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로마서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19-21절(요약)

박이레 2024. 5. 11. 00:50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19-21절(요약)
 
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5:19-21,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14-21절까지가 한 문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14절은 "내 형제들아"로 시작합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이고 로마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있는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은 한번도 보지 못한 로마 교회를 향해서 "내 형제들아"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과 관심 가운데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였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21절에는 또 다른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간 후에 로마에 갈 것, 미래의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계획 가운데 미래의 일을 로마 성도들에게 생각해 보라고 언급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19-21절까지 교제하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9절은 세번의 선교여행과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한 내용을 간결하게 말한 것입니다. 또한 "두루 행하여" 이 말씀을 볼 때에 순회사로서 활동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이는 사도의 사명이었으며 마쳐야 할 일이었습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은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12:3, 개역한글)
 
하나님꼐서 모든 성도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은사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3:6, 개역한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고전3:10, 개역한글)
 
사도는 자신과 아볼로에 관한 하나님의 일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구약 말씀을 인용하며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전까지 이방인들이 어둠속에 있었다는 말씀을 합니다. 이처럼 모든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알려 주실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0절을 볼 때에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온 천하로 다니면 만민에게 복음으로 전파하라고 명하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복음이 온 땅끝까지 전파되기 위해서 바울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그곳은 우상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이기에 복음을 전할 때 많은 환경적인 어려움, 방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다 무릅쓰고 주님께 충성하며 맡기신 일을 행할것을 말씀합니다.
 
21절은 이사야 52장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고 이를 섭리로서 이루시고 계시다는 것을 보인 것입니다. 전파되는 복음을 통해서 주님을 들어보지 못했던 이방인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되고 믿음에 이르게 된 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9절은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범위에 대해서 말씀했다면 20절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의 원칙을 말하고 그대로 전했음을 말씀합니다.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편만하게 라는 뜻을 어떻게 분별하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어적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빠지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한 후에도 교회가 세워지고, 또 일꾼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졌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사도바울이 부족한 것을 지역교회가 보충하며 복음을 넓게 전했다고 말합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롬15:20, 개역한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는 복음이 처음 전해질 때 많은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미 복음이 전해져 저항이 적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는 터를 놓는 건축자입니다. 그 터 위에 세우는 것은 다음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의 역할에 충실한 것입니다. 그 역할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수반하고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21절에서는 이사야 52장 15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사52:15, 개역한글)
 
사도바울의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역이 이미 구약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성취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19절에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는 2200km라고 합니다. 이는 매우 긴 거리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거의 서유럽 가까이까지도 바울은 멀리 주님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모든 형제들을 사랑하는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특별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안디옥이나 고린도 교회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모든 이방인 교회를 사랑하고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다는 말씀처럼 그 복음을 전하는 자도 같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이 복음을 전하지만 더 마음이 가는 간절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냥 의무적으로 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적인 마음에서 벗어서나서 간절한 마음으로 "편만하게" 전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사야 52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과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본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반응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담대하게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21절 말씀까지의 교제는 여기까지 하고 22절부터 더 교제하실 형제님이 계시면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태우 형제님 : 저는 막연하게 전도여행하면 '여행'이 들어가서인지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는거 같습니다.
사도바울 형제님은 주님을 만난 이후로 평생동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 길은 힘들고, 목숨을 걸고 가야 하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무언가를 주님의 사명으로 받았다고 가볍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사도바울 형제님의 모습을 통해 주님께 충성하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20-21절을 보고 싶습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10장 13-15절 말씀에서도 언급이 됩니다.
저는 그래도 복음을 들어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려움, 딜레마를 겪습니다. 그들은 "나도 예수님을 믿어."라고 하지만 교제해보면 구원받지 못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들은 교파교회를 다니지만 입으로만 예수님을 부르고 주여,주여라고 합니다. 또한 현재는 교회를 다니지 않기도 합니다. 이들과 어떻게 교제를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그들과 교제할 때 저의 구원간증을 합니다. 그러면 미쳤다는 소리도 듣습니다. 어떻게 교제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형제님 말씀대로 저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현재의 교파교회는 엄밀히 말해서 교회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구원받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는데 어떻게 교회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 당신은 구원받지 않았다고 하면, 그대로 받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종교적으로 뭔가를 이루어 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떤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사귐을 가지면서 복음 말씀을 꺼낼 수 있는 계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