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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의 모습들 : 기도의 태도, 계시, 광채(요약)

박이레 2025. 10. 26. 13:57

주님의 기도의 모습들 : 기도의 태도, 계시, 광채 / 25년 10월 26일 일요일(요약2) / 강성찬 형제님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1:35, 개역한글)

이번 시간에는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주님의 기도의 모습을 통해서 몇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 계실때에 기도하는 모습이 자주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시만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의 본을 보이시고 우리도 기도할수 있고 기도의 특권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저도 가끔 의도치 않게 일어나서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이 듭니다. 그때 더 특별히 기쁨과 축복이 있는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새벽에, 그 아침의 시작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과 아침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이상적인 하루의 시작의 모델을 봅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 케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11:41-42, 개역한글)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라는 사람이 병들어 죽었을 때에 그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주님께서는 기도하십니다. 그 기도 내용의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항상 주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게 하려고 특별히 소리를 내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땅에서의 걸음 한걸음, 한걸음이 아버지께 기도하며 아버지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변에 사람이 있을때나 없을때가 항상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참 기도의 사람이십니다. 아버지와 교제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의 모습 가운데서 기도가 어떠한 것이고 기도로 어떠한 복을 누리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누가복음은 사람이신 주님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기도하셨다는 기록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써 겸손하게 아버지를 의지하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쌔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눅3:21-22, 개역한글)

이 누가복음에서만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에 "기도하실 때"라고 덧붙여서 기록합니다.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에 기도하셨습니다. 이 모습에서 첫번째로 기도의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침례는 무엇입니까? 겉으로만 보면 물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원어는 세례가 아니라 침례, 몸이 물에 잠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단강 물속에 내려가 잠시겼습니다. 기도는 내려가는 것입니다. 특히 침례는 내려갈뿐 아니라 장사지내는 것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물속에 장사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첫째로 배우는 기도의 태도는 겸손한 것입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개역한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점에 대해서 셋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부서지기 쉬운'이라는 뜻입니다. 부서지기 쉬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일 앞서 가인이 그 동생을 죽였습니다. 인류가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가인은 첫번째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앞서 누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을 배운적이 없습니다. 배우지 않고 그가 자기 동생을 죽였습니다. 스스로 얼마나 악한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러한 많은 혼란과 어둠 가운데서 사람들은 사람에게 희망이 없음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구약에 기록된 기도의 모습입니다.

다시 누가복음에 가면 주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18장 전체가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앞부분은 불의한 재판장에 대해서 나오고 뒷부분은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해서 나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18:1-14, 개역한글)

여기 두가지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하나는 불의한 재판관입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드리는 대상이 누구인지 오해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두번째 바리새인과 세리가 나오는데 이는 기도하는 내 자신이 누구인지 오해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첫번째로 불의한 재판관이 나오는데요. 하나님께서는 항상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십니다. 극단적인 이런 사람도 이런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극단적인 예 대로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으로 생각합니다. 또 악한 부모, 불의한 청지기도 나옵니다. 그들도 그 악한 가운데 자식을 챙기는 것과 지혜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도 극단적인 예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재판해 버리는 재판관입니다. 우리가 불의한 재판관을 만난다면 얼마나 낙심이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불의한 재판관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 왜 들어주시지 않는거야? 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불의한 재판관도 귀찮아서라도 너의 말을 들어준다고 합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그렇게 하는데 하늘에 계신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너의 말을 들어주시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당장 이 일을 해결해 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만일 이 일을 바로 들어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더 좋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 같지 않고 잘하고 있음을 기도합니다. 그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왜 기도하러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나옵니다. 나 자신은 이렇게 나오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기도할때 바리새인처럼 나오면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잘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들으라고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제가 영국에 있을때 말씀을 아주 잘 전하시는 형제님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저에게 이렇게 개인적으로 고백하신 적이 있습니다. 자신도 기도할때마다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이 있고, 그렇게 될까봐 두려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 바리새인은 기도가 잘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운율이 잘 맞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태도에서 틀려있습니다. 기도는 에노스와 같이 부서지기 쉬운 사람이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것도 할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러 나와서 머리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18:13, 개역한글)

세리는 할말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 가슴을 칩니다. 다만 그가 하는 말은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모습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기도의 자세를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고있지 않다면 우리는 틀린 것입니다. 바리새인처럼 말은 잘했지만 다 쓸데없는 자기 자랑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리에게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을 해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우리는 이러한 기도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 (약4:13-15, 개역한글)

잘 계획하고 준비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에게 그의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너의 생명이 무엇이냐?" 너의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며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 (약4:15, 개역한글)

주의 뜻이면 우리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근본 정신이 "주의 뜻이면"이어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아무 생각없이 내가 계획을 짜고 할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참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일부분이 아니라 매 순간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도 이렇게하고 저렇게해야지가 아니라, 매순간 일분, 일초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기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부서지기 쉬운 자리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의 모습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주님께서 낮아지실 때에, 침례를 받으실 때에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쌔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눅3:21, 개역한글)

그리고 기도의 결과는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낮은 땅에서 기도하는 것인데, 그 순간 하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항상 우리를 하늘로 인도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40:31, 개역한글)

망하는 것은 기다리는 것,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땅에 힘이 없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독수리가 날개치는 것처럼 하늘로 올라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다. 달음박질해도 고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신선한 힘을 경험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늘의 위치에서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하늘에 올라가서 땅을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보면, 그보다 작은 북한산에 올라가서 보면 서울이 얼마나 작은 도시인지가 보입니다. 그곳에 빠져 있을때는 그것이 전부인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작은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새벽 미명에 일어나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할때에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현재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이 하나님의 시선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시선을 얻을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주님께 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침례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주님께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사용해서 우리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기도할 때 누리는 또 한가지 축복은 성령의 말씀으로 인해서 확신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확신이 없는 세상입니다. 모두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절대적인 확신을 우리가 누리고 있습니다. 그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기가 세상에서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확신을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한편에 달린 강도가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확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결과로 확신을 얻을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침례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소리가 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것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침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눅9:18-20, 개역한글)

여기 놀라운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누가는 이 신앙고백이 어느 시점에 있었는지를 기록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입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을 하자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알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지혜로 아는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기도했고 하나님의 계시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했고 하나님의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처럼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하고 확신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집회 전에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 진리를 깨달을수 없는 것입니다. 주일학교를 하기 전에도 어린아이들이 이 복음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은 계시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기도할 때에 계시가 주어진 것을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성경에 여러가지 예언이 있지만 뼈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예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뼈대가 되는 예언이 다니엘서 9장에 있습니다. 70이레의 예언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경영하실지, 어떻게 이루실지, 그 목적의 시간표가 다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언제 오시는지, 언제 고난을 당하시는지, 그리고 그분께서 언제 다 원상복구시키시는지 시간표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 알려주시냐면, 다니엘이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이 놀라은 계시를 주셨습니다. 신약성경에도 놀라운 계시가 주어집니다. 그것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분별이 없이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시가 주어진 때는 베드로가 기도할 때에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하지 않으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에 그 내용을 깨닫는 것은 겸손히 기도할 때에 깨닫는 것입니다.

이제 한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9:28-29, 개역한글)

변화산 장면인데요. 주님께서 기도하러 산에 올라셨는데 거기서 주님의 용모가 변화되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에서는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변화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변화됩니다. 기도할때 하늘로 올라가고, 하나님 앞에 있고, 그리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영광스러운 존재앞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절대 변화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영광스러운 존재 앞에 있어 그로 인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출34:29, 개역한글)

여기도 영광스럽게 변화된 한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돌판에 써 주셨는데, 모세가 그 돌판 두개를 받아서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모세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놀라워 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어 광채가 나나" 특별히 말한 것을 언급합니다. 여호와께 말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말씀을 듣기도 했지만 모세가 하나님께 말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음을 인해서 그의 얼굴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무슨 말을 했습니까?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가로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컨대 주는 우리 중에서 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으소서 (출34:9, 개역한글)

이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잠깐 사이에 우상을 만들어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이 어이없는, 희망이 없는 이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벌주시려 하자 모세가 그들을 위해서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기도는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인지를 알았기에 간구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모습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낮은 자세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도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주님의 기도드리는 모습을 통해서 이러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