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최재홍 형제님(요약)

주님께서 보이신 기도의 본(요약)

박이레 2026. 7. 5. 12:59

주님께서 보이신 기도의 본 / 26년 7월 5일 일요일(요약2) / 최재홍 형제님

오늘 덕언 시간에도 교제가 되었지만, 기도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살피기를 원합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5:16, 개역한글)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6:12, 개역한글)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눅10:21, 개역한글)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22:31-32, 개역한글)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23:46, 개역한글)

누가복음에 기도에 대해서 여러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어려울 때만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또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 26절에도 보면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고 기록합니다. 또 계시록 마지막에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를 말씀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그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온전한 본을 보이신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주님의 기도생활을 더 자세히 기록합니다. 완전한 사람이신 주님께서 완전한 기도의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사가랴의 분향으로 시작되고요. 마지막은 제자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누가복음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의 향기가 올라가는 복음서입니다.

우리도 기도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아버지께 나갈수 있는 정상적인 삶이고 교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물론 저희가 구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마음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의 내용처럼,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영광스러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5:14, 개역한글)

성도는 자기 욕심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그 뜻 안에서 담대하게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 안에서, 주님의 뜻 안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가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저의 뜻을 이뤄주십시요, 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제 뜻이 맞춰지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완전하신 분께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저희는, 항상 연약하고 죄와 싸우고 세상을 살아가는 저희는 얼마나 기도해야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주님을 완전하신 사람이며 또 하나님을 의존하는 사람으로 계속 보여주십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5:16, 개역한글)

주님은 많은 무리를 섬긴 후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병자들과 슬픈자들을 치료하시고 또 따로 떨어지셔서 아버지와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저희도 주님과 같이 동일하게 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을 만난 후에, 지친 후에도, 세상의 어려움을 만난 후에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 열두제자를 택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동일하게 어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한 예로 가정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거나, 직장을 선택하거나, 모임의 섬김이나, 복음을 전할 때에, 가정에서는 자녀 양육이나, 자매와의 관계속에서 먼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행동을 보면 기도는 우리가 하는 행동중에 제일 마지막에 하는 수단이어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그 일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로 움직이고 말씀안에서 서고, 섬기고, 하나님 아버지를 의존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기 위해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에는 한적한 곳, 골방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지금 현시대에 생각해 보면 이 장소를 골방으로 생각할수 있지만, 세상의 소음으로 분주한 곳을 떠나 하나님 앞에 홀로 설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주님께서는 호수를 건너시고, 무리를 떠나시고,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동일하게 저희도 시간을 정해서 하나님과 기도하시는 시간, 교제하시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6:12,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하는 시간을 밤새도록 누리셨습니다. 우리의 기도 시간은 길수도 있고 짧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아버지와의 기도, 교제시간을 즐기셨습니다.

또 복음서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록하며, 유월절의 만찬 제정 때에, 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저녁에 떡을 떼며 축사하실때 감사 기도하셨습니다. 저희들의 삶에서도 식사 전에 기도를 합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지속적으로 감사기도를 해야 함을 또 묵상하게 됩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눅10:21,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을 어린아이들 같은 자들에게 계시하심을 기뻐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구할뿐만 아니라 그 시간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기뻐하는 시간도 필요함을 배우게 됩니다.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막11:21-25, 개역한글)

또 주님께서는 기도에 믿음과 용서가 필요함을 말씀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태도이고 용서는 사람에 대한 태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형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붇드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주님께서는 이 기도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임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사람과의 관계도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이나 복수심을 가질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물론 용서한다고 해서 그 죄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 자체를 하나님 손에 맡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기에 그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로 행할수 있도록 용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 수많은 용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절대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를 가지고 계속 가지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저의 마음이 맞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다 알고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고 용서한다고 해서 바로 그 마음이 좋아지거나 누그러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하나님 앞에서 복수심과 미움을 내려놓고 그 사람을 하나님 손에 맡기는 순종을 배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또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실족했지만 완전히 넘어지지 않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또 성도는 죄범한 성도를 보았을때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성도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또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들을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능력은 말씀에도 나와 있지만 저희들의 말과 표현이 있지 않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그 능력이 있습니다.
그 기도는 첫째로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알게되는 시간입니다. 두번째는 우리의 실제적인 염려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시간입니다. 세번째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시간입니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시고, 환경을 바꾸시고, 때로는 내 마음을 바꾸십니다. 그러한 것 또한 기도응답의 하나임을 알수 있습니다.
또 기도에는 방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저희의 자백하지 않는 것과 습관적인 죄도 방해물입니다. 기도는 저희 삶과 전혀 분리되지 않고 함께합니다. 저희들이 입술로 기도하지만 생활 자체에서 불순종이 있다면 서로 출동하는 가운데 있다면 저희 기도를 힘을 잃고 상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는 외식과 사람의 칭찬을 경계해야 합니다. 기도는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마음을 열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세번째는 또 기도할때 피곤과 산만함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마음은 원했지만 육신이 약해서 잠들었습니다. 저희도 지쳐서 기도하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도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고, 불필요한 산만함을 줄여야 합니다. 네번째는 자신의 욕심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주님의 기도의 본을 배웠습니다. 저희는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내리실 때에 사도들과 성도들은 함께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기도를 가르치셨을뿐 아니라 그 기도의 삶을 친히 사셨습니다. 구원받은 저희들도 이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는 성도에게 무거운 짐이 아니고 특권입니다. 또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의 거룩한 사귐의 자리입니다. 주님께서 완전하신 사람이셨지만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연약한 저희들은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또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저희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갈수 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