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마포모임 학생캠프(요약)

복음 : 보라 오늘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오늘은 구원의 날이로다

박이레 2026. 1. 23. 21:47

복음 :  보라 오늘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오늘은 구원의 날이로다 / 26년 1월 23일 금요일(요약) / 정성인 형제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개역한글)

사람에게 죽음이 정해져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죽음을 사람이 죄를 짓기 전에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나고 죽도록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사망이 이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악과를 먹지 않았는데 왜 죽게 되었을까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2, 개역한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했을때 그가 죽음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세상에 그가 죄를 가지고 왔을때 모든 사람이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죽음을 피할수 없습니다.
학생이고 어릴찌라도 모두가 다 죽음을 전제로 살고 있습니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공부할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앞으로의 진로를 선택할 때에 선택되지 않은 다른 것을 포기합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에 모든것을 다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죽음을 전제로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죽음이 자연스럽게 온 것이 아니고 죄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고이며 은혜입니다. 그리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죽음을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또다시 정하신 것을 살피고자 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39, 개역한글)

"나"라고 말씀하신 이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합니다. 죽음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내게서 분리되는 것입니다.
소중한 물건을 잃어려도 슬픈데, 그것이 사람이면 마음이 어떨까요? 사랑하는 동생을 잃버린다면 그 동생을 찾기까지 계속 찾는 것입니다. 죄인이 죽는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시고 이제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살리시는 이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것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6:40, 개역한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개역한글)

영생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할수 있는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할수 있는 생명이 영생입니다. 그래서 죽은자를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이 뜻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2:4, 개역한글)

2. 두번째로 하나님은 이 뜻을 행할 사람을 정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벧전2:4, 개역한글)

이제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수 있어야 합니다. 이분은 의로우신 분이며, 죄가 없고, 깨끗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은 태어나실 때부터 깨끗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살아갈실 때에 그 삶 가운데 죄가 없으셨습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벧전2:22, 개역한글)

그의 행함과 말씀 가운데 죄가 없으셨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죄를 짓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분은 행함 가운데 죄가 없었습니다. 또한 이분은 참으시는 분입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2:23, 개역한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고 시기를 받을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받으시고 공정한 판단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죄가 없음에도 사람들에게 상하시고 맞으시고 죽기까지 하십니다. 그럼에도 자기 억울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어떻습니까? 가정 안에서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을 작은 것이라도 지적하면 나의 의를 나타냅니다. 어떻습니까? 그보다 더 억울한 일을 당할때에 사람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어떤 사고 현장에서 당장 그 현장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로 잡힌다면 당장에 변호사를 선임하고 내가 범죄자가 아님을 밝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하나님이 정하신 예수님은 이 억울한 일을 다 감당해 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정하신 이분은 모든 사람을 대신할만한 가치를 가지신 분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다 죽어야 합니다. 의로우신 한분, 예수님의 생명으로 모든 사람의 생명을 바꾸시는 것입니다. 저희 모든 죄인들의 생명을 사고도 남을만한 의로운 자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때를 정하셨습니다.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벧전1:20, 개역한글)

그리고 말세에 이 일을 이루십니다. 세상 끝에 그 아들로 말씀하십니다. 이 아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범죄했을 때에 이미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언제오실 것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세에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또한 그분의 죽음이 정하신 때에 이루어 집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17:1,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아버지께 말씀하십니다. "때가 이르렀사오니"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가 온 것입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요16:32, 개역한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5:6, 개역한글)

"기약대로" 는 제때에, 합당한 시간에 그 일이 이뤄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위해서 정확한 시간에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뜻을 정하시고, 그 뜻을 행할 사람을 정하시고, 때를 정하셔서 그것을 이루십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정하심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알지도 못할때에, 관심도 없을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정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마20:29-34, 개역한글)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죽음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고, 그 뜻을 정하시고, 그 뜻을 행할 사람을 정하시고, 그 때에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소경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에 있었지만 소경이므로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들이 할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중풍병자는 친구들이 지붕을 뜯고 침상채 그를 예수님 앞에 달아내렸습니다.
우리도 여전히 지금 이 성경말씀을 듣고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집니다. 우리가 이때 마음의 결정을 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이들은 두번 외쳤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자 할 때에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때 더 크게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말씀을 듣는다고 다 구원을 얻는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결정을 하고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의 특징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나를 사랑하십니까? 당연히 사랑하시겠지요. 그런데 나만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요? 우리가 누구를 사랑해야 할지를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나에 대해서 나는 매우 관대합니다. 내가 나에 대해서 공정한 재판을 할수 있습니까? 내가 만일 교통사고를 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재판장이 나라면 합당한 재판을 할수 있겠습니까? 저는 저를 절대 감옥에 보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죄에서 구원할수 없습니다. 또 돈을 사랑하는 자도 자기를 죄에서 구원할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고 의로운자로 거듭나게 하실수 있는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2, 개역한글)

그리고 우리는 언제 구원받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소경들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구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솔직하게 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즉시라도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보라 오늘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오늘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복음의 말씀이 들려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나가신 이후에는 그들이 소리친다해도 주님께서 듣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복음을 들을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을 놓치지 말고 반드시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결정하면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이 은혜의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와같은 은혜가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