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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26장 12-25절(요약)

박이레 2025. 12. 31. 20:59

성경읽기 : 창세기 26장 12-25절(요약)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창26:12-25, 개역한글)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12절부터 보면 이삭이 농사를 짓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이삭이 그들을 떠나게 합니다. 그런데도 이삭이 우물을 팠을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를 빼앗았습니다. 그때 이삭은 그들과 싸울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2-25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2절에 나오는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거라하고 지시했던 그랄땅을 말합니다. 그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닌 블레셋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그랄땅에 거라하고 지시하십니다. 이는 잠시 머무르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고 믿음의 성도들이 최종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땅입니다. 그러나 그랄땅은 잠시 머무르면서 훈련을 받는 땅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12절에서처럼 농사에서 100배나 얻게 하셨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 그랄땅에서 쫓겨나듯 떠나야 했고, 계속해서 우물을 빼앗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축복해 주시지만 이삭은 계속해서 핍박을 받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도 잠시 머무릅니다. 이 세상에서 머무르는 저희는 불완전합니다. 기쁠때도, 슬플때도, 힘들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삭의 삶을 통해서 저희가 위로를 받습니다.

이삭은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13절에서 말씀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마침내 큰자가 되었다고 번역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고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시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와 우물에 대한 다툼도 허용하셨습니다. 그럴 때에 이삭은 결국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인 성도님도 있을 것이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성도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최종적으로 가야할 곳이 있음을 생각하며 이 말씀을 통해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이삭은 그 아내를 누이라 하고 거짓말 했던 것을 아비멜렉에게 밝혀지게 됩니다. 이렇게 믿지 않는 자들에게 좋지않은 간증을 드러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에게 복을 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어떠함에도 약속하신 바를 신실히 지키시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를 하게 되는데요. 원래 이삭은 그 아버지 때부터 목양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농사도 짓고 목축업도 하는, 두가지 일을 병행합니다. 그런데 농사를 한적이 없는데 100배나 얻게 됩니다. 참으로 기형적인 복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을 때에 흉년에도 이같은 많은 소출을 얻을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룻기에서 엘리멜렉은 흉년에 모압으로 갑니다. 그런데 흉년에도 약속의 땅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그렇고요.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복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시기와 다툼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은 물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이삭은 그랄땅에서 가나안땅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조금씩 이동하는 와중에 우물을 파고, 우물을 막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 우물은 아브라함 때에 이미 팠던 우물이었습니다. 여기서 교훈받는 것은 먼저 되신 많은 형제님들의 수고가 있고, 그같은 유산을 이삭은 받았습니다. 이삭은 아비의 판 우물을 받고 또 그것을 회복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같은 우물을 후대에 물려줘서 후대가 이같은 우물을 잘 받아서 많은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이 우물은 다 메이게 됩니다. 첫벗째가 에섹이었고, 두번째가 싯나였고, 세번째가 르호봇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왜 세번째 우물을 내버려두고 브엘세바로 올라갔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그곳으로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삭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삭에게 나타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곳에 있어야만 나타나시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지역모임에서 주님을 느끼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이삭의 생애를 통해서 교훈을 얻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2절에 "그해"라고 나옵니다. 그 해는 26장에 기근이 있던 해입니다. 그 기근이 있던 해에 농사를 해서 많은 수확을 얻었습니다. 사람의 죄로 인해서 땅은 저주를 받아서 많은 수고를 들어야만 식물을 취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근이 있던 해에 많은 수확을 얻을수 있었던 이유는 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으로 볼수 있었습니다.
이삭이 또 굳이 기근이 있는 해에 농사를 짓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보통 기근이 있는 해에 농사를 짓지 않고 그 다음해에 농사를 짓는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이 농사를 지었을 때에 그 결과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심을 믿었기에 그렇게 할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에 이삭은 농사를 지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13절에 보면 또 이삭은 마침내 창대하고 왕성해서 거부가 됩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시기합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거부가 된것을 시기하지만 이삭이 하나님과 교제함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눈에 드러나는 부에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12-13절을 볼 때에 이삭이 농사를 지어서 100배를 얻은것이 물론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라는 번역은 여러 영어성경에서는 12절에서 연결되는 문장으로 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복을 주셔서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는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대로 충분히 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랄에 있는 우물을 막습니다. 그때 이삭이 보이는 대응은 다시 그 우물을 파고나서 아비가 부르는 이름으로 그 우물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는 상당히 합리적인 방법으로 아브라함이 부른 이름으로 그 우물을 부릅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그에 바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동해서 다른 우물을 파고, 계속해서 이동하다가 세번째 우물을 파서야 그 다툼이 있지 않게 됩니다. 이삭이 이 상황을 대처하는 과정 중에서 이삭은 그 마음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24절) 르호봇에서 물론 다투지 않았지만, 이제 26절에 와서는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보았다고 합니다. 합당하게 행동했다고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을 때에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짐을 교훈받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먼저 절에서는 아비멜렉에게 이삭이 참으로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농사로 100배나 되는 소출을 얻게 하십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비록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을 이방에게 나타내심을 분별하게 됩니다. 사실 이삭은 농사짓는 법을 모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농사가 잘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밖에 볼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브엘세바까지 가게 되는것은 자기의 의지가 아니라 블레셋인의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동하는 가운데 이삭은 계속해서 그 지역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이것은 이삭을 브엘세바까지 인도하는 하나님의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삭이 브엘세바까지 가는 과정속에서 그가 보인 행동은 또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천국, 가나안을 향해서 갑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도 이 세상을 가는데 있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는 삶을 삽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상당한 물리적인 측면에서도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때에 집에서 길리운 318인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그 아브라함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겠지만, 이삭은 그들에게 대항을 하지 않고 이동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더 큰 영역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때에 손해를 본다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손해를 손해로 남아있게 하지 않으심을 교훈받게 됩니다. 우리는 정직해야 하고, 우리는 양보해야 하고, 그럼에도 거짓으로 우리를 속이려 하고 핍박하는 무리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차라리 양보하고 돌아서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에게 덕이 됨을 깨닫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이삭이 농사일에 어두운데도 어떻게 100배나 얻었는가 대해서 지난시간 의석 형제님께서 질문해 주셨는데요. 이는 여호와께서 축복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삭은 목축업과 농사를 겸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이후에는 블레셋인들과 우물로 인해서 계속해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에섹은 싸우다, 다투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싯나도 다투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르호봇의 뜻은 넓은 장소라는 뜻입니다. 거기서 브엘세바로 올라간 것이 나오는데요. 이는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삭과 아비엘렉과 일곱 암양을 세워서 언약합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기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이삭이 브엘세바로 돌아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십니다. 이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이삭도 순종할 것을 하나님께서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종이라는 것은 순종하는 자입니다. 아브라함을 종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삭도 순종해야 함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도 복주시고 이삭에게도 복주시기 위해서 순종할 것을 말씀하신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삭이 거기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이삭이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달았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복주시기 원하셔도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복주실수 없음을 이 말씀을 깨닫습니다. 이삭도 그같은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아래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배려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25절)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참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팝니다. 순서가 반대가 된것 같은데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장막이나 우물을 파는것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먼저 예배를 드리는 것임을 여기서 교훈받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이삭은 많은 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물에 대해서 싸울수 있었지만 그렇게하지 않고 계속 이동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때에 판 우물이기에 상속자인 이삭은 그 권리를 주장할수 있었지만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온유한 성품을 여기서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자기의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그렇게 대처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동하는 가운데 이삭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영적으로 깨달았기에 세번째 우물을 판곳을 떠나서 브엘세바로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세번째 장소에서는 싸움이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인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