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모임 성경읽기/요한일서 성경읽기

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8절

박이레 2026. 7. 11. 18:53

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8절 / 마포모임, 20년

- 이기범 형제님 사회 : 예, 오늘은 30분 성경 읽기 시간을 가지고 이후에는 기도 집회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2장 8절만 교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2장 1절부터 제가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요일 2:1-11).

오늘은 2장 8절을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저희가 새 계명과 옛 계명에 대해서 잠시 7절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8절에도 보게 되면 새 계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고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새 계명이 무엇인지, 또 그 앞에 8절 시작이 "다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다시가 이렇게 있는지, 아니면 새 계명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참된 것"이라고 나오고요. 그다음에 8절 후반에 보게 되면 "어두움이 지나가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나가고"라는 것이 또 지나갔다라는 건지, 아니면 이제 지나가고 있다라는 건지, 저희가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이렇게 "침빛이 벌써 비췄다"라고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난 시간에 7절을 교제했습니다만 7절과 8절을 다시 또 함께 보면 8절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것 같습니다. 오늘 기도 집회도 함께 하기 때문에 시간을 고려하셔서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전효진 형제님 : 예, 다시라는 말을 통해서 같은 주제를 또 다른 관점에서 또 다른 의미로 이렇게 말하려고 하는 사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성도들은 처음 구원받았을 때, 이미 본능적으로 형제의 사랑에 대해서 옛 계명으로 받은 것이라고 말했던 사도는 이제 그 사랑을 '새 계명'이라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원받을 때 이미 수신자들이 전해 들어섰다는 의미에서는 이것이 옛 계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실천과 적용에 있어서 새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주님이 확증하셨고 또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행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그 사랑이 완전해졌으며 또 성도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더욱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면서 하셨던 그 새 계명에 대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주님의 사랑이 완전한 것임을, 모든 것을 이루신 사랑임을 말씀하시면서 또 제자들에게도 이와 같이 행할 것임을, 행할 것을 또 얘기했고요. 그래서 주님의 새 계명을 순종하는 그런 사람마다 주님의 사랑이 삶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랑이 성도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랑의, 그래서 계명은 옛 계명이면서 새 계명이 될 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새 계명이 그리스도와 또 모든 믿는 그러한 성도들 안에서 성취되었고 또 분명한 실체로 이렇게 나타나게 된 것이죠.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비친다"는 표현을 통해서 새벽이 시작되고 마침내 밝은 아침이 왔으므로 어둠의 세력은 그 힘을 잃어버렸다 하는 것을 알게 하는데, 새로운 사상과 주장들, 이런 것들은 모임을 훼손시키려 했지만, 이미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거짓은 진리를 이길 수 없음을, 사랑이 왕성하게 모임 가운데서 이루어짐을 이런 말씀을 통해서 또 알 수 있게 합니다. 빛되신 하나님으로 두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에 빛을 비추셨고,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그 빛을 비추어 주심을 또 알 수 있게 합니다. 이 빛에 관한 그러한 참된 성격에 의해서 "너희도 서로 이와 같이 사랑하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명령이 무겁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으로부터 삶을 본을 통해서 받았고 또 말씀을 통해서 또 성명을 통해서 저희들이 이미 마음속에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무겁지 않고 또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그러한 계명인 것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소유한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기쁨 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을 또 알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이 개 계명을 우리들이 생활 가운데서 순종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우리 안에 구원을 이루신 주님을 증거하는데, 이 형제 사랑이 중요한 몫을 또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렇게 보여집니다. 이상입니다. 

- 이병호 형제님 : 예, 8절에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쓴다"고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 이게 율법에도 있었고, 또 있는 말씀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계명이 새롭다는 것을 말을 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왜 새 계명이냐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어떤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 아가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어떤 이론이나 그런 말이 아니라 행함에 대해서 우리가 6절에서 "그의 행하시는 대로 행할지니라"라고 했는데 주님께서 사랑을 온전히 본으로써, 그 예로써 이렇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전에는 그런 사랑을 우리가 이론적으로 알았지만 실제적으로 그 사랑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새 계명이고, 그 사랑을 주님께서 본을 보이셨고 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경험한 그 사랑을 또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주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측면에서 이게 질적으로 새롭다. 이렇게 말을 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고 교제 해주신 것처럼 어떤 거짓 것들은 또 영지주의자들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실제적으로 힘이 없지만, 이 새 계명을 그 아가페 사랑을 행할 힘을 또 우리에게 주시는 측면에서 이게 새롭다고 말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제 앞에서도 교재해 주신 것처럼 주님 안에서 그 사랑이 성취가 되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정말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제자들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그 온전한 사랑을 주님께서 나타내 주셨고 그것이 온전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이 참된 것이고, 또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들 또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또 이 말씀에 우리가 순종할 때 이것이 우리 안에서 참되게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랑의 실체를 우리가 드러낼 수가 있고 이런 측면에서 참되다고 말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조재훈 형제님 : "이는 어두움이 지나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앞에 "왜냐하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 새계명이 주님 안에서와 그리고 믿는 우리 안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재된 대로 이 두 동사, '지나가고 비춘다'는 것은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둠이 지나가고 있으며 참빛이 벌써 비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실제가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에는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9절에는 "참빛, 곧 세상이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의 무지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할 때에 그것은 소망이 없는 것이었지만 참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비치심으로 인해 어둠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 안에 그 빛을 받아들인 사람들 안에 생명이 있게 되었고 그 생명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새 계명이 그들 안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볼 때의 영적인 어둠은 점점 짙어져 가고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어둠은 지나가고 있으며 종국에는 하나님의 계획상 어둠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참빛이 비치고 있는 이 빛만이 우리의 빛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위로가 되고, 또 여기 본문에서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지금 비취시고 있고 또 어둠은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에 비추심으로 인해서 이 계명이, 새 계명이 그리스도 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실제로 참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강성찬 형제님 : 8절에서는 "새 계명"을 말하고 있는데요. 7절에서는 "옛 계명"을 말했고요. '옛'이라는 것은 말씀드린 대로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새 계명'에서 '새'라는 것은 그것은 '성취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온전하게, 원래 의도했던 온전한 의미로 성취되는 것을 '새'라는 것을 붙여가지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예레미아 31장 말씀과 그것을 인용한 히브리서 말씀의 '새 언약'에서 보게 됩니다. 그 새 언약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한 의미에서 또 온전하게 성취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주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믿고 성령을 받게 되는 사람들을 통해서 온전하게 성취될 그 계명을 바라보시면서 그것을 새 계명이라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8절에서는 사도 요한이 그 면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과 같은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에게서 있어서도 참된 것이고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도 참된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그 차원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저에게서와"라는 표현을 할 때 'in him'에서 그 in이라는 전치사를 '그분에게와' 또한 '우리에게', '너희에게', 이렇게 각각 2번 전치사를 써서 다르게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성격에 있어서는 동일하게 참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같기 때문에, 주님께서 원수인 우리들을 죄인이었을 때 먼저 사랑하시고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이 이제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에게서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말할 때 어떤 어떤 면이 참된 것인가를 말할 때 무엇이 참된 것인가? 새 계명으로서, 그래서 성취되는 그 계명으로서 그분에게 있어서도 참되고 또한 우리에게 있어서도 참된 것이다. 그분에게 있어서도 온전히 성취되었고, 또한 그분의 생명을 받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또한 온전히 참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앞에 형제님 말씀해 주신 대로 "이는", 그 까닭은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비췸니라" 여기서 참빛은 요한복음 1장에 나온 우리 주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초림하시고 그리고 그 구속사역을 이루셨기 때문에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고 이 성령의 시대는 어둠은 계속 지나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셨고, 그로 인해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면서 참빛이 이미 비췄고, 그리고 계속적으로 지금 비추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어둠이 온전히 다 지나가 버리고 참빛이 온전하게 비칠 시대가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예, 7절에서는 '옛 계명'이라고 했고요. 8절에서는 지금 '새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동일한 계명을 이와 같이 표현을 했는데요. '옛 계명'인 이유는 구약시대 때부터 이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구약시대부터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고, 이 땅에 주님께서 오셔서 그것을 가르치셨고 그걸 사도들이 들어서 또한 주님께 들은 그대로 가르쳤기 때문에, 사도들이 거기에 무엇인가를 더한 것이 없이 옛날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뜻이고 주님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에 옛 계명이라고 말씀하신다고 생각이 되고요. 
이것이 또 '새 계명'인 이유는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그 형제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제자들한테 가르치실 때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질적으로 다른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이로써 우리가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래서 주님께서 보이신 대로,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저희들도 동일한 사랑을 베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 계명이라고 생각이 되고요.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앞에서 계속 선생님들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주님께서 보이신 그 사랑, 그 행하신 그 사랑은 저희들도 동일하게 주님과 동일한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저희들이 주님의 주님 안에서 그 빛 가운데서 교제할 때 이러한 주님과 동일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참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주님께서 그 빛을 나타내 주셨는데 지금은 주님은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지금 이 땅에서 그 빛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만 저희들이 생각을 해보면 그 빛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나타내셨냐면, 죄인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드리심으로 그 사랑을 통해서 그 빛을 나타내셨습니다. 동일하게 저희도 주님과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교제하는 사람들이 주님과 동일한 사랑을 나타낼 때 그것이 주님과 동일한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저희들은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세상의 빛으로서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자로서 저희들이 있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 한봉래 형제님 : '참'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맨 처음에 나타난 참은 거짓의 반대로서의 참이라기보다도, 그러니까 '참'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도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고 하는 그 계명도 참입니다. 뭐 거짓이 아니고, 그런데 이게 '참'이라고 하는 의미는 '실현'된다. 그게 부분적이지 않고 실제로 완성된 형태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의미에서 참이라는 뜻이 되겠고요.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로, 나오는 "참빛"은 이제 가짜 빛하고 구분되는, 이제 진짜 빛이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깐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은 어둠을 연장시킵니다. 어둠을 용인합니다. 그러나 참빛은 어둠을 물러가게 하는 그런 빛이다. 그래서 '참'이라고 하는 단어가 2번 나왔는데, 하나 앞에 나오는 참은 이루어지기 때문에 참된 것이고, 거짓하고 반대가 아니고 이 두 번째 참이 이제 거짓하고 반대되는 그런 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 이상입니다. 

- 이기범 형제님 사회 : 혹시 더 교제하실 형님 없으신지요? 2장 8절 오늘 교제했습니다.
그런데 끝내기 전에 저도 이렇게 한 가지만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제님들 교제하신 대로 옛 계명과 이렇게 새 계명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새 계명'은 또 교제하신 것처럼 '성취'하고 관련이 있고 또 주님께서 이것을 확증하셨고 그다음에 또 저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이루어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데, 구약에 보게 되면 저희가 많이 교제했습니다마는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라고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 앞쪽에 "원수를 갚지 말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게 되면 주님께서 이 부분을 인용하시면서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셨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그래서 원수에 대해서 원수 갚는 것이 저희에게 있지 않고, 이런 식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래서 옛 계명과 새 계명이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습니다마는 그 성취하는 그 모습을 보게 되면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성취라는 것이, 단순히 옛 계명을 준행하거나 부분적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참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룬다는 것의 수준이 원수를 사랑하는,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까지 실제로 이렇게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도 참인 것이고 또 생명을 받은, 그리고 빛이 비춰지고 있는 저희에게도 참된 것입니다. 저희가 이것을 보게 될 때 참으로 저희가 실제로 그 성령의 인도하심과 함께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가 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기도 집회가 있는 관계로 교제를 여기서 마치고요. 바로 이어서 기도 집회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