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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을 수 있습니다.(요약)

박이레 2025. 12. 7. 12:49

복음 :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을수 있습니다. / 25년 12월 7일 일요일(요약) / 박형섭 형제님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19:10, 개역한글)

여기서 '인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아들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낼 계획을 세우시다가 때가 되었을 때에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체를 입고 아들 하나님을 보내셨습니다. 인자는 한자로도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에대한 대전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 종교는 자기를 찾아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하소연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너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위안을 얻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은 가만히 있지만 오셔서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었을 때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얘기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예수님께서 이땅이 오실것을 200번 이상이나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몸을 통해서 이 땅에 나셨습니다. 그분은 인자의 모습을 가지고 계시고,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써의 신성을 동시에 가지고 계십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1:15, 개역한글)

먼저 거꾸로 확인해 보면 "죄인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 서신을 기록한 사도바울의 자기 고백입니다. 사도바울은 세상적으로 스펙이 제일 좋은, 아주 훌륭한 가문의 많은 훌륭한 학문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 이름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또 스데반이 순교당할때 그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그때에 자기가 전혀 잘못이 없고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서 믿고보니, 하나님을 아는것 같은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율법을 아는것 같은데 죄만 생각하는 자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잡아서 옥에 넣을 때에 얼마나 마음에 뿌듯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첫마디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입니다. 사울은 물었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았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구원받고 난 이후에도 자기가 여전히 부족한 죄인임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부르신 부름에 충실되게 걸어갈수 있게 합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할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나는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인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감사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기록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15절)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감동으로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도 하였도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땅에 오셨을까요?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그것을 인정한다면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구원받음의 첫걸음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인정하든 하지않든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보다 먼저 자기가 어떤한 자인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죄를 안고 있는채로 가만히 있으면 지옥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건짐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을 우리 스스로의 행위로 이룰수 없습니다. 죄를 진 채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수 없습니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2, 개역한글)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오실 때에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그분만이 죄인을 구원하실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죄값을 지불해야 하고, 그 값을 지불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17:11, 개역한글)

죽음이라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닌, 내팽겨쳐진 인생을 말합니다. 살아있으나 죽은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죄인은 죽은자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죽은 생명입니다. 또 더 나가서는 하나님 없는 인생은 어리석다고 합니다. 창세기 22장에 가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질문합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지만 희생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에 대한 신약의 답변은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입니다. 이 어린양은 성경에 예표적으로 우리 주님을 상징합니다. 첫사람 아담이 범죄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 가죽옷은 짐승이 죽어야만 생기는 것입니다. 곧, 짐승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찾아오십니다. 그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입니다. 자기 동생을 죽였습니다. 가인의 동생 아벨은 어린양을 죽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제사는 반복적인 피흘려진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제사는 단번에, 한번만 드려진 희생제삽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제사는 화목제사로도 불리웁니다. 우리 주님의 한번 드려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화목해 졌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개역한글)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일을 직접 이루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느니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1:21, 개역한글)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사람을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는가요? '잃어버린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첫번째 것은 양입니다. 그리고 그 양을 찾았을 때에 잔치를 합니다. 두번째는 드라크마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동전을 찾기위해서 집안을 쓸고 치우고 찾습니다. 그리고 그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에 잔치를 벌이고 기뻐합니다. 마지막 세번째로는 탕자, 잃어버린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에 잔치를 벌립니다. 이것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은 잃어버린 것을 반드시 찾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자기 마음에 안들면 직원도 내보냅니다. 그러나 잃어버렸다는 것은 반드시 되찾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을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잃어버린 자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는 목자없는 양으로 비유합니다. 양을 돌보는 목자는 그 양을 위해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꺼이 자기 몸을 양을 위해서 내어주셨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나이가 많은 오래된 분이 계십니다. 그분께 왜 믿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을 때에, 하나님도 예수님도 믿지만, 그 말을 믿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서 못믿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앞뒤가 안맞는 이상한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전자파도 눈에 보이지 않고, 바람이나 중력의 힘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또 눈앞에 벽으로 가로막혀 있으면 그 너머도 보지 못합니다. 또 우리 마음의 문제도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이 뭔가에 채워져 있다면, 그 말하는 사람을 싫어한다면 어떤 말도 그 듣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믿을수 있는 분이십니다.
도마라는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보지 못했기에 믿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오셔서 내 못자국난 손에 손가락을 넣어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받은 흔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자가 복되도다."

또 내가 가진 상식과 지식은 세상의 수많은 상식의 극히 일부입니다. 그렇기에 내 지식과 상식으로 이해되는 하나님은 있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해가 되어야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말도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 (히11:1-3, 개역한글)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해가 가지 않아도,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해가 가지 않아도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놋뱀 사건입니다. 불뱀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어서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사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놋뱀을 바라보면 살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놋뱀을 쳐다보고 살았습니다. 놋뱀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놋뱀을 바라보면 살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나아만 장군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구한 훌륭한 장군이었지만 문둥병자였습니다. 그때 히브리 작은 여종이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 가면 그 병이 나을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가고 엘리사는 나와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담그라고 합니다. 이는 상식적이지 않은 말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화가나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부하들이 그것이 무슨 큰일인지, 그대로 해보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그 말을 듣고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담갔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이 두가지 일화의 공통점은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7-18,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아도, 상식적이지 않아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사64:6, 개역한글)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의인인체 하지만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나갈수 없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 심판을 받는 것에서 건짐을 받는것이 구원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 개역한글)

은혜라는 것은 자격이 없는 자에게 선대하는 복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또 다른 말로 하면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을만한 어떤 자격도 없습니다. 죄악으로 가득차고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인하여'는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받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얻는 사람 편에서의 근원은 믿음입니다. 믿어야만 구원을 얻을수 있습니다. 또 그 구원의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개역한글)

놀라운 약속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가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을수 있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저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롭다 함을 입고, 영생을 얻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