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창세기 26장 26-33절(요약)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창26:26-33,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오늘은 26절부터 교제를 시작할텐데요. 시기와 질투로 이삭을 쫓아냈던 아비멜렉이 다시 이삭에게 와서 화평을 맺자고 요청합니다. 과거 아브라함은 한명의 족장인데 연합군대를 무찌른 적이 있었습니다. 또 그 아들 이삭이 농사를 통해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충분히 블레셋과 대항할수 있었지만 가만히 그들을 떠났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포함해서 결국에 블레셋왕은 이삭과 화평을 맺기 위해서 이삭을 찾아옵니다.
26-35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아비멜렉은 이삭이 강성해지자 불편해 했고 결국 블레셋 땅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아비멜렉은 다시 이삭을 찾아갑니다. 블레셋의 왕인 아비멜렉은 하나님을 섬기는 이삭 앞에 찾아와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합니다.
이삭은 계속해서 떠나고 우물을 파고 우물을 빼앗기는 일을 되풀이 합니다. 그리고 그 일로 화해했다는 것을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하심을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삭의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심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삶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큰 간증이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비멜렉의 이삭에 대한 평가 기준은 이삭의 능력도, 행동도 아닌,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26절에서는 아비멜렉이 친구와 군대장관과 함께 이삭에게로 왔습니다. 그곳은 브엘세바입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있을때도 아비멜렉과 군대장관이 왔습니다. 아비멜렉이나 비골은 직책의 이름이기에 아브라함때와 같은 동일인물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랄이 아닌 브엘세바에서 이러한 맹세가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랄이나 블레셋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나 하나님을 나타낼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5절에 이삭은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장소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우물을 파는 특성을 보입니다.
24절에 '그밤'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밤은 이삭이 브엘세바에게 올라간 날입니다. 그리고 '그날'도 있습니다. 이는 아비멜렉과 맹세한 그날입니다. 그날 아침에 종들이 우물을 파고 물을 얻었다고 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오기를 원하시고 만나시기를 원하심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왔을때에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해주시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제가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저희들에게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간증이 브엘세바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되어야만 사람들과의 관계도 올바르게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26-33절이 한단락인데요. 이삭과 아비멜렉이 맹약을 맺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혼자오지 않고 그 친구와 군대장관과 함께 옵니다. 그 친구의 지위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지만 아비멜렉을 충분히 비호할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에게는 어떤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삭을 보호하고 계심을 보았다고 아비멜렉은 고백합니다.
그리고 언약한 이후에 이삭이 잔치를 베풉니다. 이는 그들과의 맹세가 잘 이루어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3-25절을 보면 이삭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장소에 가게 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26절부터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옵니다. 아비멜렉과 이삭과의 관계가 평화롭게 됩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이삭을 시기 질투했지만 결국에는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로 이삭의 판 우물을 막고 빼앗았을 때에 이삭은 그들과 분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떠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들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간증으로 드러내야 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삭은 자기에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서 잔치하고 음식을 베풉니다. 자기를 싫어하고 쫓아낸 사람들이 화해를 청했을 때에 이를 받아들이고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잔치를 베풉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이삭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언약입니다. 그렇기에 기들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고 안심하고 돌아갑니다. 이 맹악을 한 곳의 이름은 브엘세바입니다. 브엘세바의 이름의 뜻은 '일곱우물 맹세'라는 뜻입니다. 이 지역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것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후손들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28절에 아비멜렉의 놀라운 고백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방사람이 이를 알게 되었을까 생각할 때에 이삭의 삶이 그들에게 큰 간증이 되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블레셋인은 이삭을 쫓아냈지만 이삭은 그들에게 어떠한 물리적인 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농사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100배의 소출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하심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도 우리 삶을 통해서 주님을 어떠하심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는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계심을 이미 사람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마태복음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주님을 나타낼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처럼 이삭의 이 삶은 우리 성도들이 나타내야 하는 삶과 많은 연관이 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 김태우 형제님 : 세상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저희가 어떤 간증을 보여야 하는지 이삭의 생애를 통해서 깨닫는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뻔뻔함이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쫓아냈음에도 이삭에게 선한일만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그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풉니다. 저희가 보여야 하는 간증이 이러해야 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14-20, 개역한글)
- 김보영 형제님 : 이삭이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동맹을 맺은 후에 그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종들이 우물에서 물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을 브엘세바라고 합니다. 세바라는 단어의 원래 뜻은 7, 완전수를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맹세'라는 단어로 쓰였습니다. 신실하게 그 약속을 이행하려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마른 우물에서 물이 솟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브엘세바의 이름의 뜻은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지명이 그대로 남는것은 아브라함의 순종, 이삭의 순종, 그 지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조금더 첨언을 하면 그 전에 이삭이 세개의 우물을 팠지만 그랄 사람들이 와서 다툼이 있었고, 빼앗겼습니다. 손해가 있었습니다. 르호봇에 가서 여기가 넓고 여기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그 손실을 무릅쓰고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이삭은 끝까지 화평한 사람으로써 좋은 간증을 보이고 그들과 맹세하고 그들을 잘 보냈기에 하나님께서 그에대한 축복의 의미로 브엘세바에 우물을 주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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