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김윤철 형제님(요약)

복음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약)

박이레 2026. 5. 24. 12:47

복음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 26년 5월 24일 일요일(요약1) / 김윤철 형제님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5:1-18, 개역한글)

이 일은 이천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그 수도에는 여러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양문은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 옆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베데스라는 뜻은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수 있다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전혀 은혜롭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병자들이 그 연못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흔들때에 가장 먼저 못에 뛰어든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낫는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은 다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예수님께서는 그 근처를 지나게 되셨습니다. 여러분 또한 삶 가운데서 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었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러분의 곁에 예수님이 지금 서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는 왜 이렇게 슬픈일, 고통받는 사람, 아픈사람, 힘든 일들이 많을까요? 인생이 처음부터 이렇지 않았음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세상이 처음 창조될 때는 고통도, 슬픔도, 죽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모든것이 인생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고, 이 세상에는 고통과 슬픔과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있는 수많은 병자들의 모습도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결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지은 가장 큰 죄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에게 눈과 손과 발을 주신 모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동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눈이 있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발이 있어서 하나님을 향해서 걷는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서 갑니다. 또 손이 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손이 되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38년된 병자를 보겠습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38년이 얼마나 긴 시간이겠습니까? 그가 어떠한 심정으로 38년을 누워 있었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는 병이 낫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베데스다 연못의 소식을 듣고 그 연못가에서 오랜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낫는 방법은 애초부터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들어가야 하지만 그는 스스로 움직일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했지만, 결국 그들을 구하는 것은 가장 먼저 들어가는 행위였습니다. 어떻게 보지 못하는 자가 물이 동함을 보겠습니까? 걷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물속에 가장 먼저 들어가겠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저마다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앞에 서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큰 죄를 짓지만 않으면 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우리의 열심이나 의로움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을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심판을 받아 마땅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5:7, 개역한글)

이 대답속에는 두가지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1. 나는 혼자이므로 할수 없습니다. 2.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고백입니다. 구원은 내가 이룰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또 나를 구원하실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이 고백을 하는 순간 예수님께서 여러분 곁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자리에 서 계십니까? 아직도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애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한곌르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 자리에 와 계십니까? 부디 여러분께서 모든것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그 병자는 바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말씀만으로 하늘과 땅, 세상 모든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분은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6-8, 개역한글)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을 때에 유대인들이 격분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생을 구원하실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5:6, 개역한글)

우리가 아무런 능력도, 자격도 없을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8:3, 개역한글)

우리가 할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죄인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병자가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안식일의 규례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왜 굳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을까요? 안식일에 고치시지 않았다면 유대인과 부딧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 7일째 되는날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인해서 그 안식이 깨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일하심으로 참된 안식이 오직 예수님께로만 나옴을 보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수치와 고통과 저주가 쏟아지는 그 십자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이는 모든일을 완수하였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더이상 뭔가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삼일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사망의 값을 다 치루시고 부활하심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이 완전히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38년된 병자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셨을때 그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그냥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가 곧 나았습니다. 그가 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일어난 것입니다.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뭔가를 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개역한글)

우리 인생은 모두 베데스다 연못가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붇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신입니까? 아니면 주님입니까?
38년된 병자는 연못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연못에 들어가는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동일하게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죽으신 주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