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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언 : 보배로운 믿음의 시련(요약)

박이레 2025. 12. 7. 11:28

덕언 : 보배로운 믿음의 시련 / 25년 12월 7일 일요일(요약) / 박형섭 형제님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1:7, 개역한글)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1:18-19, 개역한글)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6-9, 개역한글)

베드로 전서는 여러가지 특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보배롭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1장 7절만 가지고 교제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희생 사역을 하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가 생각할 때에 그 믿음은 참으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는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사람은 그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행동이 나타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만큼, 또 우리가 받은 놀라운 구원을 아는 만큼,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배로운 피로 구속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없어질 것이 아니라 흠없고 점없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시련이"으로 시작합니다. 이 시련은 우리 인생에서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시련이 멈추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의 연약함으로 자초한 시련도 있지만, 우리를 포기하게 하려고 하는 원수로 말미암아 더욱 시련을 당할수밖에 없습니다. 이 베드로전서는 베드로 사도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쓴 서신입니다. 우리 인생은 나그네 삶에 대해서 절감하는 세대입니다. 그러나 이후의 부요한 세대는 나그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나그네의 삶을 어떻게 살것인가 생각할 때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우상숭배하는 곳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대에 그 약속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430년의 긴 세월이 흐른 후에, 또 광양의 4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비로소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 가나안 땅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이방민족보다 더 뛰어나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아브라함의 목동들과 자기의 목동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자 아브라함의 제안에 그가 원하는 땅을 선택합니다. 아브라함은 먼저 롯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지만, 롯은 나그네의 삶을 포기하고 정착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성으로 가서 거기서 재판관 노릇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롯은 나중에 정착하면 취득한 돈과 명예를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고 자기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 때에 왜 흩어졌을까 생각할 떄에, 스데반의 사건도 있고, 교회에 대한 핍박으로 인해서 흩어진 것입니다. 타향살이는 다 아시다시피 힘들고 서럽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한순간, 한순간 말할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믿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가진 믿음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가장 가치있고 보배로운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련이 온다해도 그 누구도 빼앗을수 없는 견고한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련은 옵니다. 성경에서 시련은 금속을 제련하는 과정으로 말씀합니다. 이는 금속 속에 함유된 불순물을 제련해서 순전한 광석을 얻는 것입니다. 곧 제련, 시련을 통과하는 과정은 신앙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병사가 얼마나 용감하고 용맹한지는 평상시에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용맹함으로 알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무가 얼마나 뿌리가 깊이 박혀 있는지 가시적으로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폭풍우가 휘몰아칠때 그 나무나 쓰러지지 않고 견디는 것은 그 뿌리가 깊이 박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바다도 바람이 없을 때는 잔잔하고 고요합니다. 그러나 푹풍이 불면 그 바다의 사나워짐은 말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해안가에 잠잠히 견디는 바위는 그러한 폭풍 가운데서도 그대로 있습니다.

이 믿음의 시련을 사도는 잠시 잠깐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고난은 성도의 삶에서 성도를 첫째로 겸손하게 합니다. 이 시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적당히 짝하고 살아갈 때에 시련이 다가온다면 정신을 차려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그분의 믿음의 역사의 손길을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목적하신 바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비록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룻기 2장에 보면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시작은 우연히 일어납니다. 우연이라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것, 계획에 없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의도치 않게 고난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고난을 통과해 낼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을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간 것은 우연이었겠지만, 1장에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에 나오미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축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르게 된 것은 창세기 25장에 늙은 종이 이삭의 신부를 구하러 가는 길의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계획을 두시고 목적을 두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룻의 삶에 미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고, 여호와의 계보를 잇게 하십니다. 룻이 어떻게 이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연약하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서 쓰실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나를 단련하셔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계획은 내가 성숙할 때에가 아니라 내가 연약할 때에 시련을 통해서 나를 제련하신다는 것입니다. 시련이 올 때에 넉넉히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목적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실패한 인생을 산다고 평가를 받을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보시지 않으십니다. 보배로운 평가를 받는 사람으로 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