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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30장 34-43절(요약)

박이레 2026. 4. 15. 20:53

성경읽기 : 창세기 30장 34-43절(요약)

라반이 가로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그 날에 그가 수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양 중의 검은 자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떼를 치니라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으로 라반의 양과 서로 대하게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실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으로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아니하니 이러므로 약한 자는 라반의 것이 되고 실한 자는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창30:34-43, 개역한글)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지난 시간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두 딸을 위해서 14년을 일했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이때 라반은 야곱을 붙잡기 위해서 새로운 제안을 하였고 야곱은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야곱의 삯이 되는 것에 대한 야곱의 제안에 라반은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입니다. 아롱지고 점이 있는것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야곱의 삯이 심히 풍부하였다고 30장 마지막에 말씀합니다.
34절부터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좀 어려운 대목인것 같스빈다. 나무 세가지로 가축들을 얼룩지거나 아롱지게 만드는 내용인데요. 이 시대에도 이런것이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야곱의 이 행동을 긍정적으로 봐야할지, 부정적으로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분쟁이 있었지만 싸우지 않고 나중에 아비멜렉을 책망했습니다. 이삭은 그랄 사람들에게 피해를 봤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라반이 잘못한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마땅히 줘야 할 삯을 꾀를 내며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가운데 야곱의 지혜와 그가 자기의 집을 세워가는 모습입니다.
저는 이 나무 껍질이 합환채와 비슷한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임신한 것은 합환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 또한 야곱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라반의 것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야곱이 라반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라반의 집을 떠나서 다른곳으로 갔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채우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이 좀 아쉬운것 같습니다.

반대로 라반을 생각할 때에 그는 긍정적인 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의 누이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이며, 자기의 딸들이 야곱의 아내고 야곱이 그의 사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과 매우 가까운 자였지만, 그는 하나님의 축복보다 재물에만 그 관심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딸들조차 그 아비가 자기들을 팔고 자기들의 재물을 다 먹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외인처럼 대우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하나님의 축복보다 재물에 더 많은 관심과 마음이 있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라반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야곱의 제안에 라반은 자기에게 유리하기에 동의합니다. 또 분리하고도 자기의 가축과 야곱의 가축을 사흘길이나 멀게 덜어뜨려놓습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라반의 방법이 나오고요. 두번째는 야곱의 방법이 나옵니다. 그런데 야곱의 방법은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야곱의 방법을 어떻게 봐야 할지도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야곱이 사용한 나무가지를 가지고 어떤 분들은 이와같은 나무가지가 동물들의 약재로 사용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야곱은 어려서부터 양을 치는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9장에서 야곱이 목자들에게 양에에게 물을 먹이라고 조언을 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야곱은 양을 치는 방법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의 경험과 지혜로 그 재산을 많이 불렸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야곱의 지혜와 경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것을 주도하셔서 이뤄주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축복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저희도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경쟁합니다. 라반의 방법이 세상의 방법으로는 옳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우리를 보고 누군가는 답답해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곤고할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더 큰 약속을 이루시기 위함임을 말씀을 통해 보며 감사드리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32절에서 야곱이 라반과 자기 품삯을 논할때 아롱진 양과 염소를 자기 몫으로 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확률적으로 어느정도가 될지 알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야곱이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교제했습니다.
그런데 34-35절을 보면 이것은 하나님을 의뢰해서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미신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자기 역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행동입니다. 31장 9절이나 11절에서 하나님께서 라반의 것을 빼앗아 야곱의 것이 되게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30장에서 하는 야곱의 미신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야곱의 품삯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라반의 악행으로 인해서 하나님게서 야곱을 도왔다고 생각할수 있고요. 또 28장에서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 하셨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우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볼 때에 아브라함의 삶에서는 서너번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이삭의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음에도 야곱이 아니라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한 실수가 있었습니다. 야곱의 경우는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능멸했습니다. 그들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믿음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저 자신도 생각하게 됩니다. 내 삶의 전반에 거쳐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고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시종일관 주님 뜻대로 살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안에 있는 옛 습관으로 인해서 연약한 실수들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전혀 실수를 하지않는다고 말한다면 요한일서 1장 말씀처럼 자기에게도, 또 하나님께도 거짓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시고요. 또는 육신적인 방법으로 자기 뜻을 행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시는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34절부터 보면 라반이 야곱의 삯을 정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자기의 양들과 야곱의 양들이 삼일길을 멀어지게 합니다. 이는 약 60km정도 되는 거리이며, 또 그 양들을 자기의 아들들에게 맡기므로 야곱이 그 양떼를 찾아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부하게 만드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철저히 대비한다 해도 사람이 부하게 되는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안에 달려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은 라반의 양들을 다 맡아서 기르고 쳤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계략을 알았지만 그에 반발하지 않고 잠잠히 양을 칩니다. 그리고 야곱은 여러가지 방법을 양들에게 사용합니다. 세가지의 나무가지 라거나, 양들이 물을 먹으러 올때에 가지를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생각하기에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일을 이뤄주시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의 방법을 썼습니다. 그렇기에 저도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하신 말씀을 따라서 야곱에게 축복하십니다.
야곱이 양들이 물을 마실 때에 건강한 양, 약한 양이 오는것을 따라서 가지를 놓고 치우는 일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 시간에 그런것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교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라반의 이기심과 야곱이 자기 생각대로 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통제하시고 그 약속하신 일을 이뤄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이기적이고 꾀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낮아지고 종처럼 수고하게 됩니다. 그는 오랜 노동과 기다림 속에서 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43절에 보면 야곱을 '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야곱에게 나타난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은 라반의 사위고 품꾼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한 세력을 가진 사람으로 일어났기에 그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희도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알고 감사드려야 하는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형제님들께서 이 부분을 다르게 보시는 것 같아서 잘 교제하는것이 좋아 보입니다.
31절에 보면 라반이 무엇으로 삯을 줄까 물어봅니다. 이에 대해서 야곱은 라반의 소유가 늘어난 것은 저와 계신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몫의 일부를 자신에게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35절 이하의 내용은 차치하고)야곱이 인간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야곱이 제안한 것은 아롱진것과 점있는 것이 자신의 것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는 그 수가 미미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협상할 때에 이 협상은 미련한 협상입니다. 누가 봐도 야곱이 손해보는 것이 뻔한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라반이 이에 대해서 바로 응해 버립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야곱의 삯이 될지로 모를수 있는 아롱진 것과 점있는 양들을 제거해 버립니다. 이에 대해서도 야곱은 라반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 제안한 야곱이 믿음의 행동이 아닌 행동을 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37절이하의 내용들은 무어냐라고 한다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야곱은 많은 어려운 삶들을 통해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1절과 같은 결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흐름으로 볼 때에 세가지 나무 가지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낸 것은 야곱의 목자로써의 노하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31장의 내용을 보면 야곱은 굉장히 성실한 사람임을 알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 사람의 육이 드러나려면 시작부터 육적인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시작은 영적으로 했는데 중간에 육이 드러나는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요셉이 태어났을 때에 야곱은 벧엘로 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31장 3절에 들어서서 하나님께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처음에는 육신의 연약이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다루심으로 점차 변화되고 완전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그러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이 야곱의 삶에서 볼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