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5절 / 마포모임, 20년
- 김영권 형제님 :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한일서 2장 5절 말씀을 교제하는 시간인데요. 우선 요한일서 2장 1절부터 6절까지 제가 한번 읽고 교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요일 2:1-6).
오늘 성경 읽기 시간이 5절부터 시작이 되는데요. 저희가 1장부터 2장 5절까지 교제하는 가운데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에 맞서 사도와인 형제님께서 진실된 믿음이 무엇이며 그 믿음이 참 빛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임을 계속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선 1장 6절부터 보면 계속적으로 대조되는 말씀을 하시면서 진실된 것과 거짓에 대한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오늘 교제하는 5절 말씀도 2장 4절 말씀과 대조되는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2장 1절에 나오는 것과 같이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계시며 이러한 주님을 앎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부분에 대해 말씀하시며 그 안에 거할 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또한 그 믿는 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고 계시고 있습니다.
그 오늘 교제하는 5절 말씀 시작 부분은 "누구든지" 라고 시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그 한정된 주님의 사랑이 아닌 2장 1절 부분과 같이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말씀과 같이 '누구든지'라는 부분이 주님의 어떠한 사랑인지 다시 한번 교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와 같이 말씀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그 신명기 말씀에서는 신명기 30장 2절에 "너와 네 자손이 내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순종의 모습을 나타내고 계시며, 또한 30장 11절에 보면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요. 이런 말씀을 볼 때 지키지 못할 것이 아니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또한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이 신명기 말씀 부분에 마지막으로, 신명기 30장 14절에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진실된 믿음을 가진 자의 모습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요한일서 2장 3절 부분에 "계명을 지키면"이라고 나오는데 오늘 교제할 5절 말씀 부분은 '지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볼 때 그 말씀에 그 믿음의 크기가 더욱 커지므로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러하므로 중간 부분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 온전케 됨에 대해서 교제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주님과 교제 가운데 구할 수 있고 이러한 변화된 삶의 간증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더욱 확증 할 수 있는 부분을 교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말씀 묵상하신 성도님들 가운데 편안하게 교제를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전효진 형제님 : 말씀을 지키는 그런 사람이라면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실제로 경험을 하였고, 또 지식적으로도 여러 말씀을 통해서 듣고 또 배워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래도 간직한 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그 안에서 역사함으로 거울이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분명하게 드러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가 선택한 이 "참으로"라는 이 부사는 계명을 지키는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의 소유한 그 하나님의 사랑은 그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그러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참사랑인 것임을 또 말하여 준다고 보여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이 지킨다, 계명을 지킨다 하는 것은 말뿐만 아니라 모든 행동이나 감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서, 성도들에게 드러내서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전케 되었다 하는 것은 완전, 성숙의 개념을 갖고 있는데, 이게 이미 시작된 것이며 또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성숙의 과정 속에 있음을 온전케 되었다라는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게 합니다.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지속적으로 이렇게 순종해 나갈 때, 하나님의 사랑은 성도들 안에서 성숙되어지고 또 완전하여져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지속적으로 순종함으로써 그 사랑이 그리스도인 안에서 성숙하여지고 온전해질 때 성도들은 주님께서 내 안에서 내주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더욱더 확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특징인 특징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죠.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시기나 질투, 미움, 탐심,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성품이 저희들 가운데 내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로 거룩하게, 거룩함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자기들 나름대로 어떤 기준을 세워놓고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말씀이 기준인 것입니다.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에 따라 살고, 말씀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고 그것을 행동의 기준으로,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것을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이렇게 나타나는 거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 그래서 자신이 스스로 '아, 내가 하나님 안에 있구나. 하나님께서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게 되는 거죠. 이게 둘이 같이 맞물려서 간다고 보여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주하고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더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저희들에게 이루어지고 또 앞으로도 저희들이 계속 이러한 삶으로써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는 것을 이 또 5절 말씀을 통해서 더욱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 형제님 1 : 제가 저번에 4절을 공부할 때에는 "저를 안다" '알았다'라고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한 자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이제 단수 한 명을 지목하면서, 영지주의자나 거짓 교사들을 지금 지칭하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가 저번에 배웠습니다.
그러나 여기 5절에서는 이제 "누구든지"로 그것이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5절은 참으로 주님을 알게 된 자가 어떠한 자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알게 된 자는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를 보게 될 때, 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됐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두신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언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두셨을까를 생각해보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었을 때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 안에 거하게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희가 요한복음 17장 25절 말씀에서 주님께서 기도하시면서 제자들과 또한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부분에서, 요한복음 17장 25절에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저희도 아버지께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의 안에 있게 하려 함임이니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과거형이고, "알게 하리니" 이 부분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오순절날 성령을 내려주셔서, 14장 26절에 나와 있는 대로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 부분을 가리킨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신 그 이유가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도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여기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지만 저희들에게 적용을 해볼 때 저희가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었을 때, 그 로마서 5장 5절에 나온 대로 우리에게 주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저희 안에 두신 또한 목적이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목적이 이 5절에 나온 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온전케 되기 위해서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그 사랑을 우리 안에 두신 그 목적이 우리가 그 말씀을 순종하게 될 때 달성됨을 또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라고 말씀이 나와 있는데요.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을 가리키고 "저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또한 이 "안에 있다"는 것은 주님을 알고 주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희가 요한복음 14장 22절 말씀에 보면 "가룟이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이렇게 말씀하신 걸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요한복음 14장 23절, 24절을 볼 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고,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참 주님 안에 있게 되므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되고 또한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됨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 이기범 형제님 : 이 2장 5절을 저희가 보고 있습니다. 그 2장 5절에서 저는 그 "온전케 되었나니"에 대해서 교제를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다라고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이 표현하고 거의 유사한 표현이 4장 12절에 보게 되면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2장 5절과 4장 12절의 표현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 4장 12절에서 "그의 사랑"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고요. "온전히 이룬다"는 표현 자체는 동일하다고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그의 사랑의 목적 자체가 지금 방금 형제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이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4장 10절하고도 한번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리고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저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이 4장 10절에 있는 표현을 그대로 한번 말씀을 드려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은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그 온전케 된다는 것은 지금 교제가 되고 있는 것처럼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이 요한일서 3장 23절, 그리고 이제 4장 12절하고 연결을 해보면, 3장 23절에서는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라고 돼 있고, 4장 12절에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사랑이 목적은 온전케 되는 것인데, 그 온전케 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이렇게 온전케 됩니다.
제가 이것을 보았을 때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가 됩니다. 특별히 이것을 이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게 계명을 지키고 그 서로 사랑하는 것이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이 그 사랑이 그 안에서 온전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 계명을 지키고 서로 사랑하는 것은 목적이 실제로 달성되는 것이고, 또 저희 안에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이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아까 형제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3절하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는 이제 21절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21절에도 계명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나오는데,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그래서 그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다는 것은 저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이고, 그것이 온전케 된다는 것은 저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것을 보았을 때 '온전케 된다는 것', 이것은 굉장히 이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보여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실제로 저희 안에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이상적인 상태이고, 그것이 저희가 계명을 지키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온전케 된다는 것을 보게 되고, 이것이 저희에게 감사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에게 단순히 생각을 통해서 그냥 '아, 그렇구나.'라는 것이 아니라 실현된다는 것에 대해서 저희가 감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상입니다.
- 조재훈 형제님 : 5절은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3절에서는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이렇게 되어 있고요. 6절에서는 "저 안에 거한다는 자"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저를 아는 것', '저 안에 있는 것', '저 안에 거하는 것', 세 가지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를 안다는 것'은 이제 '참된 지식'을 나타냅니다. 또 '저 안에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는 것을 보게 되고요. 또 '저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참된 사귐' 가운데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개념이 점점 더 세밀화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마치 이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대해서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사람의 얼굴이 더욱더 분명히 보이고 그 사람이 하는 행동들이 더욱더 분명히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참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를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과의 참된 사귐 가운데 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는가" 했을 때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4절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저를 아노라" 이제 말하고 지난번에 이야기한 대로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만 특별한 지식 가운데 있다라고 자기들을 특별한 영역 안에 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 말로 자랑하고 지키지 않는 자가 아니라, 누구든지 그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면 그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객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4절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말씀을 지키는 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그의 행하신 대로 행함'이 나옵니다. 여기서도 다시 한번 그 사람의 정체성이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4절에서는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나타낸다고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여기서 나오는 말씀은 계명들과 구분해서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들을 지킬 뿐만 아니라 이제 하나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고 그것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계명들을 그가 소중히 여기고 지켰던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 알기를 원하고 또 그것에 더욱더 순종하기를 원하고 또 순종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지키는 것'도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 온전케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형제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단어는 세 가지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 두 번째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세 번째는 형제님께서 말씀하시듯이 하나님의 성품과 같은 그러한 사랑, 이 세 가지는 사실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순서상으로 요한일서 4장 9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바 되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4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다." 라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거합니다. 로마서 5장 5절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교제된 대로 목적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4장 12절의 앞에 형제님이 말씀해 주셨듯이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었느니라" 또 4장 17절과 18절에도 사랑과 온전히 이룸이 관련되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담대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장 19절에서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음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우리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은 4장 12절에 나온 대로 '형제들을 서로 사랑'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은 또한 2장 5절에 나왔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합니다. 그리고 4장 17절 18절에 나온 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담대함'을 가지게 합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들이 온전하게 이루어졌다고, 참으로 그렇게 온전하게 이루어졌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앞절에서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다"고 얘기했는데 참으로 진리에 속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이 가운데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 박성호 형제님 : 앞서서 영지주의자들의 그러한 그 사변적인 그들의 주장, 논리, 이런 것이 아니라 이제 여기서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 정말 저희가 하나님을 알고 또 그 안에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누구든지"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게 굉장히 사실은 생각해 볼 말이라고 그런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라는 말 가운데서는 뭐 연령이라든지, 뭐 이런 것이라기보다는 좀 어떠한 상황을 놓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든지', 이렇게 저는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예 이 말씀은 굉장히 제가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조금 어떻게 보면 어렵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참 크게 느껴졌는데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이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삶 가운데서 많은 도전이 있습니다. 저희가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저희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희에게 벌어지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고의적으로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는데도 저에게 닥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인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제 어떠한 사람이 그랬나 하면 노아가 그랬습니다. 노아의 세계를 표현하는 말들이 많이 있는데요. 잘 아시는 것처럼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모든 혈육이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하고", "포악함이 가득하고" 이러한 상황 가운데 이러한 환경 가운데 노아에 대해서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물론 노아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 노아가 참 어떻게 보면은 저희 본으로서, 그 상황이 참으로 힘든 정말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이러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한데 여기서 "누구든지"라고 했기 때문에 지금 시대를 사는 저희에게도 이러한 노아와 같은 상황에 있고, 그러한 똑같은 도전이 있고, 그러한 가운데서 노아가 증거했던 것 같은 그러한 저희의 삶이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까 노아는 방주 안에 있기 전에 하나님과 동행을 했습니다. 동행을 했기 때문에 방주 안에 있었던 거죠. 마찬가지도 저희가 계명을 지켰을 때 그의 안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좋아질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말씀드리는 것은 이 말씀이 산상수훈 중에서 이 말씀과 굉장히 유사한 말씀을 이렇게 떠올리게 됐습니다. 어떤 말씀이 떠오르게 되냐면 마태복음 5장인데요.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으로 돌려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거든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그다음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악행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제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 있는 있을 때, 이 말씀을 지켰을 때, 이러한 사랑이 정말 온전한 사랑인 거죠. 그래서 이러한 것을 보면 저희 육신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있는 것을 뺏기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 좋은 결과가 예상되면 먼저 소리를 높이고 또 내가 강하다라는 것을 그 상대에게 어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갈등 상황이 됐을 때 내가 적게 손해 볼 수 있는 거죠. 아니면 내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든지, 그런데 마태복음 5장에서 산상수훈에 있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이 주님의 말씀을 지킬 것을 주님께서 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씀에 부딪치면 옛 육신은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그런 것을 이제 느끼게 되는데. 참 저희가 연약함이 있죠.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저희에게 지킬 것을 요구를 하셨는가, 참으로 사실은 저희가 구원받기 전에는 저희가 죄인임을 알고 죄악과 연약을 알기 때문에 저희가 구원받지 않았다라는 것을 알았지만, 또 어떠한 면을 통해서 알았냐면 주님께서 정말로 원수를 사랑하고 그러한 모습을 통해서 봤을 때, 저희가 그 모습을 봤을 때 정말 저희가 죄인이고 그러한 것을 또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인에게 이러한 것이 또 거듭난 후에는 요구되는데요. 이러한 요구를 하시는 이유는 이걸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 가운데 온전하게 되고 저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세상 가운데 증명이 되는 것이고 저희도 확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가운데서 저희가 먼저 하나님이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말씀을 지켰을 때, 하나님께서 그 뒷일을 저는 책임져 주시고, 그리스도인의 간증이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가 그리스어 안에 있다라는 것이 증명될 수 있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보장 가운데 있기 때문에 먼저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라고 권면하셨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회상 혀제님 : 저희들이 계속 교제를 해오고 있는 대로 3절에서 6절까지는 이제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 빚 가운데서 행하는 사람의 특징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라는 주제를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서 교제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그의 삶이 나타납니다.
저희가 다음 단락에서 배울 7절 이하에서는 '형제들을 위한 사랑'으로 그것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3절에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오늘 배우는 5절에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그리고 6절에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한다." 이 세 말씀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그런데 아까 앞에서 어떤 형제님 말씀을 해주신 대로 이 표현을 좀 생각을 해보면 이게 점진적으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계명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지시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무슨 권위를 가지고 그 자녀에게 어떤 지시를 하셨을 때 그것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거 해라. 이거 하지 말아라." 그러면 거듭난 사람,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것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배우는 말씀, "그의 말씀을 지킨다라"는 표현은 이런 비유를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말씀에 나타난, 계시된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인데 예를 들어서 제가 자녀이고 부모님 사이에 교제를 한다고 한번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께서 "이거 해라." 하면 부모님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것도 하고, 이것도 합니다. 그런데 부모님하고 같이 지내면서 같이 살면서 부모님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부모님은 이러한 것을 좋아하시는구나, 이런 걸 싫어하시는구나. 그래서 그런 것들을 지시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이 딱 닥쳤을 때 '아, 이거는 아버지께서 싫어하실 거야.' '아, 이거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실 거야.' 이게 본능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뭔가를 딱 분명히 지시했을 때 그것을 순종하지만, 이제 그가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면 배울수록, 그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무엇을 미워하시는지를 그가 본능적으로 알고 그런 것들을 순종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행한다"고 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를 '닮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행한 것을 닮는다는 표현인데, 정말 그분을 닮고 싶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아버지를 순종하는 삶을 살았는데 주님과 교제하면 교제할수록, 하나님과 교제하면 교제할수록 저희들이 그분을 닮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들, 계명을 지킨다, 말씀을 지킨다, 행하시는 대로 행하라, 이런 표현들이 참 하나님의 교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는, 주님을 배워가고 있는 사람의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저희들이 조금 배울 수 있을 것 같고요.
여기 이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사람은 그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되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여기 이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이 단어의 어구에 대해서 이제 여러 가지 조금 다른 견해들이 있습니다. 이게 아까 아까 앞에서도 소개를 해 주셨는데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저희들이 문맥을 따라서 확인을 해야 됩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렇게 해석이 되고 어떤 부분은 이렇게 해석이 되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이유는 그 4장 7절에서 12절까지 보면, 4장 7절에서 4장 12절까지 한번 이렇게 송도님들이 아마 추적을 딱딱 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이제 하나님이 사랑한다. 하나님의 사랑, 그런 사랑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그래서 거기에 보면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케 이루었다"라고 했을 때, 이 '그의 사랑'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2장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케 되었다"고 돼 있고, 4장 12절에서도 "그의 사랑이 온전케 돼 었다"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이라고 저는 믿고 있고,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이 온전케 된 사람은 요한일서 2장에서는 주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4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사람은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두 개의 포인트가 이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람 안에서 온전케 됐을 때 두 가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하나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믿고요.
두 번째,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믿는 근거는 '온전케 되었다'라고 하는 단어 의미가 '어떤 목적을 이루었다' 이런 뜻입니다. 어떤 의도된 목적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었다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아드님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시기까지 화목제로 내어주시기까지 했던 그 사랑은 우리를 향해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의도와 목적이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케 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혹은 6절에 기록된 대로 주님을 닮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에 뭔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면 약간 그건 좀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해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드님을 화목제로 보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뭐냐면 저희들이 하나님을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저희들이 주님을 닮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씀이 2장 3절에서 6절까지의 내용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참 이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같은 죄인을, 정말 어둠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본성이 정말 불순종하는 이 죄인을, 하나님은 변화시키셔서 하나님을 순종하게 만드려고 하나님이 사랑을 먼저 베푸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드님을 사랑하시기까지 먼저 베푸셨고, 저희들이 그와 같은 하나님을 알고, 교제하고,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귀하게 여기고, 또 그분의 그의 아드님을 닮아가고, 이러한 것들이 그 사랑의 목표로서 목표가 저희 삶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모습으로 이 5절 말씀을 통해서 교훈을 받았습니다. 이상입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예, 여기 5절 말씀을 보면 이제 3절하고 비슷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3절에서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제 우리가 저를 아는 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5절에서는 "말씀을 지키면은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이제 아노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큰 차이는 '계명'과 '말씀' 차이가 있고요. 그리고 또한 앞에서는 3절은 "저를 아는 것" 완료형으로 돼 있고, 그리고 5절에서는 "저 안에 있는 줄" 현재형으로 돼 있습니다.
3절에서 "저를 아는 줄은" 완료형으로 과거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더욱 알아가는 그의 구원의 풍성한 의미에 대해서 더 확신하고 알아가는 면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계명들을 지킬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5절에서는 "저 안에 있다." 저 안에 있다는 것이 이제 하나님과 주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다음에 지금 살아가는 이 관계 속에서 이제 그걸 더욱 알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이 친밀함을, "저 안에 있는 줄" 이 친밀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친밀한 관계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친밀감이 느껴지니까 아는 거죠. 친밀감을 느껴서 아는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는 요한복음 14장의 앞에 인용하신 대로 주님께서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따라서 압니다. "사랑하면 계명을 지킬 것이요."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요." "주님도 사랑하시고 그에게 나타내시고" "아버지와 아들이 저에게 거처를 함께하시는" 이제 이 약속으로 인해서 우리는 그 말씀을 인해서 우리가 계명 이 말씀을 지킬 때에 이 주님과 친밀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으로도 충분하지만은 하나님은 그 이상을 주신다고 생각이 됩니다. 정말 친밀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그 친밀감이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라는 말씀으로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좀 막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고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사랑한다는 것은 이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을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어떤 감정을 북돋아야 되는 것인가, 이렇게 잘못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이제 사랑이 아가페 사랑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의 사랑이고,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씀에도 분명히 나와 있는 거지만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지키면 놀랍게도 이 친밀감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냥 논리적으로 '아, 그냥 사랑은 이것이야.' 하고 그냥 말씀을 지키고 '이제 나는 사랑했다.'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이제 자신의 의지를 들여서 말씀을 시켰고, 그리고 그 가운데서 그 하나님에 대한 정말 애정과 감정과 그 친밀감이 느껴지는 것을, 그게 만들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게 요한복음 14장에서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우리가 저와 함께 거처를 함께 할 것이요"라는 실제적인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 아버지와 주님과 함께하는 그것을 이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단순히 순종할 때에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그의 안에서 온전케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아가페 사랑은 항상 온전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동일한 그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신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할 때에 그 사랑 가운데서 온전하게 이루어지고, 우리가 처음에 감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항상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감정적으로 사랑했던 것은, 감정은 항상 사그라들죠. 하지만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 것은 온전해지고, 정말 그 친밀감을 만들어내고, 더 깊이 만들어내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 한봉래 형제님 : 짧게 한 가지만 이렇게 간증을 하면요. 저희들이 앞에는 계명이 나온 대로 하나님께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지시한 어떤 말씀들을 순종하는 거죠. 침례라든지, 만찬이라든지, 그렇죠. 그다음에 말씀을 지키는 것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명백하게 뭘 해라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그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라고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들이 교회 진리를 시행할 때 뒷좌석을 만듭니다. 구도자들을 따로 만듭니다. 이게 성경에 나와 있냐?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이걸 입증해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통해서 할 수 있죠. 그런데 이게 복잡한 면은 좀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그 '자리'라고 하는 단어가 원어가 공간을 의미하느냐, 상징적으로도 사용되느냐, 이렇게까지 따지면 좀 머리가 아프고요. 그다음에 이제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형제자매들이 가족 단위로 앉습니다. 성경에 있냐? 없습니다. 성경이 없는데 왜 해라 그러냐? 이제 이렇게 말하는 분들하고 저는 별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요. 이분들은 계명을 지켜요. 그런데 말씀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깐 성경에서 명백하게 나와 있는 것만 하겠다.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것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거든요.
그게 아니고 성경에 그래서 저희들이 교회 진리 시행할 때 이런 식으로 했죠. 첫 번째, 성경에서 분명하게 나와 있는 경우 한 떡, 한 잔. 성경이 분명한가? 한 떡 한 잔인가, 뭐 이런 것들을 쭉 시행해 왔죠. 그다음에 그다음에 뒷좌석, 그런 것도 있죠. 그다음에 두 번째, 주일학교가 성경에 있냐? 이제 이런 문제가 있는 거죠. 그다음에 뭐 주중 집회는 뭐 어떻게? 이제 이런 이런 가지 세부를 이렇게 정해갈 때 성경에서 명백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그러나 성경의 큰 흐름으로 보아 이게 맞다고 믿어지는 것을 시행합니다. 이게 저희들이 교회진리 시행할 때 B라고 해서 제가 한 거고요.
그 다음에 C가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주일학교 같은 경우죠.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그동안 모임이 시행해서 실질적으로 여러 가지 영적인 유익을 얻은 경우, 이런 걸 주일학교 이렇게 한 거죠. 주일학교는 성경에 당연히 없는 거죠. 그래서 이런 구절들을 볼 때마다 정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이렇게 써줬으니까 순종하는 게 아니고,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대시오, 말씀에서 대세요." 이렇게 하는 사람은 저는 이 5절에 딱 걸린다고 봅니다.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자꾸 제약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임에서 지금 저희들이 여기저기 모임 다니면서 떡상을 가운데 놔야 되냐? 강대상 앞에 놓으면 안 되냐? 그런 그런 경우, 또 뭐 성경읽기가 성경에 어디 있냐? 성경읽기가 성경에 있으면 대 봐라, 자꾸 이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이게 참 저항이 여러 지역 모임을 다니면서 구원받은 성도들하고 교회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부드럽게 하고, 예의 바르게 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어떤 거부감, 그것을 독단적이고 편협돼 있고 자기만 옳다고 하고, 라고 하는 이런 반감이 굉장히 편만하게 있어서, 저기 말 좀 잠깐 잘못하면 말씀에 무엇을 더했다고 하고, 이런 분위기가 있는 거죠.
그래서 여기 나와 있는 대로 "계명을 지키고" 그다음에 "말씀을 순종하고" 그리고 그다음에 "주님을 닮고" 이런 것들을 보면 이제 이 흐름은 뭘로 볼 수 있냐면 나왔습니다만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뭐냐? 생명이 있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 성장합니다. 자라갑니다. 주님을 더욱 알고, 더 사랑하고, 말씀을 더 따르려고 하고, 하는 이런 게 있는 거죠. 그런데 이제 성장하지 않는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은 이것입니다. '이제 됐다'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해온 것으로 충분하고, 이걸 왜 바꾸냐? 그러면 이제까지 해온 것은 틀렸단 말이냐? 그러면 내가 이제까지 잘못해왔단 말이냐? 라고 저항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아닌 것들을 이렇게 시행하면 그렇게 해야 되죠. 말씀에 어긋나는 것을, 그런데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큰 흐름, 누가복음 1장인데 "우리 가운데 믿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반감을 가지고, 공격하고, 기회만 되면 흠을 잡으려고 하는, 이런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이 있다. 이런 걸 느낍니다.
그래서 이 3절 5절 이런 걸 보면서 정말 말씀을 사랑한다고 하는 게 뭔가, 주님의 말씀을, 이런 것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영권 형제님 : 네, 교제 감사합니다. 그러면 오늘 시간은 요한일서 2장 5절을 교제하는 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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