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에 나온 40과 모세 > 메튜 카인 형제님 / 26년 4월 9일
안녕하십니까? 또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별히 함께 여러분과 찬송을 부를 수 있어서 감사가 되었습니다. 먼저 지난 시간에 집회 끝나고 사교적이지 않게 바로 퇴장을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어제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랬는데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집회가 끝난 다음에 여러분께서 이제 영어 연습을 하시겠다 하면 집회 끝난 다음에 저에게 오셔 가지고 대화를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현재 하나님께서 특별히 '40일'이라는 그런 특정한 기간을 두고 사람을 다룬 그런 '인물들'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노아'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에게 있어서 특별한 40일이 두 번에 걸쳐 있었습니다. 그 두 번째 40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난 시간에 그렇게 많이 살펴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살펴볼 인물은 '모세'입니다. 그의 생에 있어서도 특별한 두 번에 걸친 40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일 이 시간에는 다른 40일이 2번 연속 나오는 '한 인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노아는 40일간의 그 하나님의 홍수 심판 가운데서도 그는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경우에 있어서 40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고 있는 기간입니다. 20장에 18절부터 21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출 20:18-21).
이제 이러한 사건은 계속 진행돼서 출애굽기 24장에 오게 되는데요. 24장 1절과 2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찌니라"(출 24:1-2).
그리고 9절부터 18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모세가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찌니라 하고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출 24:9-18).
이제 25장부터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는 것, 그리고 여러 제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31장 18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출 31:18).
이제 32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을 섬긴 죄를 범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33장 12절부터 마지막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 33:12-23).
그리고 34장 1절부터 10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인적을 금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산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쌔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리어 경배하며 가로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컨대 주는 우리 중에서 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으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치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너의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소위를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출 34:1-10).
그리고 28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여호와 함께 임재 가운데 있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 사십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출 34:28).
그래서 두 번에 걸쳐서 40일이라는 기간 동안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됩니다.
참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놀라운 탐험의 기록 중에 하나는 어니스트 새클턴이라는 그런 선장이 남극 항로를 여행하였던 그런 여행기입니다. 그것은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배는 빙하에 갇혀서 침몰하게 되었고, 그 남극에 어떠한 식량도 없는 곳에서 아주 긴 시간 동안 그들은 생존하게 됩니다. 그 새클턴과 그의 선원들 5명은 이제 그 남극에서부터 굉장히 먼 거리에 있는 구조를 요청하는 데까지 수천 킬로미터가 되는 거리를 가게 됩니다. 그 새클턴이 사우스 조지아 섬에 도착하였을 때 그들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서 그 산을 넘어서 다른 편으로 가야만 했었습니다. 그 사우스 조지아 섬은 많은 높은 산과 또 빙하로 덮여 있는 곳이어서 어느 누구도 그 전에는 그 산을 걸어서 넘어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산을 건너 간 특별한 선원 세 사람은 나중에 그 일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 동일하게 말한 것이 "우리들 가운데 네 번째 사람이 우리와 함께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중에 3명 중에 한 사람은 "나는 우리 인원들을 항상 체크하는 임무를 맡고 그것을 이제 기록을 하였는데, 나는 이 세 사람은 내가 잘 알고 있는데 그 네 번째 사람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3명이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가 3명인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왜 4명인지 모르겠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빙하로 덮인 곳에서 이 세 사람은 그들과 함께하는 네 번째 사람을 계속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풀무불에 던져진 그 세 친구들과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주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진짜 육체적으로 그들과 함께하는 네 번째 사람의 임재를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잠깐 다른 이야기인데요. 저는 지금은 이제 하늘나라의 가신, 막 결혼했는데 그런데 돌아가시게 돼서 하늘나라에 가 있는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고통의 기간 가운데 그는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통의 순간에 기도할 때에 그는 때때로 정말 주님께서 바로 옆에 임재하시는 것처럼 그 목소리가 들려서 귀를 기울이곤 하였습니다. 그는 그 주님의 임재를 그와 같이 실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드라마틱한 이야기입니다마는, 아마도 이 가운데 어떤 분들은 이와 같이 주님의 임재를 정말로 실제적으로 느끼신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집회에서, 또는 주님의 만찬에서, 우리가 기도 집회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특별하게 여러분에게 필요한 말씀을 공급하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득 찬 그런 공간 안에서도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그것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주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그런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여러분이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임재를 어떤 특별한 경험이나 특별한 방식으로만 경험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은 정말 우리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와 같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1. 우리는 먼저 '노아'와 '모세'와의 그 '40일에 대해서 비교'를 이렇게 해보겠습니다. '노아'는 그 경험을 '방주'에서 하였습니다. '모세'는 그 경험을 '산'에서 하게 됩니다. '노아'는 다른 '가족 7명'과 함께 그 임재를 누렸지만 '모세'는 '혼자서' 그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노아는 그 가운데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고, 또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경우는 오직 하나님의 음성만이 들렸습니다. 그들의 경험은 이와 같이 아주 달랐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이 두 가지가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유사점은 너무나 비슷해 가지고 모세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저술할 때에 그는 마치 자신이 두 번째 노아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노아'가 '두 번째 아담'이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 '모세'가 또한 '두 번째 노아'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고 역청을 발라서 이제 물 가운데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어머니는 또한 바구니를 만들고 또 역청으로 틈을 메워서 그 안에 모세를 뛰어 넣어 띄움으로써 그 시대에 다른 아이들이 많이 죽었지만 모세를 그 가운데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시고 이제 노아는 믿음으로 그의 가정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도 특별한 계시와 또한 말씀을 주심으로써 이스라엘 가정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노아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로 번제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리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알려주십니다. 그와 같이 모세에게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번제의 제사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리고 어떤 것이 정결한 짐승이고 부정한 짐승인지 그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된 세상을 물로 덮으시며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바로와 그의 군사들을 홍해에서 물로 덮으시고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 물이 노아를 구원한 것이며 그리고 노아 가정을 새로운 세상으로 들여보낸 것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에 속하여 홍해에서 침례를 받았으며 그들은 이제 새로운 땅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제 노아는 새로운 시대의 머리로서 서 있으며, 그로 인해서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모세 역시 새로운 시대의 머리로서 이제 그와 언약을 맺고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점에서 '모세는 새 노아와 같은 것'입니다.
노아는 그의 놀라운 믿음으로 이와 같이 행하였지만, 또한 그가 나중에 실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노아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특별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존중하지만, 이제 그도 역시 결함이 있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다시 온전하신 아담을 기대하게 됩니다. 모세도 역시 그와 같이 놀라운 영적인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지만 그도 역시 넘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단지 반석에게 명하라고 하셨는데 그가 그 반석을 지팡이로 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약속의 땅에 들여보내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시 모세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중합니다. 모세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고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친 인물로서 이제 우리는 모세보다 그 일을 더 온전하게 하실 분을 기대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나은 언약의 중보로서 모세보다 더 위대하신 분인 것입니다.
2. 이제 출애굽기 34장에서 우리는 모세가 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출애굽기 24장은 참 놀라운 사건을 보여주고 있는 장입니다. 그 시내산에 그 영광의 구름이 덮여 있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제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 위에 소멸하는 불이 맹렬하게 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그 소멸하는 불이 모세를 나아오라고 초청하며 그 가운데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제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40일, 40야를 산 위에 있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이 나오도록 허락되지 않았지만, 모세 혼자 그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세 단계'가 있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에 나아가는데 세 가지 영역, 세 가지의 단계를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 산 밑에 '가장 먼 곳'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론과 그 아론의 두 아들들, 그리고 다른 70명의 장로들'이 그 '중간'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특별하게 보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또 그들과도 구별된 하나님과 더 가까운 영역에 있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모세'로 하여금 더 높이 올라오도록 말씀하시고 바로 '하나님의 임재'까지 오도록 하나님이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에 가까이 나아가는 세 가지 단계가 있는 것을 살펴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성경에 기록에서 이 삼중적으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어디에 또 기록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실 수 있겠습니까? 그 답은 '성막'입니다.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은 학교 다닐 때 제가 참 못했던 그런 과목입니다. 여기 '성막에 뜰'이 있고, 이 성막의 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소'가 있었고 거기서는 '제사장들'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장소에서는 그들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 있었고, 또 그들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론과 그의 자녀들과 그리고 70명의 장로들이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먹고 마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지성소'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내산'에서 있었던 일은 '성막'에 일어날 일과 같은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성막이 이 시내산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산에서야 그 성막에 관한 하나님의 지시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리고 침례를 베푸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중요한 순서입니다. 우리는 먼저 구속함을 입었으며, 그다음에 침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침례를 받고 난 후에 우리는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됩니다.
그것은 신약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이 지역 교회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이 '하나님의 임재의 기쁨과 그 즐거움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참으로 영적으로 풍성한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다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즐거움은 에덴 동산에서 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함께 누렸던 그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그 동산은 마치 이 땅에 있는 특별한 성수와도 같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우주적인 성소'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거기서 바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누렸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 성막과 성전에서 그 하나님의 임재의 개념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에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주제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지역 교회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며, 또한 그리스도인들, 신자들의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에덴 동산의 하나님의 성소 가운데서는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다시 한 번 그 생명나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이 성막에서도 그 생명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것을 '등대'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등대를 묘사하고 있는 구절을 보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나무와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기에 가지가 있고 또한 꽃과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막에 있는 등대'는 이제 사람들이 다시 에덴 동산에 나아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이 온전한 교제를 누리고 있었던 바로 그 순간을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셨고, 우리가 그분의 임재를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은 참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에스겔서 28장에서 보게 될 때에 그 '에덴 동산'이 '산 위'에 언급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아담과 이 하와는 그들이 범죄하였을 때 그 산 위에 절정의 그 경험을 잃어버리고 떨어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제 출애굽기 24장에서는 다시 한 번 그것을 잃어버렸던 사람을 산 위로 들려 올리시고, 그 임재를 누리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내산은 이 순간 그 땅 위에 높이 들려 하늘에 닿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특별한 임재를 그들은 40일간만 누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시내산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시내산에서 그들이 누린 임재는 그들에게 있어서 충분한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광야를 계속 여행을 해야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동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도록 '성막'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내산에서 '연기와 불'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성막'에서도 그 '연기와 불'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 번제단에서, 그리고 안에 분향단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시내산에서는 그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막에서는 그 기록된 두 돌판이 이제 언약궤 안에 놓여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내산에서 그 보였던 하나님의 임재가 이제 성막 가운데 임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40일 동안 바로 그 하나님 임재 앞에서 그것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나님을 단지 '소멸하는 불'로만 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와 같이 크게 두 개의 그룹으로 분류해 보겠습니다. 1.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 바로 앞에 있는 모세의 경험'이 있습니다. 2.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두 가지 경험 중에 어떤 것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같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내가 모세와 더 비슷하다."라고 대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저는 모세와 같이 그런 영적인 거인이 아니고, 그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를 바로 그 앞에서 누리고 있다고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같이 좀 멀리 떨어진 곳에, 그 아직 진에서 보고 있는 그 사람들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저는 모세와 저를 비교해 봤을 때 참으로 제가 작아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이 동시대에 다른 앞선 믿음의 선배들을 보게 될 때에도 제가 아주 작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제가 경험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모세와 같은 영적인 거인이라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 허락됨, 그 자유함은 나의 느낌에 종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브리서 10장 19절 이 말씀을 기뻐하며 좋아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모세의 율법 아래서 이제 짐승의 피로 말미암아 1년에 한 번, 그리고 한 명만 특별한 그 시간에만, 잠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새 계명 아래서, 이 새로운 언약 아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구히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이 성막과 또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서 완전히 다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하실지라도, 한 가지는 여러분이 분명하게 아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여러분이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여러분은 언제라도, 그리고 항상 하나님 그 지성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제가 제 고향 헬리팩스에 있던지, 또한 서울에 있던지, 저는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24장에서 그만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잠시, 40일간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여러분이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언제라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전의 구약 시대보다 더 거룩하지 않게 수준이 낮아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신약의 히브리서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한 '소멸하는 불'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달라진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와 같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멸하는 불을 내뿜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멀리 거리를 두고 서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열납되었다는 것을 알고 이제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분명한 것은 말씀이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우리는 그로 인해서 확신 가운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바로 그 믿음이 우리에게 확신을 만들어 줍니다.
때때로 우리의 감정은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 느낌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지 못하고 가까이 나아가기 두려운 마음이 있지만, 하지만 믿음은 그 감정을 이기고 우리를 담대하게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간에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우리를 지지하고 우리를 확신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기 위해서 더 이상 향이나, 어떤 다른 촛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도록 도와주는 아주 그럴듯한 멋진 건물과 어떤 다른 쇼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단지 여러분의 마음을 들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께 나아가신 것처럼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고 나아가시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집회 장소이든, 아니면 여러분의 집에서든지, 아니면 여러분의 학교나 직장에서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러한 나아가는 것을 여러분이 규칙적으로 하루 일과 중에도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는 것을 기억하고 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졸려서 그것을 까먹을 때도 있지만, 하지만 항상 저는 이것을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어제 나를 인도하신 그리고 오늘 하루를 또한 그분에게 맡겨드리고 그분께 감사드리는,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간을 정해놓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규칙적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성소에 나아가는 것이 단지 어떤 제한된 규칙으로만 할 것은 또한 아닙니다. 여러분이 설거지를 할 때에도, 기저귀를 갈 때에도, 운동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할 때에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이 히브리서 10장에서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3. 이제 모세는 40일간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가운데 이제 '성막에 대한 가르침'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이 '성막'이라는 것은 아주 커다란 주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많은 장에 걸쳐서 이것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12지파가 성막을 둘러싸서 진을 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 지파씩 성막을 둘러서 진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하나님의 성막은 정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활동 가운데,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임재가 중심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 또 물론 나이 드신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지만,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이 하나님의 임재를 항상 가운데 두도록 여러분의 삶을 맞춰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내 삶에 중심에 두고, 다른 모든 활동을 다 거기에 맞춰 놓고, 이제 하나님의 임재를 시간이 남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나의 삶의 중심이 되도록 그 삶을 맞춰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사는 삶이 얼마나 바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의 임재를 우선시하고, 거기에 중심을 두고, 우리의 활동들을 맞춰 나가는 노력을 해야 됩니다. 물론 교육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합니다. 참으로 학생들이 그 학업에 바쁜 가운데서도 그 시간을 아껴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에 대해서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시험을 앞두고 이러한 집회들을 간혹 놓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그럴 때도 항상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에서도 그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둘째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육이라는 것은 결국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정 생활에서, 우리의 결혼에 있어서도 두 번째 자리가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가정이 강하고, 우리의 결혼 생각이 건강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섬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뜻을 가지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가운데 두고 그것을 둘러싸서 진을 치도록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항상 그 도형의 가운데는 절정이고, 가장 중요한 것을 놓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모세 오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5권 중에 가운데 책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는 때때로 우리가 읽기에 어려운 책이라서 회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내용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가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레위기가 '5개의 중요한 제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서양 사람으로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제사가 첫 번째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 5가지 제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의 가운데 있는 '화목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레위기에 있어서 가운데 장을 보게 될 때에 그것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절기인 '속죄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장, 속죄일에 대한 장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그 장의 가운데 있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의 그 하나님의 임재 앞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그런 구조를 통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 오경 중에서 레위기, 그리고 레위기 가운데서도 속죄일, 그리고 그 속재일에 한 사람이 1년에 한차례, 그 하나님의 임재에 바로 앞까지 나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40일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모세는 이 이동식 성막, 하나님의 임재를 여행 중에서도 누릴 수 있는 성막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4.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모세가 그 산 위에서 그 십계명을 두 돌판에 받는 그 순간에, 그 산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십계명의 첫 번째, 두 번째 계명을 깨고 있었습니다. 그 산 위에서는 그 지극히 높으신, 거룩하신 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모세가 서 있었지만, 이 산 아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앞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멸한 불로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소멸하시고, 이제 모세로 하여금 한 나라를 만드시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모세에게 한 테스트를 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그런 테스트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 대신 내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그런 테스트'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세가 그러한 테스트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모세가 이렇게 대답했을까요? "하나님 그건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이제 저로 말미암아 한 큰 나라를 세우십시요!" 만약 그가 하나님의 영광 대신 자신의 영광을 먼저 추구했다라면 그는 그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이때 그에게 있어서 좋은 것은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이 어떠한지를 40주야로 누리고 있었습니다. 참 그와 같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그 임재를 누린 사람이라면,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겸손한 사람으로 나타날 걸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민수기 12장에서는 "모세는 지면의 어떤 사람보다 온유함이 가장 승하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가 참 온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분의 영광을 40일간 본 사람은 자신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더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참 이 40이라는 숫자는 또한 '시험을 증명'하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숫자입니다. 모세는 그 40일간의 테스트를 통과한 것입니다. 모세는 그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이제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나중에 그 자신의 백성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간청하면서 심지어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도말되는 것까지도 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 하나님의 영광을 40일간 본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모세의 말은 시편 78편에 그 아삽의 시편의 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께 가까이 한 것이 내게 복이라"
5. 이제 모세는 그 두 돌판이 깨어졌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두 돌판을 들고 하나님 앞에 올라가게 됩니다. 이제 모세는 이와 같은 우려를 하게 됩니다. 그 광야를 여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인가? 그래서 34장에서 모세는 이렇게 간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않는다면 우리를 거기로 보내지 마십시요. 우리가 다른 열방들과 다른 유일한 차별점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또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유일한 특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창세기 39장에서 세 번에 걸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다"라는 언급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43장에서도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이제 우리가 이 말씀을 전할 때에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모세는 이와 같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그가 실제로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 약속을 증명하는, 그가 실제로 경험하는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간청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34장에서는 이 모세의 담대한 요청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출애기 33장과 34장에 걸쳐서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여기 기록된 것처럼 등이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에 보이도록 특별히 행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실체하신 분이며, 하나님이 실제로 임재하시는 분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인격적인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세가 본 것이 아니라 '모세가 들은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어떤 스테인글라스가 있는 멋진 건축물 안에서 어떤 향을 피워놓고 우리가 무엇을 환상이나 꿈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더욱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6. 이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모세가 받은 그 '주님에 대한 계시'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 계시하는 그런 책'입니다. 그래서 잠시 출애굽기에 대해서 개요를, 그 구조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모세 오경의 처음 3개의 책은 아주 단단하게 서로 엮여져 있습니다. '레위기'에서 중요한 것은 '속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민수기'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출애굽기 1장부터 15장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개시'됩니다. 그리고 16장부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것을 잘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모세는 두 번째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갔을 때, 이 놀라운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제 모세는 이 죄악된, 불순종하는 이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배우게 됩니다. 이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와 같은 사람들을 데리고 그 광야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내 앞에 반포하리라" 그 은혜의 이름을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34장 5절부터,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쌔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 34:5-6).
모세는 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을 때에 참으로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구나, 정말 우리가 이것이 필요했는데! 라고 공감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를 통과할 때, 참으로 이와 같은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할 때 필요한 것은 참으로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신, 은혜로우신 신실하신 하나님, 참으로 그분이구나라는 것을 그는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진실히 많은 하나님" 바로 그분이 우리 여호와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세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3장에서 그 여호와의 이름을 배우게 됩니다. 참으로 너희 모든 세대에게 이 이름을 전하라고 하며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그 말씀을, 그 이름을 모세에게 전하십니다. 그리고 6장에 가서 모세에게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알려졌으나 그들에게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 자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여호와'라는 그 표현 자체를 들어보지 못했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이름의 그 깊은 의미, 정말 그것이 무엇인지를 실제적으로 알고 경험하지는 그들이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출애굽기에 있는 그 출애굽을 경험한 사람만이 그 여호와라는 이름의 진정한 그 깊은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분의 이름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그 구속을 실제적으로 경험한 사람이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신실히 지키시는 그 하나님, 그것을 경험한 자가 이름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야훼'라는,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구속의 하나님이시고, 유월절의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출애굽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동정하시고,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모세는 이 두 번째 기간 가운데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하나님의 초월하심, 그분의 놀라우신 것들을 우리는 때때로 너무나 과소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우리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그분의 공감하심을 또한 과소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토록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참으로 놀라우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러한 놀라운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실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은 바로 그분이 또한 동시에 오래 참으시고, 은혜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다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말씀의 배경을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것처럼,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것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시지만 이제 땅의 임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 그 앞뒤의 문맥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주 슬프고 당황스러운 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제가 죄를 범하고 그것을 뉘우치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모임 밖으로 쫓아내야 되는 상황입니다. 바로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다루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처리할 때에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죄를 처리해야 될 때, 우리가 그 어려운 것을 잘 다루어야 될 때, 바로 그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모세가 바로 이 자리에서, 34장에서 배우는 그 하나님에 공감하시고, 은혜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을 배운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40'이라는 숫자를 '백성들을 테스트'하는, 이제 그들을 '증명'하는 그런 숫자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40이라는 기간은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해 보이시는 시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40일간의 그 니느웨에서 외쳤던 그 요나의 말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지를 말하는 그런 기간이었습니다. 그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한 그 기간은 또한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지를 보여주는 기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40일간 하나님의 임재를 누린 그 기간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시고, 은혜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이신지를 보여주는 기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이렇게 구하게 됩니다. 이제 자신의 어떠함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의 어떠함으로 인해서, 그 임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그분에 맞게, 그 임재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잘 알게 된다면,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 '테스트의 기간'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밝히 드러내곤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나타낸 결과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어리석은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어려운 순간마다 내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인간이었구나라는 것을 확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시간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고, 또한 강하시고, 은혜로우신지를 보여주는 기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아주 낮은 위치에서 참 하나님의 임재를 멀리서 느끼는 그러한 가운데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감정이 들 때, 저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더 강하고 그리고 그것이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임을 배우게 됩니다.
34장에 모세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은 참으로 성경의 여러 계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시의 하나입니다. 이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것은 백성들의 어떠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에 달려 있는'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신실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최근에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자신이 낯선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다면, 이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를 말씀을 통해 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으로 나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도록 크게 원하시는 분입니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잘 경청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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