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38년된 병자, 미문앞에 앉은 앉은뱅이 / 25년 7월 27일 일요일(요약1) / 장승훈 형제님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5:1-9, 개역한글)
주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낫게하신 내용을 보았습니다. 양문 옆 베데스다라고 하는 못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양문, 베데스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있는 이름들입니다.
그러나 베데스다에서 있는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와는 무관합니다. 많은 병자들이 천사가 물을 동하게 하는 일을 기다립니다.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낫는다고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들은 먼저 들어가는 것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소경은 물이 동하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절뚝발이나 혈기 마른자, 중풍병자는 절대 다른 사람보다 먼저 못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결코 그 원하는 것을 얻을수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그 당시 주님의 나이는 31세로 예상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38년된 병자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에 이 사람의 병이 오랜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병자는 "물이 동할때 나를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병자는 주님의 말씀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38년된 병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몸에 힘을 주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걷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믿음과 은혜가 들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이 병자에게 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사람이 나은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덕분 입니다. 그는 잘못된 방법으로 나을수 있는 방법을 구했지만 나을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힙입어서 그가 나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에 나온 7개의 표적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5-17, 개역한글)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침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먼저 받으십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주님게 임하심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리고 그 이후에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기적과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구원하시는 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1-4, 개역한글)
성령이 임하시고 교회가 세워집니다.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행3:1-10, 개역한글)
이제 사도행전으로 와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3장에 교회가 앉은뱅이를 낫게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교회가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3장에는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나옵니다. 그가 아마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강하게 구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경제적인 부분을 구걸했을 것입니다. "우리를 보라" 세상은 무한경쟁의 사회 가운데 있습니다. 이 경쟁에서 낙오되면 굶어죽을 것처럼, 혹은 행복을 얻지 못할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삶을 오래 살아오신 분들께서는 내가 얼마나 돈을 추구하고 부유함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강하게 구걸한 앉은뱅이를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행3:8, 개역한글)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자세히는 알수 없지만 이 앉은뱅이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들어가고자 소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 없었습니다. 그가 앉은뱅이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실제적으로 갈수 없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읍니다. 이 앉은뱅이는 38년된 병자와 같이 하나님 앞에 갈수 없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와 동일한 죄인입니다. 죄인이라는 신분 자체가 그러하고, 실제로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면 죽습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허다한 죄가 있는데 금과 은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죄를 없앨수 있습니까? 천금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어제 지은 죄 하나조차 없앨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통해서 이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도록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3:6, 개역한글)
이 사람은 금과 은보다 더 작은, 아주 작은 경제적인 것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람에게 주는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는 것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3:7, 개역한글)
그리고 여기서도 앞의 38년된 병자와 같이 이 앉은뱅이에게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 손을 잡고 힘을 내어서 일어나보자라고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 여세나 되었더라 (행4:22, 개역한글)
그는 오랜 시간동안 앉은뱅이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을수 없는 일이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행3:8-10, 개역한글)
이 사건을 모든 백성들이 보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저희들이 오랜 시간동안 말씀을 듣는데 그 말씀이 역사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 말씀을 경히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시대에 그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수 있겠는가, 하고 경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면 충분히 그와같은 일이 일어날수 있다고 믿음을 가지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려움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도록 하나님의 긍흉을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을 할 때는 우리가 진지하고 심각하게 이러한 일들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같이 되었을 때에 그 변화는 분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 알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일들이 저희 모임 가운데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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