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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요한일서 정리(요약)

박이레 2026. 6. 28. 15:50

성경읽기 : 요한일서 정리(요약)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저희가 요한일서를 저번주에 다 나갔고요. 오늘 요한일서 1-5장까지 전반적으로 교제가 될 것인데요. 전체적으로 말씀해 주셔도 좋겠고요. 아니면 이것 하나만 기억하고 마치면 좋겠다는 내용을 교제해 주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또 교제가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나누어 주셔도 좋고요, 질문이 있으시면 질문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저번주에 제가 5장 18절을 잘못 교제한 것 같아 다시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18절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악한자로부터 지키심을 말해줍니다. 이는 성도의 생명이나 구원을 악한자로부터 보호하심을 말씀합니다. 구약의 욥을 볼때에 사단은 성도를 공격할수 있지만, 그 생명이나 그리스도 안의 영생을 건들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도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깨어서 주님의 지키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18절의 "지키시매" 지키고 보존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21절의 "지켜"라는 의미는 파수하여 지킨다는 '명령형'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책임을 말합니다. 18절은 지켜지는 안전함을 말하고요. 21절은 깨어있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양들은 목자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목자가 양들을 지킵니다. 양들은 목자가 인도하는 길로 따라가고 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속해있지만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자기를 지켜서 우상에서 멀리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상은 눈에 보이는 만들어진 나무, 돌로 만들어진 우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는 거짓된 모든 것에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의 인성과 신성을 거부하는 거짓된 가르침, 하나님 없이 행복할수 있다는 세상의 모든 가치관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모든 악함과 파멸에서 지키심을 말하고 있으며, 성도가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실제적인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사도요한이 요한일서를 쓴 목적에 대해서는 1장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 사도는 물론이고 서신서를 읽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교제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요한일서가 쓰여졌습니다. 요한일서는 처음부터 그랬지만 교제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서신서라 생각됩니다.
요한일서 1장의 처음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 시작합니다. 요한은 주님을 보고 듣고 만졌습니다. 이를 강조한 이유는 당시에 영지주의자들의 거짓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사도는 단호하게 자신이 주님을 만졌음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막연하게 사람들의 환상이나 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하셨고, 실제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의 충만함은 교회가 추구하는 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교제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요한일서 1-5장까지 전체를 두고 봤을때 이 요한일서가 왜 남겨졌는가 생각할 때에, 5장 13절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5:13, 개역한글)

저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말씀이 요한일서입니다. 1장에서는 생명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빛도 있고 자백도 있고 하지만, 1장 4절에서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일서의 또다른 목적은 우리에게 기쁨을 충만하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의 충만은 개인적일수 있지만,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아들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라고 합니다.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고, 우리의 기쁨은 아버지와 그 아들과의 사귐 때문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충만케 하기 위해서는 2장 1절에서와 같이 죄를 범치 않는 것입니다. 죄는 수용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죄로 인해서 받은 영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쁨을 누릴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범치 않는 것에 대해서 2장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요일2:7, 개역한글)

그래서 이미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 자매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가운데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요일2:26, 개역한글)

그리고 미혹하는 잘못된 가르침을 말하는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서 2장 3절부터 말씀합니다. 주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해서 잘못 말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데 우리는 어느 한부분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3:23-24, 개역한글)

사랑이 나오고 계명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더 추가되는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이 우리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압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일4:13, 개역한글)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 행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5장에서는 처음 언급한대로 영생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의 키워드중에 제일먼저 사랑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성령을 근거로 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죄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생, 사랑, 성령, 사귐이 요한일서를 묵상하는 가운데 생각되어 졌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2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근거로 교제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알고 거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앎은 주님과의 관계를 말씀합니다. 그 앎의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그 계명의 핵심이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사랑이 우리 안에서 실천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안다고 사도는 말씀합니다. 거하는 것은 주님안에 우리가 거하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한다는 사실입니다.
3장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신분을 가진 자녀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생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그분처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3절에서 그 소망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씀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3:3, 개역한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삶을 합당하게, 거룩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것은 형제 사랑의 증거로 나타납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주님께서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요한일서 이전에 저희들이 요한복음에 대해서 함께 살폈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한복음 1장) 요한일서의 말씀하는 태초는 요한복음의 태초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일서를 묵상할때에 요한복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믿음으로써 얻게되는 영생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를 받아서 요한일서는 5장 13절에서처럼 그 쓰여진 목적을 믿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요일3:5, 개역한글)

우리가 죄없고, 흠없으신 주님에 대해서 많이 교제합니다만, 또한 믿는자들을 죄없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4장으로 넘어와서는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저희에게 전해져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얻은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을 통해서 생명을 얻은 형제를 사랑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자 안에 하나님의 영생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요한일서는 말해줍니다. 그 이유는 잘못도니 가르침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일2:29, 개역한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영생을 소유한 자는 의를 행함을 알수 있습니다. 또 3장 9절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죄를 짓지 않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4장에 와서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말씀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구웓받은 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압니다. 5장에 와서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5장 4절) 계속해서 무엇무엇한 자마다 무엇무엇한다라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이러한 특징들이 나타남을 요한일서는 말해줍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진정한 생명이 있는 자의 특징을 말씀해 줍니다. 그와같은 자가 1장으로 와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이 있음을, 또 참된 기쁨이 있음을 저희들에게 전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일곱가지 특징을 설명드렸는데요. 이를 줄여보면, 1.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범죄치 않는 것이 포함됩니다. 2. '형제 사랑'안에 하나님을 아는것이 포함됩니다. 3.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들을 아는 것이 포함됩니다.
이 세가지를 머리속에 두고 3장 24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3:23, 개역한글)

이 말씀은 형제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세가지를 가지고 요한일서의 말씀을 하나하나 대입해 볼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요한일서 4장 초반부는 영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님께 속한 영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는 세번째에 해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4장 7절 이하부터는 계속 사랑에 대해서 쭉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는 두번째에 해당하는 형제사랑에 대한 증거로 볼수 있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요일5:21, 개역한글) 우상의 의미를 보면 '허수아비 우'에 '형상 상'입니다. 그래서 형체가 없는 어떤 것을 형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형체로 만들어 놓은것이 전체적으로 우상입니다.
그러면 제 삶에서 하나님 외에 어떤 우상이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2:15-16, 개역한글)

여기에 해당하는 모든것이 우상이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 가지고 갈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이신 하나님만 기억하고 갈 것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7, 개역한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만이 우리가 가지고 가고 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것은 다 우상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권위, 재벌, 좋은차, 좋아하는 운동, 취미들을 우상으로 여기지만 이것은 다 헛된 형상일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상에서 멀리할 것을 교훈으로 받습니다. 우리가 실 생활에서 우상을 가까이 하게 되면 영향을 받습니다. 묵을 가까이 하면 묵이 묻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멀리할수 없지만 주님의 지체로써 모임에 가까이 하고 모임을 성도가 돼야 함을 교훈받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요한일서는 난해하게 생각되는 부분들도 있었고요. 그러나 구원받은 자의 특성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의를 행하는 것, 두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한일서의 가장 큰 주제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사도는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가 믿음의 열매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개역한글)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에 가장 현실적으로 나타낼수 있는 것이 사랑임을 염두해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요한일서 5장에서도 사랑할수 있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7, 개역한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일3:8, 개역한글)

반대로 마귀에 속한 자는 범죄함을 말씀합니다. 어떤 성도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는 구원받지 않은자로 말씀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요일2:9, 개역한글)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요일2:11, 개역한글)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3:10, 개역한글)

이 말씀을 저에게 적용해 보면서 나는 어떤자인가를 생각해보게 되고요. 하나님을 아는 자는 반드시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물론 사랑안에 있다고 해서 그냥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가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순종할 때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요일4:21, 개역한글)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사랑의 불가분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의 실천입니다. 믿음이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내 믿음은 어느만치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행위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능력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첫째는 의를 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적 믿음을 볼 때에 내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모두가 도전받아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Q. 제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요한일서 4장 2-3절이,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일4:2-3, 개역한글) 이것이 이 서신을 받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저희들에게 양상은 다를찌라도 동일한 어려움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가', 궁금하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를 지켜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되어 있는데요. '지금 어려움이 우상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A.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이 우상으로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서처럼, 저희들이 어떤 죄도 짓지 않는다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저희들이 죄를 짓지만 완전 성화의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 장치를 두셔서 저희를 지키십니다. 1. 첫째는 자백입니다. 2. 두번째는 주님께서 대언자 되셨습니다. 3. 세번째는 죄를 범한 형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5장) 4. 네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직접 보호하십니다. 이러한 안전장치로부터 저희가 죄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그리고 5장 18-20절에서 세가지 아는것을 말씀합니다. 1. 우리가 범죄치 않는것, 2. 하나님께 속한것, 3. 참된 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앎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언급을 한 다음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말씀합니다.
곧, 거짓 가르침에서 우리가 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같은 것을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김대현 형제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우상에 대한 일반적인 교훈을 얻을수도 있고요. 또 진리적인 것을 방해하는 여러 거짓 가르침들, 또 재물이나, 마음속에 있는 욕심도 우상이 될수 있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요한일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기록된 말씀입니다. 또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주님과 친밀한 가운데 영적인 충만을 누리도록 기록되었습니다. 또 거짓교사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미혹되지 않도록, 또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수 있도록 기록되어졌습니다.
또 아는것에 대해서 두가지가 교제되었는데요. 두번째 앎, 경험적인 앎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주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또 순종함으로 깨닫는 앎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영원한 집에 들어가서도 계속해서 알아가고 주님과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25년 10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랜기간 교제되었지만, 이제 요한일서를 마치며 다시 묵상한 것들을 돌아보면 새롭게 알게되는 말씀들이 있을 것입니다.
다음주부터는 요한이서 1절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