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창세기 27장 14-29절(요약)
그가 가서 취하여 어미에게로 가져왔더니 그 어미가 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리브가가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삭이 가로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창27:14-29,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14절부터는 속이는 가운데서 에서처럼 보이기 위한 변장을 하고 이삭을 속입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웠기에 여러가지를 판별할수 없었고, 그가 가진 다른 감각으로 에서인지를 판별하려 했으나 야곱에게 속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음성이 에서인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미심쩍지만 에서라 확신하고 에서에게 축복한다고 생각하고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을 받은 자는 야곱이었습니다.
14-29절까지 야곱과 이삭의 대화를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4절부터의 내용은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구속계획이 인간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어떻게 잘 성취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야곱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아버지를 속일 준비를 합니다. 이삭은 의심하지만 그 손을 만져보고 에서라고 판단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순적히 만나게 하셨다는 말로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잘못된 태도를 보입니다. 이러한 리브가와 야곱의 계략에도 불구하고 결국 야곱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축복을 받습니다.
이삭의 축복은 단순히 아버지의 소망이나 인간적인 바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계보입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할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의 언약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번 선포하면 되돌릴수 없는 언약의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속임 때문에 언약을 이루신 것이 아니라 이미 계획된 섭리대로 그 언약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14절부터의 내용은 이삭이 속아서 축복했다는 것이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지만 이 일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성취하고 계시는 가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과 잘못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심을 보여줍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제가 이부분을 봤을 때 야곱이 이삭을 속였다기 보다는, 물론 야곱이 이삭을 속였습니다. 그러나 리브가가 준비한 것들로 야곱이 이삭을 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정말 에서가 맞는지 의심합니다.
12절에서 야곱이 주저하는 듯한 말을 합니다. 이런 반응은 제가 볼 때에 일정부분 합당한 말입니다. 그런데 13절에서 리브가는 확신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리브가가 확신 가운데 말하니까 야곱이 어머니를 믿고 따랐습니다. 실은 이러한 확신을 이삭이 주어야 했던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리브가가 그렇게 한 것이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리브가의 확신은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방법을 도입한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리브가가 가져온 염소새끼로 별미를 만듭니다. 그리고 맏아들의 의복을 취합니다. 이 의복은 이삭이 그 아들이 에서인지 확인하는 키로 작용합니다. "그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27절) 또 리브가가 준비한 염소새끼의 가죽으로 이삭이 야곱을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는 장치가 됩니다.
야곱은 처음 거짓말을 했기에 계속 거짓말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삭은 목소리는 야곱인데 에서라고 하니까 세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험을 통과할만한 장치를 리브가는 전부 준비합니다. 이를 통해서 리브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24장에서 늙은 종이 리브가를 만날때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리브가는 늙은 종의 약대들에게 물을 다 먹인 사람입니다. 그의 건강은 매우 건강한 상태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또 늙은 종이 속히 떠나려고 하자 리브가가 바로 가겠다고 대답합니다. 리브가는 굉장히 결정이 빠르고 그 결정에 따른 행동력이 바로 나타납니다. 그러한 리브가의 성향이 야곱이 이삭을 속이는데도 바로 나타나고 야곱이 이삭을 속이는 결정적인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이삭은 본인 생각에 죽은 날이 얼마 안남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에, 자기가 좋아하는 에서를 축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은 생각보다 신뢰하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두번째로는 우리의 감각도 우리의 생각보다 신뢰하지 못할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목소리는 야곱인데, 손을 만져도, 가까이 가서 향취를 맡아도, 입을 맞춰도 야곱인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난 모든 자기의 감각들이 신뢰할만한 것이 못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리브가와 야곱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조금 인내할 필요가 있는데요. 그런데 자기 뜻대로 자기 노력으로 하는것을 철썩같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능수능란하게 힘을 다해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과보다 그 과정도 매우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이 과정도 그렇고 그 과정 중에서 참 두려우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나중에 속고 속이는 일을 겪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속고, 라반은 딸에게 속고, 야곱은 또 그 아들들에게 속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한일에 대해서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 또한 우리아를 죽게 하였을 때에 그는 그의 아들들이 네명이나 죽어야 되는 보응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이 하나님을 두렵고 경외하는 가운데서 삶의 교훈을 받아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Q. 제가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리브가와 야곱의 연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 뜻을 이루심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리브가와 야곱이 그들의 뜻대로 하려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방법으로 그 뜻을 이루실수 있으셨을텐데, 왜 이때에 그냥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는 일들을 그냥 두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일이 이뤄집니다. 그렇다면 그것과 별개로 야곱이 그 축복된 삶을 한동안 살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리브가는 이 일 후에 실제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그 외삼촌 라반에게 속으며 사는 삶을 삽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셨지만, 그것을 사람의 방법으로 이루려 했기 때문에 야곱과 리브가는 그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그들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에 리브가는 더이상 야곱을 볼수 없죠. 야곱은 다른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취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은 나중에 야곱에 임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때에 이삭이 축복하는 것을 막으시고 나중에 하나님의 때에, 문제가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정당한 축복을 하실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 김보영 형제님 : 리브가가 잉태했을때 쌍둥이로 잉태했습니다. 그러면 에서를 먼저 나오게 하지 않고 야곱을 먼저 나오게 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먼저 나오게 하고 야곱이 나중에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으로도 분란이 생길수 있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장자권이 야곱에게 주어집니다.
일단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되어진 일입니다. 주님의 오심에 대해서 말할 때에 이사야서는 "기묘자요, 모사라"고 말합니다. 리브가가 육신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삭을 속이고 야곱을 축복받게 하는 그 모든 과정속에 하나님께서 기묘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것을 실행했음을 교훈을 받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하나님께서는 에서를 택하지 않고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또 야곱은 므낫세를 택하지 않고 에브라임을 택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두번째로 난 자는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두번째 아담을 예표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구약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하빈다.
A. 그리고 승훈 형제님의 질문은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인 징계를 내리시는 경우도 있지만, 그가 육신대로 사는것을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육신적인 것을 깨닫고 성장하는 계기를 겪기도 합니다. 마가가 한길로 걷지 않은 잘못이 있지만, 그가 나중에는 돌이켜 영적으로 성장하며 유익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처럼 유익한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이 설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곱도 참으로 부족함이 있지만,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심을 비췸을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야곱과 에서의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사람이 은혜로 구원받음의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는 우리의 노력이나, 행함, 능력에 따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A2. 아까 질문에 대해서 제가 의견을 말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헨리모리스 형제님의 책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래서 헨리 모리스 형제님의 견해라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 주권적인 축복을 주셨던 이유는 그럴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사람의 방법으로 얻으려고 한 리브가와 야곱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그보다 앞서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이방 여인을 둘이나 취해서 아내로 삼은 에서의 잘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도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이 이삭의 잘못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에 별 관심이 없는 에서를 이삭은 축복하려고 합니다. 이삭은 끝까지 야곱인줄 모르고 에서라고 확신 가운데 축복하려고 한 것입니다. 만일 에서가 축복을 받았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리브가와 야곱의 잘못보다 이삭과 에서의 잘못이 더 크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거짓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사람이 모세가 태어날 때에 히브리 산파들이 거짓말 합니다. 기생 라합이 정탐꾼에 대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헨리 모리스 형제님의 견해는 에서에게 축복이 넘어가면 안됩니다. 에서에게 축복이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이삭을 속여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시는 견해입니다.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시는 분이 계실 것을 예상하기에 미리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한가지를 질문을 드리면요. 이것은 오픈 퀘스천 적인 질문입니다. 그 축복을 하는 내용은 27절부터 이상합니다. 에서는 들사람인데 밭의 향취하는 내용입니다. 축복의 내용은 너무나 합당합니다. 그런데 축복의 방향은 너무나 잘못되었습니다. 이삭은 그 축복을 받는 대상이 에서라고 생각합니다.
27장이 굉장히 어렵고 난해하지만 이를 통해서 저희들이 얻을수 있는 유익과 교훈이 많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이삭의 눈이 어두워 진 것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 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육이 드러날 때 나타나는 잘못된 여러가지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져서 다른 감각들로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저희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정이나, 회사에서 생활할 때에 어떤 일을 더 의지하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지, 아니면 나의 감각을 따라서 판단하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또 이삭은 마지막으로 에서에게 축복하는 줄 알고 야곱에게 축복합니다. 사람들의 여러가지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그 뜻을 이루십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한다고 생각하고 야곱에게 축복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오는 에서에게 줄 축복이 거의 없게 됩니다. 이삭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삭의 축복을 볼 때에 물질적인 축복을 말합니다. 또 열국이 섬길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형제들 위에 있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저주와 축복은 창세기 12장에 나와있는 축복과 같습니다.
27장에 나오는 인물들이 하나님 앞에 더 깨어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러한 모습을 보고 교훈을 얻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저희가 창세기 강해를 보고 또 왓더바이블 티치스 창세기서를 볼수 있는데요. 이 두 책이 서로 견해가 다릅니다. 그래서 두가지를 다 같이 보고 교훈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재홍 형제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남겨둔 몇가지 축복을 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런데 정작 그 축복은 에서에게 너무 어울립니다. 야곱에게 주려고 남겨둔 축복이라고 보기엔 어울리지 않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야곱에게 주려고 남겨둔 축복이라고 보기보다는, 저주로 보입니다. 형이 동생을 섬기고, 칼만 믿고 사는 것을 복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는 부분도 내용이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많은 교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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