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창세기 27장 5-13절(요약)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대로 염소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찐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찌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창27:5-13,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5절부터는 리브가가 이를 듣고 야곱에게 하고자 하는 말과 행동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야곱의 대답을 통해서 야곱의 마음을 볼수 있습니다. 18절부터는 야곱이 이삭에게 나와서 야곱과 이삭의 대화를 저희가 살피게 됩니다. 29절까지 대와하고 축복하는 내용이 나오고 30절에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옵니다.
먼저 5-17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5절의 시작은 이삭이 에서에게 말할 때에 그것을 리브가가 듣고 있었던 것으로 시작합니다. 지난시간 큰자가 작은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이삭이 알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분별이 나뉘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이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 움직입니다. 이는 그녀가 믿음이 없었다기 보다는 그녀가 기다리지 못하는 연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이를 볼때에 우리의 믿음과 또 그것을 온전히 기다리는 것은 다른 것임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그 약속을 계속해서 이어가십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야곱은 부친에게 들킬까봐 걱정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언약을 이을 사람이었지만, 이 모습만 보면 그는 자기의 이익과 상황을 계산하는 모습만 보입니다. 또한 장자권을 팥죽으로 야곱은 거래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 장자권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를 기다리지 못한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창세기 27장에서는 이삭, 리브가, 야곱, 에서의 연약을 잘 기록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단 한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과 계획을 실행시키시고 계십니다. 야곱의 선택은 27장이 아니라 25장에서 이미 확정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27장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도 얼마나 육신적으로 행동하게 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인생의 연약함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일하심에 감사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이 가정의 각 사람들에 대해서 저번주에 교제를 나눴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그 시작이 너무 좋았고 큰 본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27장에서 또 저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이삭은 그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아들을 들로 보내서 자기가 먹고싶은 별미를 먹고자 하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하신 아들이 아니라 자기 사랑하는 아들에게 축복하고자 합니다.
리브가는 이삭과 에서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 또다른 계략을 세웁니다. 이 모습을 보게 될 때에 리브가가 과연 이삭을 처음 속였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계속 이삭을 속이는 가운데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뒤에 가면 에서가 분노해서 야곱을 죽이겠다는 말을 리브가가 듣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에서에게 들은 말을 이삭에게 그대로 하지 않고 야곱의 아내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에서가 잘못하고 있는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다른 말을 하면서 자기 계략대로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냅니다. 리브가와 이삭은 부부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교제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리브가가 만일 이삭이 에서를 들로 사냥하러 보냈을 때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라고 조언을 했다면 이삭이 다시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올바른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야곱을 축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같은 교제가 그 가정에서 전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야곱은 하나님의 뜻보다, 또 그 아버지를 속이는 것보다 그 거짓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또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세상적인 것을 이루는데 나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가정의 네 사람이 바른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을 포기 하지 않으시고, 그 믿음을 드러내시고, 없는 믿음을 성장시키시고 계십니다. 그러한 사실을 이 이삭의 가정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여러 형제님들께서 리브가의 잘못한 부분, 야곱의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교제해 주셨는데요. 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교제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가정의 문제가 리브가보다 이삭이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절에 이삭이 눈이 어두웠음을 말씀합니다. 이는 이삭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26장의 마지막은 에서의 상태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늙은 종을 통해서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데 있어서, 이방여인을 택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친족 중에서 구하도록 했습니다. 리브가가 그 부르심에 순종했고, 이삭이 순종하여 주님의 계보를 잇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26장 34-35절에서 그와는 전혀 관심이 없음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이러한 상황에서 축복하더라도 야곱을 축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리브가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야곱이 알았다면, 당연히 이삭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계시하셨는데 그것을 이삭에게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에서의 영적인 상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상태임을 이삭은 알았습니다.(26장 마지막을 볼 때에) 그런데 이삭은 그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즐기는 별미를 즐기겠다고 에서를 따로 불러서 말했습니다. 리브가는 이를 듣고 5절 이하부터 그가 나름대로의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다고 보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는 자로 보일것이라고 염려합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걱정말라하고 그 저주를 자기에게 돌리겠다 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계략의 주체는 리브가로 보입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모든 일의 원흉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이삭이 문제로 보입니다. 이삭이 잘못 행했기에 리브가가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에서에 대해서는 이삭이 그를 좋아했습니다. 이삭이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이 에서에게 반영이 된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삭이 추구해야 하는 모습이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저희들이 자녀들을 키울 때에 영적으로 자라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자녀가 영적이기를 바라는가, 세상적으로 잘나기를 바라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바라는 모습이 많이 반영이 되는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자녀가 영적으로 자라나기를 바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민원 형제님 : 5절에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 '그 아들'이 영어로는 이삭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에게 마음이 가 있고, 리브가는 야곱에게 그 마음이 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에게 "내 아들아" 라고 말하고 리브가는 야곱에게 "내 아들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이삭 리브가의 마음이 어떠했는지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25장에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6장 2절, 24절에서 이삭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 말씀은 그 과정이 어떻든지간에 하나님께서 온전히 이루십니다.
그렇다면 이삭과 리브가의 모습은 어땠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랄에 내려가 거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하고, 우물이 메워지고, 결국에는 브엘세바까지 내려갑니다. 그리고 27절 초반에는 이삭은 "내가 이제 늙어" "나를 위하여" "내 즐기는" "내 마음껏" 이라고 말합니다.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는데 있어서 그냥 하나님의 뜻대로 축복하겠다고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사냥무기를 들고 사냥을 하고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가 마음껏 축복하게 하라고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이는 에서에게 복을 주고자 했던 이삭의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리브가는 5절 이하에서 굉장히 많은 행동을 합니다. 맡아들의 옷을 입히고, 염소털로 야곱을 꾸미고, 이삭의 즐기는 별미를 만듭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계시를 들었을 때에 그 약속받은 이가 야곱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녀가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하나님께서 에서에게 사냥감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고 이를 경홀히 여깁니다. 그리고 헷 족속의 두 딸을 아내로 취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고나서 아내를 취하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이 만일 장자라면, 에서가 어린자가 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장자권을 팔았기에 작은자라기 보다는, 에서는 장자권을 팔고나서 또 27장 후반부에 방성대곡했지만, 야곱이 자기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았다고 하고, 야곱을 죽이리라 하는 부분,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야곱의 경우도 "제가 어찌 아버지를 속이겠습니까?"가 아니라 "속이는 자로 보일테니 제가 저주를 받을것 같습니다."라고 합니다. 또 이삭에게 나가서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라고 합니다. 또 어떻게 잡았느냐는 물음에 하나님을 팔아서 거짓말을 합니다. 또 이삭이 참 에서냐고 질문했을때에 야곱은 그렇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처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야곱과 에서 모두가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다 자기들의 관점과 생각으로 행동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결과 리브가는 야곱을 죽을때까지 보지 못하고, 에서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야곱은 쫓겨나고, 하나님께서 "네가 누구냐"라고 물으실 때에 마침내 야곱이라고 대답하게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볼때에 저희들이 하나님의 뜻만을 바라보는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27장에는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에서가 등장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부모님들의 편애라고 생각합니다. 이삭은 남자다운 아들인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반대로 리브가는 집안에서 자기를 돌보는 온순한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제 분별로는 그렇습니다. 27장의 이삭의 나이는 100세가 넘은 때입니다. 장승훈 형제님께서 이삭이 리브가가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말했고 이를 들었을 것이라고 교제해 주셨습니다만, 저는 이삭과 리브가가 충분한 교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고 있었다면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녀를 편애하지 않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 편애가 가정의 소통에 있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 돌아보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형제님께서 교제해 주셨는데 다시한번 형제님께 제가 여쭤보겠습니다. 25장의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면 이들이 매우 영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삭은 자녀가 없으니까 20년간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20년만에 자녀를 주셨습니다. 또 태중에서 두 쌍둥이가 싸우니까 리브가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게서 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이라는게 이 부부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형제님께서 교제하신대로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했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확신할수 없지만, 당연하게 리브가가 이 하나님의 계시를 이삭에게 말해주었을 것이라고 분별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제님께서는 심지어 야곱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교제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야곱도 알고 있었는데, 당연히 이삭도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성경 말씀에 더하거나 빼면 안되는데요. 성경 어떤 부분에 야곱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이삭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그런데 형제님께서 이렇게 분별하시면, 27장의 모든 잘못의 책임이 리브가 때문이게 됩니다. 이삭이 이렇게 잘못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몰랐기 때문이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이 일 뒤에 리브가가 야곱을 보내는 데요. 이도 이삭과 상의한 내용이 아닙니다.
- 장승훈 형제님 : 25-26장의 이삭과 리브가의 분위기와 27장이 너무나 다릅니다. 부부의 소통의 관계가 처음부터 안되었다기 보다는 시간이 흐르면서 소통이 안되지 않았을까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부부가 소통이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이삭에게 있다고 분별합니다. 예를들어서 어떤 가정에 문제가 일어났을때 그 가정의 문제의 최종적인 책임은 형제에게 있는것과 같습니다.
이는 형제님과 분쟁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이러한 분별이 있음을 교제드리는 것입니다.
- 김대현 형제님 : 그렇다면 이 내용을 공유했는데, 왜 이삭이 1-6절까지의 행동을 할수 있었을까요? 알고 있는데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우리 모임 가운데서도 젊을 때에 올바른 분별을 하시던 형제님이 나이를 먹고 영적으로 어두워 졌을 때에 올바른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분별해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형제님은 그렇게 분별하시는군요. 다른 형제님들께서도 그렇게 분별하십니까? 다른 형제님들은 어떻게 분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제 생각에는 이삭이 알았냐, 몰랐느냐가 논쟁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이삭이 이러한 행동을 보였는데도 히브리서에서는 이삭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그는 나중에 에서가 왔을때에 이삭은 에서를 다시 축복할수 있음에도 그 축복을 번복하지 않습니다. 그때서야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이를 번복하지 않은 이삭의 믿음을 히브리서에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27장 말씀을 볼 때에 이삭이나 리브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고 있고, 육신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섭리로 이뤄가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는 사실을 마음에 두는것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리브가는 들통나면 야곱이 받는 저주를 자기가 받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볼 때에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리브가는 이 말씀을 하나님께 맏기지 않고 자기의 육신의 꾀를 이용해서 뜻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이삭도 자기 마음에 드는 아들에게 축복을 주려고 하는 육신적인 생각으로 행동했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8절에 야곱이 이삭에게 가서 자기가 에서라고 합니다. 한번 시작된 거짓말을 계속해서 거짓말을 낳게 됩니다. 이삭은 계속해서 네가 누구냐고 하면서 야곱의 정체성을 묻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교만을 꺾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는 마지막에 그 지팡이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으로 그 삶을 마감합니다.
이삭은 나중에 자기가 축복한 자가 에서가 아니고 야곱임을 알았을때에 심히 떨었습니다. 만일 그가 자기 뜻대로 에서를 축복하고자 한다면 할수 있었지만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축복을 번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야곱에 밧단아람으로 갈때에 야곱을 다시 불러서 야곱을 축복합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야곱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을 그의 자손들에게도 주실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야곱이 믿음으로 장래일을 축복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 김민원 형제님 : 25장에서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 분별에 대해서, 이삭이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 듣지 않았다면, 이삭은 당연히 에서가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1-4절에서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에 대해서 말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조금도 말하지 않고 자기의 뜻만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왜 굳이 장자권을 얻고자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에서는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저는 결과적으로 네 사람다 육신적으로 행동하였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정의 소통, 부모의 소통이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영적이지 않은 소통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 문제가 일어난 모든 근본적인 이유는 이 네사람 모두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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