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11절 / 마포모임, 20년
(음성 파일이 한봉래 형제님 교제하신 마지막 부분 내용만 있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 구원받은 사람, 그러면 누가 진정 이제 구원받은 사람인가? 요한일서에서 1장 초반부는 1절에서 4절까지인가요? 초반부는 '예수님에 관한 교리'를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두 번째 부분은 1장부터 2장 2절까지가 '죄에 대해서'입니다. 그가 자신의 죄를 어떻게 의식하고 있는가? 나 죄 없다 하는가? 이제 죄는 끝났다. 이거 구원 안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죄에 민감해지고, 죄를 자백하고 죄를 해결하려고 하고, 이게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죠.
그리고 2장 3절부터 나오는 게 이렇게 보겠습니다. 아가나왔는데요. 예수님이 생명이십니다. 참생명, 우리 육체적인 생명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이 뭐냐? 이 영원한 생명이 예수님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을 보면 영생이 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 그랬을 때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예수님은 '순종하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늘 그렇게 말씀하셨죠. "내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예를 들면 저희들이 자녀들 가운데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자녀가 있습니다. 순종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하고 다릅니다. 아이들이 순종하지만, 권위 아래에 있어서 말을 하면 듣지만 평상시에는 다 자기 뜻대로 행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권위가 주어지면 순종하죠.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순종하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이게 주님의 특징이고요. 그다음에 주님의 그 생명의 특징 을 두 번째로 들어라 그러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로마서 5장이죠.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생명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순종'과 '사랑'입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2장에 보면 아까 나왔습니다만 이 빛이 비추입니다. 이게 진리고 빛입니다. 이게 생명입니다. 그리고 이 빛과 생명을 받은 사람은 주님처럼 행한다. 이게 2장 6절입니다. 그래서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주님처럼 행하는 사람입니다. 완벽하게 행한다는 게 아니라 주님과 같은 생명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 특징이 뭐냐? 1. 첫 번째가 '순종'입니다. 말씀이 있으면 순종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좋은 구절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이제 "너울을 써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너울 쓰라고 돼 있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안 씁니다. 그 이유를 들어서, "이건 고린도의 문화고" 혹은 "그건 저기 그 옛날에 여성들의 지위를..." 뭐 이렇게 해서 순종 안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특징입니다. 순종 안 하는 것, 구원받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명백한데도 자기의 가치관이나 어떤 문화적인 특징을 들어서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합니다. 그 다음에 침례 받게 돼 있죠. 그런데 "뭐 세례 받으면 됐지." 구원받은 사람이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침례가 의미하는 것, 그래서 이런 것들이 저는 굉장히 참 좋은 증거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좋은 핑계를 대고 불순종할 수 있는 좋은 구절들이다. 그리고 역으로 말하면 참 구원받은 사람을 드러낼 수 있는 아주 좋은 구절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순종하는 거죠.
그리고 2. 두 번째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미워하는 게 나오는데요. 사랑, 미움 이렇게 하면 약간 이게 일반 사랑이 되고 조금 어려운데요. 여기 보면 '어둠'이라고 돼 있고 사랑이 이렇게 돼 있는데, 이게 전부 정관사들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번역을 하려면 한다면, '그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어둠'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아주 딱 집어서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 사랑', 다시 말하면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저는 이런 구절을 하고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내 아버지, 너의 아버지, 내 하나님, 너의 하나님께 올라간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형제가 되겠습니까? 주님과 같은 생명을 가진 자라고 어떻게 우리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비록 구원받았어도, 주님의 성명을 가지고 있어도, 성령이 우리 안에 있어도, 신분적으로 죄가 없어졌어도, 우리의 상태를 보면 한심해서 주님의 형제라고 부르기 곤란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형제를 미워합니다. 이게 주님이 형제라고 부르셨는데 여기서도 이제 문제가 되는 거죠. 형제인데 형제를 미워한다고 그랬을 때 사실 이분은 구원 안 받은 사람이죠. 그러니까 사실은 형제 아닙니다. 그런데 형제를 미워한다고 표현한 것은 그가 자기도 구원받은 형제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써놓은 거죠.
이런 것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냐하면, 일단 복음적으로 접근을 해보면 많은 분들이 복음을 거절하는 핑계를 어디다 대냐면, 저희들이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마는 교파 목사님들, 혹은 교회의 어떤 비리들, 교회가 싸우고 분열 하고 목사님들이 부도덕한 행동을 하고, 이런 것들을 싹 들어서 복음 안 믿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제 그분들이 잘못 잘한 것도 아니고 저희들이 뭐 옹호할 생각도 없지만, 어쨌거나 그래도 복음과 교회와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고 그것을 들어서 안 믿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분들이 대표하고 있는 어떤 복음 성경에 대해서 믿기 싫으니까,
그다음에 또 저로서는 약간 어려웠던 게 예를 들면 한 10년 전인가, 20년 전인가, 오대양이라고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신문에 대대적으로 났습니다. 기독교 이름을 걸고 있는 단체인데 자살해버렸죠. 그래서 이걸 도대체 어떻게 평가를 해야 되느냐 하게 됐을 때 어떤 형제님이 그 잘못한 거죠. 잘못한 거고, 그걸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마는 만약에 그분들이 구원받은 분들이라면 이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분들을 세상 신문이 비난하듯이, 세상의 어떤 도덕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비난하는 데 우리가 동참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약간 좀 어려운 면도 있지만 일리가 있는 그런 표현들입니다. 그래서 복음적으로는 그렇게 이해해 볼 수 있고요.
그다음에 인제 이건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죠. 여기 그리스도인에게 직접 한 말은 아닌데, 적용해보면 성도가 구원받은 형제를 미워하면 이제 실험할 수 있죠.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교회죠. 물론 주님이 교회 밖에 계셨습니다마는 이걸 교회라고 볼 수 있느냐 하는 게 문제가 되는 거죠. "내가 문 밖에 서서" 그랬으니까 주님이 밖에 있는데 이게 교회겠습니까? 교회라고 볼 수 없죠. 그런데 하여간 또 성경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렇게 또 해놓은 거죠. 그런데 주님이 문 밖에 계신데, 하여간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뭐라고 표현하셨냐면 "너희들은 부유하다 이렇게 하지만 너희들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게 있는데, 너희가 눈 먼 것과 가난한 것과" 이렇게 말하십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눈 멀어 있습니다. 눈멀어 있으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히브리서 12장으로 가보면 "쓴뿌리"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겉으로는 용서가 됐는데 속으로는 계속해서 쓴 게 올라오는 겁니다. 어떤 성도를 볼 때마다 용납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적인 관계 속으로 안 들어오고, 계속해서 미워하고, 거리를 두고,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저희들이 적용하는 거죠. 만약 우리가 예를 들면 적게 말하면 마포 모임에서, 혹은 넓게 말하면 어떤 저희들이 동의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모임이라 할지라도, 구원받은 형제에 대해서, 만약에 우리가 계속적으로 내 속에서 무엇인가 거부감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 2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1. 그는 '위험한 상태'에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둠 속에 행한다라고 하는 것이 이제 그런 거죠. 아까 빛 가운데 있으면 자기가 넘어질 일이 없습니다. 이제 어떤 형제는 그걸 축복이라고 말했는데요. 넘어지지 않습니다. 잘 보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는 이제 어둠 속에 있으면, 그렇게 미워하면 그는 넘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그는 위험한 상태에 있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 2. 그는 '방향 감각을 잃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서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평가받을지에 대해서 감각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그런 면에서 성도들이 적용해야 될 면이 있고, 또 분명히 복음적으로, 요한일서는 기본적으로 복음적인 거죠.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 있는 사람을 주님은 내 형제라고 불렀는데, 내가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영적인 생명에 대해서 계속 내 마음에 반감이 들고 있다면, 싫어하고 비난하고 있다면 어둠 속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구원받지 않은 것을, 아무리 말을 뭐라고 해도 자기가 구원받지 않은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지금 요한일서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점검하도록, 구원받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것들을 점검하도록 주어진 성경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 이상입니다.
- 사회자 형제님 : 시간이 많이 됐는데요.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구원이라는 것이 복음을 우리가 물론 믿는 것이지만 사실 구원은 어느 정도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사랑한다, 미워한다. 이런 거를 구원과 연관을 딱 시켜버립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인격적으로 변화된다. 그러니까 저는 이제 기적과 부활과 어떤 차이가 될까? 예를 들어서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셨어요. 그러면 우리는 보통 사람 같으면 "대단하네. 엄청난 능력자." 능력을 능력에 관심이 있을 텐데 그게 아니고 그 내용이 중요한 거죠. 그러니까 그게 우리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런 인격적인 변화가 분명히 수반이 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다.
그런데 이제 그럼 그다음 질문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 인격이 변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그 질문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여기서 보면 결국 사람의 인격이 변화되려면 겸손해지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낮아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요한일서에서 죄에 대해서 자꾸 얘기하는데, 이제 죄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이게 난해 구절이 되죠. 죄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그런데 여기서 죄에 대해서 지적하는 이유는 속죄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게 아니고, 계속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이렇게 낮은 위치에서 계속 돌아보게 한 자신을 돌아보고 형제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 그런 것을 계속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를 들어서 베드로도 그랬죠. 물론 이 구절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다고 우리가 딱 여기서 선을 그었지만, 예를 들어 베드로 같은 경우에도 사실은 주님을 3번 부인했죠. 그리고서 딱 오니까 예수님께서 그때 물어보시는 거예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어보시죠. 그리고서 사랑한다고 하니까 이제 "내 양을 먹이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8장에 보면 물론 찾지는 않겠지만, 약한 형제에 대한 얘기가 나오죠. 우상 제물을 먹지 못하는 약한 형제가 있는데, 아마 세상 종교가 같으면 먹어도 되잖아요. 사실 그게 지식적으로 맞으니까 세상 종교 같으면 "먹어." 이렇게 하는 거죠. 그리고 그 형제 망하게 하는거죠. 그런데 그게 아니고 그 형제를 사랑하니까 자기가 양보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그 약한 형제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면 저 사람을 사랑하라 하는 거죠. 왜냐하면 내가 사랑한 사람이 대신 죽었으니까, 어떤 인격적인 내용에 반드시 들어가 있고 이것을 깨달아야지, 그래서 그가 인격적으로 변화돼서 사랑하는 걸로 나타나야지 된다라는 측면을 좀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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