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마땅히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 하라 > 강성찬 형제님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
여기서 주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두려워해야 되는지를 이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분을 두려워해야 되냐면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 있는 분"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신 적이 있습니까? 정말 이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그 지옥 형벌에 대한 선고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신 적이 있습니까? 정말 이렇게 두려워하신 적이 있는 분이라면 그분은 지금 구원에 가까운 것입니다.
때로 어떤 이제 종교 단체에서 복음을 너무나 가볍게 전하는 그런 일이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만, 당신이 죄인이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을 위해서 죽으셨고 그래서 이 예수님을 믿으면 당신은 하늘나라 갑니다, 이렇게 전합니다. 이거 듣는 분이 "아, 그런가요?" 그리고 별다른 그 마음에 두려움이나 고민 없이 "아, 그럼 믿죠. 뭐 나한테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하늘나라 간다니까 믿지요." 그러면 그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 "이제 당신 믿는다고 했으니까, 당신 하늘나라 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도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복음을 들을 때에 그분이 정말로 그 하나님의 의로우심 앞에, 그 거룩하심 앞에, 두려움을 느낀 겁니까? 만약에 그 거룩하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그냥 손해 볼 곳이 없는데 믿지요, 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지신 분, 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된다고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속에 이것을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하나님 앞에 정말 내가 죽고 나서, 그리고 그분께서 그 심판자로서 나를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를 가지신 그분을 내가 두려워한 적이 있는가? 정말 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해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을 한번 정직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이제 두려워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여러 가지 이제 우리를 걱정시키는, 위협하는, 이제 안 좋은 이제 불행한 일들, 그런 일들이 많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사실 여기 주님께서 이제 "두려워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두려움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 자체가 우리한테 필요한 역할을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육체를 입고 살아갈 때 우리는 모두 고통을 느낍니다. 어떤 뾰족한 것에 내 손이 찔린다거나, 뜨거운 거에 손을 댄다거나 하면 이제 그 고통을 느끼죠. 그리고 그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금방 손을 뜨거운 데서 떼는 것입니다. 내 고통을 느끼는 것에서 내 손을 다시 치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 현재 있는 그 위험을 인식하고 거기서부터 빠져나오는 데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한테 계속 내 몸에 상처를 입히고 내 몸을 다치게 하는데 그걸 알지 못하고 그 가운데 계속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것은 미래에 있을 위험에 대해서 우리가 감지하고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지금 당장 내가 닥친 지금 현재의 위험을 내가 인식하고 피하게 하는 거라면, 두려움이라는 것은 미래에 있을 나한테 안 좋을 일, 그것을 미리 예측하고, 그것을 걱정하고, 그걸 준비하고 그래서 피하게 만드는 역할을 이제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의미에서 두려움이라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좋은, 필요한 역할을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그 심판에 대해서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이와 같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쓸데없는 그런 것이 아닌데 이제 문제는 뭐냐면, 사람들이 엉뚱한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해야 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께서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이제 그런 것입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해라." 사람들이 엉뚱한 걸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을 보면 벌레를 무서워합니다. 제가 이제 벌레를 무서워하는 분들에 대해서 그분들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만물의 영장인 큰 사람이 그 작은 벌레에 대해서 무서워서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어떡하냐고 소리 지르고 있는 걸 보면은 우스운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렇지만, 이제 우리 어른들 경우에는 그러면, 우리는 우리 다 큰 어른들은 정말 그런 우스꽝스러운 것을 무서워하고 있진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또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정말 걱정할 일도 아닌데 그런 것을 가지고 걱정하고, 거기에만 내 생각이 다 매몰돼서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그걸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많은 염려들을 하고 살아갑니다. 이 직장에 대해서 그렇고요. 우리 사업에 대해서 그렇고, 우리 건강에 대해서 그렇고요. 또 우리 자녀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사실 이게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이제 그러한 것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맡은 책임이 있고, 그래서 미리 생각하고 그것을 준비하고 잘 처리해야 되는 책임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너무 지나치게 염려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이 주님의 말씀 앞에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해라"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분은 죽음 후에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리고 그 지옥은 영원토록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거는 잠시 잠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토록,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제 그러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 결정권을 가진 자, 그분을 두려워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아무리 큰 문제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온 생애 동안 영향을 미칠 직장과, 건강과, 또 우리의 자녀들 걱정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 시간 안에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지옥에 가는 문제는 우리가 죽고 나서, 우리가 죄 가운데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영원토록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다시 돌이킬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회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까? 무엇을 가장 우리가 염려해야 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고 정직하게 이 말씀을 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야 된다. 그래서 항상 우리의 기준은 이것입니다.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걱정하는 문제가 나한테 어느 정도 시간만큼 영향을 미칠 것인가, 어느 정도 시간만큼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거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면 이제 우선순위를 정할 수가 있습니다. 항상 이 세상은 이런 면에 있어서 우리를 속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데, 아주 짧은 시간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아주 굉장히 무섭게 만들어서, 굉장히 크게 부풀려서, 넌 지금 이것만 생각해야 돼, 이것만 걱정해야 돼,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여러분이 멈춰서서 그러면 이건 도대체 나에게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이것을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죽은 후에 내가 영혼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 이제 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 땅에는 이런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정말 두려워해야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성경에 특별히 이제 두 사람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두 사람에 대해서 성경은 특별히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한번 찾아보려고 합니다.
두 사람인데, 누가복음 18장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눅 18:2).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눅 18:4).
여기 이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록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제 성경이 그렇게 기록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굉장히 당당한 그런 사람이죠. 그런데 그 사람은 여기 기록된 것처럼 이제 재판관입니다. 그 도시에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이제 판결을 내리는 지도자인 것이죠. 그 도시의 높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두려움을 겪게 될 때에 어떤 생각을 하냐면, 자꾸 이런 것을 두려워하는 게 싫으니까 높은 사람이 돼야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힘이 없어서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저 사람이 나한테 와서 이런 말하고, 저 사람이 내 물건을 빼앗으려고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되나, 걱정하고 하니까 "아, 난 이렇게 살기 싫다.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기 싫다. 그래서 높은 사람이 되어야지." 이제 권력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제일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아무도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겠지,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없겠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사법고시 합격해서, 재판관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두려운 게 없어, 나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이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은 한 가부가 와서 그를 괴롭게 합니다. 참 이 아이러니한 게 그 도시에 가장 힘없는 과부, 남편도 없는 과부가 그 재판관을 괴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재판관은 자기의 권력에 취해서 아무도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게 하지 못할 걸로 생각하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잊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장 두려운, 가장 걱정해야 되는, 그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그 심판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사람이 그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고자 하는 그 방법이 헛된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을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3장입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눅 23:39-40).
여기서도 이제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는 사람이 한 명 나옵니다. 여기서는 이 39절에 나온 것처럼 "행악자"라고 돼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큼 행악자냐면 평생 나쁜 짓만 해서 사형을 받는 행악자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그 무서운 십자가 형을 받으면서 죽는 그 행악자입니다. 그에 대해서 여기 성경이 기록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앞에 나온 그 재판관과 정반대로 산 사람입니다. 재판관처럼 공부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은 거꾸로 산 사람입니다. 나쁜 짓만 하고 점점 아래로 내려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막 산 사람입니다. 이것도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행하는 방법입니다. 이 사람은 두려워하는 게 싫으니까 그냥 거칠 것 없이 사는 것입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어?" 부모님이 "너 이거 하면 안 돼, 너 그러면 혼나." "에이 나는 문제없어!" 하면서 뛰쳐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해도, 그거에 대해서 "나는 그거 두려워하지 않아, 그까짓 거 뭐!" 하면서 계속 선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것은 자기 인생에 대해서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정말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를 곧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얼마 시간이 되지 않아 그는 금방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평생 그렇게 제멋대로 살아왔지만, 결국에는 진정한 두려움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우리 인생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없애려고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살든, 그 두려움을 없애려고 자기 마음대로 살든지 간에 결국에 진정한 그 두려운 일, 그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그 인생, 그 결과를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서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영원토록 지옥 형벌 가운데서 두려움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주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된다. 이것을 두려워해야 된다. 겸손한 마음으로 두려워해야 된다.
다시 누가복음 12장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5절에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주님은 정말로 진지하고, 진실되게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를 두려워해라." 주님께서는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러분에게 친구로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어린애들이 쓸데없이 두려워하는 것을, 아까 제가 그런 것처럼 조금 비웃으면서 "그런 거 왜 두려워해? 그거 두려워하지 말고 이거 두려워해야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친구에게 말씀하시듯이 우리를 존중하시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처럼 사람으로서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그분은 사람의 몸을 가지시고 그분이 그런 어려움들을 다 경험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한 가운데 여러분을 잘 아시는 친구로서, 여러분을 존중하는 가운데 아끼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말 두려워해야 된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5절을 보면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이게 약간 좀 특이한 표현입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한테 말하리니"가 아니고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끝난 게 아니라 그 마땅히 두려워할 자,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놓는 권세를 가지신 분, 그분을 "보이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신 그분만이 말씀하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그냥 단순히 말로 설명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그 하나님 아버지를 보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심판하시는 분이 누군지,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분이 저렇구나, 저런 분이구나, 정말 두려워할 만한 분이구나, 이것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에 보면은 예수님 앞에 나와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두려워하고, 무릎을 꿇고 엎드린 사람, 그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말씀 한 군데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
여기 보면 이 주 예수님 앞에 두려워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입니다. 그는 왜 이 주님 아래에 엎드렸습니까?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그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 앞에 죄인으로서 엎드려서, 두려워하면서 "나를 떠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통해서 그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속을 아신다는 것을 그가 느낀 것입니다. 이분은 사람이시지만, 이 예수님은 사람이시지만, 베드로의 속을 보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그것을 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두려워해서 엎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속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의 것만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까지도 다 아시고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베드로는 왜 두려워합니까? 죄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 죄로 말미암아 심판받아 영원히 멸망 가운데 들어갈 죄인인 것을 알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언제 두렵다는 말이 처음으로 언급된 줄 아십니까? 성경에서 언제 이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이, 언제 처음 기록되었습니까? 창세기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3장 10절입니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여기에 이제 "두려워하다"라는 것이 이제 처음 기록된 것인데요. 이게 언제 나온 말이냐면, 그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불순종하고 따먹고 나서 그리고 나서 한 말입니다. 이 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두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았습니다. 이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 생각까지도 아시고 그리고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이게 우리 주님께서 보이신 첫 번째 하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제 두 번째로 우리 주님께서 그 두려워할 자를 보이신 것을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말씀으로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22편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1-3).
우리가 금방 읽은 이제 이 시편 22편 말씀은 우리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말씀하신 그런 내용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그 십자가에 못이 박히신 채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우리 주님께서 그 십자가에 못이 박혀서 죽으시면서 그분은 하나님의 어떤 것을 보이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보이신 것은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여기 보면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있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하시는 것이, 그 죄를 정죄하시는 것이 참으로 옳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어느 작은 것 하나라도 그냥 흘려서 놓아주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죄를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첫 번째, 우리 주님께서 보이신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감찰하시는 분이고 그 어느 것 하나도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것, 모든 것들이 반드시 드러난다. 숨을 수 없다. 그들이 두려워하여 숨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다 드러난다. 이걸 보이셨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주님께서 보이신 것은 그 드러난 죄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이유가 바로 그 이유입니다. 이 모든 세상의 죄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 주님이 보이신 것을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으로 가서 보겠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3-24).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기록된 바처럼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이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고 미리 아신 대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사람들이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지만, 또한 사람 측면에서는 그들이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주님을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그를 살리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지만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4절 후반부에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어 있을 수 없었음이라" 그분은 사망에게 매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은 거룩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거룩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썩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이게 구약 성경 시편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의로운 자는 반드시 "의롭다" 선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의로우심을 증명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그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그분의 영광에 맞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마땅한 의무처럼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어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의로우신 분께서 계속 사망에게 매여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맞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은 반드시 의롭다라고 분명히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그분 자신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그분 자신은 거룩한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위한 그 희생 제사가 다 끝났을 때, 그 정죄가 다 이루어졌을 때, 그분은 사망에 매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반드시 하는 세 번째 것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모든 숨은 그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되는 분이고요. 그리고 하나님은 두 번째로 반드시 우리의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두려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그분은 죄를 반드시 심판할 뿐만 아니라 의로운 자를 반드시 의롭다고 하십니다. 의로운 것을 반드시 의롭다라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 대해서 다시 살리심으로 그것을 분명하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두려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주님의 사역과 우리 주님 자신이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그 죄를 심판하시고, 그리고 또한 의인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시는 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그 의인을 의롭다 반드시 의롭다 하신다 이걸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게 특별히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이 하나님의 성품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3장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7-39).
여기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또한 의롭다고 하십니다. 이 구절을 다시 살펴보면 "하나님의 살리신 이", "그 썩음을 당하지 아니한 분"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우리의 모든 정죄를 다 받으시고 그리고 이제 거룩하신 자로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힘입어서 죄사함을 38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얻는 죄사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도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39절에 나온 것처럼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였지만", 우리의 어떤 행동으로도, 우리의 어떤 율법을 지키는 선한 행위로도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였지만, 하지만 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는 반드시 의롭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 자신은 죄인이었지만, 우리 자신은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으시고 대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 모든 죄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처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임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이 예수님을 힘 입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또한 반드시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도 힘입으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라고 했을 때 그분은 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까지 아시고 심판하시는 분, 그리고 그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다 처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분, 반드시 의롭다고 선언하신 분, 이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이 믿는다면 참으로 이 놀라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이 복을 누리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이 복을 여러분이 얻기 위하여 참으로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분을 두려워해서 이 구원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 속에서 정말 그분을 기뻐하면서 그분과 함께 복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누가 복음은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한번 그런 표현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중에 한 가지 예를 누가복음 2장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이게 아마도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제 그런 이제 장면일 텐데요. 이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나실 때의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나실 때에 이제 천사가 우리 주님의 탄생의 소식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럴 때에 이제 목자들이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무서워 말라. 이것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 말라. 이것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왜 이것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냐면 바로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신다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다면, 이제 우리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영원한 심판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래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여기 누가복음에서 "두려워 말라"라고 나올 때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분께서 오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하시는 일로 말미암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이러한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이것을 여러분에게 원하시고 계속 격려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격려하시는 부분 한 군데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눅 8:49-50).
여기 이 회당장은 자신의 병든 딸을 고치기 위하여 예수님께 찾아왔으나 하지만 이 딸이 먼저 죽어버렸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그는 완전히 절망 가운데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주님께서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참 우리가 이 구원을 얻는 그 믿음으로 나오는 데에 여러 가지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 주위에 상황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 내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 아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망이 없는 그런 사람인지 아는 것입니다. 참 이러한 가운데에 낙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다 이제 망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마치 그 딸이 이미 죽어버렸던 것처럼, 다 끝났는데 나 같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나 같은 사람도 그 놀라운 기쁨을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바로 여러분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까지도 우리 주님께서 해결하실 수 있다. 네가 어떠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해결하실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네 눈에 보기에는 다 끝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죽어서 다 끝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놀라운 하나님께서는 살리실 수 있다.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엉뚱한 걸 두려워하고 있다면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격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구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그 천사가 소식을 전한 것처럼 큰 기쁨을 여러분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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