오히려 야곱보다 에서가 더 어른스러워 보입니다. 에서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 가운데서 다루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며 보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2절에 보면 보면 야곱이 정한 자녀들의 순서가 나옵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기의 순서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리 좋지 못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니엘에서 야곱은 주님을 만나고 마음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적용해 내는 것은 쉬운일이 아님을 33장에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 야곱의 연약이 보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바로 저희들의 모습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Q. 그러면 만약 2절에서 야곱이 어떻케 해야 했을까요?

- 전의석 형제님 : A. 가족들의 순서를 굳이 정하지 않고, 한 무리로 두고 그가 제일 앞으로 나가는 것이 제일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저는 32장에서 이어지는 사건에서 이어지는 사건이기에 연속성으로 보는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매킨토시 형제님은 이부분에서 야곱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입니다. 다른 주석이나 서적에 비해서 부정적이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것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재홍 형제님이나 의석 형제님이 말씀해 주신 것보다는 이 부분을 나쁘게만 보지 않는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어째든 브니엘의 사건이 있었고요. 예물을 다시 보내지 않았기에 하나님을 의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6절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갔습니다. 반대로 야곱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곳으로 꾸준히 가고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생애 가운데서 오르락 내리락이 있지만 야곱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곳으로 계속 가고 있고, 에서는 돌아가버린 차이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Q.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도뼈 힘줄을 왜 먹지 않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이든 기념하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이 먹지 않은 이유를 묵상하신 형제님께서 다음 시간에 교제해 주시면 좋겠고요. 또 "지금까지"라고 했을때 언제 시점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일부는 먹는다고 하고, 일부는 먹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이부분을 짚어 주시면 쉽게 이해가 될것 같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장승훈 형제님 교제하신 내용 중에서 14절에 보면 야곱은 에서에게 먼저 앞장서서 가라고 하고, 자기가 세일로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최종적으로 가야 하는 목적지는 벧엘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세일로도 안가고 벧엘로도 안가고 숙곳에 머무릅니다.
저도 브니엘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만났지만, 또 그가 하나님을 붇잡았지만 그가 여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33장으로 교제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