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세의 생애 : 젊을 때, 중년의 때, 노년의 때 > 조나단 블랙 형제님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14).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출 4:1-4).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출 4:10-11).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뻔 하였도다"(민 20:2-3).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찌니라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 20:6-12).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행 7:30-31).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 11:23-27).
오늘 이 시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볼 때에 감명을 받게 됩니다. 특별히 여기에 젊은 성도님들이 많은 것을 볼 때 기쁘게 생각합니다. 또한 여기에 이제 중년의 성도님들이 많은 것을 볼 때 또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노년의 성도님들을 볼 때도 동일하게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중에 어느 연령대에 속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오늘 이 시간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이 인물, 이 사람은 120년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 모세는 그래서 그의 생애가 세 단계의 연령대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7장 말씀을 볼 때에 이 모세의 생애를 세 연령대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40년씩 세 연령대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오늘날에 이제 연령대로 대응해서 생각을 해 본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제 30년, 30년, 30년, 이렇게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제 90살까지 산다면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각 단계의 연령대에 특별하게 조명하시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특별히 젊은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가 있으며, 젊은 사람으로서 모세는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또한 여기에 중년의 성도님들에게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모세는 역시 그 나이대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한 노년의 모세는 그가 아주 중대한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도 살펴보게 됩니다. 그가 나이가 들었을 때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우리의 그 생을 마칠 때까지 항상 주의를 기울여서 살아야 됩니다. 단지 젊은 사람들만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노년의 사람들도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항상 실수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모세가 젊었을 때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에 관한 아주 중요한 장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이른 시기에, 어린 나이 때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장에서는 80세까지의 모세의 생애를 다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나와 있는 사건들을 히브리서 11장에서, 여기서 또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출애굽기 3장을 보게 될 때에, 또한 레위기의 책들을 살펴보게 될 때, 또한 민수기 책을 살펴볼 때에, 신명기 34장까지 이제 40년이 또한 흘러갑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장부터 신명기 34장까지 또한 모세의 40세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출애굽기 2장 그 한 장에서는 모세 80세까지의 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세의 삶에 그런 여러 가지 진행들을 살펴보게 될 때, 그러나 80세 때는 또한 모세의 40대 때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역시 50세일 때는 25세의 나의 모습과는 다른 더 성숙한 모습이 되어야 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좀 나이가 들어서 구원받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항상 계속해서 성장하고 진보하는 모습이 나타나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가 나이 들었을 때 사용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젊은 나이에 했던 선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여기 23절에 보면은 또한 모세의 부모가 했던 선택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부모가 그 아이를 석 달 동안 숨긴 것을 보게 됩니다. 더 이상 그를 숨길 수 없었을 때 이제 광주리에 넣어서 그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서 다시 그 모세를 모세의 어머니와 그의 누이가 돌볼 수 있게 하십니다. 참으로 어머니가 그의 아이를 돌보게 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입니다. 참으로 어머니만큼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와 같은 돌봄을 받은 사람입니다. 참 애굽의, 그 세상의 악한 환경 가운데서 그는 경건한 보살핌을 받은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올바른 선택을 하였고, 그리고 모세가 따라서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에 대해서 서로 기도해 주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사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를 위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론 우리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렸을 때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어떤 위험 가운데서 그들을 숨겨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은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야 되는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찾아보게 되는 것은 그 부모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모세의 믿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모세는 첫 번째로 한 거절을 하게 됩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하나님 편에 설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애굽의 대학교에 갔습니다. 그는 아주 놀라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에게는 놀라운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풍요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많은 아내도 둘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가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는 지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하지만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와 같이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는 단지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붙잡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택했던 것입니다.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그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선택해야 되는 그러한 선택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그 쾌락과 죄를 선택할지, 아니면 구원을 선택할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아주 값비싼 그런 선택의 순간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무엇을 더 가치 있게 여겼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능욕 받는 것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19세 때, 이제 어린 나이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 구원을 받으면 그때 당시에 내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했습니다.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나를 조롱할 거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내가 구원받고 나자 제 친구들이 저한테 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능욕 받는 것을 더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구주로 아는 것에 합당한 가치 있는 희생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그 세상에서 누리는 쾌락보다 이것이 훨씬 더 나은 것이라고 선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저를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그분이 저를 만족시키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찬송가를 부릅니다. '이 세상을 다 가져가고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만 달라.' 모세는 이와 같은 상급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이 상 주심을 바랬고, 그것은 모세를 위해서 확실하게 보장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안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영원한 미래가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애굽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 서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에게 여러분이 무엇을 거절하는가가 중요하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싫어, 그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배운 사람입니다. 요셉도 어느 날 그 악한 여인에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인은 요셉에게 비도덕적인 그 죄를 함께 범하자고 유혹했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분명하게 아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은 다니엘이 그 왕의 음식으로 더럽혀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지금 고향을 떠나 있었고 바벨론은 이제 그가 타협하기를 바랐습니다. 다니엘은 아주 큰 금식을 행하고 있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이제 다른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에게 이 술과 관련된 것을 경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술을 함께 마시자라는 제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싫다라고 거절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제 다른 것을 먹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술을 마시면 반드시 실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약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선택이 하나님을 위한 미래의 섬김에 있어서 여러분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 취할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를 주관하도록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됩니다. 때때로 이것은 큰 유혹의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참 오늘날에는 여러분이 많은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해야 되는 선택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또 사진을 보기를 원하고 친구들이 그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싫다라고 말해야 됩니다. 특별히 이 가운데 있는 부모님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입니다. 이 부모로서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엘리사벳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자였습니다. 엘리사벳에게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이름을 사람들이 사가랴라고 부르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요한이라고 불러야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여자입니다. 특별히 그 한나는 포도주를 건드리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이 나실인으로 태어나고 자라야 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가 먼저 건드리지도 않았고 또한 사무엘도 그것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여기 있는 부모님들은 어떻게 행하고 계십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술을 마시길 원한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 술을 마시는 데 있어서 거절하기를 여러분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가지 예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거절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여러분은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은, 여러분의 동료들 가운데서 이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좋은 친구들을 선택할 줄 알아야 됩니다. 같은 영적인 그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돼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나의 간증을 학교에서, 직장에서 잘 나타내고 있어야 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같은 도덕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야 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가장 또한 중요한 선택 중의 하나는 이제 어느 배우자를 선택할 것인가입니다. 구원 이후에 사실 이 결혼이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선택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됩니다. 올바른 사람과 인도함을 받아야 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모세가 그의 젊은 시절에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을 거절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하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첫 번째 40년 기간에는 그의 아들로서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두 번째 그의 40년의 기간에는 그가 목자로서 활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간 동안에도 모세를 예비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3장에서 가시덤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그때 양떼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땅에서 그와 같이 있었습니다. 그의 장인은 이드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아내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는 이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순간이 그의 '세 번째 기간'이 되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이름을 여기서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그것은 그 위대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어디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하셨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목자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우리가 시편 23편에 처음 몇 단어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것을 이 목자에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분 자신은 큰 목자장이십니다. 참으로 그분께서는 큰 양떼를 가지고 계시고 그리고 이제 모세에게 그 양떼를 인도하도록 맡기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에 복음 집회에 하나님께서 열으신 7가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중에 이번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여신 모세와 관련된 다섯 가지 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기 전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그 관심을 끌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참으로 하나님이 부르신 곳으로 갈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십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하기를 바라지 않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는 집회의 유익 중에 하나는 이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원하는 뜻을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으로 교정하고 바꾸어 낸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제가 자동차 운전을 할 때에 이 차가 제 운전에서 차선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벗어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것을 차고 안에 둘 때에, 그리고 그 차고 안에 바퀴를 정렬해가지고 직선상으로 놓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차가 자꾸 오른쪽으로 가거나 왼쪽으로 가거나 이런 경향이 있을 때 다시 바퀴를 조정하는 것처럼 말씀 집회를 통해서 우리를 다시 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세가 언제 떨기나무 앞에 섰는지 그 나이를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80세였습니다. 우리의 나이로 환산하자면 우리로 치면 60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그 나이대의 분에게 특별히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나는 은퇴해야 될 나이가 아닌가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겨야 될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60대 나이에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서 섬김을 받고자 하는 그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40대, 50대에는 아직 할 수 없었던 그런 일을 하나님이 지금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인생의 경험을 가지고 계시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또한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는 그 역량이 된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출애기 3장 3절에 보면 "그가 돌이켜서 이 광경을 보리라." 그는 그 눈을 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그에게 나타내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이 붙었으나 타버리지 않는 그 떨기나무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사실 모세는 수백 번 떨기나무가 사막에서 불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습니다. 그 떨기나무가 불이 붙었지만 타서 없어져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그 십자가에서 그분은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까? 그분은 소멸돼서 사라져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친히 내려놓으셨고 그리고 다시 취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두 번째로 그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사이에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여기에 모세는 개인적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야, 모세야"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참 내 자신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물론 떨기나무 사이에서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역시 결코 소멸돼 사라져버리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을 불지르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그의 귀가 열렸고 그다음으로 그의 '신'이 열리게 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에서 성경에서 처음으로 '거룩'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신에 대해서 첫 번째로 언급된 구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에서는 "거룩케 한"이라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과 관련돼서 거룩을 언급한 것은 바로 여기가 처음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곳이라는 것을 신발과 하나님께서 연결시키십니다. 이제 이것을 통해서 모세가 어떻게 걸어야 되는지, 어떻게 행해야 되는지를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가 서야 되는지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어떻게 행하고 설 것인가? 우리가 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합당하게 섬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시간을 보내야 됩니다. 우리의 신발을 벗고, 우리의 핸드폰을 옆에다가 꺼두고,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리고 그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여기에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을 또한 듣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성별이 있습니다. 여기에 거룩한 땅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거기를 주목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행하기를 바라는 그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이제 모세는 어떤 일을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그것을 정확히 아는 것은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출 3:7-8).
우리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과 또한 하나님이 모세가 하기를 바라는 일,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제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고, 그리고 10절에서 모세와 관련돼서는 다른 단어를 사용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라고 하십니다. 모세 자신이 그 노예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낼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 일을 하도록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만 오직 그 홍해를 둘로 가르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신 일은 그 백성을 하나님이 이미 건져내신 백성을 인도하여 그 갈라진 물 사이로 인도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내가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을 구원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구원해내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관련된 여신 그다음 것은 그의 '손'입니다. 이제 모세는 이것에 대해서 저항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하기에는 자신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여기 지팡이입니다." 그것을 땅에 던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뱀이 되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세의 손에 이 능력을 주셨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가 손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은 그의 손에 문둥병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가 그 손을 품에서 꺼내자 문둥병에 걸렸고 그것을 다시 품에 넣었다가 내어 보니 손이 깨끗하게 고쳐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이 모세의 '손'에 둔 그 능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님이 그에게 열어주신 것이 있습니다. 모세가
내가 무엇을 말해야 됩니까?"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너의 입을 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로 그 입을 만든 사람이다. 내가 그 입과 너와 함께하리라.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말씀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이 말씀을 연구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에 그분의 능력이 또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같이 하나님이 그의 '입'을 열어주십니다.
이제 모세가 배우게 되는 그 큰 교훈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그의 머리로부터, 그의 눈으로부터, 그의 발까지,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참으로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손에 자신이 필요한 모든 능력이 달려 있다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또한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그 자신의 '눈'을 또한 열어주십니다. 3장 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눈'이 또한 열려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귀'가 또한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에 보면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이제 하나님의 '신'이 또한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일하고 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인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또한 열려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강한 손으로 그들을 건져내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입'도 또한 열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제 모세에게 그 할 말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씀을 드리자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서 모세에게만 네가 이렇게 이렇게 하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가 또한 개별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7개의 교회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보낸 교회 서신에는 이제 귀가 열려져야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많은 소음 가운데, 여러 쓸데없는 소리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많은 세상 사람들은 전부 이어폰을 끼고 다닙니다. 그 잡음을 제거해 주는 기능을 가진 이어폰을 끼고 다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다 제거해 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시길 바라는 그 일들을, 그 말씀하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모세에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양들을 돌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에 저였더라면 저도 많은 변명을 하고 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하지만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큰 상급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상의 한 부분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산에서 그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돌판에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를 산에서 부르신 것을 살펴보게 됩니다. 3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고 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또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제 이 산에서 나를 섬기게 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이 하나님의 산으로 이끌어 오게 될 것이다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세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한 걸음의 진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에 그 모든 길의 전체를 다 보여주시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한 번에 그것을 다 말씀해 주신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시내산에 다시 돌아올 것을 믿음으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내산'이라는 것은 '호렙산'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산'이라고도 불립니다.
모세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많은 산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중에 모세의 마지막, 그 인생의 마지막에 나와 있는 산이 있습니다. 그가 38년 동안 이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한 후에, 참으로 그러한 가운데 많은 어려움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나의 생명을 이제 거두어 달라고 몇 차례 간구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인생을 우리가 되돌아볼 때에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그를 보존해 오신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동일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일하게 보존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앞서서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애굽 사람들이 쫓아오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뒤에서 그들을 막고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아무것도 그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 위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그들을 먹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모세가 더 이상 그 압박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모세의 아래서 그를 지지하고 계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수리의 날개로 그들을 업어서 여기까지 인도하여 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밑에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분임을 또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민수기 20장에서 모세가 그와 같은 압박 가운데 있는 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 민수기 책은 사실상 무덤과 같은 그런 장면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두 번에 걸친 그 백성들의 수를 계수하는 것이 기록됩니다. 이 민수기 서두에서 그 백성에게 수를 계수하였을 때 약 60만의 사람들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민수기 후반부에 그 백성의 수를 계수하였을 때 그들의 수는 비슷한 60만의 사람들이 됩니다, 남자들의 수가. 그래서 단지 처음과 마지막만 보면 '그래도 잘 됐네.'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에 대한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는 말씀을 듣게 될 때, 이 두 번째 백성의 수를 계수할 때에 첫 번째 계수함에 들었던 사람들은 한 명도 여기에 참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한 세대가 완전히 다 죽어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장에서는 그 이유가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 애굽의 쾌락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모세에 대해서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모세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내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불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들을 옳게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6절에 보면은 그들이 엎드렸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고 그래서 하나님께로 그 문제를 가져갔던 것입니다. 특별히 이 시간에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는 삶 가운데 있는 분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지금 가야 될지 모르는 가운데 있을 때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두 번째로 여호와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지팡이를 가지고" 그리고 바위를 명하라. "반석에게 명하면 물을 내게 되리라. 그리고 회중들이 마실 물이 나올 것이다."
모세는 첫 번째는 잘 하였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그런데 그는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주 낙심해 버린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물을 내야 되는가? 여기 한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고 모세에게 속한 백성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는 화를 내면서 그 반석을 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8절을 보게 될 때에 이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그것이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구절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바는 그가 '두 번째로' 반석을 쳤다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반석을 친 것은 출애굽기 17장에서 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성령님을 상징하는 그림입니다.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후에 이제 성령이 믿는 자들에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17장 그다음 사건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면 육신을 상징하는 아말렉이 싸움을 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받았으면 이제 그것은 즉시로 육신과 충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그 반석이 침을 받은 그 그림은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신 것을 말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한 번 죽으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 순간에 그 반석을 두 번째로 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치는 것이 아니라 반석에게 명하라고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많은 신선한 힘을 받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한 번만, 단번에 영원한 그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은 여기서는 아주 큰 실수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백성들로 말미암아 그들의 인내심을 더 이상 참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실제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에 내가 인내심을 참지 못했을 때 그때 함부로 행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뭘 한다면 우리는 아주 큰 잘못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모임 가운데서 그렇습니다.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움직이지 말아야 되는데 그런 행동을 하게 돼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합당하지 않게 행동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이 회중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드리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잘못에 특별히 심각한 점은 또한 모든 회중 앞에서 그 잘못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공적으로 어떤 잘못을 범한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의 가정 안에서 잘못을 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회중 앞에서 잘못을 범한다면, 그건 특별히 젊은 성도들을 넘어뜨리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잘못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20장에서 두 죽음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로 미리암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20장 마지막 부분에 '호르산'에서 아론이 죽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산이 모세에게 있어서 마지막 산이는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신명기 말씀을 보게 될 때에, 여기 이 사건으로부터 이제 불과 몇 달 후에 사건이 기록된 것을 봅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내가 너를 '느보산'으로 인도하고 거기서 너는 그 땅을 바라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시고, 참으로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서는 그가 들어가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 땅을 볼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느보산으로 올리시고 이제 모세는 북에서부터 남쪽까지 그 땅을 보게 됩니다. 그 모든 땅을 보게 됩니다. 참 모세에게 있어서는 힘든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실수의 대가를 감수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온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율법의 상징자인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그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 느보산에 장사 지내십니다. 모세 장사되는 순간에는 오직 한 사람만 있게 됩니다. 그 사람은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있어서 마지막 산이 역시 또한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모세가 다른 한 산에 있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와 요한을 한 산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것은 '변화산'입니다. 주님께서 변화산에 제자들을 데리고 가십니다. 그 변화산이 모세에게 있어서, 그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누구를 보았습니까? 모세와 엘리야를 보게 됩니다. 모세는 이제 마침내 그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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