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사도행전

사도행전 12장 :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석방

박이레 2024. 7. 31. 14:43

< 사도행전 12장 :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석방 > 한봉래 형제님

예, 안녕하십니까? 성도님들 기도해 주신 대로 베네수엘라에 2주간 이렇게 잘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 먼저 가고 베네주엘라 가고 그다음에 이제 엘살바도르 거쳐서 돌아왔습니다. 아마 자세한 방문 보고는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아마 강성찬 형제님이 여러 가지 사진도 있고 그래서 아마 보고드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프란시스 자매님 부모님이 지금 오늘 한국에 입국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7월 말에 결혼과 가정 집회 하던 그때죠. 프란 프란시스 자매님 아버지 이름이 프란시스코라고 그러더라고요. 프란시스코 말도라도 형제님인데 그 형제님이 이제 한 곤잘레스 프라자 모임의 장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형제님이 이제 베네주엘라 모임에 대해서 어떻게 베네주엘라 모임이 세워졌고 지금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이런 보고를 아마 이제 7월 말에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제가 사도행전 쭉 하고 있는데요. 주일날 했었는데 오늘은 사도행전 먼저 말씀 교제하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12장 말씀, 우선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2장 1절부터 25절까지 말씀을 제가 먼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쌔 때는 무교절일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쌔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줄 알겠노라 하여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숫군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하니라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행 12:1-25).

아멘, 12장 말씀을 쭉 읽었는데요. 우선 1절을 보시면 "그때에" 돼 있습니다. 그때가 어느 때냐라고 하면 이 상황을 보면 이렇게 이해가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를 방문하던 때입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안수하자 성령이 임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에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교회의 인도자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지금 현재 잠깐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다음 인도자가 누구냐 그러면 야고보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열 두 사도를 두셨는데 그중에서 특별히 3명을 가까이 두셨습니다. 그래서 이 3명이 같이 간 곳이 이제 성도님들이 아시는 대로 야이로 딸을 살릴 때 달리다쿰 하고 야이로 딸을 죽은 딸을 살려내실 때 이 3명의 제자만 데리고 가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봅니다. 주님이 어떻게 죽은 12살 된 소녀를 살려내는지 이걸 직접 목격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이들이 갔던 곳은 변화산입니다. 변화산에 주님께서 3명의 제자를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고 주님 얼굴이 변하고 옷이 하얗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미래에 오실 천년 왕국의 왕이신 것을 그들이 봅니다. 그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재림하셔서 천년 왕국의 왕이신 것을 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장 가까이 둡니다.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부를 수 있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다음에 핏방울과 같은 땀을 흘리셨던 그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사건을 이 3명의 제자가 봅니다. 그래서 십자가, 천년왕국의 왕, 그다음에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 이 세 가지를 이 세 제자에게 보여주신 거죠.
그렇게 보여주신 데는 의도가 있는 거죠. 주님을 그만큼 더 가까이서 보고 더 많이 주님을 섬기도록 부르신 거죠. 그런데 이제 그중에서 요한과 베드로가 없기 때문에 야고보를 잡아 죽입니다. 그리고 죽였더니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거예요. 정치인들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여론조사하죠. 그리고 이게 여론이 굉장히 좋다, 그러면 그 정책 취하는 거죠.  야고보를 죽이니까 유대인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좋아, 그러면 한 번 더 하자 그리고 베드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감옥에 넣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상황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조금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왜 유대인들이 그렇게 좋아했을까.

그리고 이제 베드로의 경우는 저희들이 이제 잠깐 보면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고칩니다. 이게 이제 성전 미문에 두었거든요. 이제 거지죠. 그래서 이제 사람들이 가장 구걸하는 거지에게 이렇게 동전 한 푼이라도 이렇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때가 이제 하나님 앞에 갈 때잖아요. 그래서 이제 그 성전 미문 앞에 이렇게 둡니다. 베드로가 보니까, 무슨 돈 좀 주려나 하고 베드로를 보았는데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그러니까 그 거지에게 줄 돈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신 뭐가 있었냐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베드로가 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했습니다. "일어나 걸어라." 그랬더니 걸은 거죠. 그래서 이제 사람들이 이렇게 놀라고 있을 때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죠. "왜 나를 보느냐? 왜 내가 한 것처럼 나에게 주목하느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말한 대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한 거다." 그래서 주님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게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하고 있을 때 사도 이제 대제사장들 산헤드린이 있죠. 공회가 이거 안 되겠다. 이거 가만 놔뒀다가는 계속 우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라고 이렇게 전하니까 안 되겠다, 우리 우리 명예가 뭐가 되냐 이거, 그래서 베드로를 잡아둡니다. 베드로를 잡아넣었더니 그리고 이제 그 이튿날 신문하려고 데려와라 그랬더니 베드로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는 지금 사도행전 5장에서 감옥에 갇혔다가 천사가 베드로를 풀어줍니다. 이게 한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풀어줘가지고 뭐 하냐? 뭐 하게 풀었냐? 자유롭게 만든 것일 뿐만 아니라 가서 이제 복음을 전합니다. 그랬더니 다시 잡아오죠.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예수님 이름으로 전하지 마라. 그래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죠. 우리가 누구 말을 들어야 되겠느냐? 사람의 말을 들어야 되겠느냐? 하나님의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겠느냐? 우리는 못한다. 산헤드린은 이제 화가 난 거죠. 이게 이게 지금 우리 명령을 어겨? 우리 말을 안 들으려고 해? 그러니까 이제 이게 이게 이제 종교 지도자들이죠. 이스라엘의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할까, 하고 가말리엘에게 물어봅니다. 그당시 굉장히 이제 지혜로운 분이죠. 아주 인정된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아는 분이죠. 사도 바울이 그 밑에서 배웠었죠.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놔둬라. 혹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한다. 그래서 이게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으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믿는데, 이건 일시적인 것일 것이다. 시간을 두면 이게 처음에는 막 흥해가지고 뭐 이렇게 일이 좀 벌어지는 것 같아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게 아니면 이게 시간이 지나면 사그러들 거다. 나둬도 사그러든다. 이게 이제 가말리엘의 충고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놔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채찍으로 때리고 놔둡니다. 그냥 놔두면 이 공권력 권위가 없어지니까 채찍으로 때리고 풀어줍니다. 그랬더니 사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핍박받을 수 있는 이 특권과 영광을 우리가 누리고 있다. 이게 이제 사도행전에서 앞에 나온 이야기죠.
그러니까 이제 헤롯이, 이번에 그래서 아까는 지금 어디로부터 핍박이냐면 종교 지도자들로부터의 핍박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입니다. 이번에는 헤롯이니까 정치 권력, 국가의 핍박입니다. 국가의 공권력이, 로마 라고 하는 로마가 헤롯을 왕으로 세운 거죠. 그래서 이 공권력의 핍박인데 이번에 헤롯은 이렇게 됩니다. 전번에 보니까 베드로가, 자기는 믿을 수 없지만 베드로를 가뒀는데 천사가 풀어줬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으려고, 근데 어쨌거나 풀어준 적이 있다는 말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철저하게 감시해야겠다. 절대로 그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래가지고 이제 베드로를 이렇게 감시를 합니다. 베드로 한 명에게 두 명이 같이 자게 합니다. 베드로가 자면 그 옆에 두 명의 군사가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수갑 같이 차고 잡니다. 여기서는 사슬인데요. 사슬로 묶어가지고 같이 잡니다. 그리고 그 감옥 바깥에 다시 2명이 보초를 섭니다. 그러니까 4명이 베드로 한 명을 감시하기 위해서 군사 4명을 배정했습니다. 그다음에 이 네 사람이 하루 종일 이렇게 감시하려니까 힘들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이제 4조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루가 24시간이니까 4조니까 6시간씩, 1조 4명이 6시간을 베드로를 감시합니다. 2명은 옆에 같이 있고 2명은 밖에 있고 이와 같은 조가 4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6시간 하면 다시 4조가 와서 교대해가지고 6시간, 그리고 나서 또 이렇게 해가지고 4조가 베드로 한 명을 감시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시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베드로가 풀려날 수 없는, 사람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최고 감시를 한 겁니다. 만약에 이렇게 하고 있는데 베드로가 풀려났다면 이건 뭐죠? 하나님만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저희들이 보면, 이제 저희들이 어떻게 보통 말을 하냐면 하나님은 사람들이 최고의 능력으로 하게 하십니다. 그래놓고 그것을 무너뜨리십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하나님의 별명이 뭐냐? 역전의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이 최고로 하게 하고 그걸 풀어버립니다.
예를 들면 홍해 같은 경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어요. 그래가지고 앞에는 바닷가만 가로 막고 뒤에는 애굽 군대 특별병거 6백승입니다. 뒤에서는 쫓아오고 양 옆은 산이고, 그래서 이게 도망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부르짖습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하냐? 그 상황으로 넙니다. 하나님 일부러, 그리고 모세에게 지팡이를 내밀라. 그래가지고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은 안전하게 통과하고 뒤쫓아온 애굽 군대는 전부 수장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우주의 통치자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어리석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으려고 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이 어떻게 좌절되는가, 사람들이 자기 능력과 지혜로 최대한 반대해도 하나님은 자기 일을 방해받지 않고 이루셨다. 이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 베드로의 경우도 이제 앞에서 한 번 천사가 풀어내준 경험이 있고, 그것을 헤롯이 믿었는지 얼마나 100% 믿었는지 모르지만 헤롯은 그 경험을 근거로 절대로 베드로는 탈출할 수 없다, 라고 하는 상황을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풀어냅니다. 그리고 명백하게 말합니다. 내가 한 것이다. 왜 하나님이 했느냐라고 하는 이제 영적인 의미를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하나님이 이제 천사를 통해서 베드로를 풀어내는데요.
저희들이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그런 그런 영화나 드라마가 있을 거예요. '프리즌 브레이크'인가? 하여간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을 탈출시키는 이런 이런 영화들이 많이 있죠. 어떻게 탈출시키냐? 사람의 방법을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어요. 그런데 이제 이제 풀어내려고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그 유명한 영화인데, 그 하여간 감옥에 갇혔다가 이렇게 풀려난 유명한 영화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탈출 어떻게 감옥에서 이제 탈출하느냐 그러면, 이제 탈출 계획을 짜죠. 이렇게 탈출해야지 하고 탈출 계획을 짤 때 크게 이제 두 가지, 혹은 세 가지가 중요한데요. 첫 번째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해요. 그리고 이제 감시원들이 있으니까 소리를 내지 말아요. 그다음에 어떤 통로를 만들어 가지고 예를 들면 벽을 뚫고 지하로 통로를 만들어서 이렇게 해야 되니까, 두 번째는 어둠 속에서 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을 때 보이지 않는 밤에 소리 없이 탈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리를 내지 말아야 되고, 어둠 속에서 해야 되고, 그다음에 비밀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세 가지가 사람들이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하는 방법을 보면 첫 번째 천사를 보냅니다. 천사에 대해서 그렇게 성경이 말합니다. 7절 보시면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밤중에 이제 천사가 갔는데 천사가 빛을 발합니다. 환한 대낮처럼 그를 탈출시킵니다. 이게 캄캄한 때 아무도 몰래 베드로를 꺼내온 게 아닙니다. 광명한 아침처럼 천사가 광채가 나게 이렇게 합니다. 이게 이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이 천사가 어떻게 하냐면, 소리를 냅니다. 천사가 옆구리를 쳐, 베드로 옆구리를 때립니다. 이건 이제 저기 확실하지 않습니다마는 저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아이구, 아야!" 하고 일어났을 거라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니까 그다음에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는지라" 이게 수갑이 풀리는 거죠. 사슬이 풀려나는 건데, 이게 쇠로 된 것이 딱 풀려날 때 이것도 소리가 쿵 하고 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 소리를 냅니다. 밝은 빛 가운데 소리를 내면서 그를 탈출시킵니다. 그리고 천사가 말을 합니다. 베드로한테 조용히 말한 거 아닙니다. 베드로만 들을 수 있도록 조용히 말하지 않고 크게 말합니다. "일어나라." 그다음에 "띠를 띠고 신을 신어라." 명명백백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말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제 비밀 통로로 가는 게 아닙니다. 감옥에 있었던 문을, 정문을 통과해서 나갑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석방시키는 것이 내 뜻이며 옳은 일이다. 합당한 일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또 하나를 보면, 이 탈출 작전의 중요한 대상인 베드로는 뭐가 뭔지도 모릅니다. 그는 수동적입니다. 그가 자기 힘으로, 자기 지혜로, 자기 방법으로 나온 게 아닙니다. 베드로는 지금 이게 꿈인가? 환상인가? 그리고 다 탈출하고 나서야 정신이 나가지고 '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나를 꺼내셨구나!.'라고 나중에 이해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어떠한 기여도 없었다. 하나님이 홀로 하셨다. 밝은 빛 가운데, 큰 소리를 내면서, 정문으로 나왔다. 이게 하나님께서 하시고 있는 탈출 방법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영적인 의미를, 그럼 하나님이 왜 이렇게 베드로를 그냥 사도행전 5장에서는 그냥 천사를 통해서 이렇게 했는데, 여기서는 자세히 묘사를 하고 있거든요. 이제 하나님께서 이렇게 베드로를 탈출시킨 영적인 의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보면 두 가지 권력이 이제 베드로와 요한이라고 하는 교회를 핍박합니다. 첫 번째 권력은 산헤드린이라고 하는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대제사장, 그다음에 사두개인, 바리새인, 이런 사람들이 베드로하고 요한에게 복음 전하지 마라. 어떤 이제 저번에 한번 그렇게 이야기했었죠. 복음서에서는 주님하고 바리새인하고가 주로 충돌합니다. 그리고 충돌 주제는 이것입니다. 율법을 지킬 것이냐? 사람이 자기 행위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을 것이냐, 의롭다함을 얻을 것이냐? 아니면 주님처럼 은혜로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느냐라고 하는 것이 복음서에서의 주된 논쟁입니다. 그다음에 이 사도행전으로 오면 이제 주님은 이제 승천하셨고 이제 사도들을 하고 그다음에 이 대제사장들하고 논쟁에서 보면 이제 주로 누가 나오면 사두개인이 나옵니다. 그럼 사두개인하고 사도들하고의 주된 쟁 논점은 사두개인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부활이 없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산헤드린 이 공회원과 사도들 사이의 논쟁은 부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왜 못 박았냐? 자기가 사람인데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도들이 전하는 것은 무엇이냐, 너희들이 죽인, 너희들이 거부하고, 너희들이 못 박아버리고 너희들이 저주한, 그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리셨다. 다시 그래서 의미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다. 이게 산헤드린과의 주요 논쟁입니다. 그래서 이제 첫 번째 산헤드린과의 논쟁에서 사내드린 베드로를 가뒀을 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꺼내신 이유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말이 맞다. 베드로가 전한 대로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예수님의 부활로 입증하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이게 이제 산헤드린과의 논쟁의 핵심적인 영적인 의미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이번에는 이제 헤롯이라고 하는 공권력, 국가 권력과의 싸움입니다. 국가 권력이 교회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한 겁니다. 이 부분은 그럼 이제, 사도행전 12장에서 문제가 되는 건 뭐냐 그러면, 저희들이 잠깐 이제 문맥적으로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고넬료는 누구냐 그러면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방인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지 않고, 유대인처럼 되는 게 아니고, 유대인화 돼가지고 율법을 지키고 그래서 의로 땀을 얻는 게 아니고, 이방인인 고넬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교회에 더해집니다. 성령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등하게,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그 몸이 되는 교회 가운데 들어온다. 이게 사도행전 10장의 실행입니다. 그랬을 때 이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유대인들입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입니다. 아니, 이방인이 감히! 믿음이 뭔데? 그 믿음이라고 하는 게 얼마나 뭐 그게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게 얼마나 무슨 대단한 거라고? 아니, 회개하고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똑같이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교회에 들어간다고?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이 없다고? 에 대해서 유대인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분노합니다. 그렇게 전하는 베드로가 미운 것입니다. 자기도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을 편들지 않고 이방인을 유대인과 동등하게 대우하고 있는 이 베드로가 미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사람들을 헤롯에게 좀 죽여달라. 이 사람들이 완전히 우리 유대인들의 가치와 생활 방식을 무너뜨리고, 이단적인 받아들일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 교리를 전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을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헤롯에게, 국가라고 하는 공권력을 사용해서 이제 야고보를 죽이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헤롯이 가만히 보니까, 야고보를 죽였더니 자기 인기가 올라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한 김에 베드로도 죽여보자, 그래가지고 베드로는 거죠. 그래서 이제 12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방인도 유대인과 똑같이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는 교회의 우주적인 몸인 교회의 일부가 된다라고 하는 이 가르침에 대한 반발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해서 하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베드로를 석방시킴으로써 베드로가 전하고 있는 복음, 교회 진리가 옳다. 내가 그것을 인정한다라고 하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깐, 그리고 이제 성경에서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유월절이다 그랬습니다. 무교절 일이 있고 이제 유월절 다음에 이제 무교절이죠. 합쳐서 이제 무교절인데요. 하필이면 유월절입니다. 그럼 유월절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해서 애굽 왕 바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백성을 놔줘라." 그래가지고 그러면 저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뭘 요구했냐? 바로한테 "우리가 사흘 길을 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고자 한다." 이걸 요구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바로가 안 된다. 이제 첫 번째는, 이것들이 지금 노동 강도가 약해졌더니 이것들이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그래가지고 지푸라기를 주지 말고 벽돌을 만들게 해라, 이렇게 한 겁니다. 그래서 이게 지금 일을 고되게 안 시켰더니 이것들이 뭐 하나님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이렇게 한 겁니다. 그렇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열 재앙을 주신 거죠. 그래서 이제 바로가 물러나야 됩니다. 그래가지고 바로가 여러 가지로 제안을 합니다. 그러지 말고 그러면 남자들만 가라. 그다음에 뭐 짐승은 놔두고 가라, 아이는 놔두고 가면 안 되냐? 이렇게 했을 때 모세가 계속 거절합니다. 어떠한 타협도 거부합니다. 그러면 모세가 했던 영적인 의미가 뭐냐 하면 우리는 양심을 따라,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원한답니다. 이게 유월절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은 어떤 사람이든, 조금 이제 범위를 넓히면 기독교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건 자기의 양심을 따라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던 날이 유월절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바로라고 하는 국가가 어느 한 사람의 개인적인 신앙에 대해서 국가 권력이 개입할 수 없다. 신앙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양심과 자유에 맡겨져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 유월절 개념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2장에서 하나님이 두 가지 원칙을 지지하십니다. 첫 번째,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등하게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하는 원칙을 하나님이 지지하신 것입니다. 이게 사도행전 10장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모든 사람은 자기 양심에 따라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섬길 권리가 있고 이것은 국가 권력이 막을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두 번째 원칙입니다. 이 두 가지 원칙을 12장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것은 마태복음 28장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너희는 모든 족속에게 가서 내가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모든 족속에게 가서 제자 삼고, 그래서 지금 이제 복음은 민족하고 관계없이, 어느 민족이나 그가 저기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이건, 미국의 지식인이건, 또 인종과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게 하신 것이 마태복음 28장 명령입니다. 이 명령이 수행되기 위해서 두 가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국가 권력이 개입하면 안 된다.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등하게 구원받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일을 지금 주님께서 이루어내고 계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잠깐 더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2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1절을 보시면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행 12:1).

그래서 교회에 핍박이 일어나는 정치 권력, 국가 권력에 의한 핍박으로 12장은 시작됩니다. 그런데 12장 25절 보시겠습니다.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행 12:25).

사울은 바울이죠. 바나바와 바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예루살렘 교회에 예루살렘의 기근이 든다라고 하는 아가보의 예언을 따라 안디옥 이방인 교회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던 것입니다. 이게 저희들이 자꾸 말했던 교회 진리 중에 하나입니다. 그걸 하고 "마가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마가라고 하는 요한, 이 요한이 1차 전도여행의 새 멤버입니다. 이게 바나바, 바울, 요한이 1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복음은 전 세계에 전파될 준비가 되어 있다. 오히려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적인 원리가 확정되고, 그리고 이제 드디어 전 세계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도팀 세 사람이 형성되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24절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은 흥황하여 더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막을 수 없더라. 이게 앞에 나온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뭐라고 해도 복음은 막을 수 없었다. 그다음에 두 번째, 국가 권력이 아무리 방해해도 하나님의 복음은 왕성하게 증거되고 있다. 이게 지금 사도행전 12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몇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저희들이 여기서 알 수 있는 게 우선 베드로가 자고 있습니다. 얼마나 잤냐면 옆구리를 천사가 쳐서 깨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는 저희들이 이제 여러 번 이건 교제한 겁니다만 베드로는 내일이면 죽습니다. 죽기 전날입니다. 처형되기 전날 잠을 잘 잡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죽음을 앞두고 그가 그렇게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유가 뭘까요? 첫 번째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가 젊어서는 네 마음대로  띠 띠고 다니겠지만 늙어서는 이 너에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그래서 베드로의 죽음에 대해서 주님이 예언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언제 죽는다고요? 늙어서, 젊어서는 죽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사도행전 10장에서, 사도행전 12장에서 자기가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순종하는 한, 우리의 생명을 뺏어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수명을 다 누리고 죽일 것입니다. 순종하는 한, 그래서 베드로는 평안하게 아직은 나는 죽지 않는다. 아직 늙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평안하게 자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두 번째입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힌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 이미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이 어떻게 하셨죠? 천사를 통해서 꺼내셨습니다. 이번에 다시 감옥에 또 갇혀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배운 겁니다. 과거에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이 오늘도 역사하실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위기 가운데 과거를 돌아봐야 합니다. 이런 때가 있었는지, 똑같은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나를 건지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신실하게 오늘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것이다. 내일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다라고 하는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베드로를 평안하게 천사가 쳐야만 일어날 수 있도록 깊이 잠들게 했던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보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주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두시고 그중에서 세 명의 제자를 특별히 가까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들만이 경험했던 세 가지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야이로 딸을 살리고, 변화산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그 간절히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셨던 장면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 경험은, 이 특권은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섬길 수 있는 데 한 기초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요한은, 베드로는 주님이 주셨던 열쇠 3개를 쓰죠. 천국의 열쇠를 쓰고, 또 요한는 끝까지 순교하지 않고, 베드로는 순교합니다. 여호와는 순교하지 않고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쓰고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 야고보는 일찍 죽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죽습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죽고 요한과 베드로는 없었고, 야고보가 죽자 나머지 나머지 교회의 인도자들은 숨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이제 저기 베드로가 마가의 기도처에 가서 그다음에 이제 자기가 설명하고 그다음에 베드로가 숨습니다. 그리고 내 소식을 야고보에게 말해달라고 했을 때,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인도자 야고보입니다. 그래서 이제 또 이 1장에 나오는 야고보하고 다른 거죠. 이제 그렇게 이제 상황은 흘러가는데, 왜 열 두 제자 중의 하나인 야고보는 일찍 죽었을까요? 하나님께서 필요가 있으셔서 경험을 하게 하셔놓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 경험에 나타난 주님을 이해하고 주님을 섬기지 않고 일찍 데려갔을까요? 라고 하는 이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이제 말하신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십자가를 지러 가십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누가 높으냐? 이제 이런 논쟁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가지고 심지어는 요한과 야고보가 형제죠. 어머니 동원했는지, 하여간 어머니께 가지고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당신이 왕위에 오르시면 제 아들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분을 냅니다. 아니, 우리 빼놓고 우리 가운데 누가, 뭐 내가 우편에 있어야 되는데 막 이렇게 제자들이 다 똑같습니다. 하여간 요한과 야고보가 이렇게 주님 좌편 우편을 요청했을 때 주님께서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첫 번째 답은 이거죠. 내가 줄 게 아니다. 내 좌편 우편에 누가 있을지는 내가 선택하지 않는다. 이게 이제 주님 다르신 거죠. 내 아버지께서 택하실 것이다. 이게 이제 첫 번째 대답이고, 두 번째 항상 섬기는 자가 높은 자입니다. 큰 자가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지만 너희 가운데는 거꾸로다. 높은 사람이 섬기는 거고 섬기는 자가 높은 자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가려고 하는 것은 더 많은 희생을 하겠다는 거죠.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한 거죠. 그러시면서 주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내 좌우편에 앉으려면 다른 사람의 문제 때문에 자기가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하죠. 너희가 내가 마시는 잔을, 내가 받는 고난을 받을 수 있느냐?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그랬더니 요한과 야고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마시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들이 과연 마시겠으나, 그러나 어느 쪽에 내 우편 편에 앉은 사람이 누구일지는 내 아버지가 정하시는 것이다. 이게 이제 그 흐름이죠. 그래서 주님께서 한 번 암시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가 맞는 그 고난의 잔을 마실 것이다라고 했을 때, 야고보가 순교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주님과의 세 번의 경험을 통해서 주님이 어떤 분이냐? 주님 자신은 죄가 없으시지만, 죄를 지을 수 없는 분이시지만,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의 저주받은 죽음을 죽으시는 주님입니다. 이 주님의 영광을 안 그가 이제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내놓는 이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는 억울해하지 않고, 자기의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공권력이, 정치 국가권력이 자신을 죽이는 것은 결국 이제 진리가 밝혀질 것입니다. 정치 권력은 한 개인이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중요한 증거로 그의 순교가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우리는 항상 어떤 섬김과 행위를 강조하지만, 그래서 베드로는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 이렇게 섬겼고,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섬겼고, 이렇게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섬김보다도 인격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놀라운 것은 스데반은 사도도 아닙니다. 그냥 예루살렘교회의 7명 중에, 섬기는 자 중에 한 명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가 신약성경이 기록한 최초의 순교자의 영광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스데반의 영광은 어떻게 말하냐 하면,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더라. 그의 변화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순교자라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가 주님처럼 기도했답니다. 주님을 닮았고, 그것은 사람의 수준을 넘는 변화였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야고보가 세 가지 경험을 하고, 그 경험에 근거한 섬김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세 가지 경험이 그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그로 하여금 주님을 담게 하는 데 사용됐다면, 그가 아무 일도 안 했어도 그가 세 가지 변화를 본 것은 놀라운 은혜이며 목적을 이룬 것이다. 그게 이제 저희들이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그다음에 한 가지 있습니다. 교회의 기도인데요. 5절에 보면 "교회가 간절히 기도했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간절히, 이건 정말 절실했던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안 된다. 이건 반드시 일어나야 된다라고 하는 마음으로 했던 것이 간절하다라고 하는 뜻인데요. 성경에서 이렇게 간절하게 했던 것이 세 번 나옵니다.
첫 번째 기도입니다. 간절히 기도, 우리가 다른 건 다 몰라도 다른 것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꼭 해야 되는 것, 첫 번째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들을 받아 살아가는 것, 이 기도를 꼭 해야 되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 간절한 걸 한번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 "무엇보다도" 여기 "열심으로" 이렇게 나와 있는데요. 이게 '간절'입니다.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해야 되는 것,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이 약속은 우리 열 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행26:7).

그래서 세 번째 간절한 것이 '섬김'입니다. 세 가지를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간절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 사랑 그리고 섬김입니다.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간절히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면에서 저희들이 기도하고 있는가? 사랑하고 있는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야 되는가? 세 번째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행하고 있는가? 이 세 가지 간절히 우리가 해야 되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하나, 헤롯은 자기가 어떻게 믿었는지 모르지만 베드로가 감옥에 넣었더니 공회원들의 경험에 의하면 천사가 와서 풀어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회원들은 유대인 식민지들이잖아요. 그런데 자기는 이제 헤롯 왕이죠. 그래서 군사가 있는 거죠. 유대인들은 경찰력만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 자기들은 군인들에게 지키게 한 거죠. 그런데도 베드로가 풀려나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군인들 불러다가 심문해라. 너희들 어떻게 근무했냐? 그리고 그 군인들을 죽여버립니다. 그는 인정해야 합니다. 군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군인들이 느슨하게 보초 섰기 때문에, 이것은 군인들에게 설명해라 그러면 군인들이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틀림없이 했습니다. 그날도 여기 교대 근무를 따라서 주어진 메뉴얼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왜 없단 말이냐? 모르겠습니다. 설명이 안 됩니다. 했을 때 어떻게 해야 되죠? 그는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가 비록 유대인은 아니지만 그가 이스라엘의 성경,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잘 듣고 그 유대인들을 통치하고 있는 왕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고 군인들 죽이고 그다음에 여기 떠나가지고 가이사랴로 가버립니다. 가이사랴는 로마 군대가 있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입니다. 가이사랴로 가버립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합니다.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벌어진 사건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군인들을 죽여버렸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백성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입니다.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내 백성 내보내라. 10번이나 거절합니다. 모세가 기적을 행했어도 계속 거절합니다. 하나님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전부 망합니다. 바로는 하나님과 싸워가지고 열 재앙 경험하고 그 나라가 완전히 무너집니다. 여기 헤롯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도 야고보 죽이고 베드로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그 이유를 군인들에게 묻고 군인들 죽이고 그다음에 그가 신의 음성이다. 이런 교만한 소리를 들었을 때, 그가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신인 것처럼 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죽입니다.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도행전 5장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공회원들이 저기 베드로 어떻게 할까 그러면서 이제 물어볼 때 가말리엘이 한 말입니다. 사도행전 5장 38절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행 5:38).

사도들이 자꾸 이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러니까 이제 공회원으로서는 눈에 가시죠. 그게 자기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로 들리는 거죠. 사실이죠. 그래서 이것들을 자기들이 권력이 있는데, 힘이 있는데, 칼을 가지고 있는데, 말을 안 들으니 이것들을 그냥 칼을 써서 이거 없애버리든지 뭐 어떻게 하려고 했을 때 내버려 둬라. 권력 쓰지 마라. 왜냐하면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사람에게서 난 것은 이거 다 한계가 있다. 그 다음에 39절입니다. 이게 이제 중요한 거죠. 만일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두 가지입니다.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행 5:39).

칼로 이길 수 없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두려워한다" 이걸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자, 하나님의 뜻을 어긋내려고 하는 자, 두려운 일입니다. 이 편에 서면 안 된다. 절대로 이와 같은 자리에 서면 안 된다. 이게 가말리엘의 말입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6장 19절로 가겠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한 말인데요. 아그리바 왕에게 이제 간증하는 내용들입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이게 이제 아그립바라고 돼 있지만, 그 앞에가 사실은 헤롯입니다.
헤롯 아그립바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사도바울 간증은 간단합니다. 자기는 주님을 핍박했습니다. 그랬을 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가 발길질하는 것이 내게 고생이니라" 그렇게 했죠. 그다음에 이제 주님으로부터 이제 여러 가지 말씀을 들은 거죠.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나타내신 것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나는 이제부터 말씀에 나타난 것을 거부하거나, 반대하거나, 어기거나, 이거 하지 않는다. 이게 사도바울의 생애의 원칙입니다. 어떤 경우도 성경이 말하면 그 순종해야지, 그걸 자꾸 어긋내게 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 자기가 그전에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주님을 반대하고, 그래서 주님을 반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고, 그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는 잘 아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만 더 찾고 마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문제가 많은 교회죠. 고린도전서 후서가 쭉 이제 이렇게 쓰이고, 고린도후서 13장은 수많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쭉 다루고 오고 이제 13장이 마지막 결론에 해당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8절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 13:8).

하나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게 있고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게 있는데, 그것을 내가 거스린다고 그래서 거슬려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자기만 망할 뿐입니다. 진리가 무너지거나, 진리가 훼손되거나, 진리가 약화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오직 단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진리를 위할 뿐이니"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를 살고, 진리를 세우고, 진리를 높이고, 이것만이 우리에게 가능한 유일한 길이다라고 사도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참으로 하나님 말씀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암송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그래서 간절히 저희가 세 가지를 하길 원합니다.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고, 그리고 서로 봉사하고, 이것을 지역 모임이 간절히 할 때, 이 진리를 순종할 때, 주님께서 영광을 얻으시고 저희 가운데 은혜를 베푸시고 저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유익을 얻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갈 것입니다. 이 길을 살기를 원합니다. 베드로가 이 길을 걸어갔고, 야고보가 순교하면서 기쁨으로 그 길을 갔고, 또 사도 요한이 끝까지 그 길의 영광을 계시록을 통해서 보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도행전 12장을 통해서 저희 마음을 감동해 주시고, 또 그 말씀이 저희 마음에 살아있어서 저희로 하여금 주님을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