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메튜 카인 형제님

지역 모임의 상징들 : 건축물

박이레 2026. 4. 27. 20:35

< 지역모임의 상징들 : 건축물 > 메튜 카인 형제님 / 26년 4월 11일

베드로전서 2장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 나온 지역 교회에 대한 비유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금 등대'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그와 같이 지역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의 빛을 비추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한 건축물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건축물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것을 말씀을 드리기 전에 이것을 언급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결코 교회를 어떤 한 건물로 건물을 교회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이곳 문화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지만 제가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건물을 보고 그 건물에 이제 십자가가 표시가 있으면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교회다, 그 건물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결코 건물을 교회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항상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모여 있는 이 공간도 건물 자체가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공간 안에 지금 교회가 모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건물을 이용해서 지역 교회가 무엇인지를 비유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벧전 2:4-6).

여기서 비록 베드로는 교회라는 그 단어 자체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이 '영적인 집'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산 돌이시며 이제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아올 때에 우리도 산 돌로 그 산 돌 위에 더해져서 이 영적인 집을 만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집에 '모퉁이 돌'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이 '건축물의 방향'과 그리고 그 '건축물의 안전'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그리스도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 등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때에 금 등대가 그리스도께 대한 간증을 보이는 곳이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나중에 다시 한 번 이 자리로 돌아와서 '이 건축물은 그리스도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2장에서 교회에 대해서 한 건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 동일하게 모퉁이돌이시며, 이제 우리들이 다른 일반적인 건물이 아니라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져 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그리고 사도 바울도 그가 건축물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 특별한 건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그 구약 성경에서 제사장이 봉사하였던 그 성전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에 인용한 이사야서 말씀도 그는 성전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이 문맥은 '성전을 배경으로' 한 말씀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베드로전서 2장을 보게 될 때에 특별히 신약 성경에 다른 세 군데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보면 사람들이 '산 돌'로서 이 건물에 더해집니다. 그리고 두 번째에 이 건물 안에서는 제사장들이 신령한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 건물에 그리스도께서 모퉁이돌이 되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서 말하고 있는 이 건축물은 모든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모인 그 큰 한 건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사도바울은 동일하게 건물을 말하고 있지만 거기서는 '지역 교회'를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거기서 몇 구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5-23).

제가 살고 있는 집은 아주 오래전에 지은 집입니다. 아마도 100년 전에 세워진 그런 집입니다. 제가 그 안전성을 검사하기 위해서 기술자들을 불러서 저의 집의 터를 검사하였을 때 그들은 저의 기초에서 그 돌들이 좀 부서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그 문제가 저의 집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대답하기를 "하지만 당신이 살고 있는 동안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 말고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가 되겠죠. 그와 같이 여러분의 집이나 다른 어떤 건축물들의 그 안정성은 바로 그 집의 기초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에 비록 그 기초 작업이 그 기초가 보이진 않지만 만약에 거기가 문제가 있다면 얼마 안 가서 여러분의 집에 문제가 생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구조물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건축물의 기초'입니다. 그리고 3장 10절과 11절에 이 '교회의 기초'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가 지금 이 비유적인 한 건축물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건축물의 기초는 일반적인 바위가 아닙니다. 이 독특한 건축물의 기초는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이 하나님의 교회, 이 모든 지역 교회에 유일하고 합당한 그 기초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께서 이 사도행전을 통해서 그 가운데 있는 많은 지역 교회들이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보게 될 때에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고린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그가 어떤 기초를 두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사도행전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도는 18개월 동안 이 도시에 있으면서, 그리고 18개월 이상 복음을 전하면서 이 도시에 이 기초를 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읽었던 베드로전서 2장에서도 이사야서가 인용되었는데요. 거기서도 "시온에 그 기초를 두노니 요긴하고 귀한 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서 하나님께서 그 기초를 직접 두신 것처럼 이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3장에서 그 본을 따라서 그와 같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외에 다른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그리스도, 또 그분의 복음이 모든 지역 교회의 유일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설교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그리스도 외에 다른 기초를 두고 교회를 세운다면은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가 없는 그 교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항상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역 교회의 기초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우리는 매 주일 아침에 그 만찬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는 그 기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이 지역 교회의 기초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매주일 오전에 만찬에 모일 때마다 우리는 바로 그분의 죽으심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떡을 대할 때에, 그 떡을 참여할 때에 또한 말로서, 우리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파하면서 그 기초를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그러한 실행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모여서 주님을 기억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이 기초에 대해서 말하고, 또한 기도 가운데 전파하고, 또 찬송을 부르면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떡에 참여하면서, 잔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그분의 흘리신 피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떡에 참여하면서 나는 그분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드리신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축복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잔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그 복을 감사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매주일 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성경적이며 또한 우리가 이 기초를 든든히 간직하기 위한 하나님께서 주신 아주 지혜로우신 그런 제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3장에서 특별히 10절에 "지혜로운 건축자"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10절에서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특별히 고린도전서에서는 '지혜'라는 것이 자주 사용되고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집니다. 여기 나와 있는 '건축자'는 목수와 같은 업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자', 그것을 건축하는 '건축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혜로운 건축자'에 담겨 있는 것은 그가 한 수고라기보다는, 물론 그는 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어떤 '전략'으로, 어떤 '지혜'를 따라 하였는지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장과 2장에서 그는 어떠한 태도로 고린도에 복음을 전했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사람들의 지혜를 중요시하고 높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곳에 복음을 전할 때 사도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전하기로 작정합니다. 이 고린도 사람들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자연적인 지혜, 그런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에서는 '복음의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지혜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지혜는 사람을 높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을 낮추는 것'입니다. 참 사람이 그들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어떠한 것도 드릴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을 말하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그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라고 했을 때는 그 개념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로, 그 십자가의 지혜로부터, 그 복음으로부터 이 교회를 세우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건축물이 시작하는 기초이며 우리는 그 기초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건물의 기초가 무엇인지가 이제 그 건물이 어떻게 세워지고 성장할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는 그 건축물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우리가 그 건축물에 어떻게 '기여를 하고 더 하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을 이제 리모델링하고 더 이렇게 가꾸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 제 처가 쪽에 가정에서는 그것을 굉장히 많이 하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제 아버지 쪽에서는, 저희 가족에서는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 아버지가 집을 고치기 위해서 망치를 든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집에 뭔가 고칠 것이 있으면 우리는 아버지를 부르기 전에 먼저 어머니께 가서 이것 좀 고쳐야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결혼한 저의 처갓집은 그들의 유전자 자체가 뭔가 고치기를 좋아하는 그러한 족속이기 때문에 이제 완전히 그쪽에 가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세 형제가 있는데요. 그 각각의 형제들이 모두 그들의 집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건 단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리모델링을 할 정도로 하였습니다. 저는 한 번만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피곤한데 말입니다. 저의 아내 에스더와 저는 이제 첫 번째 집을 뉴 브런즈 위계 석세스에서 사게 되었는데요. 그 집을 보러 저의 처갓집 장모 장인 어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제 장인어른께서는 저의 집을 보고 "아, 집은 좋은데 여기 있는 이 벽을 완전히 허물고 거실을 더 넓혀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듣고 아, 이건 참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이 집을 샀는데 왜 벽을 부셔서 더 큰 거실을 만들겠는가, 생각하였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이제 치과 진료를 받을 때 또 사촌들이 함께 그 치과 진료를 따라가곤 합니다. 그런데 그 치과 진료할 때 대기실에서 TV에서 '집을 이렇게 하면 바꿀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쇼를 보여주곤 하였습니다. 참 이 캐나다 사람들은 집 모델링 하는 데 많은 돈을 사용합니다. 일단 그런 쇼를 따라 해서 연간 한 800억 달러가 넘는 돈이 그런 모델링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교회에 뭔가 더하는 것, 그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물론 어떤 물질적으로 그 건축물에 뭘 더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이제 사람들이 영적인 무언가를 더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전서 2장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산 돌이신 그리스도께 나아와서 그도 역시 산 돌로서 그 위에 더해서 이제 그 건축물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 2장 4절에 그 산 돌이신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을 첫 번째로 우리는 '신자'들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신자들이 그리스도께 나오고 예배를 가지고 그분께 드리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또 두 번째로 죄인들이 그리스도께 구원받고 나와서 더해지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산 돌이신 그리스도께 나아와"라는 것이 '현재형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한 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사람들이 구원받아서 그리스도께 더해져서 그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을 말하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제 특별히 이러한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리스도께 나올 때 그냥 여러분 자신이 나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는 지금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있다.'라고 그것을 인식하는 가운데 나오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나아오라" '내게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여러분은 아주 바쁘고 할 일이 많은 그런 도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계속 분산시키고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게 만드는 가운데서 이제 그것을 멈추고 '아, 나는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그분께 나아가서 참 이 쉼을 누려야겠다.' 하면서 나오고 있습니까? 그리고 또한 이제 죽어 있는 한 죄인이 바로 이 산 돌에게 나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참 그것도 아름다운 그림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참으로 죽어 있던 그 돌이 이제 산 돌이 되어서, 참 이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 건축 역사 가운데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지으시는 교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참 이 경륜에 속한 교회에 속한다는 그 역사를 생각하게 될 때 참으로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 거대한 건축물에 구원받은 자들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참 얼마나 많은 죽은 돌들이 이제 산 돌이 되어 이 건축물에 더해졌는가?' 이 산 돌이신 그리스도께 더해졌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조금 작은 측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제 지역 교회를 말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지역 교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우리는 죄인들이 구원받고 그리고 그 후에 이 모임에 영접돼서 더해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이 지역 교회의 기초를 닦고 두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 건축물을 계속 세워 나가기 위해서 동일하게 우리도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코비드 기간 동안에 제가 있는 그 고향 모임에서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많은 이민자들이 우리 도시에 있는데요. 그 가운데 이미 믿고 있는 신자들도 있고 또 많은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집에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많은 불신자들이 있고 또한 여러 나라에서 또 각각 다른 그런 교회 배경을 가지고 그런 종교 생활을 하고 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참 그런 분들을 이 지역 교회에 더하도록 인도하는 것은 우리 지역 모임에 있어서 이제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또 성경을 가르치고, 또 이 분을 올바르게 영접할지 많은 도전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 2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분들이 정말로 산 돌인지 분명히 하기 위해서 분명한 복음을 전하고, 또 성경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그들이 그것을 순종하고 영접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분이 그 산 돌이 아니라면 정말로 그리스도를 그분의 구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분은 결코 이 지역 교회에 한 돌로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 교회는 분명하게 산 돌로만 이루어져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이 지역교회로서 한 장소에 모일 때에 이 장소를 방문하는 방문자들을 물론 따뜻하게 환영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방문객으로 환영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방문해 준 사실에 대해서 그것을 우리의 특권으로 여기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물론 방문객들은 이 물질적인 공간 안에,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이지만, 그들이 실제적으로 영적인 산 돌이 되기 전까지는 지역 교회의 일원으로 속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지역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각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체들을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또한 "적은 양무리"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들이 잃어버렸지만, 길을 잃은 양이었지만 이제 목자를 따라온 양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지역 교회를 "몸"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한 몸으로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건물"로 부릅니다. 그 각 인원들은 산 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 교회 안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 가운데서 그들이 분명히 회심했다는 증거를 나타내고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물론 그들이 자신이 어떻게 회심했는지를 말할 때, 그것이 제가 말하는 것과 일치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이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모두 다 알고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교회에 영접될 때에 참으로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임을 확신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신자들의 가족의 일원이라고 그들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들 그 자신이 산 돌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지역에 온 어떤 분은 이미 산돌인 채로 와 있고, 이제 우리 교회를 발견하고 우리 교회 안에 들어오고자 하는 분들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참 우리가 다른 곳에서 구원받아서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존중해야 됩니다. 마치 이제 문둔병자나 어디 멀리 있는 사람처럼 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가정의 일원이라면 참 그들을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제는 이제 상호간의 '영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들이 우리 가운데로 들어와서 함께 교제하기를 원해야 되고, 또 이제 우리도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어떤 모임은 이제 다른 교회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방문하게 될 때에 일단 부정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자세는 자동적으로 일단 다른 사람은 배제하고 본다라는 자세가 아니라, 일단 그 사람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듣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참 그들이 정말로 산 돌인지 우리는 분명히 확인해야 되지만 말입니다.
또한 '침례'가 역시 성경적으로 그들이 밟았어야 되는 영접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침례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공적으로 간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침례라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공적으로 간증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자신이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공적으로 나타나기를 거부한다면, 침례를 받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거부한다면, 왜 교회가 그 사람을 공적으로 받아들여서 그와 함께한다는 것을 공적으로 나타내야 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침례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지역 교회에 영접되기 위해서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와 같은 산 돌이 생기도록, 죽은 돌들이 산 돌이 되도록 더욱 복음으로 수고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산돌들을 우리 지역 교회로 더욱 더해지도록 힘쓰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초'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드렸고요. 그리고 이제 '더해지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이 건물과 관련된 '예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 2장에서 이제 모든 신자들이 '거룩한 제사장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참 이 교회와 관련된, 이 건축물과 관련된 것과 관련돼서 모든 신자들이 예배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 그다음 단계를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그 건축물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3장에서 금과 은과 보석으로 그 위에 세우는 것을 말씀을 통해 보게 됩니다. 여기 3장 10절부터 13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0-13).

그래서 여기서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각 사람이 가져오는 것이 그 건축물의 기초와 일치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내가 이렇게 터를 닦아두었고", 그리고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유일한 그 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터는 곧 예수그리스도시라" 그리고 12절에서는 "이 터 위에 세우며"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위에 세우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터 위에 다른 것을 세워서 그 건축물을 꾸밀 때에 그것은 그 터와 일치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터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그리스도인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특별히 이것이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 내용은 단지 교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각 성도들이 이 건축물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각자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져오는 내용에 대해서 12절에 우리는 '두 가지 부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되어 있을 때 그들은 여기 나와 있는 풀과 짚으로 그들은 벽돌을 만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자유롭게 구속되었을 때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기 위해서 금과 은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동일하게 이와 같은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 금과 은과 보석을 가지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고린도전서 3장에서 세상이 가치 평가하는 시스템과 또한 우리가 가치 평가하는 그 기준이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그런 재료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단지 나무나 풀이나 짚이라고 여기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과 문화가 그것은 단지 오래전에 낡아진 것이며 가치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금과 은으로 여기시며 그것이 영원토록 가치가 지속되는 것이다라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평가를, 말씀에 기록된 것을 따라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터와 일치하지 않는 다른 재료들을 가지고 나오게 될 때 우리는 비록 하늘나라에 갈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 15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수고한 그런 것들이 전부 불에 타서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우리는 상급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금과 은과 보석을 가져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여러분에게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정말로 그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여기서 말하는 금과 은과 보석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그 기초와 일치하는 것들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성경에서 이와 같이 기초가 놓여지고, 그리고 그 기초 위에 아름다운 재료들을 가지고 나온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 성전에 있어서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이 글을 쓸 때 사도 바울의 머릿속에 그러한 생각이, 기억이 있었던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외관만을 본다면 우리는 그것이 그렇게 크지 않고 인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 안에 들어간다면 그것이 모두 금으로 싸여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을 만드는데 150억 달러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 솔로몬 성전에 들어간 그 귀한 재료들의 가치를 값을 매겨본다면, 제가 확신하는 것은 그 우주 정거장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더 많은 그 가치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참 이 금과 수많은 은과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는 아름다운 나무들, 그리고 7년간의 많은 인력이 사용된 가치가 있습니다. 참으로 그 솔로몬의 성전의 가치를 달러로 환산한다면 천문학적인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요? 참 구약에서 그렇게 많은 가치를 들여서 그 성전을 지은 데는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참 그 시대는 경륜적으로 이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 솔로몬 성전은 사실 솔로몬의 성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만한 많은 비용을 들여서 지을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신약의 성전에 대해서 16절에서 이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래서 이 대전 중구 모임이 제가 비록 이곳에 성도님들이 많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임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이제 이 숫자가 나와서 말인데요. 여러분은 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몇 명이었을 걸로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서머나 교회에는 몇 명의 성도들이 있었을까요?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몇 명의 성도들이 있었을까요? 예, 저 역시 모릅니다. 성경에는 그 수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수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지역 교회의 성격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각 개인이 또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바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 교회는 아주 특별한 건축 역사입니다. 이것은 어떤 공장을 짓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의 주택을 건설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바로 이 건축물을 거룩하게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임재하시고, 이제 새 언약의 이 공동체로서 그들의 성격을 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저는 여러 모임들이, 특별히 제가 속해 있는 모임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여러 가지 활동들을 바쁘게 하지만 때때로 이 하나님의 임재, 이 성령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지역 교회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그분의 인도하심으로 활동을 하는 공간이 돼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 영적인 경험이, 그리고 그 영적인 성격이 규정되는 바로 그러한 곳입니다. 참으로 이곳을 채우시는 성령님의 성격을 닮아서 이 지역 교회가 거룩한 성격을 나타내야 되는 곳이어야 됩니다. 만약 각 성도님들이 성령의 열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그런 성도들이 모이고 있는 모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기쁨으로 살고 있는 그 성도들이 모이고 있는 지역 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그 영적인 경험들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건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오늘 주제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경고적인 내용'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건물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의 마지막 부분에 이 건물의 파괴에 대해서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어떤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특별히 고린도전서 1장부터 3장까지 나와 있는 그 문맥 가운데 말하고 있는 한 가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1장 10절부터 13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뇨"(고전 1:10-13).

이러한 내용이 이제 1장부터 3장까지 계속 흐르고 있는 기반이 되는 그러한 문맥입니다. 그리고 3장 4절, 5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전 3:4-5).

그리고 21절과 22절에서 어떻게 이 장을 마무리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고전 3:21-22).

이 '분쟁'이라는 문맥이 1장부터 3장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그런 기반이 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지역 교회가 또한 어떤 사람들의 음행의 범죄로 인해서, 또한 머리됨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서 허물어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방언에 대해서 잘못 사용하는 것이나, 또 부활에 대한 잘못된 교리로 또 이 지역 교회를 허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이전에 그는 이 '분쟁의 문제'를 가장 먼저 다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쟁이 그 사람의 지혜에 중심에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높이고, 사람에게 시선을 두고, 그리고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내용으로 경고를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많은 교사들이 방문하고 또 한국에 많은 이런 교사 일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분쟁, 분파, 이런 것들이 지역 교회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그런 파괴가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어떤 설교자를 중심으로 해서 이러한 그룹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어떤 장로를 중심으로 한 파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영향력 있는 자매도 그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그 영향력 있는 형제와 자매가 그런 분쟁의 기운을 계속 불어넣고 이제 육신적으로 행동하고 교회를 훼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지역교회는 우리 자신의, 내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3장 3절에서 그러한 결과로 인해서 "시기와 분쟁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것과 관련돼서 잠언 말씀을 한 군데 찾아보겠습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는 그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며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로 알게 하며 그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잠 6:12-14).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 6:16-19).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시적으로 분명하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행동이 하나님의 성전을 훼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건축물에 그것에 놓여져 있는 두 돌이 서로 깨부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그러한 것을 누가 복음 11장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집안이 서로 싸우면 그 집이 어떻게 서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지역 교회를 훼손하는 아주 심각한 일은 다른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이 여러분이 세우고 그를 추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는 내가 친한 사람들만 함께하면서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배척하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두신 그 하나님의 성전을 훼손하는 행동들입니다. 참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이 세우는 자가 되고 훼손하는 자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 전하는 사역이 또한 이러한 위험에서 우리를 보존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우리가 어떠한 은혜로 이 지역 교회에 들어왔는지를 상기시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그 가운데 더욱 주목하고 기뻐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작은 문제들을 쉽게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마음을 복음으로 채울 때에 우리는 피차 서로 더욱 용납하고, 더욱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져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욱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 협력하고 그것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격려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 그냥 단지 "모이기를 폐하는 것을 하지 말고" 그런 부정적인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우리가 계속 함께 모여서 격려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역 교회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큰 영향력 중에 하나는 이것입니다. 이제 이 지역 모임에 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격려'가 될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신자들은 많은 어려움과 또한 압박 가운데서 이 지역 모임의 집회에 참석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분들에게 서로 더 많은 짐을 지우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그러한 것을 도와주고, 함께 짐져주고,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함께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이 지역 교회를 더 아름다운 건축물로 세워갈 수 있습니다.

제가 또한 이번 시간은 좀 일찍 끝냄으로써 여러분을 작은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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