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덕언 : 여호와 샬롬

박이레 2026. 3. 18. 18:27

< 덕언 : 여호와 샬롬 > 한봉래 형제님 / 26년 3월 15일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삿6:4).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삿 6:11).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6:14).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삿6:21-24).

제가 이 시간에는 여호와 이름이 들어간 "여호와 샤롬", 또 이렇게 '여호와 닛시', 이와 같은 '여호와'가 들어간 복합적인 이름을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이 이제 '여호와 샬롬'입니다. 여호와 샬롬이 무슨 의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기드온이 단을 쌓고 여호와 샬롬,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셨다. '하나님이 나의 평안이다'라고 하는 제 이름을 불렀는데요.

잠깐 배경을 보면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7년 이제 범죄해서, 우상을 섬겨서, 바을 숭배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있습니다. 몇 년간 징계하셨냐면 7년간 미디안의 식민지 통치를 받게 하셨습니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는데요. 이 미디안은 좀 독특한 정책을 취합니다. 이 미디안은 이스라엘 땅을 점령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게 아니고 이스라엘 놔둡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추수할 때가 되면, 곡식을 거둘 때가 되면 와가지고 싹 잡아갑니다. 이스라엘에 먹을 것을 남겨두지 않고 완전히 가지고 자기 나라로 가버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은 먹을 게 없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이제 벌어진 일입니다.
우선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제 여기 '여호와 사자'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 여호와 사자는 사실 저희들이 주님이죠.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인지도 모르고 대화하다가 이분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것입니다. 죄인이, 지금 기드온은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지만, 그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하고 있는, 범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한 사람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 죽는 겁니다. 출애굽기에 한번 나와 있죠.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느니라." 또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기드온 같은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납니다. 안 죽고, 그래서 그가 감사해서 단을 쌓고 "여호와 샬롬", 이렇게 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만나서 당연히 심판하고 죽이셔야 되는데 나를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나와 평안한 관계를 이루셨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도 말씀하고 이와 같은 평안한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를 감사해서 '여호와 샬롬' 이렇게 한 것입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어떻게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평안한 교제를 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가 이제 여기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삿 6:20-21).

그러니까 세 가지입니다. 고기가 있고요. 고기는 이제 '번제'입니다. 짐승의 고기를 태워드리는 건 이게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무교전병은 이제 무교병이니까, '주님의 죄 없는 생애'를 의미합니다. 무교병은 죄가 없는 주님의 죄 없는 생애, 그리고 고기는 주님의 번제, 그리고 또 하나가 국이죠. 국은 이렇게 이제 쏟아붓는 거니까 '전제'입니다. 그리고 반석은 주님의 변함없는 '성품'입니다.
그러니까 기드온은 이걸 안 겁니다. 이제 우리가 이해하는 식으로  용어를 바꿔보면 기드온은 자기가 징계 가운데 있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고도 그가 살아남았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그러면 예수님께서 기드온과 이스라엘과 모든 세상 죄를 지고, 그런데 이분이 누구냐 그러면 무교병이니까 죄 없는 생애를 사신 분입니다. 이분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이분께서 번제를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사는 누가 드리셨냐면 죄 없는 생애를 사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드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제사를 드리되 전제니까 '자원'해서 드린 것입니다. 강요 당하지 않고 주님 스스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드리신 것입니다. 이걸 보고 그가 "여호와 샬롬"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고 살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제사를 우리를 위해서 자원하여 기쁨으로, 기쁨으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이 십자가를 믿는 기드온은 이제 하나님 앞에 평안하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게 이제 기드온이 여호와 샬롬, 이렇게 한 거예요.

잠깐 적용해 보면 기도원은 뭘 한 사람이냐면 밀을 확보합니다. 다시 이제 상황을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미디안이 공격을 해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냐면, 적이 공격을 해와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니까 전쟁에서 제일 우선순위는 뭘로 삼냐면 그들이 숨어서 목숨을 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부 굴이나 뭘 파고 전부 들어가 숨어버렸습니다. 숨는 건 좋은데 숨으면 어떻게 돼 있냐면 목숨은 구합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죠? 양식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미디안이 와서 곡식이라는 곡식,은 먹을 것은 싹 훑어가버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살아남았는데 먹을 게 없습니다. 이 양식이 없는 거죠. 이게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기드온은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밀을 확보합니다. 이게 전부 영적으로 뭐냐 하면 예수님이 누구신가, 무엇을 하셨는가, 그러니까 번제, 무교병, 전제죠. 무교병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와 전제는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알 때 그는 하나님과 평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부 일단 사는 게 중요하다. 생명이 살아남아야지 하고 양식을 구할 수 없는 땅속으로 숨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이렇게 숨으면 가나안 땅에 사는 게 아니다. 가나안 땅에 어떻게 살아남냐? 나는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양식을 구하겠다. 그래서 그 밀을 확보한 사람, 그 사람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기드온은 그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압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났으니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가 하나님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단을 쌓은 것입니다. 이제 첫 번째는 이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가운데 아무리 어려운 일이 벌어져도 우리가 평안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아는 사람이 이 굉장한 갈등, 이 전쟁, 또 징계 속에서 하나님과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두 번째, 하나님께서 이 기드온을 사용해서 미디안을 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요구합니다. 기드온에게 "네가 미디안과 싸워라." 기드온이 자기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나중에 보면 300명으로 싸워야 합니다. 숫자 줄여서 300명밖에 안 줍니다. 그리고 그리고 싸워서 이기라고 합니다. 이 죽는 게 뻔한 임무를, 이거 이대로 했다가는 죽는 겁니다. 그런데 이 죽는 게 뻔한 임무를 그가 평안하게 해갑니다. 그리고 승리를 쟁취해냅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7장 13절 보시죠. 그가 이 전쟁이 승리할 거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13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저기 미디안 군 진지를 가봐라." 그래서 진지를 갔더니 미드한 군인이 서로 이렇게 대화를 하는 거예요.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이게 미디안 군인입니다. 그 동무에게 동료 군인에게 꿈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꿈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꾸는 꿈하고 다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꿈으로, 환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 군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가 이제 말하는데 꿈을 꿨는데 꿈에 보니 한 보리떡 한 덩어리가 이게 기드온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 우리 군대 우리 부대로 굴러 들어와가지고 우리 부대를 무너뜨려버렸다." 이렇게 말한 거죠. 미디안이 어떻게 기드온이 어떻게 미디안을 그 수많은 군사력이 강한 미디안을 승리할 수 있었냐? 그가 '보리떡'이기 때문입니다. 떡이라고 하는 게 뭐냐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엇을 하신 분인가를 아는 지식입니다. 이걸 확보한 거거든요. 이 하나님이 누군가를 알기에 그가 승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성도님 잘 아시는 대로 기드온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나가냐면 항아리에 횃불을 감추어 두었다가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드러내고 소리를 지릅니다. "기드온의 칼이여! 여호와의 칼이여!" 미디아인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고 집니다. 기드온이 쳐서 승리한 게 아닙니다.

이 부분을 이제 신약으로 오겠습니다. 이제 고린도후서에 표현돼 있거든요. 이걸 이제 신약으로 오면 사도 바울에게 적용을 해 봅시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6-7).

"질그릇" 이게 기드온의 항아리입니다. 기드온이 항아리와 횃불로 미디안과 싸웠듯이 이제 신약에 와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워갑니다. 성도님들 잘 아시지만 고린도 교회처럼 문제가 많은 교회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그랬죠. 또 뭐가 있죠? 음행이 있었죠. 또 6장에 가보면 성도들 사이에 송사가 있었죠. 그리고 놀라운 것은 고린도전서 11장에 가면 만찬 때 어떤 사람은 취하고 어떤 사람은 배부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찬 예배에 참여한 고린도 성도를 심지어는 죽이셨습니다. 누구는 병 들고, 지금 고린도 교회가 이렇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제 결정적인 것은 고린도전서 15장에 가면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게 지금 교회입니까? 이 고린도 교회를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답게 변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때 사도 바울이 사용한 게 이 "질그릇의 보배"입니다. 그래서 항아리는 질그릇이고, 그다음에 이제 보배는 예수그리스도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이렇게 돼 있는데요.
잠깐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은 이 감당할 수 없는 육신적이고, 세상적이고, 불순종하는 이 고린도 교회를 그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기에게 능력이 없다는 걸 압니다. 자기는 항아리죠. 그런데 자기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아는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빛을 이제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그가 아냐면 고린도후서 1장 3절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기꺼이 고린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방문하고 또 변화시킬 수 있었냐 그러면 그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게 그에게 고린도 교회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고, 스트레스 속에서도 이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

"자비의 하나님이요, 위로의 하나님"입니다. 이게 그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섬기면서 그의 마음속에 생겼던 여러 가지 걱정과 안타까움과 그 모든 것들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에게도 이 세상에서나 혹은 여러 가지 갈등이 있을 때, 교회적으로나 갈등이 있을 때, 저희들이 이걸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

그다음에 두 번째, 2장에서 그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경험하냐면 '항상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자기가 잘못했을지라도, 이게 보면 드로아에서 떠난 거거든요.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해서 걱정이 돼서 이렇게 전의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간 거거든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실패한다 할지라도 승리를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이렇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

우리는 구약 율법하의 일꾼들이 아닙니다. 새언약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셨다라고 하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장으로 가겠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우리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영원한 영광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이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게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그가 끝내 실망하지 아니하고, 물러서지 아니하고, 계속적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입니다. 이게 '평강의 하나님'입니다. 이게 "여호와 샬롬"입니다. 이게 구약의 기드온에게 있었던 것이고 신약의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여호와 샬롬"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안한 관계를 맺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이제 미디안을 치게 만듭니다. 어떻게 미대안을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까? 항아리와 횃불로 이깁니다.
저희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갈등과 고통 속에 있습니다. 심지어는 모임 안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안다면,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이 하나님과 평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난관들을 실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고, 우리의 작은 능력으로 우리의 항아리 같은 육체 가운데서 놀라운 횃불을 밝히며 승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도우시고 대전 중구 모임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