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덕언 말씀

덕언 : 주님의 때 / 강성찬bro

박이레 2024. 6. 18. 12:44

< 덕언 : 주님의 때 > 강성찬 형제님

요한복음 8장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요 8:51-59).

이 부분에서 이제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고 계십니다. 참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의 아버지이시고,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영원토록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가운데에 우리 주님께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언급을 하게 되십니다. 유대인들이 "네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라고 질문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56절에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여기서 그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라고 했는데요. 여기서 이 '나의 때'라는 것이 무엇일까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 이제 주님께서 '나의 때'를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을 이제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가르키는 이제 그러한 시간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 메시아, 구원자께서 오셔서 이제 십자가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시고, 그 구속을 이루시는 그때, 아브라함은 이제 분명히 그것을 기다리고 소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바로 이제 그러한 때를 볼 것을 즐거워하다라고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이게 그냥 단지 그런 좋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도 되는데, 놀라운 때, 그 메시아가 오는 때를 그것을 볼 것을 즐거워하였다라고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표현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소망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단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직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는 즐거워하고 있어야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의 다른 일들도 그렇습니다. 내일 소풍을 간다고 했을 때, 즐거운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미 오늘부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게 소망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내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벌써 지금부터 즐거운 것입니다. 그 사람을 만날 것을 생각하면서, 벌써 마음이 설레고 벌써 즐거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그 때를 생각할 때에 그것을 볼 것을 기다리면서 즐거워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제 공중에서 우리를 만나러 오실 것을 우리는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하루 이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벌써 즐거워해야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분명히 우리가 그 소망을 우리 마음속에 담아놓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면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즐거워하였다"라는 표현도 이제 조금 이상한 표현이었다면, 그 뒤에 나와 있는 표현은 더 이상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주님의 때를 보고 기뻐하였다", 보고 기뻐하였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한 번 '나의 때'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사실 여기 나와 있는 '이 때'라는 것이 요한복음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그 때'와는 사실 원어가 다른 때입니다.
다른 때,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 주님께서 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그 모친이 말씀하셨을 때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을 때는, 그때가 시간을, 어떤 한 시간, 2시간, 시간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른 요한복음에서 자주 사용되는 그 때라는 그런 단어도 전부 그 시간이라는 단어 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특별히 여기서 나의 때라고 했을 때는 이제 '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Day입니다. 어떤 날, '나의 때'라는 것은 주님의 날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어떤 경우에 사용이 되냐면은 "롯의 때와 같이" 이렇게 어떤 그 시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롯의 때에,  롯이 살고 있던 때에 사람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고 그렇게 했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롯이 살았던 시대, 롯이 주인공으로서 살았던 시대, 그 때를 롯의 때라고, 또는 노아의 때라는 표현도 있고, 동일한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의 때"라는 것은 이제 주님의 날들, 주님께서 주인공으로 사는 그런 시간들, 이제 그런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이제 유대인들이 바로 이렇게 물어봅니다.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아브라함이 살던 시간과 내가 살던 시간은 지금 완전히 다르다,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그 시간이 겹쳐지지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5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 8:58).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도 내가 있느니라." 여기서 내가 있느니라라는 이 표현은 내가 있었다, 이제 과거가 아니고 이제 현재형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주님께서는 현재적으로 계셨으며, 아브라함의 때도 현재적으로 계셨고, 그리고 지금 유대인에게 말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는 현재적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분이어서,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그리고 항상 우리에게 오시는 분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은 자신이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살아있을 때에, 그리고 그때에도 우리 주님께서는 '나의 때'라고 부르는 그 때를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아브라함의 때에 실제적으로 그 아브라함을 만나고, 그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아브라함과 함께 이 교제를 나눴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그 옛적에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를 그때도 나의 때라고 부르실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단지 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적으로 듣고 그래서 알고 그래서 그걸 가지고 보고 기뻐하였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생생하게, 자신의 인생 가운데서, 이미 메시아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아께서는 영원토록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먼 미래에 오시는 그분이 아니라, 물론 그분은 이제 역사적으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그 하나님의 때에 십자가에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메시아께서는 영원토록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때에, 그 아브라함의 때에 나의 때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냥 먼 예언의 말씀으로서가 아니라 생생하게 아브라함은 주님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서 여러 번 주님께서 '나의 때'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그 갈대아 우루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 순간 그는 생생하게 우리 주님을 경험하고 만나고 그분과 교제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한 방문객으로 오시고, 이제 그에게 약속하시고, 또한 소돔에 어떤 심판이 내릴 것을 말씀하셨을 때, 그는 우리 주님에 대해서 생생하게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한 그가 모리아산에 가서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을 때, 그러한 일 가운데서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드려지시고 그리고 다시 부활하시는 것을 또한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삶의 많은 순간들이 주님께서 '나의 때'라고 부르는 시간으로 채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때를 보고 기뻐하였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브라함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주님께서 나의 때라고 부르시는 그런 시간들로 우리의 인생이 채워지기를 바라게 됩니다. 우리의 이제 앞으로의 1주간이 주님께서 나의 때라고 부르는 그런 시간들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주님과 함께 교제를 나눌 때에, 우리는 그러한 시간들이 주님의 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영생이 무엇인지를 여기서 설명하고 계십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래서 주님과 함께 교제를 나누고, 주님의 때에 참여해서 그 영원토록 계시는 그 주님의 때가 내 삶에 들어오게 될 때에, 내 시간을 채우게 될 때에, 그때 우리는 영생을 참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시간들을 풍성하게 채우시기를 우리 주님께서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이 아브라함과 같이 주님을 더욱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그와 같이 이제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이제 앞으로 한 주간 더욱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과 가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