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로마서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22-27절(요약)

박이레 2024. 5. 11. 00:50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22-27절(요약)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롬15:22-27,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22절부터 교제할텐데요. 사도바울은 여러번 로마지역으로 가서 교제하기를 원하셨지만 주님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 로마교회로 가기를 원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22절부터 형제님들께서 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지난 시간에 사도바울이 특별한 섬김에 대해서 얘기했고 오늘은 앞으로의 사역에 대해서 말합니다. 고린도에서 예루살렘, 예루살렘에서 로마, 세번째로 로마에서 서바나(스페인)를 말씀합니다. 합이 1800km가 되는 대장정입니다. 서울과 대전을 15번을 왕복하는 거리입니다. 이때 당시 사도바울의 나이아 60세 전후 정도로 되었다고 합니다. 이 나이에 이 정도의 여정은 비행기를 타는 여정이라 할지라도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담대하게 이 여정을 계획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로마로 가는 길이 여러번 막혔지만 사도가 고대하던 방문의 때가 다가온 것을 보게 됩니다. 동부 지중에서의 사도의 선교사역이 거의 완수되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사도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예전에부터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롬1:11, 개역한글)
 
세번째는 자신의 로마 방문이 서바나로 가는 여정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의 지중에서의 사역은 마무리 되었고 그는 새로운 지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 성도들을 볼 뿐만 아니라 로마 성도들이 그를 그의 목적지로 보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 한국 모임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세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또한 교회를 통해서 복이 번져 나가는 것으로 사용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2-23절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이 로마 교회에 여러차례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롬1:13, 개역한글)
 
로마 교회의 방문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가 사도바울이 여러 곳에서 복음을 전하기에 지체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쉼없이 그 일을 계속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는 것보다 주님께서 명하신대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우선시 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또한 주관하고 계시기에 로마 방문이 계속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알고 받아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에 방문해서 성도들과 교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복음을 전할 새로운 곳이 없기에 다른 새로운 지역으로 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주님께서 그를 부르신 후부터 계속해서 쉼 없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일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를 방문하고 서바나 지역으로 가는 것은 오래전부터 준비한 일임을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이와 같은 일에 많은 기대와 생각을 가지고 로마에 가는 것을 상상했겠지만 그가 생각한것과 같은 모습이 아니며 고통스러운 여행을 거쳐서 로마에 가게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음을 23절 "원이 있었으니"라는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25-27절 말씀을 보면서 감사가 되는 것은 이방인이지만 저희들에게 신령한 복음이 전해져서 영육적으로 주안에서 평안을 누림에 감사가 됩니다.어제 장승훈 형제님이 톡하셔서 모두 아시겠지만 여러 지역모임이 선교 헌금을 보아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육신적으로 교회 건물을 키우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주의 일에 힘쓰는 것에 큰 감사가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24절, 왜 사도바울이 로마 교회의 보내줌을 바라고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사도바울이 그때까지 사역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동역자들이 있음을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서바나 지역 선교사역에 로마 교회가 함께 동참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로마교회의 파송을 받아 기도 후원과, 헌금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복음전파는 어느 지역교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지역교회가 합심해서 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복음전파는 사단과 가장 최전선에서 부딧치는 부분입니다. 그런 복음 전파자에게 물질적으로 간접적으로 돕는것은 같이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가 합심해서 이를 도와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25절, 말씀을 볼 때에 사도바울은 로마교회를 방문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음에도 예루살렘 교회를 먼저 방문합니다.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얼마를 헌금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대단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가 그것을 모르지 않지만 예루살렘으로 가는 이유는 예루살렘 교회가 모든 지역교회들 중의 처음 시작된 교회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가 완전히 일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유대인들 중에 자기들이 행하던 유대인의 유전을 이방인 교회들에게 지키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때 사도는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결코 차별하지 않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말하며, 또한 이방 교회가 그들의 사랑을 예루살렘에 나타내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예루살렘 교회로 그들의 헌금을 가지고 가게 된 것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바울은 지금 있는 곳에서의 일을 마치고 서바나로 가려고 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게도냐, 아가야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연보를 함께 가지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롬15:31, 개역한글)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롬15:28, 개역한글)
 
바울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로 가서 서바나로 가려고 하는 마음의 선함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마음 가운데 있는 선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선함을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셨습니다. 크게 쓰임받은 사도도 그에게 선함과 뜻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뜻을 이루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잡히고 동족들이 구원받지 않고 잡혀서, 왕 앞에 서게 됩니다. 그는 죽일뻔도 하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는 몸이 묶에서 로마로 가고 그 원대로 갔지만 그는 로마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저희들의 생각으로는 참 아쉽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선함과 그 바람들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의 삶 가운데 원함과 선함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것을 들어주시지 않을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러한 가운데서도 끝까지 선한 간증을 잃지 않고 주님을 섬겼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연보를 가지고 가는 것은 섬기는 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자원함으로 기쁘게 해야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이 열매가 되었습니다. 저희가 물질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있는 형제 자매님들을 돕는것은 열매가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적인 관점과는 많이 다름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이 영적인 교류를 하는데요. 이는 육신적인 어려움과 육신적인 결핍도 함께 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영적인 것만 생각하고 육적인 것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돌보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는 원리 가운데서 로마서 15장은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22절에 바울 형제님이 로마에 가려고 했던게 여러번 막혔다고 되어 있습니다. 비슷하게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려고 했지만 사단이 막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전도자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의 계획을 모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때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바울 형제님이 이것에 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사도바울의 계획은 막혔으며 더 먼길을 돌아가며 로마로 가게 될 때는 죄수의 신분으로 가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이것은 매우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계획대로 모든것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바울 형제님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계획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계획을 세우는게 맞는가?' 우리가 그런 계획을 세웠을때 하나님이 막으시면 그것을 순종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나하면 그 과정을 통해서 또 다른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형제님은 그와같은 것을 인지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실 그 길을 갔다고 생각이 듭니다.
 
25절부터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고 있습니다. 앞에서 보았던 바울 형제님의 모습은 전도자의 모습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전도자가 아니라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그 부르심에 따라 저희가 각자 설정한 목표가 있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공계에 있는 분들은 효율을 굉장히 따집니다. 그래서 비효율적인 일을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모임 안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모임 안에서 일을 할 때에 때로는 이게 이상해 보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인도를 따라서 가야함을 교훈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