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하루 방문(요약)

복음 : 세상의 법과 다른 하나님의 복음

박이레 2025. 8. 17. 14:03

복음 : 세상의 법과 다른 하나님의 복음(귀신들린 여종, 루디아, 간수) / 25년 8월 17일 일요일(요약1) / 강성찬 형제님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 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행16:9-34, 개역한글)

오늘 이 시간은 사도바울이 일행이 빌립보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구원받은 역사에 대해서 살피면서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얼마전에 선혜와 다른 모임의 자매님들이 베네주엘라를 방문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쪽에 있는 남미에 있는 나라입니다. 너무나 멀어서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터키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 나라입니다. 굉장히 오래 걸리는 여정인데요. 제가 이 여정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 중간에 멈춘 터키라는 나라의 이스탄불 근처가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내용의 배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탄불이 참 특별한 도시입니다. 서울은 아시아에 있는 도시입니다. 파리는 유럽에 있는 도시이고 뉴욕은 미국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스탄불은 특이하게도 아시아에도, 유럽에도 있는, 그 가운데 걸쳐져 있는 도시입니다. 흔히들 아시아와 유럽의 관문이라고 불리우는 지역입니다.
사도바울 전도 일행이 원래는 아시아 쪽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마게도냐는 아시아 건너편, 유럽쪽에 있는 지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럽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시는 구나, 하고 사도바울 일행이 유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제가 이것을 특별히 말씀드리는 이유는, 인류의 문명의 흐름으로 봤을 때에는 이것이 좀 이상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마게도냐 지역이 그 당시에는 문명이 더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 문명과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은 그 당시 가장 큰 제국인 로마가 다스리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진국에서 이리로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통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이 복음이, 이 성경이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독교도 결국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서방 세계가 패권을 잡고 있으니까 그 서방세계가 많이 믿고 있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에까지 그 종교가 들어온것이 아니냐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보면 사람들의 문명의 발달과는 반대 방향에서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합니다.
그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죽는, 사망의 문제였습니다. 이 사망의 문제는 아무도 해결할수 없습니다. 왜 이 놀라운 문명을 해낸 사람들이 죽는가에 대해서 해답을 찾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선진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죽음이 왜 인류에게 온 것입니까? 성경은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것이 사망이 오게 한 것입니다. 사람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면, 생명의 근원과 함께 있기 싫어하면 사람에게 사망이 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또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한 사람들에게는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가장 선진화된 문명으로도 해결할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일행은 복음을 들고 그 마게도냐로 건너간 것입니다.

그리고 건너갔을 때에 16절에 귀신들린 여종이 나옵니다. 이것을 가장 먼저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 선진화된 문명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선진화된 문명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가장 좋고 아름다운 문명이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행16:12, 개역한글)

"첫 성이요." 가장 첫번째 성이고, 선진화된 성입니다. 그런데 그 성에서 만난 사람이 귀신들린 여종입니다. 귀신들려서 사람들에게 예언의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 여종의 주인들이 그 여종으로 돈벌이를 합니다. 이것이 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생각외로 점을 많이 보러다닌다는 것을 많이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과학적인 것을 많이 좋아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면 그것은 비과학적이라고 거부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한분들이 이상하게 비과학적인 미신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저희 모임에도 성도님의 부모님이 있는데 그 부모님들이 사회에서 성공했는데, 점을 그렇게 많이 보신다고 합니다. 점을 봐서 자기의 사업이 성공할지 안할지를 본다고 합니다. 참으로 문명화된 도시에서 나타나는 비과학적인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가장 발전된 문명에서 사람이 만드는 종교는 딱 이런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만족시켜줄 종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느정도까지 자기의 이익을 챙기냐면 다른 사람을 착취해서, 노예로 삼을만큼 챙깁니다. 사도바울이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잘된 일입니까? 귀신에게 붙잡혀 있던 여종이 귀신에게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이익이 사라짐을 보고 싫어합니다. 이것이 가장 문명화된 사회의 모습입니다. 이기적인, 다른 사람들을 자기의 도구로 생각하는, 물질주의의 사회의 모습이 이 성의 모습입니다.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행16:19, 개역한글)

그들에게 있어서의 소망은 이익의 소망입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써 참된 소망다운 소망을 가져본적이 없습니다. 정말 그들이 가져야 할 사람의 고귀한 소망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의 소망을 소망합니다. 부자되는 것을 소망합니다. 그래서 귀신을 내쫓아준 바울과 실라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잡아서 자기들의 이익의 소망을 없앴다고 고소합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행16:21, 개역한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 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들에게 너무나 맞지 않는 것입니다. 도저히 사람이 생각해 낼수 없는 그러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로마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주 큰 문명을 발달해 냈다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랑하는 로마법도 지키지 않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잡아서 일단 때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로마법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행16:37, 개역한글)

로마 사람은 함부로 때리면 안되고, 재판을 해서 죄가 있는것이 판결되면 그제서야 때릴수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법을 사랑하지만 로마법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내보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처리하는 방법을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 공의롭게 하는것이 아니라 가만히, 은근슬쩍 처리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죄는 반드시 공의롭게 처리되어야 합니다. 죄는 그 성경이 말하는대로 의로운 피가 흘려져야만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로마법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법도 그 로마법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법을 훌륭하게 만들수 있지만 정작 그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만든것과 하나님의 복음과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와서 그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의 구원을 살피겠습니다. 그 사람은 루디아라는 여인입니다. 13절에 사도바울은 기도처에 갑니다. 그리고 두아디라에서 온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두아디라는 아시아에 있는 성인데 그곳에서 루디아는 와서 자주빛 옷감 장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심을 알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인 사람도, 그냥 교회를 잘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가야 합니다. 구원을 받아야만 그 죄가 용서됩니다. 이 루디아라는 여자도 그것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강조드리는 이유는 이 복음과 구원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열심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고 주께서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두셨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청종하게 하신지라" 이는 그 말씀을 주의깊게 들었다는 뜻입니다. 앞에서도 루디아라는 여인은 그 말씀을 잘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 마음을 여셨을 때에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은 것입니다. 참으로 이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 보면 그는 이와같이 변화됩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행16:15, 개역한글)

그는 사도바울 일행을 초청해서 그 집에 있게 합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귀신들린 여종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구원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세상의 문화로는 만들어낼수 없는 모습니다.

이제 또 다른 구원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의 간수입니다. 그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옥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쇄사슬을 채워서 가둬 놓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에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감옥문이 다 열립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 간수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앞에 루디아라는 여자와 비교해보면 이 간수는 종교적이지도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간수도 하나님의 역사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진을 일으키사 간수가 깜짝 놀라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간수라는 공무원직을 받아서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안정적인 삶을 흔드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감옥문이 다 열려버렸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진을 발생시키십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잘되고, 자녀들이 잘 되고, 건강에 문제도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지진을 발생시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에게 벌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분으로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안전하지 않은, 모래성과 같은 것을 견고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만 있다면 사람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확 무너져 버립니다. 아무 걱정없이 10년, 20년 살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가족이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암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안전한 것이 없구나. 참으로 안전한 것이 어디 있는가? 여러분의 삶이 흔들릴 때에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내 삶에 견고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이 쌓아온 삶, 직장이 한순간에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간수는 옥문이 다 열렸을 때에 자결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죄수 한명이 도망가면 간수는 그 도망간 죄수를 대신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때의 법입니다. 그래서 간수는 죽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여러분이 이루어 놓을 것이 다 무너질 때에 나는 끝났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때 바울과 실라가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죽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심각한 병에 걸려서, 또는 사업이 망해서 내 삶이 끝났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게 큰 문제가 아닌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 또 살길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어려움이 지나갔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간수는 그 생각을 했습니다. 간수는 죄수가 다 도망가버리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 생각하고 죽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큰 일이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알았지만, 바울과 실라앞에 달려가 두려워하며 부복합니다. 그는 이제 두려워 합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가 더 무서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바울과 실라가 찬송을 드리는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옥에 가뒀을 때에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것을 죄수들과 간수가 듣습니다. 그들은 매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이는 그들이 살고있는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였습니다. 자기의 이익이 사라지면 분내는 사회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로 찬송하게 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그 하나님은 저들에게 참으로 안전을 주시는 분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혔다 할지라도 바울과 실라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전은 자신이 가진 안전보다 완전한 안전임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여러분도 이러한 진정한 참 안정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간수에게 지금까지 가장 두려운 존재는 그의 상전이었을 것입니다. 죄수가 도망가면 자기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상전이 가장 두려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전을 주시는 바울과 실라의 하나님이 가장 두려운 분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물어봅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여러분들도 이렇게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물으시는 것이 앞에서 루디아에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저같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수 있습니까?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열린 마음 앞에 단순하게 복음이 전해집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 그리고 여러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가 조금도 없으셨지만 여러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예수님을 믿으시고 구원을 얻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세상의 법과는 다릅니다. 내용만 좋고 지키는 사람이 없는 로마 법과는 달리 믿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놀라운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은 사람이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씻기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의 필요를 아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