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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33장 5-19절(요약)

박이레 2026. 7. 1. 21:10

성경읽기 : 창세기 33장 5-19절(요약)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때에 여종들이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레아도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에서가 또 가로되 나의 만난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가로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에서가 가로되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에서가 가로되 내가 내 종자 수인을 네게 머물리라 야곱이 가로되 어찌하여 그리 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회정하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개로 사고 (창33:5-19,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저희가 33장 5절부터 교제를 나눌텐데요. 11절까지 끊어서 교제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5-7절은 형에게 자녀들을 소개하고 8-11절은 선물을 주고받는 모습들입니다. 야곱이 걱정했던 것과 달리 에서는 야곱을 만나서 눈물을 흘리고 입맞춥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여정들, 모든 것들을 주관하심을 발견합니다.
먼저 5-7절까지의 내용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넓게는 11절까지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5절)의 내용이 얍복나루 이후의 일로 변화된 야곱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에서를 '주'라고 부르는데요. 이것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지난 주에 제가 잘못 교제해드린 부분에 대해서 정정하고 싶어서 먼저 교제드립니다. 32장 13절에서 야곱이 자기의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한 예물을 준비합니다. 그것을 한번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룹을 나눠 보냅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에서를 만나서 할 말을 넣어줍니다.(17절) 그리고 그 예물은 먼저 에서에게 보내놓고 32장 얍복나루의 씨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33장에 와서 야곱이 에서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야곱을 만나기 전에 이미 최소 4개의 떼를 만난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에서를 만난 때에 예물없이 나간것에 대해서 잘못 교제를 드렸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기 전에 예물을 통해서 형의 마음을 풀려고 했다면, 지금은 예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있다는것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가족들의 순서를 매기는 것은 여전히 문제가 있는 모습이지만, 가족 앞에 나가는 것은 변화된 모습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번에 제가 잘못 교제드린 내용에 대해서 정정해 드리고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야곱은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입니다. 야곱은 저희에게 좋은면도, 부족함도 있는 교훈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가 브니엘에서 주님을 대면한 후에 한단계 더 나은 부분을 보여줍니다. 또 그같은 놀라운 경험을 했음에도 믿음대로 하지 못하는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에서가 절룩거리면서 일곱번 절을 하며 다가오는 동생을 보고 측은히 여겨서 반가이 대면했다고 보는 측면도 있지만요. 저는 에서의 인격이 훌륭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지 않고요. 또는 야곱이 보낸 예물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기쁘게 받은 이유는 32장 9-12절에 한 야곱이 하나님께 한 기도의 응답이라고 봅니다. 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왕들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장하셔서 수많은 일들을 하십니다.
또 33장에서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에서가 세일로 가자고 했는데 야곱은 세일로 가지 않았습니다. 또 에서가 종자를 남겨두겠다고 했을때도 그것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에서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에 같이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을 받은 사람은 약속을 받지 않은 사람과 같이 할수 없고, 하나님께서 세일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그 양떼와 가족들을 보살피는 인도자적인 모습을 또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야곱은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인도자였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밧단아람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제단을 쌓는 모습도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5절) 또 이와같은 가족들과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주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야곱의 부정적인 모습은 세일로 가지 않을것인데 세일로 가겠다고 하고 안가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 숙곳에 머물렀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이 듭니다. 33장의 개요를 조금 말씀드렸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야곱이 브니엘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기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옛 본성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33장에서 보게 됩니다.
에서가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누구냐고 묻자, 하나님께서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라고 야곱은 대답합니다.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야곱을 알고 고백합니다. 야곱은 20년간 라반의 집에서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실이 모든것이 자기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여종과 그 자식들이, 레아와 그 자식들이, 그리고 라헬과 요셉이 나와서 에서에게 절합니다. 이는 혹시라도 에서가 가족을 칠 때에 가장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이 피할 시간을 벌려고 하는 야곱의 생각을 볼수 있습니다. 이는 야곱이 옛 본성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8절에서 '이 떼'는 야곱이 32장에서 에서의 화를 풀기 위해서 보낸 짐승떼입니다. 에서는 이를 받으려고 하지 않지만 야곱이 강권해서 받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에서의 얼굴을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것 같다고 말합니다. 32장에서 야곱은 실제로 하나님과 대면해서 보았습니다. 에서의 얼굴을 보았을때 하나님의 얼굴과 같다고 한 것은 그 형의 얼굴에서 용서의 얼굴을 보았을 때에 하나님의 얼굴과 같다고 느꼈던것 같습니다. 11절까지 교제했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전의석 형제님께서 에서와 야곱의 관계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잘 교제해 주신것 같습니다.
저도 11-12절에서 에서가 예물을 받고 화해를 한 후에 함께 가거나 자신의 종자 수인을 남겨두겠다고 하는데 왜 야곱이 이를 거절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가족의 안전과 소유의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보고요. 문자적인 면에서는 그럴듯합니다. 에서는 종자 수인을 남겨서 야곱을 보호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는 약탈자들이 광야에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야곱의 진심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14절에 야곱은 세일로 가겠다고 하지만 세일로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측면으로 이를 본다면, 야곱은 에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에서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에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속마음이 있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서의 호의도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에서는 순박한 면이 있는데 야곱은 굉장히 머리를 많이 씁니다. 상황을 재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앞뒤의 내요을 봤을때, 긍정적인 면도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에서는 야곱과 세일로 동행을 제안하지만, 야곱은 이를 거절합니다. 육신을 따라 행하는 에서와 야곱은 동행을 거절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는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에서가 야곱을 지키고자 하는 군사를 두고자 했지만 야곱이 이도 거절합니다. 이도 자기를 지키시는 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았다는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서 장막을 짓고 짐승들을 위한 우리를 짓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따라 세일로 가지 않았지만 벧엘로도 가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숙곳에 머물렀는지는 알수 없지만 단지 하룻밤을 묵기 위해서 머문곳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에 그의 목적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형과의 일이 해결되자 야곱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가 아니라 다른곳에 머무릅니다. 그리고 그는 또 세겜성 근처에 땅을 사고 거기 장막을 치고 머무릅니다. 브니엘의 사건이 있었지만 야곱은 여전히 자기의 판단을 의지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 또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내 생각대로 나가고 내 생각대로 편한곳에 머무르지 않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김태우 형제님 : 18절까지 형제님들께서 교제를 해주시고 계시는데요. 시간이 많이 남아서요. 33장 끝절까지 교제해 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형제님들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여기 내용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는 면이 많은것 같습니다. 숙곳에서 장막을 치고 세겜의 땅까지 사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곳에 정착하는 것을 염두해두고 사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주석을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대한 믿음의 증거로 표현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내용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땅을 사고 우리간을 지은 것을 보면 가축들을 먹이기에 좋았기에 야곱의 눈에 보이는 것을 먼저 따르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20절까지의 내용을 추가적으로 교제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33장 1-11절까지의 모습을 보면 32장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두려워서 뒤로 처진 야곱인데 33장에서는 가장 앞서서 에서에게 나갑니다. 이는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한 모습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믿음을 따라 역사하시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야곱이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불신했다면 하나님의 역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믿음을 따라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복수의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의 마음으로 바꿔 주셨음을 이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에서는 야곱이 준 예물 때문에 야곱을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예물을 주기 전에 이미 그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임을 이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런 야곱이지만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면, 12절부터 보면 에서가 야곱을 호위해서 야곱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이끌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거절합니다. 여전히 그 형을 두려워합니다. 사실 에서를 따라갔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로 벧엘로 갔어야 했는데 그가 숙곳에 머물게 됩니다. 그 머문 시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야곱의 딸 디나가 6-7살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디나가 처녀가 되어서 강간을 당하는 때까지 성장했다는 것은 야곱이 상당한 세월을 숙곳에 머문 것입니다. 그는 빨리 벧엘로 갔어야 했습니다. 그는 즉시로 가지 않고, 에서를 따라가지 않고 숙곳에 머무면서 엄청난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사상하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만일 야곱이 빨리 벧엘로 갔다면 이러한 문제가 생기지 않았음을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순종이 즉각적으로 되어져야 함을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믿음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믿음으로 나가는 것에 따라서 달라짐을 묵상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김대현 형제님께서 교제해주신대로 야곱의 마음을 보는데요. 야곱이 에서를 생각하는 마음을 그의 하는 말을 통해서 보게됩니다. 에서가 야곱의 가족들을 보고 누구냐고 물을 때에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가 하나님이 아니라 에서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아도나이입니다. 야곱 자신이 종이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서 8절까지 에서를 주로 표현하고 자신이 형제가 아니라 주인과 종의 자세를 보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 에서가 야곱을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내 동생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11절부터는 "형님"으로 그 호칭이 바뀝니다. 그리고 에서가 같이 세일로 떠나가자고 했는데,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벧엘로 가려고 했는지, 아니면 자기의 생각을 따라 가려고 했는지 알수는 없지만 야곱은 두려워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13절-15절까지 다시 주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만약 야곱이 에서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을 것을 얘기했는데요. 하나님께서 명하신 벧엘로 가야 한다고 대답할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또는 세일로 못가겠다가 아니라 가긴 갈건데 먼저 가시면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야곱은 숙곳에서 우리간을 짓는데요. 일단 머물기 위한 공간을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상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제가 지도를 봤는데요. 야곱이 에서를 만난 위치로 에서를 따라가면 세겜이 남동쪽입니다. 서쪽은 숙곳이 나오고요. 그 다음은 세겜, 그리고 벧엘이 나옵니다. 그러면 야곱이 숙곳으로 간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벧엘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 가는 과정에서 멈춰서서 머물렀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35장에서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벧엘로 부르십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야곱의 가정을 보면 라헬과 레아의 경쟁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야곱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하심을 인정합니다.(5절) 그리고 자식도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은혜의 산물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또 9절에 보면 에서는 자기가 가진것이 족하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야곱은 11절에서 자기도 족함을 말합니다. 그 풍족의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10절의 내용을 브니엘 사건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면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과 같은 친절한 호의를 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생명을 보존 받은 것처럼 에서의 얼굴을 보고 생명을 보존 받았다고 말합니다.
10절, 11절의 예물은 그 단어가 다릅니다. 10절은 공물이라는 뜻이고요. 11절은 축복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11절에서 나의 축복을 받으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내게 충분하다고 고백합니다. 창세기 27장에서는 야곱은 에서의 축복을 빼앗고자 했던 사람이지만, 33장에서는 하나님께 받은 자신의 축복을 에서에게 주고 있습니다.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11절)
12절은 저도 윤철 형제님과 비슷한데요. 에서의 호의를 긍정적으로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만났고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합니다. 에서는 자기의 살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에서와 야곱이 화해했지만 그들이 서로 바라보는 삶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거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야곱이 에서의 호의를 거절한 이유도 브니엘에서의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야곱이 숙곳에 집을 짓습니다. 그 집을 지은 것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따로 언급하지 않는데요. 야곱은 이 여러 과정의 일들로 인해서 많이 지쳐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라반과의 일, 얍복 강가에서의 일, 또 에서를 만나는 일들로 인해서 야곱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켜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벧엘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벧엘로 바로 가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부분이 부족해서 숙곳에 머문 것으로 보입니다.
하란에서 벧엘까지가 657km의 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이 먼 거리를 가족들과 소유들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에 보면 야곱은 세겜성 앞에 머뭅니다. 성안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 거하게 됩니다. 성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성의 영향력을 받는 상태입니다. 야곱의 자식들도 그 성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디나가 그땅 여자를 보러 나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