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마포모임 학생캠프(요약)

복음 : 생명나무와 그 낙원으로 가는 길을 여신 예수님

박이레 2026. 1. 23. 21:48

복음 : 생명나무와 그 낙원으로 가는 길을 여신 예수님 / 26년 1월 23일 금요일(요약) / 김동원 형제님

오전에 에덴동산에 있었던 두 나무에 대해서 수풀림 자와, 또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살펴보고 계시는 단어들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계속 이어서 생명나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아주 비밀스러운, 가려진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라는 성경으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으로 끝납니다. 창세기 2장에서 우리는 생명나무를 보았습니다. 창세기에는 생명나무가 3번 언급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생명나무가 4번 언급됩니다. 왜 성경은 생명나무를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을까요?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1-2, 개역한글)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22:14, 개역한글)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22:19, 개역한글)

성경의 마지막에 아주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성령님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은 생명나무를 다시 취할수 있는 길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을 제하거나 더하는 자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하는 것이 맞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행함으로 구원을 쟁취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합니다.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와 허물 투성이의 죄인일 뿐입니다.

구원은 구원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진리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생명나무 앞에 가서 취할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람의 처음 슬픔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법정에 섰다면, 그곳에서 여러분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판사가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수 있는것은 내 생각으로 가는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 넣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는것은 다 종교입니다. 종교는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생명나무와 계시록에 생명나무 사이에 새로운 생명나무가 등장합니다. 이 생명나무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알면서 지은 죄입니다.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었냐고 오히려 반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얻는 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어서 자기 생각에 빠져 죄에 빠진 죄인을 구원할 길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처음에서 사람이 타락하게 된 슬픈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렇게 된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죄악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모든것을 누릴 특권들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생각이 들어오고 자기 마음대로 행할 때에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속량"하셨다는 단어를 씁니다. 이는 구속하여 값을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양인제도'가 있었습니다. 노비들은 시험도 치를수 없고, 관직에도 오를수도 없고, 병역의 의무도 없었습니다. 노비들은 기계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혹독하여 노비에게도 양인이 될수 있는 길을 만들자고 해서 생겨난 제도입니다. 노비가 자유를 얻을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가 양인제도입니다. 노비가 양인이 될수 있는 속량값을 지불하거나 다른 사람을 노비로 대체시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속량하실수 있는것은 이 엄청난 값을 속량하실수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연히 만물보다 귀하신 분입니다. 그분보다 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할수 있는 분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서 대신 속량하실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기록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로 말합니다. 회개를 통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두사람을 구약의 놀라운 믿음의 성도로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은 허물이 없었을까요?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 하여 이방왕에게 아내를 빼앗길뻔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 부하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서 자기 부하를 전쟁에서 죽게 했습니다. 무서운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들을 '의롭다' 하십니다. 이 '의롭다'는 것은 법정용어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재판정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죄없다함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한 걸작품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은 인간을 원숭이로 만드는 인간의 추한 사상입니다. 그래서 진화론은 지금이 인간의 최상의 모습이라 말하지만, 성경은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것을 말씀합니다. 지금이 망가진 모습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다시 생명나무를 먹을수 있는 그 회복의 길을 말씀합니다. 소망이 없는 인생들에게 소망을 말씀해주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주님의 은혜입니다. 과거에는 에덴 동산에서 그 생명나무가 있었다면, 그 생명나무를 인간은 더이상 딸수 없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는 다시 생명나무로 인도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낙원으로 인도되어 그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고 회복으로 끝나는 것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눅23:32, 개역한글)

최고의 법정에 사람들이 두부류로 나눠지는 그림을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23:33, 개역한글)

해골이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갈보리입니다. 라틴어는 헬라어에서 파생된 로마공식 문자입니다. 그 갈보리를 히브리인들은 골고다 언덕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일이 즐거운 동산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이 꼭 필요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나무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좌우편에 두명의 강도를 내세웁니다. 왜일까요?
우리 모두는 다 이 강도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누가 더 죄를 적게 지었는지, 많이 지었는지를 따지지만 하나님 앞에서 이것은 다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다 사형을 받아 마땅한  강도와 같은 죄인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다 더러운 죄입니다.
그 죄인이 못박혀야 할 곳이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생명나무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 십자가의 나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에 달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눅23:39-41, 개역한글)

이 두명의 강도에게 동일한 기회가 왔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두 강도의 생각이 서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 강도는 계속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한 강도는 그 마음을 바꿔 말을 달리합니다. 그는 자기가 지은 죄에 따른 마땅한 형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이렇게 바껴야 합니다.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이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눅23:42, 개역한글)

강도는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런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피묻은 손으로 나를 보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습니까? 내 죄가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비방하는 것은 그가 지옥가야 마땅한 죄인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한 강도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43, 개역한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는 하늘나라의 아름다운 생명수와 생명나무가 있는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성경에는 여러분보다 훨씬 죄를 많이 지은사람들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구원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 "예수님 저를 위해서 대신 돌아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믿으시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고 예수님께서 답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마십시요. 여러분의 인생에 후회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돌이킬수 없는 후회가 있고 돌이킬수 있는 후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둘째 사망, 지옥에 가지 않는것은 내가 선택할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과 영생 복락을 누리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주님과 마음의 구주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