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의” / 한봉래 형제님 / 26년 5월 3일 일요일
안녕하세요. 오늘은 예레미야 23장 말씀 보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5-6).
아멘, 몇 군데 조금 더 성경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3-24).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30-31).
"기록된 바" 이제 구약 성경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제가 이 덕언 에 여호와 이름이 들어간, 여호와하고 또 다른 이름이 추가된 이름들을 쭉 살펴보고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이렇게 쭉 살펴보고 지금 여섯 번째입니다. 23장에 보시면 "여호와, 우리의 의" 이건 원어로 해석을 하면, 언어는 안 적어놨습니다. 번역을 해놨는데 '여호와, 우리의 의', '하나님이 우리의 의가 되셨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걸 보면 우선 스토리를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썼는데요. 예레미야는 북이스라엘이 아니고 남쪽 유다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유다의 마지막, 유다가 바벨론 포로 될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그가 다섯 왕을 섬깁니다. 요아스부터 해서 여호아하스, 그다음에 이제 저희들이 아는 여호야긴, 그다음에 여호야 김, 그리고 시드기야, 그래서 유다 왕조의 마지막 다섯 왕 시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나라가 바벨론의 멸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되어 가는 그 비극적인 상황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해라." 바벨론이 이제 침략해 오는 거죠. 이스라엘은 반항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항복해야 한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이다. 저항하지 말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여야 된다. 바벨론의 공격을 저항하지 마라."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매국노다!" 이렇게 했던 거죠. 우리나라 침략군에게 항복해라고 하니까, 이게 이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래서 당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바벨론 포로를 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놀라운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됐냐?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의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먼 미래를 예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의가 되는 시대가 온다. 순종해라." 하나님이 우리의 의가 되신다. 우리의 행위가 우리 의가 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의 친히 의가 되시는 시대가 온다. 그게 다윗의 후손이, 다윗으로부터 나오는 한 가지니까 다윗의 후손이죠. 그분은 의로운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의가 되어서, 유다와 이스라엘이 한 나라가 되어서, 지금은 이제 분열돼 있지만,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사라져버렸죠. 그런데 이스라엘도 회복되고 유다도 회복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때가 온다. 이게 천년 왕국입니다. 지금까지 안 온 겁니다. 교회 시대가 끼어 있죠. 이걸 예언했던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잠깐 말씀드리려고 하는 포인트로 넘어가면, 왜 그 당시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을까요? 우리에게 적용해 보습니다. 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 십자가의 구원을 전하면, 왜 사람들을 안 믿을까요? 그때 사람들이 안 믿었던 것처럼 지금 똑같습니다. 이 두 개가 지금 평행선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안 믿었던 이유를 대보겠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이 공격해 온다. 우리는 진다. 항복해야 된다." 라고 말을 했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이 안 받아들였습니다. 안 받아들인 이유가 첫 번째 이유입니다.1. 그들에게 솔로몬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습니다. 성전은 뭐냐 그러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런데 좀 강하긴 해도 바벨론이 어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을 이기겠느냐?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게 이제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이렇게 합니다. 솔로몬 성전 앞에 가서 말합니다. "여기가 여호와의 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마라. 하나님 여기 안 계신다."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제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는 "아니, 저기 성전이 있는데" 그 성전은 무참하게 훼파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와서 불 질러버립니다. 이게 이제 이스라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2.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이스라엘이 현실적으로는 애굽하고 동맹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공격을 받으면 애굽이 전쟁에 개입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세계 정세상 애굽은 최강의 나라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미국입니다. 미국과 한미 동맹을 갖고 있으니까 이제 안전한 거죠. 이게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성전이 있었고 최강국 애굽과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바벨론에 지지 않을 것이다. 저항해야 된다, 싸워야 된다. 승리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 그래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왜 예레미야의 말을 안 받아들였냐? 예레미야의 말이 어리석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말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전이 있는데 뭔 소리냐? 애굽이 있는데 왜 진단 말이냐?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왜 안 받아들이느냐?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왜 안 받아들이느냐?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면 구원하실 수 있는데 십자가에 죽어버렸다는 겁니다. 피 흘리고, 이 십자가에 피 흘리는 이 죽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겁니다. 그런 구원이 어디 있습니까? 죽지 않고 살아서 강력한 현실적인 기적과 능력으로 구원해야지, 죽어버렸는데,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오늘날 전합니다. 2천년 전에 유대 땅에서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나한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게 어떻게 내 죄를 용서한단 말이냐? 이게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2.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입니다. 그들이 안 믿은 두 번째 이유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별 볼 일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인정받지 못한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에 대해서 나중에 찾아오시면 그가 아나돗 출신입니다. 아나돗이라고 하는 것은 저희들이 열왕기를 보면 이제 계보가 있죠. 제사장이 누구냐면 아비아달이라고 하는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비아달이 줄을 잘못 섭니다. 이제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이렇게 즉위해야 될 때, 반역한 사람들 중에 반역은 압살롬이 반역을 했고요. 열왕기상 1장에 보면 누가 반역을 하나면, 아도니아가 반역합니다. 아도니아가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합니다. 이때 이 아도니아가 왕이 되려고 할 때 아비아달이 그 편에 섭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즉위한 후에 아디아달은 반역자죠. 죽여야 되죠. 그렇지만 제사장이니까 죽이지 않고 아나돗이라고 하는 곳에서 살게 합니다. 변방, 변방에서 솔로몬이 쫓아버린 이 아나돗 출신이 예레미야입니다. 그가 전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그는 정통성이 없네." "제대로 된 제사장 아니구먼." 이렇게 하고 있는 거죠.
우리도 십자가를 전합니다. 사도들이, 그런데 사람들이 왜 안 믿었냐? 십자가 메시지가 안 믿어지고요. 그다음에 메신저가 이상합니다. 사도들이 보니까 대표적인 베드로가 누구냐면 어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죠. "학문 없는 범인" 우리쪽 성경을 공부한 적이 없는, 예를 들면 어디 성경은 아무나 아는 게 아니고 그 당시에 랍비들이 있었고, 이런 걸 가르침을 배우는 데 있죠. 거기 가서 잘 정통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고, 누구 밑에서 잘 율법을 이렇게 배우고 지키고 한 사람이 아니고, 갈릴리, 예루살렘도 아니고 갈릴리 그 이방 땅, 거기에서 어부였던 사람이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안 받아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저희들이 복음 전하면 물어보죠. "교파가 어디신가요?" "공부는 어디서? 신학은 어디서 하셨나요?" 메시지도 이상하고 메신저도 이상합니다. 그래서 안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희들입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믿게 됐는가? 그 당시 천년 왕국에서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의가 되셨다." 라고 편안하게 주님의 축복을 누릴 사람들은 누군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믿는가?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시면 이제 주님께서 이렇게 물으시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다 틀린 대답입니다. 주님에 대해서 굉장히 높이 평가하지만 틀린 대답입니다. 그다음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옳게 대답하죠.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죠. 그리고 주님이 이렇게 하시죠.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니라." 우리는 왜 믿게 됐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리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혜로워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제 '지혜'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또 하나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이 이렇게 돼 있죠. 창조하는, "하나님 어두운 데서 빛이 비추리라 하시던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춰주셨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사람의 지혜를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뭘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인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에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고린도전서로 오겠습니다. 고린도전서 아까 찾았던 1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인 것입니다. 다시요, 그 앞에 가보시면 26절에 보시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세상 지혜, 사람의 지혜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지혜를 사용하면 믿을 수 없습니다. 이게 논리적으로 '이게 뭐가 되나' 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내 지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게 천년 왕국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자기들의 지혜, 예레미야 말을 배척했던 그 지혜를 버리고, 자기들은 미련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지혜를, 그 말씀을,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에게 오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면, 그다음에 이렇게 30절에 보면 "지혜가 되셨"습니다. 4개를 말했는데, 지혜, 의, 거룩, 구속, 인데요. 고린도전서는 '사람의 지혜'를 말합니다. 1장부터 4장까지는 사람의 지혜입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이렇게 사람의 지혜를 말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의 지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지혜가 되시면, 그리고 나면 세 가지가 주어집니다.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됩니다. 예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면, 십자가로 인한 구원을 받아들이면, 죽음으로 인한 구원을 받아들이면, 그는 의인이 됩니다. 의로운 자가 됩니다. 신분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됩니다. 의이 됐을 뿐만 아니라 두 번째, 그는 점점 거룩해져 갑니다. 거룩함이 됩니다. 의로워지고 그다음에 이걸 보통 성화라고 합니다. 신분이 의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이제 상태가 의롭게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구속이 됩니다. 구속은 항상 종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세상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를 자기를 위해서 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죄를 짓지 않고, 이제는 의외의 종이 되는 자유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호와가 우리 의다'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의가 되냐? 사람들은 자기 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의가 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 지혜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지혜,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을 놓고,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 같이 높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이 "하나님이 우리의 의가 되셨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1절에서 이제 자랑하는 자는 뭘 자랑하면 안 된다고,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해라. 내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더니 나는 하나님이 구원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를 의롭게 하시는 분이고, 나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시고, 나를 마침내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 앞에 서게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를 자랑하라.
저희들이 지금 계속해서 수양회 기간 동안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생각과 충돌하면 내 생각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면서, 내 실행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행으로 변화시키는 그와 같은 일들이 저희 가운데 있고, 또 주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계속해서 구도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구원받는 역사,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성도들이 변화되는 역사가 대전 중구 모임에 계속해서 있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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