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창세기 34장 1-9절(요약)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련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그 아비 하몰에게 청하여 가로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의 돌아 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세겜의 아비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사람 사람이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치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련하여하니 원컨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취하고 (창34:1-9,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34장은 참 어두운 장인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면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자녀들에게 인도력을 잃어버렸고, 그딸 디나는 귀중한 것을 잃었습니다. 또 그 아들들은 큰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사람이 기록하고 싶지 않은 내용도 매우 사실적으로 기록합니다. 창세기는 모세오경 중에 하나로 모세가 기록했습니다. 모세는 레위지파 사람이지만 그 조상인 레위가 한 일을 기록합니다.
33장에서 이어서 34장이 기록되었기에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셔도 좋고요. 또 디나가 당한 사견의 배경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절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나는 경계없이 세상의 문화속으로 들어간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죄의 시작은 항상 이렇게 명백한 악의 형태로 오지 않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히려 평범한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절과 3절에서 세겜의 죄를 기록합니다. 그는 죄를 먼저 범한 후에 그것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덮으려고 합니다. 이는 세상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범한 후에 그 죄를 인정하지 않고 그에대한 정당성을 포장하여 타인을 설득하려 합니다. 이는 4절에서 세겜은 그 아비에게 디나를 달라고 하며 이 사건을 아주 정상적인 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처럼 작은 실수라도 그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에 변명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33장 19절에서 야곱이 하몰의 아들들에게 밭을 은 100개로 삽니다. 그는 돈으로 땅을 얻었지만 가장 소중한 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무언가를 얻는다면 어쩌면 더 소중한 것을, 도덕적인 것들을 잃어버릴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형제님은 1절에서 호기심을 교제해주셨는데요. 저는 거기에 더해 가족과의 교제가 단절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디나 혼자 갔는지 모르겠지만 세겜이 디나를 범하려고 할때 그것을 막아줄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모와 상의하지 않고 나갔을 때에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또 야곱은 아들들과의 교제도 단절되어 있습니다. 아들들이 들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이것을 어떻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치리할지를 논의하지 않고 아들들이 스스로 살인을 벌입니다.
2절에 보면 세겜이 디나를 끌어들이고 강간하여 욕되게 했다고 합니다. 이는 처음 죄가 시작되는 모습입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에 과일을 보는 것으로 시작했고 그것이 탐스럽게 보여 취하여 먹습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보았고, 그를 데려오고 밧세바를 범합니다.
실제적으로 보는것은 저희들에게 굉장한 도전이 됩니다. 스마트폰이나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보는것이 저희들에게 매우 큽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는 것으로 죄에 나아가는데 쉬운 세대에 살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은 어떤 한 사람을 죄로 인해서 파괴하고 그를 빼앗지만 동시에 또 회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3절에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합니다. 그러나 이는 참된 해결책이 아닙니다. 죄는 오직 하나님 앞에 나가야만 해결될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었지만 그것은 온전한 옷이 아니었습니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세겜은 세상의 방법으로 죄를 덮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뒤의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에 5-17절까지도 이어서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5절을 보면 디나에 대해서 야곱은 그 아들들이 돌아오기까지 침묵했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딸이 당한 일에 대한 충격으로 침묵했을 것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그 일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 침묵했던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어느쪽이든간에 침묵도 그 가정의 인도자의 반응이기에 영적인 인도의 공백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침묵에 시므온와 레위가 분노로 그 공백을 채우게 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돌아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합니다. 이는 당연히 일어나느 감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분노가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보게됩니다. 그들은 그 분노를 다스리지 않고 기도하지 않았고, 그 분노를 걷잡을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그 분노는 속임수로, 그 다음에는 살인으로, 또 그다음으로는 약탈로 계속 커집니다. 만일 그 아들들이 그 분노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 기도했다면, 또 야곱이 영적인 인도력으로 아들들을 다스렸다면 이 일은 다른일로 결과를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고 이 사건이 있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심을 볼수 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디나 사건은 야곱의 가정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일은 우연히 되는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디나의 치욕 사건을 야곱의 가정에 주셨습니다. 그것에는 무슨 의도가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34장 1-4절은 33장 17-19절의 말씀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야곱이 에서와 헤어져서 즉시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세겜에 오래 머문것에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는 야곱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은 분명히 얍복강에서의 씨름 이후에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지대로 행하는 문제가 있음을 또 보게 됩니다. 세겜에서 즉시로 벧엘로 갔다면 이러한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을 디나를 통해서 징계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 징계를 하는 목적이 미워서라기 보다는 히브리서 12장 말씀처럼 어그러진 길을 가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서 올바른 길을 가도록 징계하시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또 야곱은 디나의 치욕사건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히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 일이 생겼을 때에 먼저 야곱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했습니다. 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식들을 의지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최소한 야곱은 자식들보다 더 성장한 영적인 어른이라고 볼수 있는데, 영적으로 어린 자식들을 의지하려는 야곱의 태도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는 야곱의 아들들의 행동은 야곱이 영적으로 자식들을 인도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보면 이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이다보니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원수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할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로마서는 원수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절에 강간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요. 이 원어 단어를 찾아보면 불법적이거나 강압적인 성관계를 할때에 사용됩니다. 롯의 딸들에 관해서, 또 보디발과 요셉의 사건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끌어들여" 붙잡다는 단어입니다. "욕되게" 강압적으로 분명히 행했음을 말씀합니다.
3절에서 "연련하며"라고 하는데 붙잡다, 달라붙다는 뜻이 있습니다. 2절에서 세겜은 디나를 보고 취하고 욕되게 했던 것을 보면 3절에서 세겜이 디나를 사랑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정상적인 사랑은 아닌것 같습니다. 오히려 죄로 인한 강한 집착적인 행동으로 보입니다. 또 세겜은 디나를 사랑했다고 하지만 그 죄를 행하고 나서 그 죄를 회개하거나 디나에게 사과하거나 야곱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3절에서 "그를 말로 위로했다"는 것도 진정한 위로가 아니라 그 상대를 말로 달래는 일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4절에서 세겜은 개인적인 일을 하몰에게 말합니다. 이는 가족간의 일이 아니라 부족간의 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또 세겜은 자기의 죄를 결혼으로 덮으려고 합니다. 또 민족적인 혼합을 꾀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5절에 "들었으나"라고 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듣다는 단어가 반응을 요구하는 던어로 종종 사용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때 순종을 요구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야곱은 이 소식을 들었을때 가장으로 반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바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신중하기보다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것으로 생각됩니다. 야곱은 공의롭고 겅건한 방법을 제시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시므온과 레위가 자기들의 뜻대로 행해버립니다.
그리고 디나는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야곱의 딸" "그의 딸" 계속해서 디나가 야곱의 딸임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서 야곱이 디나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Q. 질문이 있는데요. 김보영 형제님께서는 이 사건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야곱에 대한 징계라고 보셨는데요. 저는 이 사건을 징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속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가 모임 가운데서도 모임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를 하나님의 징계로 보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34장 마지막에서 하나님께서 벧엘로 가라고 하셨을때 야곱은 벧엘로 갑니다.
- 김보영 형제님 : A. 저는 이것을 징계로 봅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 벧엘로 다시 가라 하시죠. 이것을 징계가 아니라고 할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계속 살아가려하는 야곱의 태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몰과 세겜의 태도를 보면 더욱더 그런것을 느낍니다. 그들은 디나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는 허용될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이 어떻게 가족이 되겠습니까? 9절에 보면 "서로 통혼하자"고 합니다. 그리고 "매매하자"고 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그들 삶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야곱이 가진 모든 사람과 재물을 자기들 것으로 만들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야곱이 계속 거기 머물렀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될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수 없는 아주 중대한 문제가 여기 걸려 있는데도 야곱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A. 창세기 3장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원시 복음을 말씀하십니다.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것을 사단은 계속해서 방해합니다. 첫번째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입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해서 사라를 이방 왕의 아내가 되게할뻔한 사건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사단이 주님을 오시는 것을 방해하는 사건임을 큰 틀로 볼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34장의 내용도 그러한 큰 틀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보영 형제님께서도 언급하셨지만 디나를 강간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9절에서 "통혼하여"라고 합니다. 야곱의 가족과 이방땅의 사람들을 혼합시켜서 주님이 오시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이는 야곱의 연약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33장 17-20절까지 세겜성에서 야곱이 오랜시간 있었습니다. 그것은 디나나 열한 아들에게 합당치 않은 환경을 야곱이 제공한것으로밖에 볼수 없습니다. 야곱이 잘못했는데 피해는 디나가 보았고 야곱의 아들들이 보복으로 범죄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해서 다 용서해 주셨음을 압니다. 그러나 그 용서와 별개로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반드시 치리하십니다. 저희들이 가볍게 여기고 죄를 지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 굉장한 여러움을 줄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먼저 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여주시는 것이 나에게 뭔가, 합당치 않은 일을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욥입니다.
- 김대현 형제님 : 32장에 나오는 야곱의 이름을 생각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도 아브라함과 사라로 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야곱도 씨름하기 전에는 야곱이었지만 씨름 후에는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로 나오지 않고 오랜기간 동안 야곱으로만 나옵니다. 그의 노년에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이러면 왜 어떤 때는 야곱이고 어떤 때는 이스라엘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연약하고 인간적일때는 야곱이라 칭했고, 또 하나님의 백성, 열두 지파의 아버지로써의 역할을 할때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칭한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교제 가운데서도 보면 야곱은 야곱으로 나옵니다.(5절) 이런 상황을 보고서도 야곱이 언급한것이 없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와서 그 일을 치리합니다. 30절에도 야곱의 연약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34장에서 야곱은 가장으로써, 아버지로써 그 일을 주관해야 하지만 뒤로 빠져서 연약함을 보입니다. 이를 통해서 야곱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보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34장 1절에서 세겜이 디나를 강간하고서 사랑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좋은 예시가 이삭에게 있습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창24:67, 개역한글)
먼저 아내를 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34장에서는 그 순서가 완전히 역전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세상에서 하는 것입니다. 먼저 육체적인 관계를 하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받을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결혼으로 좋은 예시를 24장에서 앞서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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