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김보영 형제님(요약)

시편 103편 개요, 1-4절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송축하라(요약)

박이레 2026. 5. 10. 13:01

시편 103편 : 개요, 1-4절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송축하라 / 26년 5월 10일 일요일(요약2) / 김보영 형제님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103:1-22, 개역한글)

시편 103편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받는 다윗의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아주 풍성히 나타내는 시편입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지은 시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편은 예언적인 측면으로도 많은 내용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 때에도 이 시편 말씀을 사용해서 예배를 많이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시편은 장막절, 예배시에 찬양을 드렸습니다.

1-5절은 다윗이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면서 자기 스스로에게 하나님의 은택을 찬양할 것을 말합니다.
6-18절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제일 주목할 부분은 8절입니다.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의 어떠함을 말씀합니다. 우리 인간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그 인생의 어떠함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며 은혜도 영원히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을수 있는자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또 그 언약을 지키고 법도를 기억해서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19-2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하늘에 보좌를 베푸시며 그 정권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도, 천사들도, 자기 자신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5절까지만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했을 때에, "내 영혼"의 단어를 보면 영혼과 육첼르 다 포함한 나의 전 인격이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것입니다.
"송축"이라는 단어는 바라크라는 단어입니다. 찬양이라는 단어는 시르라는 단업니다. 그 의미적인 측면에서 시르는 악기까지 동원해서 외적인 위엄있는 찬양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송축, 바라크는 복을 빌다, 축하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여기서 송축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이 시간에 악기를 가지고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송축이라고 했을 때에는 우리가 지닌 찬양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찬양을 할수 있으면 계속해서 끊임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형제님께서 영국 형제님들께서 찬양을 계속, 오래 많이 한다고 하셨는데 그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데는 여러가지 목적이 있지만 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그 창조의 목적 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1-12, 개역한글)

우리를 기업으로 삼은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는 목적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것은 시르 찬양이 아닌, 바라크 찬양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103:3, 개역한글)

3절에서는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은택'의 어떠함을 말합니다. 그 은택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이 '사하다'는 단어는 능동 품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하는데, 한번만 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계속해서 그 죄를 사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거듭해서 죄를 범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죄를 용서함 받습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옛 성품, 옛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구약에서는 항상 성령이 그 사람안에 거하시지 않았기에 더욱 죄 짓기가 쉬웠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용서를 구할 때에 계속해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물론, 그 죄로 인한 징계를 다윗은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예언이 성취된 오늘날에 "모든 죄를 사하시며"라는 말씀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주님의 단번의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리가 살아가면서 짓는 죄에 대해서는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순간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 개역한글)

우리가 단번에 죄용서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면서 죄를 지을 때에 주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다시는 죄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제의 회복을 위해서 그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3절) 이는 육체적인 병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완전하게 회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상처는 죄로 인해서 얻어지는 질병이나 고통, 주님과의 막힌 교제를 주님께서 죄를 사하심으로 원 위치로 회복시키는 것을 말씀합니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시103:4, 개역한글)

4절은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이 파멸은 사망, 무덤에서 건져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을 살면서 여러번의 위협을 만납니다. 적들이 다윗의 목숨을 끊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쫓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호했습니다. 사망의 세력에서 다윗을 보호하심으로 다윗이 주님앞에 온전히 서있는 성도가 된 것입니다.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관'은 에테르라는 단어인데, 호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파멸에서 구속하실 뿐만 아니라 구원한 다윗을 왕과 같은 높은 위치에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장차 우리 성도들의 영광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람은 영광스럽게도 창세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했을 때 그 모양, 형상을 빼앗겼습니다. 대신 흉악한 마귀가 그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없애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다는 것은 죄악된 세상에서 왕이 가진 왕관보다 바꿀수 없는 놀라운 왕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4절까지만 교제하겠습니다. 앞으로 103편을 이어서 교제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다윗이 이같이 놀라운 은총을 누릴수 있었던 것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구속 사역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도 구원받았지만, 계속해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고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