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몰랐다고 변명할수 없습니다. / 25년 10월 26일 일요일(요약1) / 강성찬 형제님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찌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잠24:11-14, 개역한글)
이 말씀은 어떤 한 장면을 저희에게 말씀해 줍니다. 어떤 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끌려갑니다. 그 사람은 큰 죄를 범했고 죽여야 한다고 하고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곧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끌려가는 사람에 대해서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데, 그러한 죽을만한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거기에 나타나 그 사실을 말해주면 그 사람을 살아날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상황에서 나와서 사람들을 막고 이 사람이 그 잘못을 행하지 않았다고 용기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다 흥분해서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그 자리에 나선다면 사람들이 당신도 같이 죽이려고 할것같은 분위기 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냥 입을 다물고 말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입을 다물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사망으로 가는 사람을 끌어서 구원하라고 하십니다. 나는 알지 못했다고 변명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많은 일들 가운데서 사람들이 하는 변명이 그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많은 법정에서도 판사들 앞에 가서 하는말이 나는 몰랐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찌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입으로 몰랐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이 이 전체 내용을 잘아시리라 생각하고 한절만 찾아 읽겠습니다.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16:30-31, 개역한글)
간단하게 줄여서 말씀을 드리자면,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살아있을 때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원하는대로 살다가 죽은 후에 지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물 한방울을 얻고자 했지만 그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자기 형제들이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구합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서 그들에게 보낸다면 자기 형제들이 들을 것이라고 합니다. 나사로는 살았을 때에 하나님을 알고 믿은 사람입니다. 하늘나라가 지옥이 있다고 전해서 이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았을 때에 그같은 증거를 받았다면,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이 말해줬다면 내가 이 지옥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몰랐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미 그들은 잘 듣고 있다." 거기는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서 돌아가서 증거하는 것보다 더 큰 증거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16:31, 개역한글)
그럼에도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일부러 거절한 것이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라는 아주 좋은 곳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꽁꽁 숨겨서 말하지 않으실까요? 그리고 몇몇 사람에게만 알려서 너만 와라, 하실까요? 지옥과 같은 끔찍한 곳이 있는데 그것을 숨겨서 사람들이 지옥에 빠지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절대 그런분이 아닙니다.
예전 88년도에 올림픽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아주 큰 행사입니다. 그래서 그 올림픽을 하기 전 몇년 전부터 시골구석까지 광고를 하면 집앞까지 청소하라고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하늘나라는 그것과 비교할수 없는 것입니다. 아주 큰 잔치입니다. 여러분도 잔치를 벌인다면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큰 잔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열심히 알리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나중에 몰랐다고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 변명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것을 몰랐다고 거절하는 것일까요?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8:45, 개역한글)
이상하게도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하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앞절에 보면 마귀, 사단은 거짓말쟁이임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사람들은 잘 받아들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19, 개역한글)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자기 나쁜 짓이 드러남을 원치 않으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내가 사는 방식이 옳다고, 다 그렇게 산다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는데도 몰랐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요즘은 번역기가 잘 발달했는데요. 영어로 말하면 한국어로 잘 바꿔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말을 성경의 말로 바꿔주는 번역기가 있습니다. "나는 몰랐어요."라고 하면 성경 번역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거짓말쟁이 입니다." "나는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예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을 때에 이와같이 번역이 되어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을 저울질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만 하면 저 사람이 풀려나는데, 여러분의 마음이 요통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려고 말하지 않고 있으면, 저 사람은 큰 어려움을 당할텐데. 그런데 내가 말해야 하나? 말하면 내가 큰 어려움을 당할텐데. 그런 생각으로 요통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저울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울이라는 것이 무게를 달아보는 것입니다. 양심이 저울과 같습니다. 양심이 어떤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양심은 무엇이 옳은지, 나쁜지를 신기하게도 저울질 해 줍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다른사람은 아무도 모를지라도 내 마음이 그것이 옳은지, 나쁜지를 압니다. 추가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분명히 선언하신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찰하고 계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또 우리 영혼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은 굉장히 민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손상되기가 쉽습니다.
우리 몸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온도의 범위가 매우 좁습니다. 우주적인 스케일로 하면 온도의 범위가 우리가 상상할수 없을만큼 큽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사람이 편하다고 느끼는 온도의 범위가 십 몇도입니다. 그리고 1도만 달라져도 사람들은 민감하게 느낍니다.
우리 몸도 그런데 우리의 영혼은 더 심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다른 사람이 저 멀리서 무슨말 한마디만 해도, 내 얘기도 아닌데 내 얘기 비슷한 것만 해도 느낍니다. 우리의 혼도 그럴진대, 사람의 핵심인 영은 더 민감한 것입니다. 영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관입니다. 그리고 이 영혼이 범죄하게 되면 금방 손상되어 어두어 집니다. 사람들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옷을 입는데, 더 중요한 영혼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으시면 이 영혼을 유지할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혼이 손상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붙드시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폭발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3절은 꿀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14절은 지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꿀은 달고 우리에게 좋은 영양분을 줍니다. 꿀은 자연에서 나는 것 중에 액기스라고 할수 있습니다. 꿀은 꽃의 액기스입니다. 가장 최고의 것을 압축한 것입니다. 꿀을 먹으라고 우리에게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에게 몸에 좋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에게 어떠한 것인지를 꿀에 비유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몸이 음식으로 영양분을 취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영양분을 취해야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기울이면 우리 영혼이 지켜지고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얻으면 정년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마음은 항상 미래를 걱정하며, 소망이 있어야 살수 있습니다. 더 기쁜것, 즐거운 날이 있겠지, 그러한 소망이 있어야 살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영혼에게 그것을 줍니다.
그러면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사람들은 왜 거짓된 말을 선택할까요? 왜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몰랐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변명의 여지 없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사단을 택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사단이 하는 거짓말이 나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5,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그것을 먹는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것을 거꾸로 말합니다. 결코 죽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될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그것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해서 자기를 찾았나요? 오히려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때 주셨던 존귀와 위엄을 잃어버립니다. 그는 땅에서 머리로써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탕자의 이야기를 압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기 싫어서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받아서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래서 그가 자기를 찾았나요? 다 탕진하고 빌어먹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살았으니 자기가 자기를 찾은것 아닌가요? 내 인생이니 망해도 좋은거 아닌가요? 하면서 막 삽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를 찾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분들에게 이와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자기를 찾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냥 아버지 밑에서 그냥 편안하게 농사지으면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찾는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가능성과 개성이 온전히 꽃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같은 꽃이 없습니다. 다 다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 꽃이 피었을때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나타낸 것입니다. 그냥 방탕하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는 것이 자기를 찾는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두신 가능성을 꽃피우는 것은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찾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말씀을 찾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2:2-3, 개역한글)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세상 풍속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유행을 그냥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본연의 모습이, 개성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모두다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그것은 사단입니다. 그들은 자기 뜻대로 살았다고 하지만 사단이 그들을 종으로 삼고 사단이 이끄는대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탕자는 자기 뜻대로 살았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다른 사람의 종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이것이 사단의 최악의 거짓말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엡3:10, 개역한글)
아까와는 대조적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온 우주에 알게 하는 것입니다. "각종 지혜" 다양한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를 다양한 종류의 지혜로 나타내게 하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 자신만의 기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참 진리만을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것이 나의 최대의 자유라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양심을 두드리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를 거절한다면 하나님은 심판자로서 여러분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여러분은 이를 알지 못했다고 절대 말할수 없습니다.
다시 처음에 말씀드린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이 없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인류 역사 가운데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죽이겠다고 끌고 간 것입니다. 빛이신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드러내자, 사람들은 그것을 듣기를 싫어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둠을 선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죽게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사람은 잘못이 없는 분이다, 그렇게 죽여서는 안된다고 할 것입니까? 아니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것입니까? 이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 이분은 죄가 없는 분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눅23:41,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두 강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달렸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하지만 두 강도는 자기들의 잘못으로 십자가에 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명의 강도가 주님의 모습을 보고, 그 십자가를 묵묵히 감당하고,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또 말합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눅23:42, 개역한글)
그리고 이분에게 부탁합니다. 이분을 왕으로써 인정하고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여러분도 이 강도와 같이 분명하게 말하기를 바랍니다. 이분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다. 이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나의 죄를 위해서 달리신 것이다. 그리고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해 주십시요. 그때 주님께서는 답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43, 개역한글)
부자가 갔던 지옥이 아니라 나사로가 갔던 낙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부자와 같이 우리는 알지 못했다고 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소식을 분명하게 듣고 있습니다. 나를 의탁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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