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메튜 카인 형제님

성경에 나온 40과 노아

박이레 2026. 4. 20. 22:12

< 성경에 나온 40과 노아 > 메튜 카인 형제님 / 26년 4월 8일 / 말씀이 중간에 끊깁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오늘 여러분과 이 자리에 함께하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함께 하나님 말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양해 말씀드릴 것은 제가 약간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좀 이제 힘이 없는 그런 상태입니다. 양해 부탁드리고 또 집회를 위해서 또 저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창세기 6장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갖는 며칠 집회 가운데 저는 '40'이라는 숫자와 연관돼서 교제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물론 1940년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제가 40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이 성경과 관련된 40이라는 숫자, 그 4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인물들'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4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교훈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갖게 되는 많은 교훈들을 여러 인생의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특별히 이번 시간에는 '노아'와 관련된 40이라는 숫자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6장 5절부터 8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5-8).

6장 17절부터 18절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 6:17-18).

그리고 창세기 7장 1절부터 5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 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7:1-5).

그다음에 7장 11절과 12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 7:11-12).

그다음에 8장 1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창 8:1).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창 8:5).

"사십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창 8:6).

"사십일을 지나서" 여기 6절에 다시 한 번 '사십일'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앞에 '40'이라는 숫자는 7장 12절에 "사십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가 있었습니다.

"사십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창 8:6-7).

그다음에 9장 1절과 2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창 9:1-2).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 때때로는 너무 이제 과하게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분명히 성경에서 이 숫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특별히 어떤 숫자가 성경에서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것을 볼 때에 그 의미를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특별히 그러한 숫자로 7이라는 숫자와 12, 그리고 40이라는 숫자가 그와 같이 반복돼서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 몇 번의 집회 가운데 이 숫자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는데요. 특별히 오늘 읽은 이 부분에서 '40'이라는 숫자가 반복해서 나오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징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들어가라고 하신 그 땅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2명의 정탐이 그 가나안 땅에 미리 들어가서 보게 됩니다. 그들은 40일간 그 땅을 보고 나왔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루를 1년으로 해서 그들이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세의 율법에서 어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채찍으로 때릴 때에 그는 40 이상의 채찍질을 하도록 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요나서에서 요나가 니느웨 성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40일 후에 내릴 것을 말하였지만 또한 니느웨의 백성들이 돌이켰기 때문에 그 징계는 내리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그 가운데 두셨지만, 이제 사람은 그 세상 가운데 많은 죄를 관영케 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러한 가운데 40주야의 비를 내리심으로 심판을 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심판'과 관련돼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이 징계 가운데 그것은 그들의 어떠함을 실제로 '테스트'하고 '증명'하는 그러한 기간인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이제 어떤 금속을 '연단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금속들을 불에 가열해서 그 금속이 순수하게 어떤 성분을 가지고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물론 창세기 6장에서는 것은 금속을 불로 연단하는 시험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1. 우선 첫 번째로 노아가 전파한 그 '엄중한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노아에 대해서 "의를 전파하는 노아"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저는 그 노아가 전파한 그 말들이 아니라 그 노아가 그에 보이는 '행동'으로서 보여주는 엄중한 그 '전도'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참 이 홀 안에서도 많은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이 복음을 듣기 위해서 이 가운데로 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공간 밖에서 여러분이 보이고 있는 그 삶의 모습을 통해서 여러분 또한 그와 같은 엄중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어디서든 볼 수가 있습니다. 노아도 이에 그의 삶 가운데서 그와 같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렇게 노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쫓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그래서 노아가 믿음으로 서서 그의 행동으로 보이고 있는 그 복음 전파는 그가 사는 세대에서 아주 엄중한 설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그의 삶의 무게와 그 영적인 충격은 그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노아를 둘러싼 다른 세상 사람들은 그와 정반대의, 하나님에 대해서 무시하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러한 세상 가운데서 방주를 짓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미친 짓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행동을 통해서 노아는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노아의 행동은 분명히 그 주위의 세상 사람들에게 아주 큰 설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서 그의 '가족들이 먼저 그 전파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7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이 '집을 구원'하고, '세상을 정죄하는 것', 두 가지가 같이 가고 있습니다. 노아가 자신의 집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상을 정죄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노아가 그의 가정에서 가진 그 작은 가정 집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아들들, 셈과 함과 야벳을 모아서 집회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아, 우리는 이 세상을 위해서 살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고, 세상을 쫓아 사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하나님을 믿었고, 그리고 노아는 자신의 가정을 이 세상 가운데서 구원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이 노아와 대조적으로 '롯'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롯은 역시 베드로가 기록하기를 그도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세상에 대해서 건강하지 못한 그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롯은 그 자신의 가정을 바로 그 위험한 세상 가운데 두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세상은 노아가 자신의 가정을 구원하기 위하여 방주를 지었던 곳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말씀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의 가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또한 저도 이 말씀을 통해서 저의 가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저와 아내 사이에 네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2명은 지금 대학생이고, 2명은 아직 그보다 어린 학생들입니다. 저희는 그들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이들이 나중에 커서 어떻게 될 것인지, 그들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인도해야 될지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책임 하에, 또한 그들이 자신의 책임으로 그들의 방향을 정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그들에게 어떤 '좋은 본'을 보일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가르침으로써, 나는 지금 세상을 따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우리는 가정들에 대해서 나는 그들을 구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에게 안전한 방향으로 내 걸음이 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노아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아버지가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리고 세상을 정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 죄인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시스템을 하나님께서는 정죄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세상의 모든 시스템이 그 가운데 죄악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심판과 관련된 것을 다룰 때에 노아가 자주 언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감람산 광화에서 이제 장차 오는 심판을 얘기하실 때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베드로후서 2장 5절에서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그리고 베드로후서 3장 6절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세상은 물에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그런데 그 또한 "이 세상이 이제는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세상을 용서치 않은 하나님께서, 그때 그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 후에 이 세상을 이제 불로 심판하기 위하여 간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이제 노아와 그들의 아들들이 그 심판의 날에 '방주로 들어간 날'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노아의 가족들은 그들의 이웃에게 인사를 하고, 그리고 이제 방주 안으로 들어갔으며 주님께서는 그 방주의 문을 닫으시고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내신 것입니다. 그 문이 닫히고 난 후에 그 밖에 남아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래서 누가복음 17장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더니" 그들은 그들의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방주의 밖에 있는 사람들이 방주의 문이 닫히고 그 빗방울이 처음 그들에게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그들이 이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은 구원을 얻고 그 밖에 있는 자들은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 그들이 노아의 방주의 문을 두드렸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한편 그 방주 안에 있는 노아 가족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 그들의 이웃과 함께 살았었고, 또 그들의 아이들은 그 이웃의 아이들과 함께 놀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앞에서 그 홍수에 멸망당하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 노아 방주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어떤 재미난 이야기로 그들에게 들려주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얼마 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멸망당하게 되는, 이 세상이 온통 묘지로 바뀌게 되는 이제 그러한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노아의 때에 멸망을 당하였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멸망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일에 익숙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일하고 함께 공부하던 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이제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메튜 레코드'라는 사람은 1985년부터 뉴욕에서 복음을 전한 분입니다. 그 뉴욕은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이 서울과 비슷한 아주 번화한 도시입니다. 그는 이 복음 전하는 책자를 또한 쓰기도 하였는데요. '이 도시를 보라'라는 제목의 책자입니다. 이 뉴욕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아주 유명한 그 관광지를 찾기를 원합니다. 예를 들면 자유의 여신상 같은 곳입니다. 그는 특별히 뉴욕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뉴욕에 그 고층 건물들이 보이는 그러한 특정한 다리 위에 데려가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그 왼쪽 편에는 200만의 사람들이 부르클린에서 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해 줍니다. "또한 오른쪽에는 퀸즈라는 곳에 또 다른 200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면으로 보이는 멘하탄에는 역시 200만의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고, 그리고 다른 이웃 지역에서 200만의 사람들이 그 지역에 일하러 들어옵니다."라고 설명해 줍니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 그 뉴욕이라는 도시에 있는 그 수많은 영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리 밑에 보면 아주 큰 묘지가 있습니다.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아주 커다란 공동묘지입니다. 이 다리 위에 이 위치에서 저는 아주 심각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바로 그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그가 얼마나 성공했던지, 그가 얼마나 부유했고 또는 가난했던지, 그들이 어떤 기쁨과 슬픔을 누렸던지, 그들의 결국은 모두 이제 죽고 이 묘지에 묻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마포의 성도님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어떤 책임이 있습니까? 그것은 그 도시 위에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은 빛과 같이 정말 무엇이 생명이고 죽음인지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모든 사람이 전도자가 돼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임이,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이 복음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 '헬리팩스'인데요. 거기 노스 스트리 가스펠 홀이라는 곳에 모이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는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야외에 전도 활동을 나가서 또한 젊은 성도님들도 그 복음 전하는 일에 함께 참여해서 돕고 있습니다. 이 복음 전도 사역은 그 모임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복음 전도는 이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세상에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론 모든 도시의 사람들을 다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린도전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을 저는 기억하게 됩니다. "내가 모든 사람들의 복음을 위한 종이 되었노라." 이 노아는 그 주위에 둘러싼 사람들에게 아주 심각한 복음 전도였습니다.

3. 이 40주야의 비가 내렸고 그리고 이제 그것은 모든 세상을 잠기게 하였습니다. 이 노아의 여러 사건들을 살펴보게 될 때에, 그것은 어떤 숫자에 대해서 알려줄 뿐만 아니라 노아는 특별히 '어떤 모형'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어떤 특정한 사건, 그 사건이 이루어진 모습들이 또 다른 사건에서도 비슷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출애굽 사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그와 같은 사건이 '성경의 구속'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성전과 성막과 같은 어떤 특별한 구조물이 우리에게 영적인 모형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그런 말씀과 같이 우리는 장막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모형이 되기도 하고, 또한 어떤 구조물이 모형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이 모형이 되기도 합니다.
'아담'은 또한 '한 모형'으로 우리에게 제시됩니다. 그래서 이 아담으로 하여금 우리가 '두 번째 아담'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노아'에 대해서 살펴보게 될 때에 그는 또한 아담의 어떤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담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이제 아담은 특별히 하나님의 창조 과정 가운데 나타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제 노아와 관련돼서는 하나님이 그 창조를 다시 되돌리는, 거꾸로 하는 과정 가운데 언급된 인물입니다. 이제 아담은 하나님께서 그 창조의 완성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다음에 아담을 창조하신 다음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표현으로 이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세상을 보셨을 때 "죄악이 관영한 것을 보시고" 그것을 좋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이제 노아의 경우에서는 좋은 것을 보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부패한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상태는 다시 거꾸로 돌아가는, 망해가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의 순서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새를 창조하셨고, 그리고 땅에 있는 짐승들을 창조하시고, 그다음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6장에서는 그의 반대의 순서를 보게 됩니다. 그의


(36분 24초, 녹음 음성 말씀 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