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교회가 다른 교회들의 본이 될수 있었던 이유/ 25년 12월 7일 일요일(요약) / 박형섭 형제님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행17:1-4, 개역한글)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17:11, 개역한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교제하고자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하면 유럽에 있는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세 안식일동안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친 교회입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1:1-4, 개역한글)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것이 없노라 (살전1:7-8, 개역한글)
데살로니가 지역은 애초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지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아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극히 짧은 기간만을 머무른 지역이며, 쫓겨나듯이 떠나게 된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사도바울이 굉장히 칭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짧은 기간동안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그들은 사도바울의 본을 따르고, 지키며, 다른 교회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이 성도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11월 29일날 시흥모임에서 중국 선교 보고를 하고 끝난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교제를 했습니다. 그 내용 중에 믿음의 다음 세대가 잘 보이지 않음을 교제 했습니다. 주님께서 더디오시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때까지 모임은 유지되고 보존되고 존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세대와 세대를 거쳐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상식적이지 않은것은 하나님께서는 잘 훈련되고 숙달된 사람을 쓰실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을 들어서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 부족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갖는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짧은 세 안식일동안 세워진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의 감사가 되는 교회였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6-17, 개역한글)
디모데를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미리 준비하시고, 경험하게 하시고, 일꾼으로 쓰셨습니다. 하루 아침에 준비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주님 만난 후에 3년이나 그 고향에서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같이 연약한 교회도 어떻게 칭찬을 받게 되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살전1:3, 개역한글)
그들이 이런 놀라운 감사의 제목이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 생명이 있으며, 그들의 환경이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명하는 것도, 데살로니가 교회의 공통된 특징은 그들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특징은 살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흩어진 곳마다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저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떻게 본을 받고 복음을 제시하고 놀라운 일들을 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행17:2, 개역한글)
강론이라는 것은 가르치기도 하고 질문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성경읽기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들은 첫째로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절에 "뜻을 풀어"라고 합니다. 그 뜻을 푸는 것이 그들에게 필요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말씀을 맡은 자로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장성한 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생명의 말씀을 부탁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강론하고, 증명하고, 전파하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 나갈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행17:4, 개역한글)
그리고 믿음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믿음의 길을 갈수 있을까요?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17:11, 개역한글)
말씀을 상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힘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본을 통해서 시간을 내서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살전5:9-10, 개역한글)
우리의 믿음은 혼자가 아닙니다. 지체된 성도들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듯이 우리도 세상에 대하여 못박혀야 합니다. 예수를 귀히 여기고 예수를 따라서 살고 있습니까? 세상에 대해서 내가 죽은 자인가요?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는 죽었지만, 하나님께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서는 산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것이 없노라 (살전1:7-8, 개역한글)
저희들은 소문을 쫓아가면 안되지만 믿음의 소문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그들의 믿음의 소문으로 구성된 것은 세가지입니다.
하나는 살아있는, 일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행위, 역사는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 그 믿음의 역사에 우리는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의 역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믿은대로 사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믿은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수고를 거기에 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은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은사대로 섬겼는데 누군가 상처를 받고 있다면 문제가 됩니다. 반대로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면 옳게되는 것입니다. 교제는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의 내용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는 교회를 세우는 쪽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제는 격려, 용기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찢어버리고 낙망케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격려와 용기가 사랑의 수고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진리와 사랑이 함께하게 되면 견고하게 서게되고 참다운 위로와 격려를 할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가장 큰 특징은 '수고'라는 낱말이 붙습니다. 사랑은 받는것이 아니고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준다는 것의 공통된 특징은 수고가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우리에게 먼저 주셨습니다. 그래서 먼저하신 사랑입니다.
세번째는 소망의 인내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먼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으로 소망으로 여기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이 소망이 없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할지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소망과 인내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우리가 소망을 붙들지 않으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그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망은 미래에 이루어질 약속을 오늘로 끌어당겨서 오늘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되게 합니다. 그러면 왜 여기에 인내가 필요할까요? 이 소망은 쉽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 어쩌면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단6:1-2, 개역한글)
여러분이 다니엘의 이야기를 많이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서 사람들이 덫을 만들고 다니엘을 사자굴에 집어넣습니다. 왕은 다니엘을 구원하고자 했지만 방법이 없어 결국 다니엘을 사자굴에 집어넣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리오왕의 고백을 들어보면 이를 우리가 알수 있습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단6:26-27, 개역한글)
다리오왕의 고백은 매우 굉장한 고백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방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다니엘의 삶을 보고 이와같은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미래의 소망을 현재로 끌어당겨서 인내하는 것이 이러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내세울것이 없다 할지라도 그러나 내가믿는 하나님은 결코 부족한 분이 아니고, 연약한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계시는 하나님,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붇드는 것만큼 안전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변함이 없고 언제나 살아계신 분입니다. 그분을 믿는 것은 우리에게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집을 마련하시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영원한 집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4:18, 개역한글)
이 소망을 약속으로 붙들고 있는 성도들의 교제의 내용은, 그 소망을 서로 나눔으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위로와 힘은 하나님의 약속을 서로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붙들고 서로 위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살전5:10, 개역한글)
"자기와 함께 살게하려 하셨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 하라 (살전5:11, 개역한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개역한글)
저희들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 믿음의 역사에 동참하고, 사랑의 수고에 동참하고, 소망의 인내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맡기시고 부탁하신 것들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5:23-24, 개역한글)
우리는 개인적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순종하는 데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력을 불어 넣으시고 힘있게 하셔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가운데서 멈추지 않고 낙심치 않고 소망의 인내의 길을 가기를, 여러말로 위로하면서 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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