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메튜 카인 형제님

덕언 : 소제-고운 가루와 유향, 불

박이레 2026. 4. 28. 17:20

< 덕언 : 소제-고운 가루와 유향, 불 > 메튜 카인 형제님 / 26년 4월 12일

레위기 2장 말씀 몇 구절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말씀을 제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여러분이 함께하는 떡과 잔에 대해서 저는 함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함께 우리 주님을 기억하고 아버지께 예배드려서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레위기 2장에서는 '소제'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장 1절부터 3절, 그리고 11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레 2:1-3).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찌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찌니라"(레 2:11).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레위기에 나와 있는 그 중요한 제사들이 각각이 '예수그리스도의 다른 측면'을 우리가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소제'에 대해서 생각해 하게 될 때에 레위기에 나와 있는 다른 다섯 주요 제사와 다른 점은 여기에는 '피가 섞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제는 항상 피가 드려지는 번제와 함께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이 소제에 있어서는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인격'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짐승을 제사로 드릴 때에 그것은 그냥 아무 짐승을 제사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흠이 없는 짐승'을 제사로 드렸어야 됩니다. 그리고 소제에 있어서도 그냥 아무 곡식 가루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고운 가루'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고운 가루라는 것은 거기에 어느 자그마한 덩어리도 엉켜 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모두 일정하게, 동일하게 곱게 가루가 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고운 가루를 어떤 도구로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이미 그 고운 가루로서 제시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미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체가 이미 '온전하신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저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인격 안에 있는 덩어리진 것들을 부숴야 되는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에 있어서는 그분을 훈련해서 그런 인격을 고운 가루로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미 고운 가루와 같이 온전한 인격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고운 가루'라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온전히 동일한 그분의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어떤 분들에 대해서 훌륭한 분들을 존경합니다. 그분들이 보여주신 훌륭한 그런 성품들을 우리는 기리는 것입니다. 어떤 훌륭한 전도자를 볼 때에 그들이 복음 전하는 데 있어서 그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을 볼 때에 저도 동일하게 그러한 열정을 갖기를 원합니다. 또 어떤 분이 정말 부드러운 목자의 신념을 가지고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고 살피는 모습을 볼 때에 저도 그와 같은 동일한 목자의 마음을 갖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분이 아주 분명하게 그 교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을 볼 때에 저도 동일하게 그와 같은 확신을 갖게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 주님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특정한 부분이 다른 측면을 압도하는, 그렇게 한 가지만 좋은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에는 모든 면에서 온전하게, 동일하게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전에서 이제 사람들의 위선 가운데 있는 그 상을 뒤엎어야 되는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동일하신 주님께서 죄인으로 알려진 한 여자가 그분의 뒤로 다가와 눈물을 흘리며 그 발을 씻었을 때 또한 그의 마음을 다루신 그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경고하셨지만, 또한 완고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온순한 분이셨지만 연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은혜와 진리가 온전히 균형 잡혀 있는 충만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와 같은 우리 주님의 모습이 항상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우리 주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을 전하실 때나 아니면 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실 때랑 동일한 모습을 취하신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읽으실 때의 모습과 그리고 또한 월요일과 화요일에 우리 주님의 모습은 동일하다는 것은 그들을 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다릅니다. 만약에 제가 어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에 그날에 여러분을 만난다면 여러분은 제가 평상시랑 다르게 그렇게 기분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첫 번째 커피를 마시기 전까지는 아주 피곤한 느낌으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와 같이 좀 상태가 안 좋은 날이라든지, 좀 기분이 안 좋은 때가 있지 않았습니다. 그 고운 가루가 말해주듯이 항상 '주님은 동일하게 온전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소제'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고운 가루'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 거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이 주님을 기념하며 예배를 드릴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분의 어떠하심을 우리가 찬양하며 높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그 놀라우신 점을 말씀을 드리며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운 가루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씀을 드렸고, 이제 11절에서는 그러면 거기에 포함되지 않아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첫 번째로 '누룩'을 넣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쉽게 생각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또한 '꿀'을 넣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아 꿀은 달콤한 것인데, 저도 꿀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희생 제사에 거기다 꿀을 더 넣으면 더 달콤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꿀을 가열하게 된다면 거기에 있는 설탕 성분이 아주 쓰게 타버리면서 그 맛이 써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 안에는 어떠한 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향'과는 굉장히 다른 것입니다. '유향은 불을 가열하면 오히려 거기서 향기로운 향이 나는 것'입니다. 유향을 더하면은 이제 불이 가열됐을 때 거기에 향이 더해집니다. 하지만 꿀을 더한다면은 불이 가열됐을 때 거기에 쓴 것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레위기 2장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서 '불'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레위기 2장에서의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적으로 의미한다기보다는, 여기서는 우리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 계셨을 때 그 주님께 사람들이 가했던 그 '핍박'과 '고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주님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압박하고, 더욱 핍박하였지만, 그럴수록 우리 주님에게서는 쓴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향기로운 향이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회당에서 손 마른 자의 병을 고쳐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안식일의 주님이 그렇게 행하시는 것을 보고 주님을 죽이고자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에 대해서 대항해서 무력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히 피하시고 그리고 이사야서에 여호와의 종에 대해서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와 그의 군병들이 우리 주님을 압박하였을 때도 우리 주님께서는 저항하지 않으시고 오직 잠잠히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 손에 못이 박힐 때에 그들은 그 고통으로 인해서 그것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욕하고 저주하였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오히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쳐올 때, 우리는 그러한 무게 가운데서 우리 안에 있는 그런 어두운 것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그런 어둠의 것들이 드러날 것이 없었습니다. 그 꿀을 가열했을 때 쓴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유향을 가열했을 때 향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 주님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참으로 이 소제는 이 온전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우리가 이 놀라우신 구주를 모시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