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덕언 : 여호와 이레 -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며 필요를 채우신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박이레 2025. 12. 22. 21:31

< 덕언 : 여호와 이레 -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며 필요를 채우신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한봉래 형제님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 22:1-3).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창 22:7-8).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 22:13-14).

아멘, 제가 저번에 요한복음에서 "나는 무엇 무엇이다."라고 하는 7개 말씀을 쭉 살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하고 이름이 붙여진 예를 들면, '여호와의 이레', 또 '여호와 샬롬', 이제 이런 하나님의 복합적인 이름을 쭉 한 6개쯤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첫 시간으로 '여호와 이레'를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 이레는 이제 성도님들이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을, 네가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받치라."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이 순종합니다. 여기 3절에서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순종하려고 하는 이 모습을 통해서 저희들이 굉장한 도전을 받는 거죠.
우선 하나는 이게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님 사이의 관계를 그림자로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것을 아버지 하나님이 창세기 전에 계획하시고, 그것을 우리 주님이 이 역사 가운데 실제로 순종하신 놀라운 것들을 이제 그림자로 표현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이제 아브라함의 경우를 맞춰보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명령을 순종할 수 있었을까, 제가 여러 번 이런 부분에서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위해서 네가 죽어라라고 하면 할 겁니다. '아들을 위해서 네가 목숨을 내놔라', 그러면 그걸 할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너는 살고 이삭을 죽여라'라고 하는 이 명령을 어떻게 아버지가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것을 순종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 대목에서 저희들이 첫 번째로 배우는 것은 그동안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다음에 쭉 인도해 오셨잖아요. 13장에서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고,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하나님과 믿음으로 동행하는 삶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배운 게 딱 하나가 있습니다. 그가 결코 놓치지 않고 그가 배운 것,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경우라도 순종하는 게 옳다.' 이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이렇게 이제 배웠습니다.
그걸 어떻게 배우냐?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예를 들면 아들을 준다. 아니 어떻게 아들을 준답니까? 결혼한 지 수십 년이 돼도 아들 하나 없었는데,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라의 제안을 따라 하갈을 취해서 아들을 낳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 그들이 수년 동안 낳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이루신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경험한 거죠. 그래서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이 여기까지 올라간 겁니다. 저희도 여기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이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아무리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보여도, 그걸 순종해야 된다. 이걸 배운 겁니다. 로마서 4장이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할 때 그렇게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매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그런데 이 말씀은 참으로 믿으면 안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믿으면 바보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믿고 의롭다 함을 받은 거죠.
그래서 이제 아브라함이 놀랍게 이 말도 안 되는 명령을, 그럴 리가 없는 명령을 그가 순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나중에 사사기에 보면 입다가 있거든요. 그 입다에 대해서 이제 정말 딸을 죽였을까? 정말 딸을 제물로 바쳤을까? 그가 맹세를 하고, 그가 약속을 하거든요. "하나님이 이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면 제 집에서 나오는 첫 번째 사람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전쟁에 승리를 해서 집에 들어올 때 자기를 환영하는 게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기를 기대했을까요? 그런데 딸이 나오는 거죠. 무남독녀인 딸이 나오는 거죠. 그래서 이제 많은 형제님들이 그럴 리가 없다. 딸을 제물로 들였을 리가 없다. 이게 성경 역사상 없는 거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딸을 처녀로 살게 했을 것이다, 이렇게 자꾸 해석을 하죠. 그런데 저희들이 아무리 봐도 딸을 죽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게 말도 안 되는 걸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사기의 사자들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무지했는가, 지금이라도 취소해야 되는 맹세를 자기가 한 번 맹세했다고 하는 자기의 자존심 때문에 그걸 끝까지 지켜낸 입다에 대해서 저희들이 생각하는 겁니다.
아브라함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을 재물로 바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 우상들이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걸 하라고 할 리가 없죠. 그리고 이삭을 주셨는데 이삭을 통해서 후손이 나와야 되는데요. 아직 이삭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자녀 하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식을 통해서 손이 나와야 됩니다. 그러니까 모순된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순종하려고 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빛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창세기 22장, 전번에 저기 5월달인가요? 성경 읽기 할 때도 제가 한번 했었죠. '아브라함의 믿음의 절정이다.' 이렇게 저희들이 표현하고 했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이제 아브라함 놀라운 믿음으로 가고 있는데 이삭이 물어보는 거죠. 보니까 칼도 있고 불도 있고 나무도 있고 다 있는데, 번제 할 것은 다 있는데, 막상 번제의 가장 중요한 양이 없는 거죠. 그래서 물어보는 거죠. "아버지 번제할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죠. 그리고 이 대목에서 이제 많은 형제님들이 이렇게 교제하죠. 구약에서 이삭이 하나님에게 번제할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고, 그다음에 신약에 침례 요한이 대답하는 거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고 예수님을 제시하는 게 이제 구약과 신약에 맞아떨어지는 거죠.
그런데 제가 여기서 보면 이 아브라함이 대답해야 합니다. 번제해야 할 어린 양이 어디 있냐?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놀랍게 대답합니다. '여호와 이레'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자기를 위해서 준비하실 것이다." 이제 이 문장을 저는 히브리어를 모릅니다마는, 여러 형제님들이 어떻게 이 문장들을 해석하냐면, 하나님이 '직접 친히', 하나님이 직접 준비한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아브라함을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준비할 것이다. 이렇게 하고 어떤 분은 이 문장을 해석을 '하나님이 친이 하나님을 준비하실 것이다.' 이렇게 또 해석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이런 문장입니다. 그런데 하여간, 어쨌거나 이제 아브라함이 놀라운 대답을 한 거죠.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준비하실, 내가 준비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준비하실 것이다." 이런 표현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하고, 이제 이삭을 결박하고 잡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잡지 말라, 그러시고 눈을 들어보니까 양이 한 마리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양으로 대신했는데, 이렇게 잠깐 보시면 그런 이야기도 했었죠. 저희들이 이삭이 물은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할 때 '어린 양'은 발음이 비슷한데 영어로는 렘입니다. 그래서 lamb입니다. 이게 '어린 양;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걸려 있는 양은 '수양'입니다. 이건 다 자란 양입니다. 이건 스펠링 다릅니다. RAM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는데 실제로 준비한 것은 수양이 옵니다. 그럼 어린 양하고 수양하고 용도가 뭐가 다르냐, 이런 것도 저희들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어린 양은 번제할 때 쓰는 거거든요. 이 수양은 '속건제'에 씁니다. 죄를 위한 대속 제물로 나오고 있는 거죠. 이제 그런 것들이 있는데, 오늘은 이제 이 대목 하나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 불렀다는 거죠. 그리고 뜻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 여호와의 이레에 대해서는 이렇게 한 뜻만 강조해서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 이게 이제 '이레'라고 하는 단어가 '보다'라고 하는 뜻이 있고요. '하나님이 보다'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우리에게 뭐가 필요한지,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본다라고 하는 단어에는 그냥 그냥 본다는 게 아니고 우리의 필요를 보고 우리의 필요를 주신다. 우리의 필요에 맞게 공급해 주신다. 이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이게 이제 여호와 이레,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시고, 그리고 그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다. 이게 여호와 이레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다.'

이걸 신약으로 바꿔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인가요?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게 로마서 8장 32절이 신약에 있는 여호와 이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라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왜 이렇게 강조되냐면, 이제 보통의 경우에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 현실을 살고 있는, 이 지저분한 현실,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죄악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나하고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나의 상황 가운데 함께 들어오시고, 그리고 내 필요를 보시고, 내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다. 이게 '여호와 이레'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멀리 계시고, 또 거룩하게 딴 데 계시는 분이 아니고,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경우는 이제 하나님 말씀 듣고 사흘 길을 갑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은 어디서 말씀하셨을까요? 아마 하늘에서 말씀하셨겠죠. 그리고 이제 아브라함은 사흘 길을 왔으니까 이제 하나님과 괜히 떨어져 있는 거죠. 그런데 그게 아니고, 지금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여야 되는 그 상황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그 상황을 보고 계시고, 그리고 필요한 양을 공급해 주셨다. 이게 이제 여호와 이레입니다.
오늘도 여러 형제님들이 감사하시면서 나온 건데 하나님도 뭘 주셨냐?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결혼식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그 포도주를 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또 이걸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신약으로 와서 이제 대조해 보면, 신약에서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이 주신 것 중에 대표적인 게 뭐냐 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거 줘라. 사람들은 많고 날은 어둡고 이들을 그냥 집으로 보내면 그들이 가는 길에 기진맥진할까 내가 염려가 된다." 제자들이 아, 그러니까요. 이런 상황 되기 전에 저희들이 미리 보내고, 그렇게 자기 스스로 해결하게 하죠라고 제안했었죠.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안 하시고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 계속합니다. 그랬더니 빌립이 "이거 200 데나리온이 필요한데요."
또 안드레가 "우리가 가진 건 이거 하나인데요". 이렇게 하죠. 그런 곤란한 상황을 놓고 그다음에 주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말하는 게 뭐냐?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물론 육체적인 필요입니다마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늘 공급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렇게 합니다.

그다음에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제 진전 시키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데 사도 바울에게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는 사도바울에게는 뭘 주셨냐? 사단의 가시를 그 육체에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우리 생각에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주실 것 같아요. 그런데 성경은 또 다른 국면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고난을 주신다. 그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주신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세 번이나 기도해도 듣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은혜가 족하다." 내가 은혜를 안 줘서 그와 같은 고난이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사랑하셔서 은혜로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 이게 이제 여호와의 이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채우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따라 주시는 것 중에 하나가 고난입니다. 왜요? 사도 바울은 왜요? 그가 높아지지 않도록,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많으므로 그의 마음이 높아지지 않도록, 그가 다시 옛날처럼 예수님 믿기 전에 그 마음이 높아서 믿는 자들을 핍박해야 된다고 확신하고, 그리고 남녀노소를 이끌어내고 핍박했던 그와 같은 일이 그의 생애에 반복되지 않도록, 그래서 사도 바울이 생각하는 건 이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죄 중에 제일 나쁜 죄가 뭐냐? 교만한 것입니다. 이게 제일 큰 죄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보통 이렇게 말하죠. 예수님을 거절한 것이 제일 큰 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이제 죄 용서를 제안하셨습니다. 믿는 자마다 죄가 용서된다. 이걸 거부하는 것입니다. 왜요? 마음이 높은 거죠. 죄인이 아니라고 하거나, 죄에 대해서 다른 해결책을 생각하고 있거나, 이런 거죠.
그리고 이제 저희들에게 이렇게 이제 적용해 보겠습니다. 저희들이 이제 월요일부터 또 세상을 살면서 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이제 친구들의 믿음을 저희들이 실제 삶에서 적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니엘의 친구 3명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꿨거든요. 그래서 그 꿈에 나온 그 신상을 이렇게, 그건 이제 신상 만들라고 한 게 아니죠.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다음에 모든 사람에게 절해라, 이렇게 한 겁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친구 셋이 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 느부갓네살에 화가 나서 세 사람을 부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회유합니다. "혹시 몰라서 그랬냐? 이게 지금 너희들이 얼마나 큰 문제 앞에 있는지 잠깐 실감이 안 나서 그런 것 같은데, 다시 절해라. 안 하면 풀무불에 던져버리겠다." 풀무불에 던지면, 사람을 용광로 속에 넣는 거잖아요. 그러면 내가 왕이고, 내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용광로는 바로 옆에 있고, "이걸 던지면 어떤 신이 어떤 방법으로 이걸 건져내겠냐? 그러니까 절해라." 그때 이제 다니엘의 세 친구가 한 말입니다. "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용광로건 뭐건 나를 구할 수 있다." 당신 생각에는 이게 뭐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다. 내가 있는 곳에 함께 계시고, 나의 상황 속에 함께 오셔서, 나의 필요를 아시고, 나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두 번째,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약속이 없으니까 이제 겸손하게 이렇게 하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절하지 않는다." 이게 저희들이 이 여호와 이레를 아는 사람들의 실제 삶에서 저희들이 어려움이 생기면, 믿음과 말씀과 반대되는 일이 우리에게 재난이 들어왔을 때 우리가 이렇게 하기를,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내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분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말씀을 어긋내지 않겠다. 이게 저희들이 필요한 태도라고 느껴지고요.
그래서 이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피할 길이 뭐냐? '여호와 이레'입니다. 하나님이 이 상황 속에서 나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다라고 하는 믿음, 아브라함이 갖고 있었던 믿음, 말씀이 아무리 이상해도 하나님 말씀은 순종해야 된다라고 하는 이 믿음, 그 믿음이 여호와의 이레로 나타나고, 그것이 저희들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서 주님께 영광이 되고, 저희들의 믿음이 간증이 되는 그런 삶이 이어지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