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장 :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 26년 1월 23일 금요일(요약) / 강성찬 형제님
좀 놀라게 되었는데요. 앞의 형제님과 같은 주제로 로마서를 교제하려고 합니다. 로마서 4-6장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설명하기 매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많은 준비를 했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앞선 형제님께 용기를 받아서 로마서 8장을 교제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8:12-17, 개역한글)
특별히 15절 말씀을 집중해서 보고자 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8:15, 개역한글)
'종'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죄의 종, 율법의 종, 부정적인 종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종들도 나옵니다. 하나님의 종, 의의 종들이 나옵니다. 좋은 종과 나쁜 종은 완전히 성격이 다릅니다.
공통적인 것은 거기에 헌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은혜의 종은 자원해서 기쁨 가운데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 안좋은 종들은 무서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억지로, 무서워서 그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왜 "다시"라는 단어가 들어갔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정적인 종의 영에서 해방되었는데, 다시 이러한 것을 따라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지 않는가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무서워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좋은 좋인데, 꼭 해야해? 라거나 안하면 벌을 받지 않을까? 하는 무서워 하는 가운데 하는 것입니다. 또는 어떤 학생들은 이렇습니다. 구원받고나서 마땅히 경건하게 살고자 해야 하는데 별로 그런 마음이 없는 거예요. "우리는 율법과 상관이 없지 않은가? 왜 굳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이러한 질문이 마음속에 생긴다면 내가 정말로 구원받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구원받았는데도 이런 마음이 생긴다면 왜 이러한 마음이 생기는지 살펴야 합니다.
'노예근성'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노예를 자유롭게 해방시켜 줬는데, 노예가 뭘 해야 할지 모르고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억압 가운데, 억지로만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살아왔기 때문에 풀려난 후에도 여전히 노예처럼 생활합니다. 그리고 그게 정말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정말 선안 것에 대한 기쁨과 자원이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노예의 모습,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8:15, 개역한글)
반대로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는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습니다." 이렇게 부르짖는 그리스도인은 1. 참된 아버지가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종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자유도 없습니다. 자신의 재산도, 기업도 없습니다. 물론 종에게도 생물학적 아버지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 종의 주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그의 평가자, 주인입니다.
어떤 재벌 2세가 자기 아버지의 직장에서 일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좋은 예는 아니지만, 한가지를 생각할수 있습니다. 재벌 2세는 아버지의 직장에서 말단으로 일한다 할지라도 구김이 없습니다. 무서움이 없습니다. 자기에게 일을 시키는 여러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 회사 가운데서 기쁨으로 일할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그는 일하며 또 그 회사가 그의 기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자의 영" 우리는 보통 양자라는 단어를 친자식의 반대말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양자'의 반댓말은 '종'입니다. 양자는 아버지의 기업을 잇는 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업을 잇는 양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재벌 2세가 아버지의 기업에서 일하다 실수한다 해도 아버지는 그 아들을 이해해 줍니다. 이는 자기 자식이기에 넘어가 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이기에 자기 자식의 실수나 잘못이 너무 잘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자녀가 한 일에 대해서 부모는 이해합니다. 그래서 변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이것은 부모가 있기에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일을 잘 해내느냐, 못하느냐에 관심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 아들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에게 더욱 사랑을 베풀고 더욱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바로 이런 아버지입니다.
종은 다릅니다. 종 자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종이 일을 잘 해내느냐, 못해내느냐만 중요합니다.
2. 그리스도인이 다시 무서워하지 않는 두번째 이유는 "아바 아버지"라는 단어에서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14:36, 개역한글)
우리 주님께서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서 자신의 모든것을 내어드리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도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해야할 많은 여러가지 업무 리스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가지 본 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신의 모든것을 순종하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분을 우리가 닮는것이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아버지의 목표는 자녀가 성숙하는 것입니다. 부모로써 언제 기뻐하냐면, 애가 자랐구나를 느낄때 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느낄 때는 아이가 성공했을 때가 아니라 아이가 실패했을 때입니다. 아이가 실패했을 때 그 실패를 잘 감당하고 견뎌 냈을 때, 이때 아이들이 자랐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숙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때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양자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우리에게 이루고자 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땅에서 아버지께 순종해서, 아바아버지라 부르면서 십자가로 나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너무나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아까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이것은, 이 수준은 너무나 높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이는 너무나 높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로 단념시키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서 해내야 할 여러가지 일들이 있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겠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여러가지 일들는 계속적으로 우리를 단념시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는것은 우리를 단념시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높은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계속 격려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더욱 더욱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육체의 힘이 다 떨어진 그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우리는 닮고자 하는 마음이 그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8-30, 개역한글)
우리 주님은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입니다. 우리로 더욱더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조금이라도 배웠을 때에 우리의 마음을 쉼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그리스도를 더욱 닮기를 원합니다.
3. 세번째로 우리가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부르짖느니라"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언제든지 부르짖을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짖는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에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지간에 우리는 언제라도 부르짖고 그분께 도움을 청할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돕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서, 성령께서 도우심을 말씀합니다. 항상 우리를 돕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극적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부르짖는것이 계속적인 현재형입니다. 한번 부르짖고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구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풍랑이는 바다를 건너간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계속해서 바라본다면, 계속해서 주님의 도움을 받고 그분의 힘을 의지한다면, 풍랑이 이는 이 세상 속에서도, 우리 마음에 풍랑이 인다 할지라도 그 바다 위를 걸어갈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놀라운 인생입니다. 때때로 베드로처럼 잠깐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빠질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주님께서는 즉시로 구해주십니다. 주님을 바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잡고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보고 기도하고 직장이나 학교를 가도 금방 넘어집니다. 하지만 다시 그때 주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어떤때는 아침 늦게 일어났습니다. 그때 전의를 상실합니다. '오늘은 꽝이야.' 오히려 그때 더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할 때, 전의를 상실했을 때, 그때가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하는 때인 것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다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이해하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께서 바라시는 것은 여러가지 일을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는 성숙을 바라십니다. 그 작은 발자국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실패했다고 여겨질 때에 그분을 의지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이 기뻐하는 아버지를 사랑하며 계속 그분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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