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덕언 말씀

덕언 : 네 강의 근원 / 이명인bro

박이레 2024. 4. 19. 12:19

< 덕언 : 네 강의 근원 > 이명인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덕언 말씀은 '네 강의 근원'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 창세기 2장 10절부터 14절입니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창 2:10-14).

에덴 동산에서 발원해서 네 강으로 흘러가는 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고요. 이 네 강의 근원은 에덴이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은 4개의 강이 나오는데 첫 번째 강이 오늘 읽었던 이 에덴에서 발원하는 강이고요. 두 번째 강은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쳤을 때에 강물이 흘러넘쳤죠. 세 번째 강은 교회가 휴거된 후에 천년 왕국에서 새 예루살렘에서 강이 흘러넘쳐서 절반은 동으로, 절반은 서해로 흐른다고 스가랴 14장 8절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날의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리하리라" 항상 마르지 않고 흐를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 번째 강은 하나님 보좌에서 흐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 21장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읽은 이 네 강은 노아의 대홍수 사건 이전의 강들이었으므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강들과는 상관이 없는 강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살펴보면 11절에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이 '비손'이라는 뜻은 '자유로이 흐른다' 또는 '값없이 풍부하게 흐른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성경의 사용 용례는 흩어지다. 뛰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강이 흐르기 위해서는 지대가 낮아져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상에 지상 재림하신 후에 천년 왕국에서는 예루살렘은 모든 땅보다 높아질 것이고요. 온 세상은 아라바 같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온 세상이 주님을 왕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강물은, 이 은혜의 강은 낮은 데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들이 받는 것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분명한 죄인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들이 받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었던, 주님 지상 생애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발 앞에 나왔던 사람들, 주님 앞에 엎드렸던 사람들, 나는 죄인이었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했던 제자들, 그러한 자들에게 은혜의 강물이 흘러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11절에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금이 있는 곳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런데 그 금은 12절에 정금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베델리엄은 향기 나는 식물이며 향료의 재료입니다. 이 은혜의 강물이 흘러들어갈 때에 그 강물에 뿌리를 둔 이 식물은 향기 나는 재료를 생산해 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강물이 흘러들어갔을 때에 죄인에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냄새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보면 "호마노도 있으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호마노는 다른 말씀을 보면은 '녹주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호마노는 대제사장의 의복에 겉옷에 두 견대, 어깨 위에 두 보석이 있는데 이게 호마노입니다. 그 호마노 양쪽에 인을 새김같이, 그 보석 호마노의 여섯 지파, 여섯 지파의 이름이 거기에 새겨집니다. 이 보석은 이스라엘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석이요, 마태복음 13장 44절에서 46절에 보면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보화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밭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밭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강탈자가 그 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단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보화를 얻기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혈육을 입으시고,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로 가셔서 그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사망에 이르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음, 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사실 수 있는 근거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보화를, 소유권을 행사하러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화들은 천년 왕국의 백성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마태복음 13장에 여섯 번째 비유가 극히 값진 진주입니다. 진주는 조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 조개는 바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것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열국 가운데서 불러낸 선민입니다. 아브라함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우루에서 불러내셨습니다. 두 번째 이 비유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바다가 의미하는 이방인들이 주로 이 교회를 형성하고 있죠. 유대인도 있습니다만 민족적인 유태인 나라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유대인과 개별적인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것이 교회이죠. 그래서 이 진주를 사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신부를 얻으시기 위해서 그 조개 속에서 그 고통과 또 찔림과 상함을 견뎌내셨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이 진주는 만들어지는 것이죠. 주님의 십자가에 그 고통과 죽음과 또 상하심과 찔리심으로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불러내시기 위하여 주님은 그 값을 다 치루어 주셨죠. 그래서 이 은혜의 강물은 여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방 죄인들이 전에는 어둠이었는데, 우상의 종노릇하는,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갔던 자들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히 여겨주시고 진주와 같이 여겨주셨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바라볼 때에, 교회를 생각할 때에, 주님이 얼마나 상하시고 찔리시고 고난 받으시고 그 고통을 견뎌내셨는지를 생각하게 되며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두 번째 강은 기혼입니다. 13절에, '기혼'은 '분출', '용솟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래서 이 샘물은 분출해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즈벡에게도 울고시라는 곳에 가면은 전부 다 사막 지역인데, 산 밑에 어느 생수 지역에서 물이 계속 솟구쳐 오릅니다. 제남에 갔더니 그렇더라고요. 땅에서 솟구쳐 올라와요. 그러면 이 힘은 어디로부터 말미암은 것인가? 눈에 보이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것은 물만 솟아나는 것만 보입니다. 생수예요. 겨울에도 솟아나고, 여름에도 솟아나고, 가을 때도 똑같이 솟아납니다. 이런 걸 생수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 힘은 높은 곳에서부터 그 물이 흘러내려와서 땅속 어딘가를 뚫고 그리고 땅 위로 분출돼 올라오는 것이죠. 성도들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이 힘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가?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 주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 가운데서 솟아나오고 있습니다. 복음으로, 또 그리스도를 섬은 섬기는 여러 가지 모습들로, 기쁨으로, 광야 같은 곳에서, 세상 사람들은 슬퍼하고 근심하고 우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만족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 강은 구스 온 땅을 둘렀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스는 함의 아들의 이름 중에 한 명입니다. 함은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보고 형제들에게 이야기했던, 그러므로 나중에 그 아들 가나이 저주를 받았던 그런 아들이었죠. 이 구스라는 것은 이제 '검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 얼마나 흑암 가운데 있었던 죄악 가운데 있었던 죄인이었는가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까지 흘러들어와서 생명을 주시는 생물이시다. 참으로 주님을 생각할 때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세 번째 강은 '힛데겔', 힛데겔은 신속하게 '흐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앗수르는 샘의 아들입니다. 이 앗수르의 뜻은 정확하게 잘 모릅니다만,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만, 그중에 하나는 아수르의 신, 아슈르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래서 이 신은 전쟁을 주관하는 신입니다 다시 얘기하자면 사람들에게 죽음을 주는 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전에 우상을 섬기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무서워하며 사망의 종노릇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까지 이 강물이 흘러 들어오되 신속하게 흘러들어왔죠. 주님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 앞으로 나오라.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라. 예수님을 영접하라. 계속해서 오래 참으시면서 이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접할 때 얼마나 신속하게 들어오는지, 얼마나 빨리 들어오는지, 아담이 범죄했을 때 그가 금방 죽었나요? 그가 범죄했을 때 바로 즉사했나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이 930세를 살았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심판은 오래도록 미루시는 분입니다. 지금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에 이르길 원하시며 아직도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이게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은혜는 신속하게 주신다. 참 감사한 주님이십니다.

네 번째 강은 '유브라데'강이라고 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브라데'라는 뜻은 '단물' 또는 '비옥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유브라데 지역은 지금도 이제 티그리스강, 유브라데스강이 있죠. 메소포타미아 지역입니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전 세계 문명 가운데 가장 최초의 문명, 메사포다미아 문명이죠.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도시가 형성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말씀의 강물이 흘러들어옵니다.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리고 그 비옥한 땅에 지역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리고 그곳은 비옥한 곳이고, 그리고 강물이 넘쳐 흐르기 때문에 그곳에는 모든 좋은 것이 자라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명을 이룹니다.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지역 교회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행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세워지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우상이 창궐하는 지역이지만 지역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행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단것들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받으시고 하나님이 예배 받으시는 곳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4장 10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내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니라" 사마리아 수가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죠. 그래서 이 생수를 구하고 제가 주님을 믿기를 원합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그리고 생수를 구해야 되는데 이 여인은 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죠. 구할 수 있도록, "네 남편을 데려오라." 그랬더니 제가 남편이 없습니다."네 말이 옳도다. 전에 있었던 다섯 남편은 남편이 있었는데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동거하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다. 네 말이 옳도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간음하고 범죄하는 분명한 죄인입니다. 주님이 영혼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를 지적하십니다. 구하게 하기 위해서, 생명수를 영원한 생명을 구원을 구하게 하기 위해서, 그때 생명수 되시는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이죠. 겟세마네의 동산과 갈보리와 그 무덤의 골짜기를 거쳐서 우리에게까지 생명의 말씀으로 가지고 흘러들어오신, 겸손하고 낮아지고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흘러들어가시는 은혜의 복음의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때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구원받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에덴 동산에는 네 강이 있습니다. 네 강이라는 것은 사방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에덴 동산이 지구상에서 그 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강물은 전 세계로 흘러들어갑니다. 노아 시대 이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 강물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죄악된 곳이었고, 세상이었습니다만 이 강물은 계속 흘러넘쳤습니다. 마치 죄악된 우리들에게까지 흘러들어온 것과 같은 것이죠. 그 강물의 근원은 갈보리 동산 십자가입니다. 주님은 높은 곳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강물은 전 세계로 흘러가게 하셨죠.
한 말씀을 더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 17:8).

비슷한 말씀이 시편 1편 3편에 나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이와 같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겠습니다. 예레미야 17장 8절에 이 말씀은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고 가무는 해도 걱정이 없고 결실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에 성령의 열매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성령의 열매 9가지는 셋, 셋, 셋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셋,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관련된 열매입니다. 사랑,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때에 이웃을 사랑합니다. 성도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열매입니다. 희락,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의 교제를 즐거워합니다. 그때에 세상에 어떤 환경에 있을지라도 그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나오는 것이죠. "항상 기뻐하라." 세 번째, 화평입니다. 하나님과 화평한 자, 그는 언제나 평안과 만족이 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세 열매는 오래 참음, 자비, 양선입니다. 오래 참음은 다른 말로 동의어가 인내입니다. 예수님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세상으로부터 받는 핍박과 대적에 대한 반응이 오래 참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죠. 이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맺는 열매,
두 번째 그룹. 첫 번째 열매입니다. 두 번째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맺는 열매 자비입니다. 이웃에 대해서 친절을 베풉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강도 받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세 번째 열매는 양선입니다. 내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것이 양선입니다.
세 그룹 중에 세 번째 그룹은 나 자신과 관련된 열매입니다. 첫 번째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신뢰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충성으로 나타납니다. 신실함으로 나타납니다. 이 충성이라는 말은 믿음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입니다. 두 번째 열매는 온유입니다. 우리는 내적으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온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온유하신 분입니다.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통해서 진멸하실 수 있는 주님이시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서 그것을 온유하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유할 수 있습니다. 인자하고 부드러운 여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죠. 9번째, 자기 자신에게서 맺는 열매 셋 중에 마지막 절제입니다. 다른 말로 자제입니다. 내 속에서 나오는 그러한 욕망이라든지 또는 성향, 이런 것들을 자제하는 것이죠. 또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신 대로 "형제가 실족하면 내가 고기도 먹지 않겠다" 한 것처럼 절제하는 것이죠.
형제들을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행해도 아무 죄가 아닌데 절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래 참음과 절제는 다른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외부에서 오는 핍박과 환란을 견뎌내는 것이고요. 절제는 내부에 있는 것을 자제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수를 받아들인 자에게 이와 같은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생명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흡족합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잎이 청청합니다. 가뭄의 해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열매라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외침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영광 받으시고 또 주님이 경배받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