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메튜 카인 형제님

복음 : 영생

박이레 2026. 4. 29. 22:49

< 복음 : 영생 > 메튜 카인 형제님 / 26년 4월 12일

예,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또 이번 시간에 참 이 복된 소식을 여러분에게 전하게 될 수 있어서 저의 큰 특권으로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여기에 "아들을 보고"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 '보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를 살펴보면 그냥 지나가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보고'라는 단어가 헬라어 원어에는 사용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보고'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여러분의 나라는 이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런 놀라운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그런 발전되는 기술 분야는 물론 AI 인공지능 분야와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는 로보틱스 분야일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이 한 뉴스를 보았는데요. 폴란드에 어떤 기업가 '미카'라는 분이 이러한 뉴스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가가 말한 소식은, 사실 그 미카라는 존재는 로봇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상 처음으로 로봇이면서 또한 사업가인 그런 존재가 바로 이 미카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러시아의 부호인 드미트리라는 사람은 이 로보틱스 분야를 이제 새로운 영역으로까지 이끌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러시아 100만 장자 드미트리 씨는 이제 자신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AI를 이용해서 거기 안에 뭔가 불멸의 것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AI를 이용해서 사람의 뇌를 분석하고 그리고 그 사람의 뇌를 AI에게 담아서 사람의 어떠한 것을 분석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의 뇌를 AI에 담아놓고 그리고 홀로그램이나 어떤 다른 로봇에다가 그 저장된 뇌의 모든 정보를 다시 담아놓는다면 영원히 계속 살 수 있지 않을까,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디미트리는, 그 백만 장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불멸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영원히 살 수 있게 하겠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디미트리 씨에게 우리에게는 좋은 뉴스와 또한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우선 나쁜 소식은 그가 그렇게 개발하고 있는 소프트웨어는, 그런 프로그램은 사실 그 어떤 존재에게도 영적인 그 깨달음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의 뇌는 단지 뉴런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단지 어떤 정보들이 모여 있는 그런 집합체가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모두 합하여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참 그 아바타 기술, 그 로봇 기술, 그런 인공지능 기술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 어떠한 것도 여러분이 그와 같이 실제적으로 영원히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디미트리 씨에게 나쁜 소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저에게 그리고 또한 디미트리 씨에게도 좋은 것은 이런 영적인 영적인 존재가 오래 사는 영원토록 사는 이것은 이미 여러분과 저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취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수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수백만 달러를 여기에 지불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거저 지금 제시되고 있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1. 우선 먼저 그러면 '영생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영생'이라는 말을 들을 때에 우리는 기본적으로 아, 그냥 오래, 계속해서 사는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생이라는 단어에는 그것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영생이라는 단어 안에는 그 오랫동안의 기간을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 기간 안에 담겨져 있는 특별한 다른 성질도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삶 가운데서 '가장 최고의 삶'을 말하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왜냐하면 이 영생은, 이 영적인 삶은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장 5절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영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를 누리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생을 얻기 전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심장 박동이 뛰고 있고, 그리고 보고 숨 쉬고 먹고 있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시기 전까지는 여러분은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참으로 이 영생을 얻는다면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가 있고 하나님과 함께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여러분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영생은 우리가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생물학적인 기술로, 어떤 다른 놀라운 기술로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그 영생은 '그 아들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바로 이 말씀이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 아들을 보고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참 이 복음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좋은 것을 자신만 가지고 주지 않는 분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참으로 이 가장 좋은 형태의 삶, 영생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고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기꺼이 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0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해 주려 함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인생 가운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휩쓸려 살아가기를 원치 않고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런 삶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인생에 대한 대답을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주심으로써 여러분의 모든 질문을 대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의 많은 기로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선택은 바로 이 영생을 취하는 믿음의 선택입니다.
특별히 이 영생은 '장차 올 세상'과 또한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영생이라는 말 자체가 말하고 있듯이 지금 이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초월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이라는 것은 이제 곧 미래에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이 땅에 세우실 그 나라에 적합한 그런 생명입니다. 이제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이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이 땅을 공의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이제 모든 테러리즘을 다 전멸시키실 것입니다. 참으로 핍박받는 자, 또 가난한 자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온전한 의로움을 이루실 것입니다. 참 이 사막에서 꽃이 피고 그리고 더 이상 기근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 이 지구가 누린 가장 황금 시대를 이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시대가 누리고 있는 그런 번성함보다도 더 풍요로운 시대를 우리는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생은 장차 올 그 세상에 또한 필요한 생명임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영생을 얻으시지 않는다면 이제 장차 올 그 놀라운 세상에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너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우리는 단지 이제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다른 생명을 가지고 사는 그런 정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한 두 운명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옥의 영원한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원한 삶이 있는 것이고, 또 그 반대로 영원한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분리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명'이라는 것은 '합쳐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생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합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에서는 '생명의 부활'을 말씀하시고 또한 '사망의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읽은 6장 40절 말씀에서는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그를 살리리라." 이것은 생명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이 영생이라는 것은 마치 우리가 구름과 같은 모양이 돼서 어떤 형체 없이 그렇게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믿는 자들은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이제 부활한 몸을, 영광스러운 몸을 입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고난도 고통이 없고, 또한 다시 죽지 않는 그 놀라운 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윤회라는 어떤 다른 몸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부활의 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이 성경의 부활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또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께서 '장사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죽음이 아주 분명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이 살아나시고 많은 증인들에게 보이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살아나심도 역시 분명한 '사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죽으셨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분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충분하다는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에서 주님께서, 이제 부활하신 그 주님께서 우리의 몸도 다시 부활시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이 사람을 흙으로부터 창조하신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다시 또한 우리를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실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믿는 자에게 있어서 무덤은 더 이상 우리 몸의 최종 종착지가 아닙니다. 때때로 여러 문화들마다 이 죽은 몸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미디어에서 우리 몸에 대해서만 굉장히 강조해서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언급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겉모습만을 예쁘게 꾸미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또한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제가 사는 곳도 그러는데요. 이 몸이라는 것은 사실 네 자신이 아니고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너의 몸은 단지 근육과 뼈의 혼합물이고 그것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그런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 각각 다른 문화에 자신들의 의견에 대해서, 이 몸에 대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분의 부드러운 말씀으로 이제 정확하게 우리 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몸 자체가 우리가 아니고, 우리 자체는 몸보다 더 이상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렇다고 해서 몸이 아무 의미 없는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에 우리 몸은 주님과 같이 변화돼서 우리는 이 몸과 옛 몸을 내려놓고, 그 몸이 가지고 있는 그런 낮은 것들을 다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부활을 우리가 얻기 위해서, 우리의 몸이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부활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영생을 얻어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그 마음속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은 자인가?" 이 질문은 여러분이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내가 교회를 나가고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여러분이 어렸을 때 유아 침례를 받았는지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내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인지 묻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질문은 내 자신이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음을 인정하고,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었는지, 이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참 이 놀라운 보물은 바로 오늘 즉시로 여러분이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2. 그래서 두 번째로 '이 영생을 우리가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가졌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이 복음의 놀라운 것이 이것은 또한 장차 올 세상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바로 오늘 여러분이 믿는다면 즉시로 주어지는 선물이 오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36절도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리고 요한복음 5장 24절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26절도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양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결코 멸망치 아니하리라." 참으로 이 영생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저는 제 자신이 놀라운 사람이라거나, 또한 제 자신이 항상 놀랍게 그 영생을 느끼고 있다거나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영생 자체가 놀라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 이 하나님과 함께 연합되는 것, 결코 손상되지 않는 그 연합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고, 그분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저의 인생은 단지 이 땅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이제 '장차 올 그 놀라운 나라를 위해서 그 보물을 쌓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영혼에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매 순간 이 세상이 알고 있는 가장 놀라우신 분인 예수그리스도를 함께 누리고 교제하는 특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영생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여러분도 바로 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이 영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어떤 종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습관을 말씀드리는 게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이 영생을 얻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이제 세 번째로 '어디서 이 영생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이 영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두 번째로 이 영생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임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이 영생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참으로 기쁘게도 우리가 읽은 6장 40절 말씀이 그 영생이 어디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이 영생은 '한 사람 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누가 복음 서두에서 우리 주님께서 단지 아기였을 때의 일을 기록한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 마리아와 요셉은 그 아기를 안고 이제 예루살렘 성전 앞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리아로부터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그가 그 아이를 안았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시몬는 그 작은 아이를 안고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제가 제 눈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지금 보나이다." 그 아기는 어떠한 기적도 아직 행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침례를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놀라운 교회를 보고 그가 구원을 보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사람을 보고 "구원을 보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그 영생은 그 한 사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참으로 여러분께서 이 영생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문화들이 다른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안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의 말처럼 내 자신의 속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그 안에 악한 것만 있는 것을 오히려 발견하게 됩니다. 내 자신 안을 본다면 저는 더욱 우울감에 빠져들 것입니다. 또한 외부로 시선을 돌려서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본다면 또한 역시 우리는 우울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는 거기서 온전한 평강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생을 찾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지금 어떤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내가 얼마큼 더 해야 되나요?", "무엇을 드려야 되나요?" 이 모든 질문들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하는 것은 '내 밖을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 아들을 보는 자마다"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이 낚시를 좋아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데 제가 낚시를 한다면, 아주 작은 보트를 하나 빌려서 거기서 낚시를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강에서 낚시를 한다고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저에게 한강에서 어디로 가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 그 포인트로 저를 데려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물고기가 잘 잡히는 장소에 갔다면, 거기서 움직이지 않도록 이제 닻을 내리고 고정시키도록 말할 것입니다. 어떤 다른 바람이나 다른 배에 밀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 닻은 우리로 하여금 그 딱 정해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닻을 제 보트 안에서 들어가서 단지 내 보트 안에만 옮겨 놓는다면 그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닻이라는 것은 항상 그 배 바깥에 다른 견고한 곳에 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의 닻도 우리 바깥에 견고한 곳에 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40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본 자는 영생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본 자가 영생을 얻었다"라고 말합니다. 참 이제 여러분이 여러분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 시선을 이제 잠깐 돌리셔서 십자가로, 그 아들로 향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아들께서 왜 거기서 고난을 받으셨는지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께서는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에서는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그리고 로마서 5장 6절은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고 로마서 5장 8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십자가에 달린 바로 그분을 볼 때에, 그분께서 내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내 인생 가운데서 했던 모든 죄들을 이제 십자가에 달린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대신 죽으심으로 그 모든 형벌을 받으시고, 이제 그분을 바라보는 자는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이제 죽으시고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다시 부활하심으로 참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쳐다보는 그 아들은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분은 어떤 그림이나 사람들이 만든 이미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다시 부활하신,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저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리스도께 나와야 되는지를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아는 것은 '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제 여러분의 시선을 여러분의 관심을 자기에게 돌려 그분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에 달린 그분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이 그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그대로, 그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저의 이 믿음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금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으리라." 그리고 이 복음은 이제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아들을 보시겠습니까?", "그 아들을 보고 믿겠습니까?" 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참 이것이 오직 유일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길입니다. 이것이 장차 올 세상에서 누릴 그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이 다시 한 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여러분께서 경청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