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덕언 :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 - 쓴물, 고난을 만났을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박이레 2025. 12. 24. 14:58

< 덕언 :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 - 쓴물, 고난을 만났을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한봉래 형제님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2-26).

아멘, 제가 성경에서 '여호와가 들어간 이름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창세기에서 '여호와 이레'를 살펴보았습니다. 창세기 22장에서 나오는 거였죠.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이 우리 필요를 항상 보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다. 이게 이제 여호와 이레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이름은 출애굽기에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이걸 우리나라 성경에는 표현이 안 돼 있는데요. 이게 '여호와 라파'입니다. 혹은 이제 그 발음에 따라서 '여호와 로페카',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가 들어간 두 번째 이름이 '여호와 라파'입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 그다음에 우리를 치료하는 하나님입니다.

내용을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은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왜 찬양을 했냐? 출애굽을 했는데, 그들이 이제 애굽을 나와서 가고 있었죠. 아직은 애굽 땅이죠. 이제 나왔지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준 바로가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이거, 잘못 풀어줬나?' 물론 유월절에 모든 초태생이 다 죽었기 때문에 내준 건데, 그래도 이 이스라엘 백성이 나가는 것을 아깝게 생각해서 군대를 동원해서 체포해서 다시 애굽의 종으로 삼으려고 뒤쫓아왔습니다. 그 군대를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수장시켜버렸습니다. 그걸 보고 이스라엘이 찬양합니다. 이 찬양은 이런 의미를 갖습니다. 이제 우리를 다시 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답니다. 다시 달리 표현하면 이것입니다. 이제 나는 완벽하게 자유다. 나는 해방되었다라고 하는 확신을 갖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양했습니다. 이제 그들을 다시 종 삼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애굽을 지나 그다음에 이제 광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가나안으로 가야죠. 광야로 갔는데, 광야에 한 3일 길을 갔는데 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물을 찾아보니까 물이 있기는 있었어요. 그런데 쓴 물이었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을 종 삼을 수 있는 외부 세력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다시 종 삼게 만드는 내적인 세력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 고난이 생기면 원망하는 이것을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외부적으로부터도 그리고 내적인 적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운 이스라엘을 만드시는 장면입니다. 여호와 라파 인데요.

하나님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우리가 다 지금도 그렇잖아요.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죠. 그런데 실제 삶에서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이렇게 우리를 대하시는가?'라고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치료하십니다. 이제 어떻게 치료하시냐 하는 거죠. 이 치료 상태는 이렇게 돼야 됩니다. 야고보서 1장 3절인데요. "너희가 시험을 만나거든" 그다음에 어떻게 돼 있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입니다. 저희들이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을 살고 이제 주님 공중에 오시면 이제 주님 계신 곳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 여러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때 우리 마음속에 어려움이 생기면 오히려 이렇게 해야 합니다. 기쁘다. 그럼 어떻게 어려움이 생겼는데 기뻐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선 먼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코스를 하나 과정을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이렇게 생각하면 딱 원망이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다. 그다음에 두 번째,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 두 가지 논리를 씁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나에게 주셨지? 이게 이제 원망으로 가는 코스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 무덤 앞에 오십니다. 나사로 무덤 앞에 오셔서 어디 두었느냐 저기 뒀었느냐 그러시고 우십니다. 주님이 우십니다. 주님이 우시는 것을 보고 문상 온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평가하냐면, "정말 나사로를 사랑하시는구나. 정말 사랑하신 분이다." 이렇게 이제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논리가 이렇게 됩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9장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했거든요. 그걸 본 사람들이 있거든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나사로의 병을 고칠 수는 없었냐?" 이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원망하는 코스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말해놓고 진짜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일을 주셨냐? 이게 잘못된 코스입니다.

그러면 이제 올바른 코스를 보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렇게 가야 합니다. 첫 번째입니다. 히브리서로 가겠습니다. 성경 2개만 찾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이 쓴물을, 이제 물이 써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할 때 하나님의 해결책이 뭐냐 하면 나무를 보여줍니다. 나무, 그러면 저희들은 금방 해석합니다.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2장이 설명합니다. "예수", "믿음의 주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죠. 그리고 " 이제 믿음이 있어요. 믿음이 있는데도 어려움을 만나면 불평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믿음이 믿음답게 되는, 고난이 오면 오히려 찬양하는 이 믿음을 주시는 분이 예수그리스도십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했냐? 십자가를 지신 분이죠. 그런데 왜 십자가를 졌냐?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뭐였냐? 이제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첫째는 우리들이죠.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그로 인해서 구원받을 영혼들을 보시고 십자가를 참으신 거죠. 그다음에 또 하나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그 즐거움을 인하여 참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대속의 죽음을 죽도록 보내셨으니까, 그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이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거죠. 그다음 세 번째입니다. 이 대목을 말하려고 하는 건데요.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뭐냐 하면, 주님 자신이 임무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죽으러 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면 내가 이 땅에 온 목표,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 있는 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마침내 어떻게 됐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거죠.
이제 우리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 11절 보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그 십자가의 쓴물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통과하셨냐? 주님이 통과하실 때 주님은 마음이 어땠냐? 앞에 있는 즐거움을 보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 12:11).

"슬퍼보이나" 물이 왜 쓰지? 쓴 물이 왜 있는 거야? 왜 구원받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왜 나한테 어려움이 있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렇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하나님께서 그걸 주신 이유는, 또 거기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걸린 이 병은 애굽 사람의 병과 다르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어려움과 다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어려움은 자기 잘못으로 주어진 것이고, 또 심판이고, 이런 거지만 믿는 사람에게 주어진 병은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미워서, 싫어서가 아니고, 그를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도록 준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권하는 "의의 열매를 맺도록"입니다. 다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의의 열매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믿는 자들을 어떻게 부르시냐면 의롭다 하십니다. 선언하는 거죠.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근거로, 그걸 믿는다고 하는 믿음을 근거로, 이들은 의인이다. 이렇게 하시는 겁니다. 신분적으로 의인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이제 항의하죠. "그렇지만 사는 거 보니까 별로 의롭지 않은데요?"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의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의롭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들은 의로운 삶을 산다. 이걸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오면 이 고난을 통과하여 의의 열매를, 내가 하나님이 선언하신 의인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신분적일 뿐만 아니라 상태적으로도 의로운 사람인 것을 이 땅 가운데서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라고 이해할 때,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칩니다. "네가 내 계명을 지키면" 이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 쓴물을 주었냐 하면" 하면서 이제 가르친 거죠. 그래서 저희들이 이와 같은 말씀을 말씀들의 원리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들의 삶에 어려움이 왔을 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의 열매를 맺을 좋은 훈련을 받는 것이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고난 하면 금방 이제 이 구절이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죠.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서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찬양은 순전한 찬양이냐?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이냐? 이제 그런 찬양이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찬양이죠. 그런데 이 찬양에는 약간의 불순물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자기에게 좋은 일이 생겨서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무사히 건넜다, 내가 이제 안전해졌다라고 하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익 때문에 찬양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불순물을 빼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순금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설령 애굽 군대에 의해서 죽었다 할지라도 그것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이스라엘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고난을 통해서, 고난이 어떤 효과가 있냐면요. 성경이 이렇게 말해요. 고난을 당하면 죄를 그칩니다. 평안할 때 자기들이 막 자기 마음대로 죄를 짓고 살거든요. 하나님이 고난을 주면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하나님께 엎드리고, 기도하고, 그리고 내가 아니고 주님께 시선을 돌리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불순물을 제거해서 뭘 만들려고 하는 거냐면, "예수그리스도로 나타나실 때" 그리스도께서, 이제 우리로 치면 주님 공중에 오시고, 살아있는 자는 몸이 변화되고, 죽어 있는 자들은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그리고 공중에 올라갈 것입니다. 공중에 올라갔을 때 우리 이제 눈으로 주님을 뵐 것입니다.
그때 어떤 있기 위해서냐면 첫 번째, '칭찬'입니다. 여기 칭찬이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면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데 이걸 다시 말하면, 주님이 이제 공적으로 천사들과 모든 성도 앞에서 교회 앞에서 어떤 성도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한다. 그가 고난을 통해서 순전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내가 인정한다. 이게 칭찬입니다. 이거 받아야 돼죠.
그다음에 두 번째는 '영광'입니다. 영광은 뭘 가르키냐면 그가 나를 닮았다. 사람의 영광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가진 성품을 사람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영광스러운 거죠. 이 영광을 만들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존귀'는 이런 뜻입니다. 성경에서 이제 이런 표현들이 있는데요. "많은 사람을 주께 돌아오게 한 사람은 하늘의 별처럼 빛나리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가 고난을 믿음으로 통과하는 모습을 통해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구나를 알게 하고, 또 연약한 성도들이 담대한 믿음을 얻게 하고, 그래서 그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쳤다. 이게 존귀한 자입니다.

이 세 가지를 얻도록,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도록 하나님이 고아내신 방법이 '쓴 물'입니다. 그리고 쓴 물을 나무로 치료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저희들이 배워서, 저희들이 이제 오늘은 주님 앞에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하니까 마음의 평안이 있죠. 기쁨이 있죠. 그러나 세상에 나가면 이제 광야로 들어가면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 어려움이 들 때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참 힘들다. 하나님 이거 면제해 주실 수 있는데, 하나님 능력으로 이거 해결해 주실 수 있는데, 이걸 왜 해결 안 해 주시고 나로 하여금 이 고난에 들어가게 하셨는가? 라고 하는 생각이 들 때 주 구절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믿음의 주의 온전케 하시는 주님께서도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 그리고 또 우리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가는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만나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와 같은 말씀들이 저희의 마음에 새겨져 있어서, 실제 저희들의 삶에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 이 말씀이 우리를 움직이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