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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 성경에 기록된 7번의 유월절(요약)

박이레 2026. 3. 29. 13:55

성도 : 성경에 기록된 7번의 유월절 / 26년 3월 29일 일요일(요약2) / 조재훈 형제님

성경에 기록된 일곱번의 유월절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특별히 일곱번 유월절을 지킨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지킵니다면 여호와의 유월절이 아니라 유대인의 명절로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지킵니다.

애굽, 광야,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이 지켜지고 네번째부터는 예루살렘에서 지켜집니다. 첫번째 유월절은 매우 특별한 유월절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그 문인방과 좌우 설주에 발라졌습니다. 그 이후의 유월절은 그 첫번째 유월절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번째 유월절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 앞은 모형이었다면, 마지막 유월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첫번째 유월절은 죄와 속박에서 구속받았고, 광야에서는 더러움에서 구속받았습니다. 여리고 평지에서는 기업으로 얻을 땅을 바라봅니다. 네번째 예루살렘에서 그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집합적으로 그들은 지켰습니다. 각 부분을 짧게 살피기를 원합니다.

첫번째 애굽에서의 유월절입니다. "우리의 유월절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이는 풀어서 자유케 하는 것인데요.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게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도록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이유는 우리 마음대로 살게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제 기쁨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흘리신 피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말합니다. 첫번째는 구속하신 분입니다. "예수의 피", "이 사람의 피", "이 의로운 사람의 피" "주의 몸과 피" 피흘리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시며, 의로우신 사람이십니다. 두번째는 구속의 성취에 대해서 표현합니다. "어린양의 피" 이분이 하나님의 마음가운데 있었던 한 어린양이십니다. 세번째는 구속의 장소를 말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리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네번째는 구속자의 동기를 말씀합니다.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주님은 자기 피를 흘리기 원하셨습니다. 다섯번째로 구속의 견고함을 봅니다.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주님은 그 피로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여섯번째로 구속의 가치를 봅니다.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피를 말합니다. 아벨의 피는 복수를 말하지만 주님의 피는 구속을 말합니다. 일곱번째로 구속을 찬양합니다. "당신의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서 새 노래로 찬양을 드립니다. 구속을 찬양하는데 이 표현이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이 피는 얼마나 보배로운 피입니까?

이제 우리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을 봅니다.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게 하라 그 정기 곧 이달 십사일 해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찌니라 (민9:1-3, 개역한글)

첫번째 유월절을 지키고 1년이 지난후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제정하실때도 매년 이를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1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하나님의 구속의 시간과 하나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구원은 그 즉시 그날밤에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상기시키시는 것처럼 정시에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1년동안 참 많은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그들의 기억을 희석했을까요? 어쩌면 광야에서 지키는 것은 너무나 번거로운 일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애굽의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을까요? 어찌되었든간에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그날 유월절의 날을 기억하고 나눌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다시 뜨거워졌을 것입니다.
우리도 갈보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우리의 마음이 식을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분주하며, 세상의 것으로 평안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갈보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 필요를 아시고 매주 만찬때마다 주님을 기억하게 하신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주님의 구속을 다시 기억하고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주님으로 신선케 되고, 모임으로 모여 주님을 사랑하기에 성도들을 섬기는 일들이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너희는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구원간증을 할때에 우리 자신의 마음이 뜨거워질 때를 경험합니다. 그 이유는 갈보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 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수5:10-12, 개역한글)

세번째 유월절이 지켜진 것은 여리고 평지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대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할례를 받았고, 새로운 인도자가 있고, 새로운 땅이 있었고, 새로운 음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적들도 있습니다. 여리고성은 단단한 성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앞에 있는 적을 이길수 있을까요? 그들의 힘이 그들에게 있었다면 그들은 낙심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시 유월절을 지키게 하십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강력한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은, 그 강한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킨 것은 그들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앞에 놓여진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것은 우리의 처음입니다. 우리의 처음은 나의 능력으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주님께서 해주신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을때의 동일한 원리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고, 그 후에 또 알게 되는 것은 은혜 위에 은혜요, 믿음에서 믿음으로, 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봄으로 또 영광에서 영광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힘과 격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2, 개역한글)

귀하신 아들의 피로 구원하신 우리를 아버지께서 어찌 우리를 떠나실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사실을 믿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할지라도 말입니다.

남은 시간에 4,5,6,7번째 부분을 함께 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야라 스가랴의 딸이더라 (대하29:1, 개역한글)

원년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편 광장에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 (대하29:3-5, 개역한글)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찌라도 하나님이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음을 인하여 히스기야가 백성으로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대하29:36, 개역한글)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대하30:1, 개역한글)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의 많은 무리는 자기를 깨끗케 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에 어긴지라 히스기야가 위하여 기도하여 가로되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찌라도 사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 (대하30:18-20, 개역한글)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통달한 모든 레위 사람에게 위로하였더라... (대하30:22, 개역한글)

유다 왕 히스기야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칠천을 회중에게 주었고 방백들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일만을 회중에게 주었으며 성결케 한 제사장도 많았는지라 (대하30:24, 개역한글)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대하30:26, 개역한글)

이 모든 일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대하31:1, 개역한글)

요시야가 위에 있은지 십 팔년에 그 땅과 전을 정결케 하기를 마치고 그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대하34:8, 개역한글)

요시야가 예루살렘 여호와 앞에서 유월절을 지켜 정월 십 사일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니라 왕이 제사장들에게 그 직분을 맡기고 면려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사무를 행하게 하고 (대하35:1-2, 개역한글)

너희 형제 모든 백성의 족속의 차서대로 또는 레위 족속의 차서대로 성소에 서서 스스로 성결케 하고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너희 형제를 위하여 예비하되 여호와께서 모세로 전하신 말씀을 좇아 행할찌니라 요시야가 그 모인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과 수소 삼천을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 (대하35:5-7, 개역한글)

이에 규례대로 유월절 양을 불에 굽고 그 나머지 성물은 솥과 가마와 남비에 삶아 모든 백성에게 속히 분배하고 그 후에 자기와 제사장들을 위하여 준비하니... (대하35:13-14, 개역한글)

아삽의 자손 노래하는 자들은 다윗과 아삽과 헤만과 왕의 선견자 여두둔의 명한대로 자기 처소에 있고 문지기들은 각 문에 있고 그 직임에서 떠날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저희를 위하여 예비하였음이더라 (대하35:15, 개역한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정월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케 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무릇 스스로 구별하여 자기 땅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을 버리고 이스라엘 무리에게 속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다 먹고 즐거우므로 칠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스6:19-22, 개역한글)

세 유월절을 지킨것을 봅니다. 전부 예루살렘에서 지켰습니다. 각각 10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지키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월절은 다 하나님의 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 때에는 하나님의 전이 성결케 되어야 했고, 요시아 때는 수리되어야 했으며, 에스라 때에서는 하나님의 전이 다시 지어져야 됐습니다.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있던 모든것이 버려졌습니다. 하나님의 전의 수리도 백성들이 드린것으로 오랜 시간에 겨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전은 새로 지어집니다.
오늘날 지역모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것들이 버려져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주신 은사대로 기능해야 합니다. 또 어떤 지역모임은 슬프게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세워져 가야 합니다. 이 엄청난 영적인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우십니다. 능히 하나님은 이 일을 이뤄가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된 성도들을 통해서 오늘날 이 일을 이루십니다.

히스기야는 그 필요를 알았을때 자기가 즉위한 그날부터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16일만에 이뤄졌습니다. 그 일은 갑자기 시작됐습니다. 그는 그것을 알았을때에 바로 순종했습니다.
요시아 때는 하나님의 전을 수리하다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그들의 소명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게으르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에스라서에서는 모세의 율법대로 각 제사장들이 자기를 정결케 했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소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처소에 분명히 서있는가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신 분명한 처소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보기에 작은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큰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또 이 왕들은 자기의 것을 희생해서 섬겼습니다. 히스기야도, 요시아도, 레위 사람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어린양을 준비하고 희생하고, 그 일이 다 된 후에야 그들과 그들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의무는 아니었지만 자원함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지역모임 안에는 그와같은 것이 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짐지워서 성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며, 요구해서 지역모임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기에 섬기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제물을 드렸을뿐 아니라 성경케 하지 못하고 제물을 먹은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또 히스기야는 레위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했습니다. 그 일이 힘든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지역모임의 말씀 가운데 그같은 격려가 있습니다. 우리의 하는 그 일은 세상은 그 가치를 알수 없지만 그것은 굉장히 위대한 일입니다.
다섯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본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인도자들이 그 본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본을 따라서 섬기는 일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요시아가 드렸을때 방백들과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즐거이 드렸습니다. 또 에스라가 본을 보였을 때에 이방 가운데서 다시 돌아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모임에서 우리가 먼저 본으로 섬겨야 합니다.
여섯번째, 하나됨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시선을 주님께 두면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십니다. 히스기야는 유월절을 지킬 때에 저 멀리있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오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주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성도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번째로 큰 기쁨이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때에 지역모임에도 그 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신 분은 우리 주님입니다. 구약의 경륜 가운데 드려졌던 유월절은 여기서 끝납니다. 그 실체이신 주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십니다.
유월절과 만찬을 이어서 생각하게 되는데요.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22:14-20, 개역한글)

14-18절까지가 마지막 유월절이고 19절부터 주의 만찬이 기록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주의 만찬이 반복적으로 실행되었음을 봅니다.
유월절과 주의 만찬은 연결되어 있지만, 이는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유월절은 매년, 주의 만찬은 매주 지킵니다. 유월절은 모형입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만찬은 상징입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말하고 있고, 주님은 이것을 이미 해석해 주셨습니다. 단순한 상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떡인지, 어떤 포도주인지를 논란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유월절은 대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 경륜 가운데서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은 폐지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년왕국 때에 유월절이 지켜지는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유월절이 지켜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에스겔서 45장에서는 어린양이 나오지 않고 송아지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구속하러 오신 주님이 아닌 그 모든 일을 이루신 주님을 섬기게 되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만찬은 정해진 기한이 있습니다. 주의 오실때까지 이 주의 만찬이 지켜질 것입니다. 이일을 주님 오실때까지 해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