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그리스도를 만난 시므온와 안나의 증거 / 강성찬 형제님 / 26년 6월 7일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눅 2:25-33).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6-38).
여기 누가 복음 2장에서는 이제 우리 주님께서 태어나셨을 때에 우리 주님께서 참으로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1장부터 2장에 그러한 증인들이 이제 여러 명이 등장하게 됩니다. 총 다섯 세트, 다섯 그룹으로 나누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 참 신실한 증인들로서 사람들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하는 그런 사람들임을 보게 됩니다.
참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 가난한 집의 한 아기로 이제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우셨지만, 참으로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맞음을 이 경건한 증인들을 통해서 분명하게 증거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 겸손하셔서, 참 그분께서 그 가난한 집에 한 아기로 태어나셨지만,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참으로 겸손하신 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한 바로 이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분이 메시아임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계십니다.
1. 먼저는 엘리사벳을 통해서 증거하였고 2. 또한 마리아를 통해서 증거하였고, 3. 또한 사가랴를 통해서 증거하셨습니다. 4. 또한 목자들과 그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을 통해서 그와 같이 증거하셨습니다. 5. 그리고 여기서는 시므온과 안나를 통해서 그것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이 시므온과 안나는 그래서 그 증거의 다섯 번째이고 이제 마지막 완결적인 증거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제 시몬이 한 하나님께 드린 찬송의 내용을 보게 되면 그 증거의 결론적인 내용을 보게 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눅 2:30-32).
참 이 아기께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한 제한된 족속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참 이방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고, 참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빛이 없었습니다. 이방이 어떠한 문명과 과학 기술을 발전한다 할지라도 참 이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들에게는 어둠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 메시아께서 오셨을 때, 참 그들에게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밝히 보여주는 빛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참 이스라엘에게는 많은 영광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들에게는 성전과 그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있었습니다. 참 그것은 놀라운 영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메시아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그들에게는 참된 영광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껍데기만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메시아께서 오셨을 때 그들에게는 참된 영광이 있게 된 것입니다.
참 우리는 이 성전에 이 한 아기가 들어오신 것을 보게 될 때에 그 성전이 참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정말 그 실제적으로 성전이 기능하는 것을, 성전이 참된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모든 것에 온전한 성취를 이제 시므몬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므온뿐만 아니라 이제 안나가 함께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38절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안나가 한 말 자체는 여기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38절에 보면은 "마침 이때에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이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것이 다른 데서는 사용되지 않은 단어이지만, 특별히 "함께 감사하다" 우리 말에는 그냥 감사하다라고 되어 있지만, 그 원어를 보면 좀 긴 단어입니다. "동의해서 함께 감사하다라"는 것입니다. 이 시므온이 완성적인 그 증거를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을 이제 안나도 동일하게 함께 감사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몬과 안나를 살펴볼 때에 이 둘에게는 많은 비슷한 점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의롭고 경건하고" 그리고 그가 '기다리는 사람'이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고, 또한 안나의 경우는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기다리고 바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섬기면서 그도 역시 의롭고 경건한 삶으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 두 사람의 약간 다른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다른 점이지만 그들이 함께 하나님께 감사한 것처럼 이것은 또한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는 면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시므온에게 있어서는 '죽음'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주의 구원을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성령의 지시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구원을 보았을 때, 그 메시아를 보았을 때, 시므온은 이렇게 말을 하게 됩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28-29).
그는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온전히 만족하고 그 죽음을 기뻐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참 이 세상에 누가 이 죽음을 기뻐하면서, 만족하면서, 이제 다른 여한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시므온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본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품 안에 안는 사람만이 그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앗아가 버리는 그 허무한 죽음 앞에서 그 죽음도 괜찮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반대로 안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삶'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안나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나이가 매우 늙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출가한 후 일곱 해를 남편과 함께 살았다라고, 그 남편과 함께 산 세월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과부으로 산 세월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84년이란 긴 세월 동안 과부로 살았습니다. 그는 그 산 오랜 세월들이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오래 산 세월 가운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이었는데, 사실 그에게 있어서는 모두 불행한 일들뿐이었습니다. 남편이 일찍 죽었고, 그래서 그가 홀로 오래 살았어야 되는 세월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삶은 결코 쉬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 그 어려움들, 슬픔들, 그것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그 세월 가운데 신실하게, 하나님을 기쁨 가운데 섬기는 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야에 금식하고, 기도하고, 섬기며, 성전을 떠나지 않은 것, 이제 이것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것처럼 또한 우리의 삶도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나 이와 같이 많은 고난을 겪어야 되는 이런 삶, 이것을 누가 환영하고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안나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 그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고난의 삶도 기쁨의 삶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죽음의 허무함을 이기게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삶의 고통도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있다면 그 오랜 긴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그 아기를 만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아기에 대하여 말하게 됩니다. 그는 이 아기에 대해서 기쁨 가운데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라는 그 표현이 계속해서 실증 나지 않고, 기쁨 가운데 말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이 아기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해서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아기에 대하여 기다린다는 것은 참 그를 힘 있게 하고, 기쁘게 하고, 그가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놀라운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28절에 시몬이 아기를 안고 있는 장면을 생각할 때에 참 우리에게 놀라움을 가져다줍니다. 참 한 아기지만, 그 아기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며 이 세상에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주실 그러한 메시아입니다. 만민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실, 참 이방에게 빛을 주실, 이스라엘에게 참된 영광을 주실 그 메시아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아기를 안아볼 알아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기를 알아볼 때마다 참 그것은 놀라운 경험임을 말하게 됩니다. 참 우리 품속에 작지만 그한 생명력을 느끼게 될 때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동이 있습니다. 그 따뜻함과 그 생명을 느낄 때에 우리 마음속에는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므온이 이 메시아를 안았을 때 그 감동은 어떠했었을까요? 참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그러한 감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한 그리스도를 우리 품에 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영접하였을 때,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품속에 안으시지만 또한 우리도 그분을 우리 품속에 안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분을 영접해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시므온이 누렸을 그 똑같은 만족을 그 순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영접한 사람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우리는 그 죽음을 이제 하나님의 시간 가운데 언제든지 기쁘게 맞이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안나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기쁨으로 인내하고 또한 오히려 그 가운데 힘을 얻고 즐거워하면서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를 섬길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우리 가운데 참 놀라운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서 이와 같은 참된 만족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 만족을 누리는 대전 중구 모임 성도님들이 되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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