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모임의 상징들 : 금등대 > 메튜 카인 형제님 / 26년 4월 11일
예,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께서 참 아름답게 찬송을 부르셔서 저도 한국어를 해서 같이 찬송을 불렀으면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대전 중구 모임에서 함께 집회를 할 수 있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토요일이라는 것이 또 여러분에게 또 소중한 시간이었을 텐데요. 또 이러한 집회를 위해서 시간을 내주시고 또 먼 거리에서 참석해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오늘 새롭게 안 사실인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한국에서 출판되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성경책을 고향으로 되돌려 온 셈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대전 중구 모임에서 집회 시간 가운데서 저희는 '신약 성경에서 나타난 지역 교회'에 대해서, 또 여러 가지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림'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거기서 특별히 지역 모임을 가리키는 하나의 그림으로 '몸'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몸이라는 것은 그 안에 지체가 서로 상호 의존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하나님의 밭'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는 우리가 함께 동역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어드리는 공간이 바로 지역 교회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장, 2장에서 이번 시간에는 지역 교회를 '등대'로 표현하는 모습을 통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장 10절부터 2장 7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10-20).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1-7).
그래서 일곱 금 촛대가 일곱 지역 교회와 비교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성막'에 있는 기구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곳에 있는 이 '등대'는 특별히 '예수그리스도'를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가랴'서에 나오는 그 등대는 '이스라엘 나라' 자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와 있는 그 '두 촛대'는 또한 마지막 때에 등장하게 되는 그 '두 증인'에 대해서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처음 1, 2장에 나와 있는 이 '등대'는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특별히 '등대'라고 묘사할 때는 우리는 그 지역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 빛'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각각의 지역 교회가 바로 그 금등대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 교회를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대전 중구 모임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대전 중구 교회는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여기에 두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등대에 대한 묘사를 생각하게 될 때에 먼저 구약 성경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ot는 구약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 신약 성경의 여러 가지 묘사들이 또 구약의 의미들을 계속 연장선상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 요한계시록에 여러 가지 그림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표현과 단어들이 구약에서도 사용된 것들임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은 '등대'에 대해서 처음 성경에 묘사된 것은 출애굽기 25장에서 '성막에 사용되는 등대'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등대와 같이 금으로 만들어진 등대였습니다.
우리가 성막을 생각하게 될 때에 성막의 뜰에서부터 그 성막 안에 들어갈 때에 여러 가지 기구들의 재료가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막의 뜰에서는 놋으로 만든 제단이 있었고 또한 놋으로 만든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소 안에 들어가게 될 때는 나무로 만든 그 진설상이 있고 그리고 그것은 금으로 덮여 있게 됩니다. 또한 그 금향단도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금으로 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도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금으로 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등대에 대해서, 그러면 등대도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금으로 쌓여 있는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등대는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등대는 순금 75파운드로 만들어져 있고 완전히 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등대가 만들어지는 그 기술을 살펴보면은 참으로 사실 이것은 기적적으로밖에 만들어질 수 없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참 그 등대를 단 하나의 순금 덩어리로부터 만들어 낸다는 것은 오늘날 가지고 있는 그 정교하고 섬세한 기술로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 성막 기구들을 만드는 데 특별히 브살렐과 오홀리압이라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그 두 사람이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금등대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 '성령님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금등대가 바로 이 대전에도 있고 또한 마포에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동일하게 금등대가 만들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고,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기에 그 등대가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이 교회라는 것은 그래서 단지 어떤 남자와 여자들이 모여서 우리가 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기여를 해보자고 의논해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도 그런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이제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YMCA나 또한 구호 활동을 하는, 식량을 공급하는 그런 기관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활동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물론 그들이 훌륭한 일을 하고 있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지역 교회는 성령님의 역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들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바울이 이제 어느 지역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할 때에 이제 그곳에서 성령님의 역사로 구원받는 자들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서 지역 교회가 세워진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지역 교회는 성령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령께서 또 그 가까운 지역에 있는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또 한 곳으로 모이게 해서 그 지역 교회가 세워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역을 근거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있었던 그 등대와 같이 지역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과 또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이 등대에 대해서 그것이 무슨 용도가 있겠느냐고 질문할 때 여러분은 이제 빛을 비추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맞는 대답입니다. 그래서 그 구약의 등대는 성막 안에, 그 천막으로 덮여져 있는 그 실내에 있게 됩니다. 그 등대는 '성소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막 성막의 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밖에 세상을 비추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빛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안에 들어가는 '제사장만'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잠시 후에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마는, 지금은 먼저 그 안에 들어가서 보는 그 불빛을 보는 제사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요한계시록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며, 또한 심판자로 나타나 계십니다. 이제 요한계시록 1장부터 3장까지는 바로 이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계시는지가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교회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께서 그 지역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평가'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참으로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또한 어떤 형제들이 그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결코 이 교회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평가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그들의 자연적인 가치 기준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또 저희와 같이 이렇게 방문해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도 그 지역 교회에 대해서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며칠 여기서 머물다가 돌아갈 뿐입니다. 참 그 방문한 설교자는 여러분의 가장 최선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또 최악의 모습도 보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지역교회 평가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지역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초점을 두고 있어야 되는 것은, 방문한 사람들을 어떠한 평가를 받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우리가 지금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 거기에 우리의 시선을 두어야 되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 주위의 이웃들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선한 간증을 보여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지역 교회가 속한 그 지역교회 주위의 문화와 여러 가지 생활 방식을 따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 가운데 있어서도 성경의 원리를 기준을 두고 지켜 나가야 됩니다. 참으로 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제사장이며 또한 평가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평가가 참으로 영원토록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될 것입니다.
제가 특별히 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제사장'이며 또한 '심판자'라고 명칭을 부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요한계시록의 1장과 2장, 3장에서 나온 그분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입고 있는 그 옷을 보게 될 때에 그분께서 이제 쉽게 이동하시기에 편한 그런 차림으로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분은 또한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제사장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리고 14절과 15절에 보면 그분의 모습에 대해서 아주 영광스럽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14절과 15절에서 나와 있는 그분의 모습을 보게 될 때에 이분의 그 영광스러운 모습에서 그분이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14절부터 16절에서 우리는 그분의 거룩하심, 그리고 순결함, 그리고 그분의 능력, 그리고 꿰뚫어 보는 그분의 시선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이며, 정확한 평가를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분으로 여기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에 들어가서 그 등대의 불을 관리하며 그 심지를 잘랐던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도 이제 지역교회 사이를 돌면서 그와 같이 빛을 밝게 빛나도록 관리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1장에서 그분의 모습을 살펴보았고, 2장에서는 1절에 그분께서 걸어 다니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2장 1절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지역교회 사이를 다니시면서 마치 등대의 심지를 정리하심으로 그들을 관리하고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각각의 교회들은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포에 어떤 한 '강성찬'이라는 '샌드위치 배달점'이 있다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샌드위치를 배달하기 위해서 이제 배달하는 그 트럭이 '강성찬 샌드위치'라는 그 이름을 달고 그 지역을 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 차를 운전하는 운전자가 거칠게 운전하고, 아무 데나 주차를 하고, 그리고 창문을 내려가지고 막 다른 사람들한테 욕을 하고 다닌다면, 분명히 그 트럭에 크게 써져 있는 강성찬이라는 이름에 욕이 되는 것일 것입니다. 제가 강 형제님과 함께 차를 타고 다녔는데요. 강 형제님이 이렇게 사실 그렇게 운전하지 않고 잘 운전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 이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도 그분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지역 교회를 돌아다니시면서 그들이 정말 밝게 합당한 간증을 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돕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지역 교회에 대해서 바라보고 평가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참 굉장히 심각한 톤으로 들리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심각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되는 그런 문제입니다. 참 우리가 때때로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즐겁게 노래하면서, 또 가벼운 대화로 이렇게 즐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서 정말 진지한 태도로 그분을 나타내고 간증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1장부터 3장까지 나와 있는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평가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 나는 그것은 별로 무서워, 싫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있는 그 노스트리트 모임에 대해서 주님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을 듣겠다고, 이런 태도로 이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참 이 요한계시록은 많은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심판을 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심판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4장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그 하나님의 가정을 먼저 다루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장부터 3장까지 그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지만 바울이 교회에 보낸 서신서와 다른 점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면서 이렇게 일반적으로 시작되는 서신서와 다른 것입니다. 2장 1절에서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고 있다라고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이며 또한 '평가자'로서 각 지역교회에 대해서 각각의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어느 두 모임도 같은 지역교회는 없습니다. 얼마 전에 저희 가정은 이제 여섯 식구입니다. 저와 제 아내, 그리고 4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서양에 인접한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 캐나다의 동쪽에 있는데요. 이제 먼저 남쪽으로 미국으로 건너와서, 그리고 반대쪽에 태평양 연안까지 가로질러서 운전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북쪽으로 캐나다로 돌아와서 거기서부터 다시 이제 동부로 돌아왔습니다. 전체적으로 운전한 길이를 따져보면 아마도 1만 6천 킬로미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 거리를 한국에서 돌아다니신다면 이 한국을 17번 왔다 갔다 하는 그 거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되었는데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특별했던 것은 8곳의 지역 교회를 방문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각각 다른 지역 교회를 방문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어느 두 지역 교회도 같은 지역 교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똑같은 성경 말씀을 보고 있고, 똑같은 성경의 원리를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각 지역에 각각 다른 사람과 다른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지역 교회는 서로 구별되는 등대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배우게 되는 중요한 원리는 각 지역 교회의 '독립성'입니다. 여기서 이 영어 단어가 '오토노미'라는 것은 사실 정확한 표현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제 자치적으로 관리를 한다는 것인데, 사실 지역교회는 주님께서 다스리는 곳입니다. 사실 이 단어를 통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각 '지역교회는 주님께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비슷한 점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특별히 이 부분에 있어서는 구약과 신약의 '차별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성막에 나와 있는 등대는 한 등대이고 거기에 7개의 가지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신약에 있는 등대는 각각의 일곱 금 등대로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하나의 가지라고 하지 않고, 서머나 교회를 하나의 가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각각은 각각의 등대이고, 그리고 그 개념을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나라는 하나의 나라이고, 하나의 객체로 활동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한 성전이 있었고 그것은 마치 이 지구상의 본부와 같은, 머리와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교회와 관련돼서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지구상에 어떤 본부 교회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 신약교회에서는 어떤 교단이 있고 그 교단 아래에 속한 여러 개의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교단'이라는 조직 자체는 '성경에 기반을 둔 그런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서는 장로교단이나, 침례 교단이나, 또는 형제 교단이나, 이런 교단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각각의 지역 교회는 각각의 지역 교회가 주님께만 책임을 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약 교회에서는 어떤 지역교회 연합, 어떤 사람들의 그런 집합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각각의 지역 교회에 개별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전하노니",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전하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아시아에 있는 모든 교회에게 전하노니, 이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각각의 교회를 부르시면서 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지역 교회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만 책임이 있고, 그들은 그 속한 지역에 하나님의 증거를 전해야 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라오디게아의 교회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가 잘못해서 에베소 교회가 지금 그 촛대가 옮길 위험에 처한 것도 아닙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에베소 교회에 그 촛대를 옮길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 촛대를 옮길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빌라델비아 교회가 두아디라 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그런 책임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두아디라 교회를 직접 책망하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7개의 구별된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한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그 7개의 교회는 완전히 서로 떨어져 있는, 서로 완전히 결별돼 있는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2장 1절에서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하셨지만, 또한 7절에 보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같은 진리가 다른 교회에도 유익한 것이고, 또한 적용되는 것이고, 그리고 바로 이 말씀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일곱 촛대 사이를 함께 다니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지역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고, 그들은 각각 연결돼 있는 동일하신 분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에베소 교회가 그 교회적으로 회개한다면, 이제 주위에 있는 서머나 교회가 또한 유익을 얻고, 또한 두아디라 교회가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아주 큰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운데 서머나 교회가 인내하고 또 선한 간증을 지키고 있다면 그러한 것들이 또한 그 이웃 모임에, 다른 버가모 교회와 또 사데 교회의 좋은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동일한 원리를 따르고 있고 동일한 목적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약 교회는 각각 자치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질서하게, 자체적으로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나와 있는 모습을 통해서 그 각각의 독립적인 교회들이 교제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모든 일곱 교회는 그들 가운데서 행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곱 교회는 바로 하나님께서 평가하는 그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지역 교회는 모두 동일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금 등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그런 연결로 인해서 연결된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 그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지역교회 간의 이러한 교제는 굉장히 유익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바로 오늘과 같이 이와 같은 집회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가 감사드려야 마땅한 것입니다.
참 제 가정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모임 간의 교제를 통해서 많은 유익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그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하는 가운데 많은 다른 지역 교회 성도님으로부터 환영과 접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교제를 통해서 여러 다른 지역교회 성도님들과 맺은 그 협력과 우정은 계속해서 저를 돕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이제 결혼과 또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지역 교회와 연결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다른 지역교회와 함께 협력해서 그와 같이 한 팀으로 협력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시대 가운데서 이 지역 교회가 다른 지역 교회와 협력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위로를 서로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지역 교회가 이제 우리는 충분히 힘이 있고 어떤 능력이 있어서 다른 지역 교회의 도움 없이도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각각의 지역교회는 자치적이고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책임이 있지만, 또한 우리는 다른 지역교회와 함께 하는 그 유익한 교제를 누리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질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각 지역교회의 독립성과 또 다른 지역교회와 교제하는 것에 그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습니까?" 우리는 때때로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서 어떤 긴장 상태가 벌어질 때가 있고, 또 어떤 것을 주고받는 가운데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그런 균형을 잡는 것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또한 그런 반면 가정을 돌보고 또 모임 일을 하는 그런 시간을 확보해야 되는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자 하지만, 또한 때때로 속도를 늦추고 또 잠시 휴식을 취해야 되는 필요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역시 이 지역교회의 자치와 또 교제에 있어서 필요한 그 균형의 문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균형점을 찾도록 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그 균형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그냥 어떠한 규칙으로 우리는 이렇게 한다, 이렇게 자치적으로 한다,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교제한다, 정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께 의지하면서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지역교회 장로들은 이러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양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그들에게 있어서 언제 그리고 어떻게 다른 지역 교회와 교제를 하는 것이 양들에게 유익과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보면서 행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하나 됨', 이것은 굉장히 보배로운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하나 됨을 위해서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은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불필요한 획일화는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 상호 간에 피차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2장 1절에서 본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역 교회의 아름다운 묘사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금촛대'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그로 인해서 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금'이 말하고 있는 속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각 지역 교회는 연약하고, 또한 실패가 있고 ,또 때때로 많은 실수를 하지만, 그 지역 교회에 대해서 '금 촛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금'이라는 것이 '영광'을 표현하는 것이고 또 '탁월함'을 표현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간증하는 곳'입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곳이기에 은 금과 같은 놀라운 영광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시선에서 이 지역 교회가 어떠한 '신분'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지역교회에 대해서 사람들은 "아니, 그 지역 모임은 이상한 그런 판단을 하고, 이상한 실행을 하고" 그래서 우리는 무시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에는 금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 지역 교회를 방문하는 기회를 얻었고 사실 이 북미 지역에 있는 지역교회의 모습들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저는 베이징에 있는 한 지역 모임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는 한 성도의 아파트에서 모이고 있었고 제 고향에 있는 지역 모임의 모습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그리고 멕시코의 지역 모임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참 그들은 매우 가난한 신자들이어서 또 그들의 모이는 모습도 저희 고향에 있는 지역교회의 모습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그들 모든 지역 교회가 하나님의 눈에는 소중한 것이고 그래서 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 오늘날의 이란이라는 곳에서도 그 지하에 숨어 있는 지역 교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지역 교회가 하나님께는 '금'인 것입니다. 아주 큰 대형 교회가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는 '금등대'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모임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우리 모임은 참 너무나 문제가 많아.'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 금등대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지역 교회의 우리가 '어떤 가치를 더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제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도 여러분에게 의미가 전달되기를 바라는데요. 영어로는 우리가 이렇게 표현하곤 합니다. "행동이 그의 정체성을 따라간다."(말씀 녹음이 끝난 후에 정정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는 "너희들이 금처럼 행동해라."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너희들은 이미 금등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각 지역 교회가 이미 금등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자주 말합니다. "우리는 단지 죄인인 연약한 그런 무능한 인생들이다." 참 이것은 어떻게 보면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단지 은혜로 구원함을 얻은 그냥 망가져버린 죄 많은 인생들일 뿐입니다. 이것은 맞는 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신자들을 대할 때에 결코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에 서신을 보낼 때에도 "참으로 이 불쌍한, 참 안타까운 신자들아." 이렇게 수신자들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아" 이렇게 불렀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있는 그 신분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그 정체에 맞게, 우리가 누군지에 맞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사람들이 노력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성취해 나가야 되는 정체성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받은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는 우리에게 이미 어떤 정체성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우리의 행동은 그의 적합하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이미 하나님의 시선에서 '금등대'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 주위에 있는 세상이 이 지역 교회를 보고 "아, 저기 금등대가 있다."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저희 지역의 다른 이웃들은 우리 교회를 보고 단지 그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불필요한 그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분은 그런 세상의 평가에 구애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정체성을 따라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또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지만, 사실 이 지역 교회는 첫 번째 목적이 그런 사람들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 지역 교회의 첫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를 미워한 그 세상 가운데 서서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로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각 지역교회에 그의 편지 마지막에 약속하신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보면 특별히 그 지역의 어떤 특징을 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약속들을 살펴보게 될 때에 그 지역 교회가 있는 그 지역의 환경 때문에, 그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지역교회 안에 지금 들어와서 어려움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격려하시면서 다른 세상에 그런 영향력들과 타협하지 말고, 참 그런 것들이 들어오지 않게 하도록 하고, 오직 그리스도께만 충성하라고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이 성경의 원리를 계속해서 충성스럽게 따라가므로 오직 그리스도께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려야 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 교회의 첫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고, 이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이 등대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지역 교회가 보이는 '간증'입니다. 우리가 등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때에 그 등대는 빛을 내는 그러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내고 있는 '간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제 성경으로 해석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 등대가 무엇을 간증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두 증인의 모습을 두 등대로 표현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거기에 그 두 증인에 대해서 "두 감람나무요 또 두 등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제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등대가 성막 안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그 빛을 볼 수가 없었고, 성막의 뜰에서는 그 빛을 볼 수가 없었고, 오직 제사장만 그 안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이제 뭔가 다른 것이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자신을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빛을 비추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등대는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추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요한계시록 1장이 그 배경이 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여기 "일곱 별은 일곱 교의 사자요." '일곱 별'이 나옵니다. 이 별이라는 것은 그 밤을 배경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밤에 별을 볼 수가 있죠. 그리고 이 교회는 '등대'입니다. 그 어둠 가운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는 이 세상이 지금 어둠 가운데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라는 그 빛을 지역 교회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빛을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께 향하여 비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지 여기에 제목을 '간증'이라고 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간증'이라고 투 크라이스트라고 마지막에 붙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께 그 빛을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요한계시록 2장의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운데 계시고 그 주위에 일곱 금 등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둠 가운데 그 금등대는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께 빛을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지 우리가 복음 전하는 것 이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복음 전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지만, 복음 전하는 것 이상을 이 그림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로서 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부터 3장까지 가장 중요한 점을 찾아보자면 지역 교회가 과연 어떻게 그리스도를 가장 영광스럽게 빛을 비출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책망하실 때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라고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행위가 있었고, 많은 활동들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께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던 것입니다. 저는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에 좀 어떤 모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 애정 없이 이런 많은 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에베소 교회를 방문하면 우리는 이 교회는 아주 괜찮은 교회인데라고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있어서는 그리스도를, 그 처음 사랑을 떠난 것입니다. 그들은 그 교리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가지고 있지만 그 교리의 근본이 되는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직 이 교회에 대해서만 '촛대를 옮기실 것'을 경고하십니다. 참 다른 교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부분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분명히 그 교회가 빛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역 교회에 대해서 가능한 이야기고, 또한 개인적으로도 여러분과 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참 어떤 한 지역 교회가 냉담해지고 그 사랑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 속에 속한 각 개인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식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항상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야 됩니다. 참 그 촛대를 옮기신다는 경고는 굉장히 엄중한 경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에게 이제 징계가 내려졌고 로마 군대가 그들을 점령하고 그 성을 훼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그 간증을 잃어버리게 된 또 실제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로마 장군 디도가 와서 그 성전 안에 있는 등대를 가져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등대가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 교회는 그런 일은 일어날 일이 없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지역 교회를 아끼고 우리 지역 교회가 계속해서 금 등대로 빛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각자 그리스도께 더욱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에 대해서 감사드리며 또한 계속해서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그분을 닮아가고 성장해야 됩니다. 참으로 감사하는 것은 이 제사장이며 또한 심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에 대해서 은혜롭게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분의 이름을 밝히는 등대로서 우리가 성공적으로 그 빛을 비추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이 등대의 불이 계속해서 빛난다면 가장 기뻐하실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참으로 그 등대가 필요한 연료를 계속해서 풍성하게 공급하실 분입니다. 참으로 이 성령께서 바로 이 대전 중구 모임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그리스도께서 대전 중구 모임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계속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이 이 가운데 계속해서 있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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